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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호씨는 옥천살림에서 일할 때부터 자유롭게 수염을 기르고 다녔다. 입고 다니기 편해 색이 다른 ‘점퍼슈트’를 몇 벌 바꿔 입고 다닌다. 금요일 아침에 〈옥천신문〉이 도착하면, ‘오키밴’이라는 승합차에 신문을 싣고 우체국으로 간다. ⓒ시사IN 박미소
지난 9월3일 대산농촌재단이 수여하는 제34회 대산농촌상 수상자가 파칭코사이트
발표됐다. 1991년 제정돼 농업·농촌의 가치를 높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에 공헌한 이들에게 주는 상이다. 농촌발전 부문 수상자가 눈에 띈다. 황민호 ㈔커뮤니티저널리즘센터 이사장(50)이다. 현재 〈옥천신문〉 대표를 맡고 있다. 왜 지역 언론인이 ‘농촌발전 부문’을 수상하게 되었을까? 9월16일, 충북 옥천에서 황민호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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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신문〉은 한국 언론에서 드문 이력을 가진 풀뿌리 언론이다. 1989년 창간한 ‘군민주’ 주간신문이다. 당시 〈한겨레신문〉 옥천지국장이었던 오한흥 전 대표가 군민 222명으로부터 돈을 모아 창간했다. 지역신문 업계 최초로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회사의 지분을 30% 이상 소유할 수 없는 형태로 설립되었다. 지역 이그잭스 주식
토호 등 권력과 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였다. 월 구독료 1만원, 한 부당 2500원이다. 매출에서 구독료 비중이 55%가량 된다. 유료 부수가 2900여 부. 옥천군의 세대수가 2만5700여 세대(2025년 8월 말 현재)인 점을 감안하면, 옥천군 열 세대 중 적어도 한 가구 이상은 〈옥천신문〉을 구독한다는 뜻이다. 한국 언론에서 이 정도 구전기차주식
독 비중은 적지 않은 수치다.
황민호 대표는 2002년 〈옥천신문〉에 합류했다. 고향 대전의 한 주간신문에 3개월가량 다니다 〈옥천신문〉으로 옮겼다. “남들처럼 ‘인서울 언론’에 들어가기 위해 언론사 시험 준비를 했다. 시험에 막 떨어졌다. 은사인 차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현재 명예교수)가릴게임다운로드
공동체 언론에 관심이 많았고, 〈옥천신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매체 이름만 따지지 말고 기자가 필요한 곳에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이자 (사)커뮤니티저널리즘센터 이사장은 “지역 언론은, 밀착이 혁신이다”라고 말한다. ⓒ시사IN 박미소"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06/sisain/20251006073305910usqv.jpg" data-org-width="1280" dmcf-mid="upL9ArBWR6"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06/sisain/20251006073305910usqv.jpg" width="658">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이자 (사)커뮤니티저널리즘센터 이사장은 “지역 언론은, 밀착이 혁신이다”라고 말한다. ⓒ시사IN 박미소
〈옥천신문〉 기자는 옥천에 살아야 한다. 살면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차로 30분 거리라 출퇴근이 가능했지만 이 불문율에 따라 기자 황민호도 옥천읍으로 이사했다. 입사 후 첫 기사를 쓰고 독자들의 반응에 놀랐다. 직전에 3개월 머물렀던 지역 언론과는 꽤 달랐다. “그전 매체는 관공서에서 보는 정도였다. 오탈자가 나도, 심하게 틀려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옥천신문〉은 기자가 들어오면 ‘신입기자 누구 왔습니다’ 하고 공고를 낸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신입 기자래’ 하고 알아본다. 독자들이 신문을 돌려 보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빨간 줄 치면서 신문을 읽더라. 기사 잘못 쓰면 난리 나겠다 싶었다.”
