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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휘문56회, 일본(큐슈지역) 단체여행 결과보고

일본(큐슈지역) 여행 결과보고
<2009.11.25~11.30>

o 徽建會를 주축으로 한 徽文56回 교우 23명(부인 9명 포함)은 2009.11.25~30간 일본 서남부 큐슈지역을 여행하였다

* 참석자 : 강항남(오영선), 박세정(허성주), 송한철(나선희), 신동일(정경자), 신진영(강영임),
              윤기중(유영선), 이종성(최철희), 조남춘(김옥순), 김경식, 장용이, 윤홍섭, 허 열,
              황영호, 김정옥-김정숙

<여행 일지>

o 제1일(11.25,목)

- 낮 12시 서울역(3층)에서 일행이 집결하여, 가이드 김지은양을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13:30 KTX열차를 타고, 16:20 부산역에 도착 후, 전세 버스편으로 부산국제여객터미날로 이동, 간단한 출국수속을 마치고, 18:30 부관페리 성희호(16,000톤, 500명 정원)에 올랐다. 예상외로 승객이 적어 한산해 보였다

- 교우 12명은 1층 105호(12인실)로, 부인들은 104호(12인실)로 배정받고, 짐을 푼 후, 선내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육개장 등 1식5찬), 으레 가져간 술과 안주를 곁들이면서...

- 20시에 배가 출항하였고, 일행중 몇은 선내에서 미리 가져간 횟거리 등을 안주로 음주하시고, 몇은 둘러앉아 훌라춤(트럼프)을 추었다. 술도 훌라도 좋아하지 않는 몇은 갑판을 찾아, 멋진 부산항의 야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선내에서 이리저리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구조를 탐색하기도 했다

- 음주와 훌라 상황이 지속되자, 비주류 몇은 방에서 잠을 청했으나, 여러가지 소음(훌라, 음주, 옆방 아줌마들의 소리 등)으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하고 계속 눈은 감고 있었다.

* 주무실 때 주위의 소음에 민감한 강항남 교우 내외는 2층 216호(1등실)에서 비교적 평안을 누렸는데, 1등실(2인실)은 2층 침대로 설치되어있어 작업(?)하기에는 마땅치 않아보였다.(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여 화장실과 샤워실도 있었다)

O 제2일<11.26,금>

- 간신히 잠이 들었으나, 새벽 4시경 '自然이 나를 불러' 눈을 떠보니 여러 명이 '왔다갔다 이러쿵 저러쿵' 잠도 자지않고 설치면서 부산했다. 덩달아 일어나 선내를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결국 아침이 되고 식사 후, 하선준비에 임했다.

- 예상대로, 시모노세키 세관에서 통관수속을 하면서, 지문채취와 사진을 찍히고(?), 화창한 날씨의 시모노세키 도심을 지나 '오이타'인근의 '유후인' 민예마을과 일본 어느 인기 연속극의 배경이어서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긴리코 호수'(2번째 사진)를 둘러보았다.(여기서 나와 장용이 교우는 '거리의 화가'에게 500엔을 주고 초상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모두가 누굴 그렸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 이어 유명한 온천지대인 '벳부'로 이동, 일본식으로 점심을 먹고, '가마도 地獄'으로 가서 섭씨 100도 이상으로 펄펄 끓어 오르는 온천수를 둘러보고, 족욕을 즐기며, 온천수로 삶은 계란을 먹어보았다(이런 곳은 모두 '지옥'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이유는 지옥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라는 이유란다. 첫번째와 10번째 사진)

- 다시 이동하여 유황을 만드는 곳인 '유노하나'를 둘러본 후, 벳부 시내 '후지칸 호텔'에서 일본에서의 첫 여장을 풀었다. 이곳에서 일본 복장인 '유카다'를 입고 옥상에서 온천욕을 즐기다가, 저녁을 먹은 후, 조남춘, 장용이 교우와 인근 지역 수퍼마켓을 돌며, 저녁 파티에 필요한 쇼핑을 하였다. 물가는 우리보다 약간 비싼 듯 했다(저녁 7시 이후가 되자, 횟거리는 2/3 가격으로 떨어졌다)

* 일본식 실내옷 유카다는 팬티만 입은 위로 우리나라 '두루마기'식으로 걸친 후, 왼편 날개가 위로 오도록 입는 옷으로 실외, 심지어 외부로도 '게다'를 신고 다닐 수 있음(8번째 사진)

