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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팽빛희성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11-0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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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 추월산의 한 절벽 위에 섰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벌써 두 번째다. 그만 살고 싶었다. 뛰어내리려던 찰나, 뒤에서 "아빠"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봤다. 홀로 올라왔기에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환청이었다. 김이 폭 빠져 산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며칠간 산을 오르내리며 시간을 더 보냈다. 산은 어떤 극적 계기를 주진 개인회생추가대출 않았다. 그저 가만가만 조금조금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나를 되돌려준 산이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무언가라도 하고 싶었다. 그때 든 생각이 쓰레기를 줍자는 것이었다. 등산로 상에 몇 개 떨어진 쪼가리 줍는 걸로는 성에 안 찼다. 산이 어두웠던 폐부 깊숙한 곳까지 빛을 드리워 준 것을 생각하면 깊은 계곡으로 굴러 떨어진 쓰 자녀교육비한도 레기들까지도 모조리 줍는 것이 도의다. 그렇게 극한의 클린산행을 추구하게 됐다. 거의 10년간, 한 달에 최소 8번 이상은 했으니 현재까지 800번 정도 진행했고, 한 번 갈 때마다 대형 비닐봉투 2~3묶음씩, 팔이 빠질 정도로 무겁게 지고 내려왔으니 그 무게는 킬로그램이 아니라 톤으로 헤아려야 할 지경이다.
그렇게 많이 주웠는데도 불구하 대만가권 고 앞으로 15년은 더 산에서 쓰레기를 줍겠다고 한다. 이것은 김경식씨의 이야기다.



가장 힘들었던 클린 산행으로 아침가리 계곡 산행을 꼽았다. 한 번 신고 버린 신발이 물이 먹어 엄청나게 무거웠다.


무일푼으로 서울 농협상가대출 에 상경한 초등학생
1961년생인 그는 정읍 내장산자락에서 태어났다.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산중마을이었다. 딱히 가정불화가 있던 건 아니지만 시골에 살면 소나 치면서 사는 인생이 될 것 같았다. 그건 싫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식을 3일 앞두고 친구 하나를 꼬셔서 가출했다. 정읍역에서 서울 가는 기차표 한 장 살 돈 260원만 창원미소금융재단 챙겼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15시간 걸려 용산역에 내렸다.
"그때 전기를 처음 봤어요. 돈이 한 푼도 없는데 배가 고팠죠. 물어보니 시장에 가면 밥을 준대요. 가서 할머니한테 밥 한 그릇만 '줄 수 있냐'고 했죠. 돈 주고 산단 얘긴 줄 알고 주시더라고요. 먹고 가려니 돈을 달라기에 '밥 한 그릇 달라고 했지 산다고 안 했다. 소 치고 살기 싫어서 시골에서 도망쳐 나온 길이라 돈이 없다'고 우겼죠. 그땐 정말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무튼 할머니가 맹랑한 녀석이라면서 혀를 차시더라고요."
할머니는 어린아이들이 입에 풀칠을 하고 살 수 있도록 자기가 아는 인쇄소를 소개해 줬다. 종이 책이 아니라 주로 제품을 포장하는 포장지를 만드는 곳이었다. 1974년 2월 16일의 일이다.
공장에서 먹고 자며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새벽 3시까지 일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사장은 성실한 그를 높게 봐서 공장 열쇠를 맡기는 것은 물론 검정고시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군대 갈 때가 되자 따로 상여금도 두둑하게 챙겨줬다. 그리고 산도 회사에서 만났다.
"입사하고 두 달쯤 지나 봄에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형들이 공장 가동이 멈춘 날 놀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가보니 북한산이었어요. 당시엔 제가 태어난 내장산보다 훨씬 좋았어요. 또 산 주변에 수영장도 있고, 따먹을 앵두도 많았죠.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노는 날이면 155번 버스를 타고 북한산을 갔습니다. 산에 안 가는 날이면 한강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파주 임진각까지 라이딩을 하고 오기도 했죠."
1988년 올림픽 이후로는 직접 공장을 운영해 보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일한 노하우를 가지고 부천에 비닐 공장을 열었다. 그렇게 1974년부터 지금까지 50여 년간 비닐만 갖고 살았다. 봉투, 테이프 등을 만들어서 여기저기 납품하면서.



