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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사우나는 수영장과 헬스장이 같이 있고 병원에서 가까워 나는 주로 아침에는 사우나 둘러 샤워하고 출근해서 오전진료를 마치고 점심시간에는 수영을 40여 분간 하고 간단히 김밥 등으로 요기를 하고 오후진료를 시작한다.
사우나 회원 중에 나처럼 수영장을 꾸준히 이용하는 사람은 몇 명이 되지 않지만 사우나회원은 매우 다양한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는 지역에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나름 성공한(기독교적으로 얘기하면 부흥이 잘 된) 사찰의 주지 스님이 계신다. 스님은 아침에 사우나 오실 때 고급 리무진 급 승용차로 기사가 모시고 온다. 보기에 60대 초반이시고 키는 165cm 정도로 배가 볼록 나오셨다. 아침에 나랑 비슷한 시간에 오시는데, 오시면 꼭 러닝머신을 하신다. 그런데 항상 비싼 에비앙 생수만 찾아 드셔서 몇몇 회원들은 스님을 일컬을 때 ‘에비앙 스님’이라고 좀 비꼬곤 했었지만 나는 정신과 의사답게 스님이 건강염려증이 있나보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가만히 보니 이 스님이 아침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점심때 내가 수영 하러 갈 때도 보이고 그때는 대개 휴게실에서 비싼 점심식사를 드시고 계셔서 한번은 "아니 스님도 저처럼 아침에도 오시고 점심때도 오셔요?" 하고 물었더니 스님 막 웃으시면서 "그런 게 아니고 아침에 왔다가 할 일이 없으니 여기서 놀다가 점심까지 먹고 가지요" 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사우나 회원들 중 많은 사람들은 요일에 구애받지 않고 공 치러 산에 가고, 그 모습을 보고도 부러운 적이 많았었는데 이번 그 스님의 그 말씀에 나는 정말로 부러워 죽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며칠 전부터 스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이상하다 했는데 사우나의 목욕 도우미 두 분에게서 스님의 근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심심하셔서 미국에 한 달간 놀러 가셨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일 년에 몇 번씩 해외여행을 가셨다고 한다. 비행기는 물론 일등석으로 왕복하신단다. 왕복 900만 원 정도인데 그까지 것 뭐 큰돈이냐 하면서 미국 갔다 와서는 타고 다니시는 차나 한번 바꿔야겠다고 하시더란다. 벤츠 S600신형이 나왔는데 역시 그까지 것 2, 3억 밖에 안한다는데 하시더란다. 얼마 전에는 시내에 빌딩도 한 채 샀는데 30억 가량을 줬는데 ‘그게 뭐 돈 몇 푼 되는 거야’ 하시더란다.
그런 얘기를 하다가 직원이 내가 잊고 있던 얘기를 꺼내었다. "세금도 안내지요? 아마" 그렇다 세금도 안내는 것이다. 내가 정신과 의사이고 정신과 의사가 다루는 많은 영역 중에 영적인 영역도 나의 경우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그 스님과 나를 그냥 비교해봤다. 나는 30평 남짓한 골방에 앉아 하루 종일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다 들어주고, 충고하고, 해석해주고, 위안도 해주고, 안수나 축복기도 비슷한 것도 해주고 하는데, 그러면 나도 스님이나 목사들과 비슷한 직업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또 여기 오는 많은 환자분들이 시간이 넉넉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이 신부님과 비슷하다는 말씀들을 하신다. 고해성사하듯이 얘기를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이런 비교를 해본다. 나는 이 교회 혹은 절을 지어서 포교 혹은 전도를 하고 설교, 혹은 설법을 하고 거기다가 부적에 해당하는 약까지 주어온 지 13년째다. 교세가 그런대로 한 번도 기울지 않고 평탄하게 성장하여 왔으나 순복음교회나 구인사처럼 엄청나게 부흥시키지는 못해도 현재 등록교인 수 13000명 출석교인 수 1000여명의 중견교회 정도 된다. 이 정도의 교인을 가진 교회는 한 달 헌금이 얼마나 될까? 사찰의 시주 돈은 얼마나 될까? 이 정도 교회나 절 같으면 부목사도, 부주지도 둘 수 있을 텐데.....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금을 안낸다는 것이다. 이 스님의 절은 천도제 등을 박리다매해서 신도를 많이 모았다는 소문이 있다. 어쨌든 신도수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으나 그 절의 원장인 주지스님은 지금 오전 내내 사우나 와서 운동하고, 목욕하고, 물은 반드시 에비앙생수 마시고, 비싼 점심 사드시고, 심심하면 미국에 1등석 타고 여행가시고 하면서 세금 한 푼 안내시는 것이다. 교회의 목사라고 그 사정이 다를까? 더했으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개원하여 맨 처음에는 세금 낼 때 되면 환급을 받다가 세금으로 내는 금액이 해마다 올라가면서 국가에 내가 뭔가 기여한다는 느낌에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내어 왔었다. 그러나 이번 11월 소득세 중간예납의 달을 맞이하여서는 이 스님의 경우를 보고는 비과세 소득이 단 하나도 없어서 정말 어렵게, 어렵게 번 돈의 거의 반에 해당하는 무려 40%를 고스란히 국가에 뜯기는 무능한 정신과의사인 것 같아서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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