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이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그 짧은 인생이
더욱 값지고, 아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갓난 아기 때부터 중증 소아마비를 앓아'1급 장애인'이 됐지만 온갖
시련과 역경을 넘어, 대학교수로 컬럼니스트로, <영미 시 산책> 等
저술활동을 해왔던 장영희교수의 글을 읽으며, 나는 그녀가 참 대단
하기도 했지만, 너무나 애처럽게 느껴집니다.
나는 팔다리 멀쩡하면서 아무 한 일 없이 허송세월하면서, 신세한탄
이나 하면서, 古希를 맞아 부끄럽기 이를데 없는 인생을 아무 의미
없이 남의 신세나 지면서, 살아왔다는데, 대해 한없는 자괴감에 빠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몸으로 무서운 고통 속에서도, 흐르는 流星처럼 自身을 불태우며,
치열하게 상아탑과 메스컴을 오가며, 활동하다 사라져간 한 여자이전
에 끈질기고, 사랑에 넘치는(제자들을 무척 사랑했다오) 사표로서 진실
되고 성실한 인간승리이였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神은 어째서 유방암, 척추암, 간암까지 차례로 앓게
하시다가 목숨을 거두어 가시는 걸까. 神은 정말 자기가 사랑하시는
사람일수록 일찍 데려가시는 것이 아닐까?
그런 병구의 몸으로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쓰러질 때마다 오뚜기
처럼 다시 일어나 강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신문에 영미의 명시를
실어 단상과 날카로운 비평으로 독자들을 감동시킬 때 나는 매일 신문
을 기다리면서 그의 해박하고, 푸근한 감성에 나 역시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글을 스크렙해가며, 읽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녀는 결국 짧지만(57세) 참으로 의미 깊은 인생을 불꽃처럼 살다
갔습니다.
그녀의 마지막글 <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故 장왕록 교수)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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