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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의 어감은 어쩐지 좋지 않다. 아내를 업신여기는 느낌부터 들기 때문이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고성을 지르는 중년 남성이 입에 달고 살듯한 단어. 기품과는 거리가 이역만리만큼이나 먼 단어. 국어사전의 정의도 그렇다.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말’.
대중문화에서도 마누라는 주로 안 좋은 어감 혹은 부정적인 분위기로 다뤄진다. 20년 전 개봉한 ‘조폭 마누라’라는 영화도 마누라의 부정적 느낌을 차용했다.
과거로 돌아가 보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마누라가 아주 지체 높은 사람에게 쓰이는 극존칭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닉값)에 깃든 역사를 살펴보는 탐구하는 연재물 ‘사(史)와닉값’의 첫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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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가 뭐가 어째?” 영화 ‘조폭 마누라’ 포스터. 5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이다. [사진출처=코리아픽처스]




지체 높으신 ‘마노라’시여...
‘마누라’는 1460년께에듀박스 주식
마노라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삼강행실도에서다. 삼강행실도가 무엇인가. 열녀, 충신, 효자의 행적을 칭송하는 책 아닌가. 마노라라는 말이 그만큼 존귀하게 쓰였다는 의미다.

마노라는 주기적으로 등장하는데, 쓰임의 공통점은 같았다. 아주 높은 신분의 사람을 일컫는 호칭이라는 것. 마노라에 대한 해알라딘게임랜드
석은 여러가지인데, ‘마루하’에서 마노라로 변경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마루하가 존칭으로 통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한 조선시대 호칭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마노라, 그 높으신 이름이시여...” 삼강행실도. [사진출처=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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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서 신하들은 하나같이 임금에게 ‘전하’라고 부른다. 한자어로 뜯어보면 대궐 전·아래 하(殿下)자. 대궐 아래에서 예를 갖춰야 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과거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선 신하들이 “대궐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의미로 ‘전하‘라고 외쳤는데, 임금을 부르는 의미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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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극존칭인 폐하(섬돌 폐·아래 하)나 저하(집 저·아래 하)도 마찬가지. 집을 연결하는 돌계단 섬돌 아래서 불러야 할만큼 존귀한 사람이란 뜻이다. 과거 대통령에 붙던 존칭인 각하(집 각·아래 하)도 유사사례다.


마루 아래에서 불러야 하는 사람들
마누라도 이와 비슷한 형식이라는 분석이 있다(녹음기가 없는 이상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어원에 관해선 언제나 반론이 존재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실의 높은 인사를 ‘말루하’(抹樓下 )라는 한자어로 표기해 왔다. 마루 아래에서 불러야 하는 높은 사람을 향한 호칭.

마루는 중세 국어에서 ‘높은 곳’이나 ‘꼭대기’를 의미한 것으로 전해진다. ‘용마루’(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 ‘산마루’(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마루도 이 단어에서 나왔다.



경복궁 근정전. 이 전의 아래에서 부르는 호칭이 전하였다. [매경DB]



말루는 순우리말인 마루를 한자어 말루(抹樓)로 음차한 것이다. 음차란 같은 소리를 내는 한자 단어를 빌려서 적는 것을 말한다. 중국에서 코카콜라를 한자어 可口可樂(커커우커러)라고 표기하는 것도 음차 사례다. 可口可樂의 뜻도 ‘입에 맞아 즐겁다’여서 의미가 통한다.



마눌제의 등장까지
조선 초·중기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아주 높은 사람들에게 ‘마루하’가 쓰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노라로, 다시 마누라로 바뀌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도세자를 마노라라고 표현한 기록이 있는 배경이다.

그러다 왕실의 높은 여성을 지칭하는 의미로 점점 좁혀졌다. 현대에 와서는 마누라 단어 자체가 아내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아예 변해버렸다. 과거 조선시대에 존칭어로 쓰인 영감·양반 등이 오늘날에는 다소 속된 표현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아바마마...저도 마노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사도세자는 ‘마노라’로 불린 기록이 있다. [사진출처=쇼박스]



요즘에는 반대로 ‘마누라’라는 표현을 복위(復位·다시 자리에 오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존칭인 ‘님’을 붙인 마눌님 혹은 황제를 뜻하는 제(帝)를 붙여 마눌제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만큼 위대한 존재라는 것(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요, 만고불변의 진리다). 훗날에는 ‘마누라’가 상전의 자리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언제나 현실을 역동적으로 반영하는 생명체와 같으니까. 다시 재위하기 전까지 마누라는 넣어두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마눌제’를 불러보시길.




“마눌제님 여기 보세요.” 경복궁을 구경하는 외국인들. [사진출처=매경DB]




이름에 묻은 역사의 값어치를 탐구합니다. 친숙한 이름들에 서려있는 역사 얘기를 격주로 전하겠습니다. 태국에선 사와디깝, 매경에선 ‘사(史)와닉값’을 외쳐주세요. 구독을 눌러주시면 놓치지 않고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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