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동석 스포츠부 축구팀장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마이즈너 부회장을 만나서 아르헨티나 축구의 전통에 대해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많은 전문가가 "아르헨티나는 전통적인 남미식 축구를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팀"이라고 평가한다. 지금은 축구도 퓨전의 시대여서 남미 간판 브라질도 조직과 체력, 스피드라는 유럽식 트렌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남미식 개인기 축구'의 전통을 유지한다. 왜 그런 걸까.
부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아르헨티나엔 모든 일을 닥쳐서 해결하는 문화가 있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운동장에서 생기는 일에 즉각 대응하는 것이 아르헨티나식 개인기 축구다. 예전에 마라도나는 급하니까 손으로 골도 넣지 않았나(1986년 월드컵 신의 손 사건을 뜻함)."
그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고지대 적응 훈련 프로그램에 대해 묻자, 거꾸로 기자에게 요하네스버그(한국과 아르헨티나전이 열리는 곳)의 해발 고도가 얼마냐고 반문했다. 1700m쯤 된다고 하자 "그건 별로 안 높네. 2500m 정도 되면 몰라도, 그런 정도는 그냥 가서 하면 된다"고 콧방귀를 날렸다. "뭐 그 정도를 갖고 호들갑이냐"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의 말대로 아르헨티나 축구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지만, 닥치면 그 자리에서 해치우는' 아르헨티나 사회를 빼닮았다. 압박과 조직으로 꽉 짜인 현대 축구에 화려한 낭만적 개인주의가 남아 있다면 바로 아르헨티나 축구일 것이다. 이런 전통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선 여전히 '제2의 마라도나'인 리오넬 메시 같은 개인기의 천재가 나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들의 팀 아르헨티나에서는 개인의 성공이 곧 집단의 성공을 의미한다. '메시가 돋보이면 돋보일수록 팀이 성공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곳이 아르헨티나 대표팀이다. 누구도 그를 "너무 튄다"고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독이 "메시 중심의 전술을 짜겠다"고 나서는 곳이 아르헨티나다.
한국은 정반대다. 한국 대표팀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희생이다. 전형적 사례가 박지성이다. 허정무 감독이 박지성을 칭찬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박지성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박지성은 뛰어난 기량이 있음에도 팀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개인의 성공을, 한국은 개인의 희생을 통해 집단의 이익(승리)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두 팀은 정반대다.
한국의 야망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팀으로서 세계 수준에 도달했음을 인정받는 것이다. 반면 아르헨티나에는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임을 증명하려는 천재들이 즐비하다. 그리스전 승리(2대0)로 야망의 제1보를 뗀 한국 대표팀은 17일 오후 8시 30분 그라운드의 로맨티시스트 아르헨티나와 월드컵 2차전을 치른다. 야망과 낭만의 한판 대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