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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글픈 농담/ 퍼온글

서글픈 농담


                                                                           조     헌


 요즘 엄마들의 흔한 농담 속에 ‘똑똑한 아들은 국가의 아들이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이며, 못나고 빚진 아들만 내 아들’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또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 군대 갔다 오면 손님이 되며. 장가들면 사돈이 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걸 더 세분(細分)해서 ‘아들은 낳을 때만 1촌, 기를 때는 4촌, 군대 다녀오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애 낳으면 동포, 게다가 이민까지 가고 나면 해외동포’가 되고 만다니 웃어넘기기에는 뒷맛이 너무 쓰다.

 세상일이 어디 맘먹은 대로 호락호락 된단 말인가? 애를 끓이며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아들을 보며 엄마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무리 자조(自嘲)섞인 푸념이래도 ‘해외동포’는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닐까.


 서울 압구정동의 몇몇 호텔은 ‘시부모 호텔’로 유명하단다. 명절 때마다 전쟁을 치르듯 고향엘 왔다가는 자식들의 어려움을 가엾게 여겨 역귀성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지방에서 올라온 시부모들을 그나마 며칠 집에서 모시기 싫은 며느리들이 갖은 공치사를 떨어대며 재우는 호텔이 그곳이란다. “비용이 만만치 않은 고급 호텔이에요. 시설도 좋지만 조식(朝食)이 깔끔해서 좋아요. 지하 사우나에 가셨다가 푹 쉬세요. 내일 점심과 저녁은 이름 난 맛집으로 제가 모실게요.” 참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때만 되면 호텔 전체가 노인 투숙객들로 여전히 붐빈다니 할 말이 없다.

 또 서울의 아파트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워야 오히려 인기가 좋다는 얘기까지 있다. 이유인 즉, 시골에 사는 부모들이 모처럼 아들집엘 찾아오려 해도 발음조차 힘든 아파트 이름을 외우지 못해 찾아올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함이라니 아무리 농담이라도 이젠 갈 때까지 간 듯싶어 가슴이 아리다.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쏟아 붓는 정성이 가히 눈물겹다는 우리네 사회에서 왜 이런 실없는 얘기들이 생겨나는지 모를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이렇듯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관심을 당연시하는 이 사회적 분위기가 오히려 부모자식 간에 크고 작은 서운함을 만들어 서글픈 농담으로 번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모두 그러진 않겠지만 ‘속물이 되는 지름길은 부모가 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자기 자식만큼은 어떤 사회적 위험에서도 안전하게 보호받길 바라고, 따라서 무슨 수를 쓰든 사회 구조의 상층부에 자식을 앉혀놓으려 발버둥치는 게 이 나라 부모들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자기 자신의 모진 희생도 감수해야하고, 굽을 걸 바르다고 억지를 부리며 양심도 팔아야겠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자식의 ‘안전지대’ 확보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그악스레 극성을 피우는 것이다. 또 대개 이런 부모일수록 자식은 내 인생의 연장이라는 생각과 함께 자식의 인생 관리를 최고의 목표로 삼아 자식을 꾸미고 만들어간다. 물론 이때 자식은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따라주기만을 강요하면서 말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금지옥엽 키우는 부모가 자녀에 대해 거는 기대는 베푸는 은혜만큼이나 경이적이다. 처음 태어나 젖을 먹는 일은 물론 걷기와 말하기도 남보다 앞서야 흐뭇하다. 입학 전부터 수학과 과학은 영재(英材)여야 하고, 음악과 미술까지도 수준급이어야 안심한다. 그리고 마땅히 입학 후에 우등생이 돼야 한다는 철썩 같은 믿음은 거대한 성(城)처럼 견고해져 간다.


 욕심이 크면 실망도 크다지 않던가? 하지만 그 실망의 뿌리가 자신의 과욕에서 비롯됐다고 인정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고통스러운 자책감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비난의 화살을 재빨리 다른 대상에게 겨누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당연히 그 대상은 내 노력에 턱없이 못 미치는 자녀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알아? 죽어라고 뒷바라지 한 결과가 고작 이거니? 너만 아니면 내가 이러고 살겠어?” 이처럼 아이를 비난하며 화를 풀다 보면 부모의 마음은 가라앉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회복할 수 없는 관계가 굳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1촌을 4촌, 8촌, 더 나아가 해외동포로까지 만들어 결국 아들을 ‘옛사랑의 그림자’가 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것은 아닌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언젠가는 떠나야 할 배’를 만드는 것이다. 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정성을 다하고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야겠지만, 그 배가 바다로 나가 목적지를 향해 파도를 헤치며 멋지게 항해하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볼 줄도 알아야 한다.

 파도나 암초를 만날까 두려워 항구에 마냥 정박해 두는 것은 배의 정체성에 위배되는 일일뿐더러 나중엔 밑바닥부터 이끼가 끼고 조금씩 썩어 결국은 가라앉고 말 것이다.

 부모는 어느 시점이 되면 자녀를 품에서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울러 자식에 대해 가졌던 욕심도 같이 내려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식들의 인생항로를 조용히 축복해 주어야 한다.


 ‘가족은 때로 아무도 모르게 슬쩍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말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가족은 내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가족은 상처와 위로, 기쁨과 아픔을 함께하면서 서로의 삶을 만들어간다. 가족끼리 힘을 모아 위기를 헤쳐나간 경험이야말로 평생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분명 가족은 어렵고 힘들 때 서로서로를 보살펴주는 돌봄 공동체다. 따라서 그 속엔 구분과 시비(是非)가 있을 수 없다. 이젠 시부모, 친정부모, 친가, 처가를 나누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부계, 모계를 아우르는 양계적(兩系的) 가족, 부모 자식이 서로 사랑하고 돌보는 세대 통합적 가족은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하는 새로운 가족 모델일 것이다. 실리와 책임, 성숙함과 균형감각,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이 적절히 어우러지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미리 누리는 천국’이라고 한 영국 시인 브라우닝(R ․ Browning)의 나직한 속삭임이 새삼 절실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 <수필춘추>2010 가을호에 게재된 작품임

* chohun4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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