언론계에 흔한 말이 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고. 일상적이지 않은 특이한 사건이 뉴스가 된다는 뜻이다. 〈옥천신문〉 활동을 기록한 단행본 〈어떤 장면〉에서 황민호 대표는 “〈옥천신문〉 보도에는 이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사람이 개를 물어도 뉴스요, 개가 사람을 물어도 뉴스다”라고 썼다. 주민들의 일상이 뉴스가 된다. 언론사의 문턱이 낮아야 한다고 여겼고, 주민들의 제보에 성실하게 응대했다.
〈옥천신문〉에는 주민들의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 소가 쌍둥이를 낳았다, 행운목에 꽃이 폈다며 ‘이런 것도 뉴스가 되나요’ 하고 연락이 온다. 황 대표가 보기에, 지역 뉴스는 지역민에게 소구하면 된다. 가게 창업을 했다고 하면 가서 취재한다. 지역을 기록하는 아카이빙과 저널리즘 사이에 지역 신문이 존재한다고 여긴다. 초중고에서 학생회장이 됐다고 하면 인터뷰한다. ‘우리 반 짱’이라고 해서 반 아이 전체를 다 인터뷰한 적도 있다. 지역의 기수별 동창회도 취재한다. 왜? “지역의 모든 사람은 특별하다. 공론장의 문턱을 최대한 낮추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0∼60대 남성이 점령한 불균형한 공론장을 어떻게 지역 사람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 유령처럼 살면서 목소리를 못 내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변할 것인가. 그 목소리를 끄집어내는 거다.”
이웃의 일상을 신문에서 접하게 되니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제보가 차차 늘어났다. 민원과 제보를 보도했다. 기사를 쓰면 달라졌다. 초등학교 앞에 없던 인도가 생겼고, 산책로에 장애인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주민들의 필요에 응답하는 보도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지역의 파출소 통폐합(안)을 보도해 공론화하자, 열흘 만에 철회되었다. 황 대표가 보기에 제대로 된 풀뿌리 언론의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솔루션 저널리즘’일 수밖에 없다.
‘황 기자’에서 ‘황 기사’로 보낸 3년
황민호 대표와 대화를 하다 보면 ‘언론인 반, 지역 활동가 반’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의 삶에서 지역 활동의 비중이 꽤 커 보였다. 대산농촌상을 받은 이유다. 황 대표는 “지역에서 롱런할 수 있는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첫 번째는 ‘청산면 3년 생활’이었다. 2006년에 기자 황민호는 옥천읍에 살다 옥천군의 동쪽 끝에 있는 청산면으로 이사했다. 신문사에서 차로 40분 거리. 같은 옥천군이지만 대전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복되는 행사를 취재하는 듯한 느낌, 약간의 매너리즘에 빠진 듯했다. 삶의 거주 환경을 바꾸어보자 싶었고, 이왕이면 가장 멀리 가서 생활해보자 했다. 나 스스로를 유배시킨 거다(웃음).”
. 금요일 아침에 나온 신문을 사가는 주민이 많다. ⓒ시사IN 박미소"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06/sisain/20251006073306144xudx.jpg" data-org-width="1280" dmcf-mid="7LbG4MyjR8"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06/sisain/20251006073306144xudx.jpg" width="658">
옥천신문사 1층에 비치된 <옥천신문>. 금요일 아침에 나온 신문을 사가는 주민이 많다. ⓒ시사IN 박미소
면 생활은 읍 생활과 달랐다. 청산면의 인구는 2700명가량, 읍과 달리 면에서는 익명성이라는 게 없었다. “기자가 이사온다고 하니 면 사무소에서 떨떠름해했다(웃음).” 살면서 청산면에 대한 애정이 많아졌다. 아침에 초등학교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금요일 저녁에는 공부방도 조그맣게 열었다. 초등학교 교장과 상의해 강당을 빌려 영화를 틀어주었다. 학교 도서관 야간 개방 운동도 벌였다. 학교 측에서 ‘야간에 도서관을 열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자, 신협 직원·우체국 직원·지역 공무원·학부모 등 자원봉사자를 모아 밤 9시까지 학교 도서관을 개방하는 것을 도왔다. 때마침 열린 작은도서관 공모전에 응모했고, 1등을 해 상금 1억원으로 도서관 리모델링도 했다. 기자 겸 활동가로 3년을 보냈다.