인왕산 클린 산행.


산으로 넘은 공황장애와 우울증
물론 공장을 경영하면서도 틈틈이 산은 다녔다. 부천산사랑산악회, 280산악회, 산오름산악회 등을 거쳤다. 산을 김씨만큼 다닌 이가 많이 없었다. 그래서 보통 대장을 맡아 사람들을 이끌고 다녔다. 전국의 좋다는 산은 다 올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차, 인생에 중요한 고비가 찾아왔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았어요. 사실 그 전까지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자신이 공황장애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욕했었거든요. 사람 만나다 보면 나을 걸 정신이 아픈 척한다고요. 그런데 제가 걸렸죠."
9년 전의 일이다. 집안에 사고가 있었다. 형제 가족들이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연달아 숨졌다. 장례식을 치르는 와중에 이번엔 그의 가족 중에 암 환자가 생겼고, 한쪽 눈 실명 판정을 받은 이도 나타났다. 이 모든 일이 6개월 사이에 일어났다. 그는 장남이었기에 스트레스가 더 컸다. 이젠 친척한테 전화라도 오면 심장이 두근거려서 도저히 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못 살 것 같아서 장성으로 내려갔어요. 추월산에서 결심하려다가 환청을 듣고 하산했죠. 머물던 민박집에 들어섰는데 내 표정을 보고 그곳 사장님이 어떤 상황인지 대번 알아차리더라고요. 자초지종을 들은 사모님은 '우리 민박집이 신축인데 돈 안 받을 테니 어느 방이든 편히, 얼마든지 오래 머물다가 서울로 올라가라'고 해주셨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쭉 굳어 있던 얼굴은 사소한 말장난에 풀렸다. "선생님, 여기가 무슨 산이에요?"란 물음에 그가 "추월산이죠"라 답하니, "인상도 좋은데 왜 인생을 추월하려고 하냐"고 대꾸했단다. 그 시답잖은 말에 웃음이 나오고, 마음이 풀어졌다. 그리고 계속 절박하게 산을 올랐다. 주말이면 산을 갔다. 약도 안 먹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주말에 산을 가는 게 너무 즐거워졌다. 새벽 3시만 되면 눈이 떠질 지경이었다.



최근에는 마운틴크루라는 산악회와 함께 클린 산행을 이어가려고 하고 있다.


쓰레기 줍다 독사에 물리기도
그런 산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한 결과가 클린 산행이다. '최선을 다해서 클린 산행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먼저 서울 근교 산들을 누볐다. 관악산, 불암산, 수락산, 소요산 등이다. 그리고 여러 산악회의 일반 정기 산행에도 참여해 쓰레기를 주우며 다녔다.
"산악회에서는 뒤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폭탄'이라고 불러요. 잘 관리해 주지 않으면 터져서 사고가 난다는 거죠. 저는 그런 '폭탄'들이 있는 산행을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쓰레기를 워낙 많이 줍다 보니까 이분들하고 같이 걸으면 속도가 딱 맞아요."
쓰레기를 줍다 보니 그의 배낭에는 소형부터 초대형까지 쓰레기봉투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다른 사람들이 산행 들머리에 도착해 등산화 끈을 조이고, 등산스틱 길이 조절을 할 때 그는 먼저 봉투부터 꺼낸다. 헬스장이나 골프장에 가면 돈을 내고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듯, 산에 가면 일종의 대가로서 클린 산행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오랫동안 여러 산악회를 통해 산을 올랐다. 그중 하나가 280산악회다.