- 홀아비 3인실(김경식, 윤홍섭, 허 열)에서 일행이 모여 酒宴과 훌라, 고스톱 등의 향연(?)을 벌였는데, 신동일 교우 부인과 함께 온 두 여인(조남춘 부인 김옥순씨가 신동일 부인과 부인 친구 두 여인을 총칭하여 '도토리 세자매'라 칭했다)이 윤홍섭, 허 열 등 휘문 56회 고스톱界의 왕자들을 보기 좋게 쓰러뜨리는 이변이 나타났다고 한다.(난 내방에서 그냥 자버렸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다)

O 제3일<11.27, 금>

-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전날 밤 개망신(?) 당한 얘기가 단연 화제였다. '도토리 세자매'의 얘기가 걸작인데, 윤홍섭이가 입은  유카다 사이로 팬티가 살짝 살짝 보여 끝발이 더욱 올랐다고 한다(美男計를 쓰려던 홍섭이가 오히려 당한 셈)

- 전용버스로 세계 최대의 '칼데라 화산'(과거에는 호수였던 분화구)이 있는 아소(阿蘇)로 이동, 현재도 활동중인 활화산 분화구인 나카다케 火口는 분연을 내뿜으며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火口에는 玉色(쪽빛)의 용암이 출렁거리며 고여있었는데 장관이었다. 여기에서 나오는 연기는 독성이 매우 강해 인체로 들어오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여, 바람의 방향이 관람여부를 결정하는데 우리는 다행이 관람지역 반대로 연기가 흐르는 바람에 어렵게 구경할 수 있었다.(우리 다음으로 구경하러 온 팀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분화구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함, 위 세번째 사진 참조)

- 쿠사센리(직경 1KM의 원형 초원지대)를 차창 밖으로 보면서 물 좋기로 유명하다는 '시라카와' 수원지를 관광하였다.

- 버스로 3시간을 달려 '구마모토'로 이동, 일본 3대 名城 中의 하나인 '구마모토城'을 구경하고(9번째 사진), 구마모토시 최대 번화가인 '시모도오리'거리에 있는 한신백화점에서 '윈도우-쇼핑'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이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칠레산 '몬테스알파-카베르네 쇼비뇽' 와인 1병의 값이 우리나라 돈으로 28,000원 정도로 싼데 놀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칠레와 FTA 협정까지 맺었으나 1병에 37,000원~42,000원임, 한국민은 虎口인가?)

- 다시 버스에 올라, 한국인이 인수하여 운영한다는 구마모토 '세키아 호텔'에 투숙하였다. 한적한 산등성이에 위치한 이 호텔은 우리나라의 워커힐 같은 느낌을 주는 아주 멋진 호텔이었다. 모두들 온천욕을 즐긴 후, 홀아비방(618호)에서 주연을 가졌다.

o 제4일<11.28, 토>

- 아침 식사를 마친 후, '學問의 都市'라는 '다자이후'로 이동, '學問의 神'이라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시는 사찰을 구경하였다. 각종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학생과 학부형으로 들끓었는데 가관이었다. 사찰내 이른바 '夫婦나무'(한 뿌리이나 두 갈래로 이어진 나무)가 있는데 '가이드'가 부부가  서로 손을 잡으라고 命하자 교우 부부들이 손을 잡고, 가이드의 말을 경청, "이 나무 앞에서 기도하면 來世에서도 夫婦의 緣을 이어간다"라는 말을 듣자 모든 아내들이 '빛의 속도'로 남편과 잡은 손을 뿌리쳐 기교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로지 윤기중 부부만이 서로 손을 꼭 잡고 있었다는데, 오는 길에 버스에서 윤기중 교우 부인 유연선 씨로부터 둘 사이에 맺어진 경위와 결혼 30년의 소회를 들을 수 있었다-가슴 찡한 '남편 사랑의 弁'이 돋보였다>

- 이어 일본 3大 맥주회사(기린, 삿뽀로 등)중 하나인 아사히 맥주공장을 들러, 시찰한 후, 시음장에서 아사히 맥주 세종류(슈퍼드라이, 프리미엄, 흑맥주)를 시음하고(4번째 사진, 일본 최대의 목조 관음상을 보유하고 있는 동장사를 방문(위에 5번째 사진, 김경식 교우가 돌로 만든 像앞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하였으나 때마침 일부 보수공사로 제대로 보지는 못했으며, 버스로 관문대교(인천대교 보다는 훨씬 작은)를 통과하여