두 번째 계기는, 퇴사였다. 2012년 〈옥천신문〉 편집국장을 마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입사 11년 차,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였다. “목요일 밤에 마감을 하고 금요일 신문이 깔리면 비판 기사에 항의하는 전화가 많았다. 스트레스를 거의 달고 살았다. 의미 있고 좋은 일이지만 일단 멈추어야겠다 싶었다.” 퇴사 후 진로 고민이 많을 때, 지역에서 친환경 농산물 운동을 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옥천살림’ 측에서 제안을 해왔다. 트럭 운전기사 자리가 비는데, 한번 해보겠냐고. 그렇게 황 기자가 황 기사가 됐다. 농민회 연대사업부장도 겸임했다.
3년 동안 급식 배달 등을 하며 옥천을 누볐다. 급식 배달, 독거노인 밑반찬 배달, 차상위계층 대상 배달 등 옥천 곳곳을 다녔다. 그 3년이 배움의 시간이었다. “10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지역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되게 건방진 생각이었다. 내가 못 가본 곳이 많았고, 못 만나본 사람이 많았다. 배달을 하다 보면 집 안까지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런 데서 어떻게 살까’ 할 정도였다. 배달 일을 하면서 자성을 많이 했다.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 더 있을 수 있겠구나, 기자 생활을 하면 더 잘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3년 배달 생활 이후,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황 기사에서 황 기자로 돌아왔다. 취재기자를 하다가 편집국 직선으로 제작실장(편집국장 역할)으로 일했고, 2021년부터 〈옥천신문〉 대표가 되었다. 3년의 청산면 생활, 3년의 옥천살림 생활은 지역과 풀뿌리 언론을 다시 보게 만든 자양분이 되었다.
황민호 대표를 인터뷰할 때, 고등학생 인턴이 함께했다. 괴산의 한 대안학교 1학년생이 인턴 과정으로 2주 동안 황 대표와 같이 다닌다. 이 학생은 ‘(황 대표가) 하루에 대여섯 개 일정이 있다’고 했다. 황 대표는 오전에 옥천읍, 오후에 영동군, 저녁에 청산면을 왔다 갔다 한다. 하루에 100㎞가량을 오간다. 영화 제목처럼,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황 반장’ 같다.
그는 2022년 청산면에 복합문화공간 ‘청산별곡’을 만들었다. 실버카페, 청소년 공부방, 만화카페 등 다양한 세대가 어울리는 공간이다. 연간 1000여 명이 이용한다. 카카오 임팩트(현 브라이언 임팩트) 사회혁신가로 선정되면서 지원금을 받았는데, 그 돈으로 철공소 자리에 청산별곡을 만들었다. “지역의 아이들이 갈 문화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버스가 오후 5시30분이면 끊기니 아이들이 머물 수가 없었다. 청산별곡을 저녁까지 열고, 아이들을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청산면 기반의 면 단위 주간신문 〈청산별곡〉을 만들었다. 옥천에서도 변방인 청산면의 삶을 기록하자는 취지로 마을신문을 만들었는데, 바로 옆인 영동군의 소식까지 다루면서 〈주간 영동〉으로 바꾸었다. 상근기자 두 명과 커뮤니티저널리즘센터에서 운영하는 풀뿌리저널리즘스쿨 학생(인턴) 네다섯 명이 함께 만든다.
