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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님 장례 조문 감사-박광성 올림

이미지아버님 장례에 오셔서 조의를 표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며칠전 9월 25일(토요일) 오후 8시에 저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때 많은 친우들이 와서 조의한 것이 너무나 든든하였습니다

왜 그런지 돌아가신 아버님에게 죄송스럽고 허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친우들이 와서 허전한 마음을 메꾸게 되었습니다.

장례는 동네 성당(수리동 성당)에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산본 원광대 대학병원이나 평촌 한림대 대학병원에서 모실려고 하였으나 아내가 고집을 하면서 성당에서 모셔야 좋은 곳으로 갈수 있어야 한다고 애원하였습니다.

아내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고 성당에서 레지오 단장, 구역장으로 활동을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내에 말을 따르게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장례를 치루고 생각하여 보면 아내에 말이 옳았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임종할 때 모든 형제가 지켜본 가운데 편안하게 돌아가셔서 다행스럽습니다. 임종 5시간 전(토요일 오후 2시)에 신부님을 모셔서 기도를 하셨고(병자성사), 5시간 후 토요일 오후 8시에 돌아가셨습니다.

전에 추석날 이미 가족이 모여서 얼굴을 볼 수가 있었고, 이때 형제가 “우리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좋은 곳으로 가세요“ 라고 크게 말하면, 고개를 그떡 그떡 하였습니다. 이때 아버님은 90세이고 정신은 혼미상태이나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식구를 보신 후 눈물을 글성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임종할 시간에 모든 형제식구가 모인가운데 막내 동생이 아버님을 앉고 있는 가운데 오후 8시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아버님의 마지막 축복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얼굴의 모습이거나 입관할 때 얼굴을 보니 매우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시신은 화장하여서 성당에서 권하는 평택 서호 납골 공원에서 모셨습니다.
저의 집에서 자가용으로 약 30분 거리입니다.

집에 와서 아버님의 사진첩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30대 시절, 40대 모습, 그리고 칠순 때 유럽에 여행 하셨을 때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끼게 하였습니다.

저의 아버님의 손시계는 막내 동내이 가지고 갔고, 사진을 복사하여 집에 모신다고 동생들이 가지고 갔습니다.

발견된 아버님의 일기장 공책은 동생들이 가지고 갔습니다.
돌아가신 유품을 보관하려고 하였습니다.
돌아가신 곳은 좋은 나라로 가실 것으로 생각듭니다.

이번 장례에서 온 친우들이 아버님의 좋은 나라로 보내주신 것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가정에 다복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10년 10월 8일

                                      박광성 올림
이미지
<스리랑카 출장시 현지 연구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가운데 박광성교우)>


<박광성 교우 요청에 의해 황영호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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