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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헉헉헉헉.
단종된 지 오래돼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경운기가 동력을 얻지 못하고 헐떡였다. 방금 기름여과장치를 바꿔준 기계가 엔진 헛도는 소리를 냈다.
“제가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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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의 호흡 곤란 위로 발동이 안 걸려 애를 먹는 어르신의 숨찬 소리가 겹치자 차현우(55)가 ‘시동 핸들’을 넘겨받았다. 입 짧은 ㄱ자 모양의 핸들을 구멍에 걸고 팔을 윙윙윙윙 크게 돌렸다. 낡은 경운기가 텅텅텅텅 격한 소리를 토하며 진동했다.
마흔살은 돼 보이는 경운기는 피부가 벗겨지고 부스럼이 일었다. 그냥 농기계골드몽릴게임
가 아니라 청년 농부가 할아버지가 되기까지 함께 나이 먹어온 ‘농사 동지’였다. “지금 세대 중엔 이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드물고 이 기계에 익숙한 어르신들은 요즘 기계를 못 다루신다”며 그가 땀을 닦았다.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기계는 늙고 병들었다고 손쉽게 교체해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경남 밀양시 농업기술센터 농기대시세
계 담당 공무원 차현우는 시 전역을 다니며 ‘순회 수리’ 수요를 파악하고 오지마을 위주로 계획을 짰다. 일정이 잡히면 일주일 전부터 마을 방송으로 알려 날짜를 놓치는 주민들이 없도록 이장에게 당부했다. 주변에 수리센터가 없거나 시내까지 농기계를 끌고 나가기 힘든 고령의 주민들은 1년에 한번 오는 수리 날만 기다리기도 했다. 마을회관에 고장 난 기계들이 모이의류관련주
면 차현우와 동료들이 트럭에 싣고 온 부품들을 펼쳐 놓고 고쳤다. 농사의 기본은 주린 배가 없게 하는 일이었다. 기계를 만질 때면 늘 허기진 듯 먹던 “촌놈 친구”가 옆에 와서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가 농촌 깊이 들어가 농기계를 돌보는 것도 결국은 그 친구 때문이었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차현우의 손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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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는 그 이름으로 친구를 불렀다. 그 이름을 부르면 따뜻하고, 울컥하고, 아팠다.
“쌀봉아.”
35년 전 처음 그렇게 불렀을 때 준배는 입이 미어지도록 밀어 넣은 밥을 삼키며 씨익 웃었다. ‘고봉밥 귀신’이라며 현우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하루 세끼 찾아 먹기 힘들던 시절 준배는 한끼 먹을 때 다신 못 먹을 사람처럼 몇그릇을 몰아 먹었다.
1990년 서울에서 대학생이 된 현우는 여행 중 들른 광주의 한 선배 자취방에서 준배를 만났다. 광주대 신입생이자 동갑인 준배의 첫인상은 “딱 봐도 순박한 시골 애”였다. 현우가 학교를 휴학하고 광주에 머무는 동안 둘은 동아리를 만들며 가장 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 학생이 공부만 할 순 없던 시대였다. 현우가 서울로 돌아간 뒤 한번씩 만날 때마다 “준배는 훌쩍 자라” 있었다. 어느새 학생운동의 중심에서 맨 앞자리를 지켰다. 친구는 수배자가 됐고 현우는 취직해서 번 돈으로 친구를 뒷바라지했다. 현우의 서울 자취방은 친구가 지칠 때마다 와서 쉬는 휴식처였고 몸을 숨기는 은신처였다. 퇴근한 현우에게 준배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저녁상을 내놓은 날이 있었다. 시장에서 사 온 고등어로 찌개를 끓였다는데 “맹물에 고등어를 담가놓은 수준”이었다. 현우가 ‘맹물 고등어탕’이라며 놀렸고 준배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봉밥을 비웠다.
“쌀봉아, 꼼짝 말고 방에 있어.”
추석(1997년 9월16일) 전날 차례 지내러 부모님 집에 가면서 현우는 거듭 당부했다. 긴장이 풀리는 명절 연휴가 수배자에겐 평소보다 위험할 수도 있었다. 준배는 “어디 안 갈 테니 걱정 말라”며 현우를 배웅했다. 그리고 추석. 방송 뉴스에 세 글자가 떴다.
“추. 락. 사.”
조직·직책 명과 함께 그 단어를 봤을 때 현우는 얼어붙었다. 광주의 한 아파트로 들이닥친 경찰 24명을 피해 케이블티브이 선을 타고 내려가다 4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했다. 광주라니? 현우는 역으로 달려가며 오열했다. 검거 경위와 옷에 찍힌 신발 자국 등에 의문이 일었지만 경찰은 사망 하루 만에 내사 종결했다. 부검 결과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도 받아보지 않은 채였다. 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장례 투쟁을 시작했다. (고인 체포에 특진이 걸린 경찰에게 돈·향응을 받은 학교 후배가 경찰과 미리 짜고 광주 자신의 집으로 고인을 불렀다. 1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 추락한 고인을 구타해 사망케 한 사실이 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로 드러났다.) 현우는 다니던 회사(무단결근 해고)에 전화 한통 할 정신 없이 친구 곁을 지켰다.
“쌀봉아, 네 자리다.”
새벽 땅속에 누워 현우가 말했다.