신문만 만드는 게 아니다. 목요일 아침에는 기자들과 주민 봉사조직 한두 팀과 같이 경로당 31곳, 독거노인·장애인 집 20곳 등 50여 곳에 밑반찬을 배달한다. 옥천군 신활력사업에 응모해 하는 일이다.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소외계층이라고 하는 분들을 실제로 만나기가 어렵잖나. 그분들에게 서비스가 어떻게 되는지 직접 해보면서 만나보고 싶었다. 사람이 고픈 분들이라, 반찬 배달을 가면 무척 반가워하신다. 우리 인턴 기자들에게도 지역과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풀뿌리저널리즘스쿨을 2019년부터 운영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의 청년허브 사업과 연계해 지역 언론 생활을 경험하게 했다. 한 해에 70~80명 청년이 옥천으로 왔다. 2년가량 하고 중단되었는데, “이렇게 끝내기는 아쉬워” 저널리즘스쿨을 만들었다. 3개월 정도 지역에서 인턴 기자로 활동한다. 여러 가지 일자리 지원 체계를 활용해 운영·지원비를 마련한다. 명함을 만들어주고, 기명 기사를 쓰게 한다. 길 가다 만난 사람을 인터뷰해오라고 하기도 한다.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끄집어내는 게 기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해서다.” 이 과정을 거친 학생들이 서울의 큰 언론사에 꽤 진출했다. 한 해에 청년 언론인 20여 명을 양성하는 저널리즘스쿨이 되었다.
을 구독한다. ⓒ시사IN 박미소"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06/sisain/20251006073306363jovc.jpg" data-org-width="1280" dmcf-mid="z2j8wCVZL4"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06/sisain/20251006073306363jovc.jpg" width="658">
옥천신문사 1층에 걸린 ‘독자나무’ 걸개. 옥천군 열 가구 중 적어도 한 가구 이상은 <옥천신문>을 구독한다. ⓒ시사IN 박미소
서울엔 DMC, 옥천엔 OMC
황민호 대표는 ‘서울 상암에 DMC(디지털미디어센터)가 있다면, 옥천에는 OMC가 있다’고 말한다. 옥천을 배경으로 여러 미디어 실험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옥천신문〉이 있고, 풀뿌리저널리즘스쿨을 운영한다. 황 대표는 이 밖에도 여러 미디어에 관여한다. 사회적기업 고래실을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지역문화를 깊이 있게 다룰 잡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고래실에서 만드는 잡지가 〈월간 옥이네〉다. 곧 100호가 나온다. 옥천은 언론인 고 송건호의 고향이다. 고향 사람이 주축인 ㈔송건호기념사업회가 주민들의 기부금을 모아 옥천FM 공동체라디오(104.9㎒)를 개국했다. 소출력 공동체 라디오로 송신소 반경 10㎞ 이내 주민만 들을 수 있지만, ‘옥천FM’ 앱을 다운로드하면 어디서든 청취할 수 있다. 황민호 대표가 개국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옥천신문〉은 9월30일이면 창간 36주년을 맞이한다. 인구 4만8000여 명의 소도시 옥천군에서 취재기자 6명, 총무국 직원 3명이 분투하고 있다. 황민호 대표는 “한 번도 위기이지 않은 적이 없었고, 어려움은 늘 일상이다”라고 말한다. 월급날이 스트레스라고 한다. 대산농촌상 상금도 ‘통장에 스치고’ 풀뿌리 언론·지역 활동에 쓰일 거라고 했다. 개인 빚까지 내가며 지역·언론 활동에 나서는 것은 풀뿌리 언론을 매개로 지속 가능한 농촌·농업에 기여하고 싶어서다. “〈옥천신문〉은 군의회 계수조정 회의까지 참관한다. 4년마다 뽑은 지방의원이 무슨 발언을 하는지를 감시하고 전한다. 풀뿌리 언론이 없는 지방자치는 가짜다. 건강한 지역신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지역을 파고들어 관계의 힘으로, 공동체의 힘으로 지역을 재생하는 게 나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황 대표가 보기에, 지역은 투명한 유리 상자 안과 같다. “내 동선이 다 드러난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농촌지역일수록 언론의 윤리의식이 중요하다. ‘불가근불가원’이 원칙이다. 그래서 저녁 약속을 거의 잡지 않는다. 지역 유지와 유착할 게 아니라 지역 주민과 밀착해야 한다. 문턱 낮은 언론사, 밀착이 혁신이다.”
옥천·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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