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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덕수네 가리비.. (이해일)

[덕수네 가리비]


오늘부터 기말고사 시작이다.

학원으로 밥 먹고 사는 놈은 이 시즌에 완전 해방감을 느끼면서

평소에 못했던 일들을 별러서 처리하기도 한다.


초등 저학년 조무래기들에게는 휴강을 통보하고 여행계획을 잡는다.

장항선 광천역에 전화해서 인근에 바닷가가 있는지 물어보니 남당항이 있다고 한다.

남당항? 귀에 익다.

과거 기행문을 찾아 검색하니 갔던 곳이다.

같은 곳을 두 번 가면 돈이 아깝다.


다른 장소를 물색하다가

아.. 지난 번 휘문 야유회에서 갔던 덕수네 가리비가 생각난다.

가게로 전화를 하니 누가 충청도 사람 아니랄까봐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홍성역에서 버스를 타고 서산시로 가서 다시 독곳리 종점으로 오면

픽업 나오겠다는 대답이다.


1시 43분 발 영등포-홍성, 저녁 0시 영등포착 홍성-영등포 티켓을 예약한다.

눅눅한 장마철 습기로 옷이 땀에 젖은 피부에 달라붙으니 불쾌지수가 여간 높은 게 아니다.

영등포역까지 걸어가서 열차에 올라타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니 비로소 심신이 안정된다.


집에서 가져온 톨스토이 단편 모음집을 펼친다.

딸년이 보던 책인데 그 시대로 시간 여행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역시 명작은 명작다운 생명력이 있는 모양이다.


홍성역에 내리니 거대한 역사가 최신 설비로 지어져 있다.

선로를 바꿔 500미터 쯤 상거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정겹던 역사를 다 때려 부수고 이렇게 새로 지으니 여행할 맛이 나겠는가..


바로 앞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서산시로 가는 버스를 타니 50분 걸려 도착한다.

거기서 다시 독곳리행 버스를 타고 40분 만에 도착..

기사한테 물어보니 바닷가까지 15-20분 걸린다니 자칫 귀가길 시간을 놓치면 낭패가 된다.


덕수네 전화를 하니 3분도 안 되어서 주인이 픽업나온다.

가게에 도착하니 휘문 게시판에서 보았던 식당이 그대로 보인다.

여기가 며칠 전 광란의 현장이다.


1키로에 18,000원.

메뉴판에는 2만원인데 왜 싸게 파냐고 물으니

자연산이 없어 양식이란다.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저 멀리 수평선에는 짙은 안개가 정연하게 펼쳐져 있고 인근에는 부대가 있는지

군인들이 수시로 왔다갔다한다.

차량이 없으면 올 수 없는 곳이니 전인미답의 분위기가 참 좋다.

경치가 너무 좋아 하룻밤 책이나 읽다가 내일 갈 요량으로 물어보니

민박이 없다고 한다.

코끼리 바위는 또 산 하나를 넘어가야 한단다.

여기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휘문 사진에서 보았단 관능적 빨간 속살이 안 보이기에

- 지난 번 휘문 친구들은 뭘로 먹었나요?

- 자연산이요.

슬슬 기분 나빠지려고 한다.

- 자연산이 하나도 없나요. 한두 개라도 있으면 주세요. 맛 비교라도 해봐야지.

조금 뒤 종업원이 2개를 서비스로 갖다 준다.


양식과 자연산이 확연하게 모양부터 다르고

뜨거운 번개탄 위에서 자연산이 따각따각 훨씬 몸부림을 많이 친다.

조금 뒤 벌린 입에서는 사진에서 보았던 속살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 덕수네 와있다고 신고를 하니

고맙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답을 보내준다.


귀가길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버스 배차 간격과 막차 시간을 미리 확보하지 않으면 골탕을 먹게 되어있다.

- 여기서 버스 나가는 시간에 맞춰 태워주세요.

부탁을 했더니 시간을 맞춰본 여주인이 지금 빨리 가면 버스를 만날 수 있단다.

이런.. 서둘러 갔으나 버스가 안 보인다.

버스 노선을 따라가니 앞에 버스가 신호 대기 정차 중이고

여주인은 능숙하게 우회전해서 유턴하여 미리 앞질러 버스 정거장에 나를 내려준다.

- 영화처럼 멋있네요.

- 하루에 열두번도 더 합니다.


서산시에 도착하니 강남 터미널로 바로 가는 1시간 반짜리 노선이 있다.

홍성까지 가서 기차를 타면 3시간 걸리느니 강남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기차표 예약 취소를 깜빡 잊어 괜히 돈만 버리고 말았다.


휘문 야유회에서 2만원으로 가비리, 우럭, 매운탕 포식하고

선물도 한아름씩 싸들고 왔다는데

나는 8만원을 쓰고도 무척 실속이 없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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