친구를 아꼈던 선배를 설득해 늦은 밤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장례위원회가 ‘망월동 묘지(현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을 결정했으나 5·18 희생자가 아니어서 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 들렸다. 두 사람은 장례위에도 알리지 않고 망월동으로 향했다. 경찰이 따라붙지 않도록 차량 이용 대신 외진 길을 택해 걸었다. 랜턴 하나 없이 달과 별에 의지해 산을 넘었다. 날짜가 바뀐 이른 오전(10월19일) 묘지에 도착했다. ‘그곳’을 찾아 어둠을 더듬었다.
“무조건 거기 아니면 안 된다”고 현우가 우긴 자리.
묘역 중간쯤 이한열이 있었고, 그 오른쪽에 박관현(5개월 전 개원한 국립묘지로 이장 뒤 남긴 가묘)이 있었고, 그 오른쪽에 좁은 땅이 있었다. 6·10과 5·18을 상징하는 ‘유명 열사’ 옆에 있으면 “형들이 갓 들어온 준배를 돌봐주실 것 같았”다. 그 옆에 있어야 “두 분을 보러온 사람들이 준배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더 기억해줄 것 같았”다.
선배와 현우가 번갈아 땅을 팠다. 한참을 파 내려간 끝에 바닥에 앉았을 때 머리 위로 팔꿈치 하나 더한 깊이를 얻었다. 두 사람이 구덩이에 누웠다. 소쩍새 소리가 들리는 하늘 저편으로 푸른 새벽이 오고 있었다. 이한열 옆에 박관현, 박관현 옆에 이젠 김준배. 자신이 만든 친구의 자리에 친구보다 먼저 누운 현우는 친구에게 ‘어떤 약속’을 했다.
길고 긴 장례 행렬이 망월동에 이르렀을 때 허락받은 적 없는 땅이 열려 있었다. 사망 33일 만이었다. 그날 행렬에 섞여 몸을 숨기고 따라오던 한 남자가 있었다. 망월동을 앞두고 경찰을 피해 사라진 그(☞8회 ‘모란을 가꾸며’)는 27년 뒤 ‘내란의 밤’에 준배를 생각하며 국회 담을 넘었다.
“쌀봉아, 나 왔다.”
준배의 자리로 현우가 출근한 건 안장 24년째 되던 해였다. 친구가 떠난 뒤 현우는 ‘준배의 시간을 계속 이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낼 때면 자기 이름 대신 친구의 이름을 봉투에 적어 냈다. 친구의 추모사업회 서울 대표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 제정(2000년) 농성에 결합했고, 결혼 뒤엔 아예 광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친구라면 어떻게 살았을까’를 고민하며 진보정당 활동을 했고, 조선소 하청노동자 조직 사업에 힘을 보탰다. 선박 제조 현장에서 일하다 건강에 위기를 느낀 그는 그동안 숱하게 찾아왔던 5·18묘지에 2020년 환경미화 직원으로 취직했다.
현우의 업무는 “묘지를 깨끗하게 하는 모든 일”이었다. 청소와 풀 관리, 묘비 새똥 제거, 눈 치우기를 도맡고 조경 일도 도왔다. 열사마다 기일이 다가오면 시킨 사람 없어도 추가 벌초를 했다. “행복”했고 무엇보다 친구가 있어 좋았다. 돌고 돌아 친구 곁으로 온 현우는 하루에도 몇번씩 준배를 찾아가 묘를 살폈다. 친구를 돌보다 보면 “옆에서 지켜준 관현이 한열이 형이 고마워” 두 묘소도 같이 돌봤다. “그 형들 묘만 하면 또 미안하니까” 그 옆과 옆과 옆으로 손길이 번졌다. “준배와 매일 같이 있다 보니, 처음 만나 서먹해 하다 절친이 됐던 스무살 나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고민거리가 있거나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도 현우는 준배와 상의했다.
“쌀봉아, 어떡하면 좋겠냐?”
‘그 일’도 친구에게 물어보고 결정했다. 농기계와 관계된 모든 자격증을 따며 오랫동안 준비해온 일이었다. 묘지 근무 1년쯤 뒤 채용 공고가 떴을 때 그는 친구의 동의와 지지를 얻어 지원했다. 밀양 오지를 다니며 기계들을 고친 지 5년째였다. 우리 사회로부터 가장 멀리 밀려난 땅이 농촌이었다. 아들의 사망 이유를 밝히려고 생계까지 포기하며 매달렸던 친구 아버지(작고)의 농사를 이제라도 거든다는 마음으로 기계들을 살폈다.
“쌀봉아, 내 자리는 여기다.”
그는 아직 꿈이 있었다. 정년 뒤 밀양에서 배운 일들을 기초로, 낙후된 농가를 돕는 비영리 수리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 수리 오기만을 기다리는 기계들이 곳곳에 있었다. 물론 친구와 대화하며 찾은 꿈이었다.
준배는 27살에 죽었고, 죽은 뒤 28년이 지났다. ‘죽음 이후’가 살다 간 시간을 앞질렀다. 이젠 친구가 못 알아볼지도 모를 얼굴로 현우가 변한 것 하나 없는 친구를 바라봤다. 친구의 자리를 파고 그 안에 누워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너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
현우가 손바닥으로 묘비를 닦으며 물었다.
“쌀봉아, 지금까지 나, 어떻냐?”



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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