- 시모노세키 항구로 들어와 출국수속을 하고, 다시 성희호에 승선하였다. 
선실을 배정받은 후, 일행은 선내 중앙 홀에 베이스캠프를 만들고(김경식 교우가 눈을 부라리며 다른 손님에게 겁을 주고 거의 빼앗다시피하여 마련, 7번째 사진), 음주를 즐겼고, 부인들은 부인들의 방에서 신진영 교우가 제공한 와인 2병으로 파티를 벌임, 6번째 사진) 새벽 2시경 침실로 철수

- 그러나 코를 무지하게 곤다는 조남춘 교우는 일행의 편안한 취침을 위해 홀에서 자는 성의를 베푸는 바람에 대부분 안심들 하고 있었는데 호랑이를 피하니 사자를 만났다는 격으로 신동일 교우의 코에서 발사되는 무차별적이고 쉬임없는  艦砲 공격과 일본여행의 마무리를 축하(?)하는 祝砲는 11명의 귀한 밤을 꼬박 하앟게 넘기게 만들었다.

o 최종일<11.29,일>

- 출항시부터 바람이 불더니,  밤 사이에 풍랑이 다소 심해 부인들과 몇몇은 멀미를 느끼기도 하였다. 16,000톤이라는 큰 배도 심한 풍랑에는 좌우로 매우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해탄을 무사히  건너 새벽 6시경 부산항에 닿았고, 동시에 기상하여 식사를 하고, 8시에 하선준비를 하였다.

- 부산 세관 통과시에서는 거의 프리패스였다. 일행은 간밤의 배멀미와 4박 내내 잠을 아끼며 벌인 강행군(?)으로 상당한 피로를 느끼고 있어, 부산에서의 오후 일정(자갈치에서 점심계획)을 포기하고, 부산역에서 곧바로 기차표를 바꾸어  9시30분 KTX열차로 상경하였다.

-  12시30분 서울역에 도착하여 대부분 귀가하고 8명은 남아서 식사하기로 했는데, 허 열 교우와 장용이 교우가 '서울역 그릴'에서 점심을 한방 쏘았다. 그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 없는 외로운 여행이었고 피곤했지만 즐거웠다.(대부분의 부인들은 철저히  자기 남편만 챙길 뿐, 싱글로 간  교우들에게는 거의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단, 오영선씨는 모두에게 커피를 타 주느라고 연신 바빴다)   

<평가 및 에필로그>

o 지난 2004년 태국 여행에 이은 두 번째 단체해외 여행이었는데, 일정내내 쾌청한 날씨와 20도를 상회하는 포근한 날씨가 좋았고, 특히 교우 상호간에 성숙한 예의를 지켜가면서 잘 마무리한 행사였으나, 일정내내 계속된 '특별 행사'는 수면부족과 피로감 누적 등으로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o 일행 모두들은 '제3의 해외여행'을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하자는 제의가 있어, 내년 3월경 일본 "북해도 지역" 여행을 추진하기로 하였으며, 그 이전에 '제주 올레길 여행'도 검토키로 하였음

o 일본은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거리와 주변이 깨끗하고 질서가 정연한 아름다운 나라였다. 지진대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재앙의 위험에 놓여있지만, 오히려 이것을 관광자원(온천, 활화산 등)으로 활용하고 있었으며, 주민들의 일상이 매우 편안해 보였다. 특히 墓地가 전혀 없었고, 평지에 '납골묘역'만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왔다-全 國民 火葬文化

o '물' 하면 한국인줄 알았더니 '물'은 일본이라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호텔 내에서도 수도꼭지에서 바로 식수로 사용하였다.

o 무슨 雜神이 그렇게도 많은지 욘사마로 불리는 배용준이도 韓流에 따른 '열성 팬들의 무리' 말고도, 얼마간의 信徒를 가지고 있는 '神'이란다('사마'라는 말은 극존칭으로서 王 또는 神이라는 뜻이라는구먼) 

o 별도로 '100볼트用 가정용 변압기'는 준비할 필요가 없었고, 단지 11字型 소켓 잭(일명 돼지코) 하나만 있으면 충분(카메라와 휴대폰 충전기 자체가 100~220볼트 겸용임)

o 달라貨는 전혀 필요 없었고, 오히려 韓貨가 많이 필요(선내, 항만면세점, 일본내 면세점에서 한화가 두루 통용)

o 장용이 교우, 송한철 교우가 특히 수고 많이 했으며 휘건회와 일행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김지은 가이드가 매우 설명을 잘했다. 그리고 휘건회 멤버들은 서울에 두고 온 김인현 휘건회 회장과 이아건 휘건회 총무에 대해 짠한 마음들을 가지고 있었음을 대신 전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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