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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춘설이 내린 김해 수로왕비릉[首露王妃陵]을 찾아서....


 
촬영일자 : 2011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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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수로왕비릉[首露王妃陵]과 파사석탑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의 릉이다.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왕비는 성이 허, 이름은 황옥으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 인도 아유타의 공주로 16세에 배를 타고 와서 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9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 중 2명에게 왕비의 성인 허씨 성을 주어

지금도 그 후손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높이 5m 정도의 원형 봉토무덤으로서, 무덤의 밑부분에 특별한 시설은 없다.

무덤 주위에는 얕은 돌담을 4각형으로 둘러 무덤을 보호하고 있으며,

앞 쪽에는 긴 돌을 사용하여 축대를 쌓았다.

 

중앙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지릉

(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之陵)’이라는 글이 2줄로 새겨져 있다.

무덤에 딸린 부속건물로는 숭보제·외삼문·내삼문·홍살문이 있으며,

보통 평지에 있는 무덤과는 다르게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무덤 앞에는

인도에서 가져왔다고 전하는 파사석탁의 석재가 남아 있다.

 

세종 28년(1446)에 수로왕릉과 함께 보호구역이 넓혀졌으며,

임진왜란 때 도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비석과 상석 등은

인조 25년(1641)에 다시 정비하면서 설치하였다고 한다.


왕릉에 비해서는 시설이 소박한 편이고 수로왕비릉이라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으므로  수로왕릉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본다면,

내부의 구조는 널무덤(토광묘) 또는 돌덧널무덤(석곽묘)일 가능성이 높다.

 

왕비릉(王妃陵-국가사적 제 74호)의 숭신각(신도비각)은

가락국 역사와 숭선전사가 기록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로왕의 왕비 허황옥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열 아들 중 두 아들에게

자신의 성인 허씨를 따르게 하여 김해 허씨 성이 유래되었고

그로 인해 김해 김씨와 허씨는 혼인이 금지되어 왔다.

 

그리고 허왕후가 배를 타고 시집 올 때 바람과 풍랑을 잠재웠다는

유래가 얽힌 진풍 석탑인 파사석탑(婆娑石塔)에서도 옛 풍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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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비릉 입구에는 수로왕릉과 같이 홍살문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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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비릉의 숭신각(신도비각)은 가락국 역사와 숭선전사가 기록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열 아들 중 두 아들에게 자신의 성인 허씨를

따르게 하여 김해 허씨 성이 유래되었고 그로 인해 김해 김씨와 허씨는 혼인이 금지되어 왔다.


그리고 허왕후가 배를 타고 시집 올 때 바람과 풍랑을 잠재웠다는 유래가 얽힌 진풍 석탑인

파사석탑(婆娑石塔)에서도 옛 풍취를 느낄 수 있다. 대형의 원형 토분이나 특별한 시설은 없다.


능의 전면에는 장대석(長大石)으로 축대를 쌓고 주위에는 범위를 넓게 잡아 얕은 돌담을 둘렀다.
능 앞에는 1647년(인조 25) 수축 때 세운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

(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陵)'이라고 2행으로 각자(刻字)한 능비가 있다.


한편 수로왕비릉내에 파사석탑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로 지정되었으며,

김해허씨 종중 에서 소유하고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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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봉분의 주위에는 아무런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 규모는 길이 18미터, 폭 6미터, 높이 약 5미터이다.

 

능 주위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얕은 돌담이 방형으로 둘러져 있고,

능의 전면은 장대석으로 축대를 쌓았다.중앙은 상석과 능비가 세워져

있고 두줄로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지'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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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원에 세워 진 수로왕비 (허황옥)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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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문을 지나 왼쪽으로 보면 숭보재로 가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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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문에서 바라다 본 숭보재와 인근이 온통 설국(雪國)속에 평화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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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석탑(婆娑石塔)]

 

김해시 문화재자료  제227호

 

수로왕의 비 허왕후, 黃玉 東漢建武 24년 갑신에 서역 아유타국에서

머나먼 바다를 건너올 때 파신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 함께싣고

왔다고 삼국유사 등 고서에 기록되어 있다.

 

파사석탑은 옛 호계사 자리에 있던 것을 김해부사 정현석이, 본탑은 허왕후께서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것이니 허왕후 곁에 두어야 한다며 옮겼다.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이 시집을 오면서 불교를 전래하고 형제인 허보옥

즉, 장유화상이 가락국에 와서 대국승으로 활약하였다고 한다.

 

탑은 네모진 사면의 오층이고 조각이 매우 기이하며 돌은 조금

붉은 빛의 옥문무늬가 있고 질도 달라 우리나라의 가 아니다.

 

닭 벼슬피에 가루로 만든 파사석과 일반석으로 실험한 결과 파사석 부분은

물기가 계속 남아 있는 반면 일반석은 건조하여 말라버렸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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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문을 지나 소나무 숲 길로 들어서면 가락국 탄생신화이자

 

고대가요의 무대이면서, 김수로왕의 탄생신화가 전해지는 구지봉이 나온다.



구지문옆으로 설치된 울타리는 김수로 왕의 탄생신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북이와

인도의 대표적인 문양인 태양문양을함께 디자인하여 조형하였다.
구지문을 지나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 본다. 느린 걸음으로 걷고 싶은 편안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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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구지봉에서

그 의연함을 잃지않고 푸르름을 자랑하는 구지봉의 소나무들...

(빛내림과 아침안개만 있어 준다면 경주 삼릉의 소나무 못지않게 좋은 그림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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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속에 포근한 구지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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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구지봉(金海龜旨峰)

사적  제429호

 

경남 김해시  구산동 산81-2번지 일원

 

김해시 구산동에 위치한 김해 구지봉은 삼국유사「가락국기」편 기록에 의하면

서기 42년 김수로왕이 하늘에서 誕降하였고, 아도간, 유천간 등 9간과 백성들의

추대에 의해 가락국의 왕이 되었다는 가야의 건국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또한, 구지봉에서 구간과 백성들이 수로왕을 맞이하기 위해 춤을 추며 불렀다는

구지가(龜旨歌)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로 고대 국문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B.C 4세기경 남방식 지석묘가 있어 그 역사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지석묘 상석에는 '구지봉석(龜旨峯石)'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한석봉의 글씨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구지봉은 이처럼 가야 건국설화와 관련되는 유적으로

우리나라 고대국가 형성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곳이다.

 

신라 유리왕 19년(서기 42년)에 하늘에서 황금 알이 내려와 수로왕이 탄생했다는

전설이 전하여지는 구지봉은, 원래는 거북이 머리모양을 닮았다 하여 구수봉이라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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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봉에서 바라다 본 김해 내외동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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