클린 산행을 시작하면서 과거부터 쭉 지켜왔던 철칙 하나를 깼다. 비법정탐방로 출입이다. 50년 동안 산행하면서 비법정탐방로 구간이 의도적으로 포함된 코스를 걸은 적이 없었다. 백두대간도 비법정탐방로가 포함돼 있으니 걸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도봉산 비법정탐방로에 '에덴의 동산'이라고 있는데 사람들이 흔히 가는 그런 곳들도 나는 한 번도 안 갔다"고 했다.
하지만 쓰레기들은 법을 가리지 않고 버려져 있다. 오히려 그런 곳에 쓰레기를 몰래 투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등산로를 벗어나 쓰레기를 줍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길이 아닌 으슥한 곳이다 보니 인간이 아닌 주인들을 몇 만나게 됐다.
"독사에 물렸었어요. 아직도 왼쪽 무릎 옆에 상처가 남아 있네요. 최근에도 북한산 숨은벽에서 낭떠러지 밑에 떨어진 페트병을 주우러 가다가 일광욕 중인 뱀이 놀라서 튀어 오르는 장면을 봤죠. 다행히 이번엔 안 물렸고요."



북한산둘레길 일대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김경식씨.


그래서 베어벨을 달았다. 반달곰이 사는 지리산도 아니고 이런 서울 근교산에서 베어벨을 단다는 게 처음엔 마뜩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조용한 산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생동물들의 구역임에도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규 탐방로를 걸을 땐 뗀다. 또 여러 응급상황을 대비해 챙기는 상비약의 종류도 많아졌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별의별 에피소드를 다 겪었다. 당연히 대부분 긍정적이다. 한 아름씩 쓰레기봉투를 짊어지고 다니는 모습을 본 탐방객들은 박수를 보내주거나 물, 간식을 기꺼이 내어주곤 한단다. 어떤 청년들은 "선생님, 저희도 다음부터는 작은 쓰레기봉투를 준비해서 꼭 보이는 쓰레기는 수거하면서 산에 다니겠습니다"라고 말을 해줬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니 절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더러웠던 산은 딱히 꼽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이 많이 다녀가고 나면 산에 쓰레기가 남는다고 했다. 북한산이나 관악산 같은 곳들이다. 반대로 가장 깨끗한 산은 주저 없이 홍천 팔봉산을 얘기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곳에선 산 전체를 뒤져도 페트병 단 3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보이는 쓰레기는 무조건 다 주워야 한다는 사명감에 국립공원공단으로부터 비법정탐방로 출입으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아침가리에 버린 비양심 신발 60kg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 계곡 클린 산행이 가장 힘들었다. 집에서 안 신는 신발을 가져와서 계곡 트레킹할 때 신은 뒤, 그걸 거기다 그대로 버리고 간 몰상식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대형 봉투에 그걸 다 담았는데 물을 한껏 머금은 터라 거의 60kg에 육박했다. 심지어 이걸 들고 내려오는 그는 밑창이 얇은 아쿠아슈즈를 신었다. 아픈 발만큼 마음도 아팠다.
"인왕산 같은 곳에서는 요소수 통이 뭉텅이로 나온 적도 있죠. 비법정탐방로 구간에선 주로 음식물쓰레기와 술병들이 많이 나와요. 특히 홍어를 담아온 봉투가 정말 최악입니다. 줍는 순간부터 계속 저도 그 냄새를 맡으면서 산행해야 되니 정말 골치 아파요. 막걸리병도 마찬가지죠. 지금도 구석구석에서 라면 끓여 먹고 고기 구워 먹는 사람들이 있어요. 암벽이나 암릉구간 자락에는 배낭 옆에 찔러 넣어뒀다가 자기도 모르게 떨어진 물통들이 가장 많죠."



길이 아닌 곳에 떨어진 쓰레기도 주우러 들어가려고 베어벨을 달았다.


이렇게 의도치 않은 쓰레기조차 남기고 싶지 않기에 그는 행동식도 안 챙기고 산행한다. 커피와 물만으로 버틴다. 어쩌다 산행이 반나절을 넘길 것 같으면 편의점에서 파는 호박죽 하나만 지참한다. 지독한 집념이다.
악취가 진동하는 음식물쓰레기를 줍는 심정은 어떨까? 저열한 한국 등산문화에 대한 비탄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산하가 오염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둘 다 아니다. 그는 "소풍 와서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마음을 나쁘게 먹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다음 사람이 더 쾌적하게 산행할 수 있으니 기쁘다', '산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니 행복하고 덧없이 좋다'. 이 정도의 감정밖에 들지 않습니다. 또 최근에 제가 운전면허를 재발급 받으러 갔는데 시력이 1.2로 나왔어요. 하도 쓰레기만 찾으러 다니니까 제아무리 수풀 속에 꽁꽁 숨겨져 있어도 찾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시력이 좋아진 것 같네요."



험한 곳을 많이 다니니 약도 많이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다툼도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과 싸운 거라면 그럴싸할 텐데 영 의외의 상대다. 국립공원공단이다. 그가 비법정탐방로에서 쓰레기를 주우니까, 그걸 불법행위라고 처벌했다. 비법정탐방로를 이용해 긴 산행을 한 것도 아니고, 주 산행은 법정탐방로로 다니다가 주변에 쓰레기가 보일 때 살짝 이탈해서 줍고 돌아온 것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또 한 번은 쓰레기 처리 문제로 좀 심하게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었어요. 제가 줍는 양이 양인지라 이게 집까지 가져가기가 힘들어요. 다른 산은 지자체나 산 밑에 계곡 상가나 공공 분리수거장 같은 데서 맡아 처리해 주죠. 그런데 국립공원공단은 달랐어요. 한 분소에서 공단 직원이 절대 안 된다면서 윽박지르더라고요. 저도 화나서 말다툼을 벌였죠."
감정이 격해진 상태라 제대로 대화가 안 됐다. 다투고 난 뒤 한 직원이 한참을 따라와서 공단의 기조에 대해 설명해 줬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난 2007년 가져온 쓰레기는 되가져가는 것이 산행의 원칙이고, 그런 원칙 하에는 산에서 쓰레기가 발생할 일이 없으니 산 입구마다 설치돼 있던 쓰레기 수거함을 없앤 바 있다.
김씨는 "자기가 만든 쓰레기를 공단한테 처리해 달라고 내미는 건 당연히 안 될 일이지만 이처럼 곳곳에 숨겨진 쓰레기까지 다 수거해 주는 건 사실상 업무를 대행해 준 셈인데, 너무 야박하게 굴어서 화가 났었다"면서도 "물론 공단 직원들 중에서도 크든 작든 처리 편의를 봐주시는 분들도 무척 많다"고 슬쩍 덧붙였다. 또 "어차피 산 들날머리에서 안 버려도 지하철역이나 화장실, 버스정류장에 버려 쓰레기 처리를 위한 사회적 비용은 똑같으니 차라리 분리수거장을 부활시키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의견도 제시했다.



반나절 동안 수거한 쓰레기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충분히 가득해 보이는데도, 그의 눈은 계속해서 쓰레기를 찾는다.


"최소한 자기 쓰레기는 가져가길"
지금은 주로 둘레길 위주로 돈다. 그러면서 둘레길에 사는 주민들을 만난다. 걸으면서 보니 이게 산과 도시의 경계여서인지 쓰레기 투기가 더 심했다. 일회용 커피 잔을 들고 가볍게 산책하다가 주변 수풀에 던지고 간 사람들도 있었고, 마을길이다 싶으면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그대로 두고 가기도 한다. 이 피해를 주민들이 오롯이 받는 상황이다.
"같은 등산객으로서 속죄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쓰레기를 줍고 있습니다. 그렇게 줍다 보면 주민들이 뭐하는 사람인가 싶어 30분 정도 멀리서 지켜보세요. 그러다 쓰레기 줍고 가는 걸 보면 시원한 음료수나 간식, 과일 등을 챙겨주시곤 하죠. 오히려 그들이 등산객들한테 뭘 받아도 받아야 될 분들인데 말이죠."
현재 목표는 80세가 될 때까지 클린 산행을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줍는 양이나 빈도를 줄이지 않고 현재처럼 말이다. 그는 "한평생 비닐을 팔았다. 아무래도 환경과 연관된 제품이라 더 소명의식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소한 자기 쓰레기는 가져가고, 산을 소중하게 친구처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트레킹을 하든, 전문등반을 하든 산에서 식사는 먹자판을 벌이지 말고 기본적인 것만 드셨으면 하고요. 거름된다고 달걀이나 귤의 껍질을 그냥 버리는 분들도 많은데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산을 내 정원처럼 가꾸면서 산에 다닐 순 없을까요? 최소한 저는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산을 다닐 작정이에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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