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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실수록 목마른 소금물처럼, 욕망은 더 큰 욕망 부르는 법

마실수록 목마른 소금물처럼, 욕망은 더 큰 욕망 부르는 법


[중앙일보] 입력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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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16권 완역 김윤수 전 판사
늘 판단해야 하는 판사직에 회의
삶 이후의 삶 고민하며 불교 입문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건 없어
그걸 알고 나니 괴로움 벗어나”



“욕망은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설령 충족된다 해도 더 큰 욕망을 부른다.”
 
10일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서 판사 출신인 김윤수(69)씨를 만났다.
경남 하동이 고향인 그는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후 부산지방법원, 서울북부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사법연수원 교수,
시군법원 판사 등을 거쳤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온 그가 최근 초기불교 경전인
『아함경』(운주사)을 번역 출간했다.
총 16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꼬박 8년간 매달려서 일궈낸 성과다.  
 
국립양평치유의숲에서 자동차로 불과 5분 거리였다.
그는 그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생활하고 있었다.
김 전 판사가 지금껏 출간한 경전 등 불교 서적은 무려 38권이다.
판사 출신인 그는 왜 불교 경전 번역에 자신의 삶을 걸다시피 했을까.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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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전 판사는 경기도 양평에 전원주택을 짓고서 살고 있다.

차로 5분 거리에 국립양평치유의숲이 있다.



Q 판사로 재직 중일 때부터 15년간 불교 경전을 풀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원래 불교 집안인가.
 

A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판사 일을 하면서도 불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대학 다닐 때 선배가 불교책을 하나 던져준 적은 있었다. 선어록집(禪語錄集)이었다.

조금 읽다가 집어 던졌다.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김 전 판사는 대학을 5년간 다녔다. 젊은 시절, 방황을 하다가 한 해 낙제했다.
1학년 1학기 때는 한 과목 빼고 모두 에프(F)학점을 받았다.
당시 그에게는 뚜렷한 삶의 방향도 없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판사가 됐지만 늘 회의적이었다”고 말했다.  
 
Q 왜 판사 일에 회의적이었나.  
 

A “판사직은 늘 판단을 해야 하는 일이다.

이 판단이 쉽게 할 수 있고, 확신이 가는 판단이라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판단에 확신이 없을 때도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과연 내가 해야 할 일인가. 가야할 길인가.’ 늘 판단을 내려야 하는 부담.

판사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부담이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럴 때마다 회의감이 들었다.”  

 
Q 그런 회의를 막기 위한 법적인 장치가 있지 않나.  
 

A “법에는 ‘입증 책임’이라는 게 있다.

입증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법률 시스템은 그렇게 돼있다.

그렇다 해도 그게 판사 개개인의 심리적 부담까지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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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전 판사는 "판사는 늘 판단을 해야했다.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판단을 내려야 했다.

판사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부담이다"고 말했다.


그런 회의감이 누적된 끝에 그는 판사 생활 10년 만에 법복을 벗었다.
서울 서초동에서 변호사 생활도 10년간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서점에 들렀다.
“책꽂이에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그 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이 둘 있었다.
하나는 『삶 이전의 삶』, 또 하나는 『삶 이후의 삶』이었다.”
 
Q 어떤 책이었나.
 

A “그건 종교적인 책은 아니었다.

대신 나에게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 책이다.

‘만약 삶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면?’

그때까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삶이 다라고 생각했다.


삶 이후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서 많이 성취하고,

많이 누리는 게 정답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세속적인 노력을 했다.

그런데 ‘삶 이후의 삶’이 있다면 어찌 되나. 나는 그걸 알아야 했다.”

 
Q 왜 그걸 알아야 했나.  
 

A “그건 삶을 포괄하는 커다란 구조다.

전체 구조를 알아야 어떻게 살지가 보이지 않겠나.

만약 삶 이전과 삶 이후가 있다면 ‘많이 성취하고, 많이 누리는 것’이 정답일까.

과연 그게 제일 행복한 삶일까. 이런 물음을 제기할 수밖에 없더라.

오히려 그게 행복한 삶에 방해가 될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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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전 판사가 지난 15년간 번역한 경전 등 불교 서적은 무려 38권이다.

바닥에서 한 줄로 쌓아올려 보았다. 그의 키만큼 올라왔다. [사진 신동엽]




그 길로 그는 답을 찾기 시작했다. 3~4년간 닥치는 대로 불교 서적을 읽었다.
불교가 ‘삶 이전의 삶, 삶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더라. 당시 불교 서적은 대부분 선어록이나 선불교 문헌이었다.
그걸 봐도 답은 안 나오더라. 그래서 ‘초기 경전부터 차근차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불교의 초기 경전부터 살펴봤더니 어땠나.
 

A “그제야 불교의 구조와 윤곽이 잡히더라.

그러니까 불교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가더라. 그리고 ‘윤회(輪廻)의 이유’도 알게 됐다.

우리가 윤회하는 원인은 기본적으로 욕망을 갖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본질적인 뜻은 ‘원인과 결과’다.
그걸 줄여서 ‘인과(因果)’라고 부른다.

 ‘죽은 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오히려 윤회의 협소한 의미다.
세상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돌아간다.
씨앗을 심으면, 그에 따른 열매가 열리는 법이다.
그걸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부른다.  
 
Q 윤회의 원인은 욕망이라고 했다. 욕망을 갖는 게 왜 문제가 되나.
 

A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괴로움이다.

왜 그럴까. 우리가 욕망을 갖기 때문이다. 괴로움의 원인은 욕망이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괴로워한다.”

 
Q 그럼 욕망을 채우면 되지 않나.
 

A “설령 욕망을 충족해도 더 큰 욕망을 부르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욕망을 갖는 일은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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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전 판사는

"설령 묙망이 충족된다고 해도, 더 큰 욕망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Q 사람들은 대부분 ‘나의 욕망이 충족될 때 비로소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들 욕망을 추구한다.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A “그건 착각이다. 욕망의 충족을 통해서는 결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 그럴까. ‘욕망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욕망을 없앨 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Q 욕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없애고 싶다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어떡해야 욕망을 없앨 수 있나.
 

A “욕망은 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 대상이 고정돼 있다고 보기에 우리는 그걸 가지려 한다. 그게 욕망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고정된 상태로 파악한다.

여기 책도 고정돼 있고, 저기 책상도, 우리의 마음과 몸도 고정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유하려고 한다. 그런데 고도의 배율을 갖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달라진다.”

 
Q 어떻게 달라지나.
 

A “이 책은 매순간 낡아가고 있고, 사라지고 있고,

이 컵의 동그라미도 삐죽삐죽한 게 연결돼 동그랗게 보일 뿐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고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고정된 것이 없으니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Q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다. 그럼 남는 것도 없지 않나. 삶이 너무 허무하지 않나.  
 

A “그건 소유하는 방식에 익숙한 삶을 사는 사람의 생각이다.

오히려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음을 알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그러니 이 세상과 현상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설령 깨닫지 못하고 이해만 한다 해도 ‘절반의 해결책’은 되기 때문이다.”

  
 
김 전 판사는
“이걸 이해하고 나니까 삶이 좀 더 수월해졌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 원리를 알고 나면 삶의 해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삶에 좌절감을 느낀 사람이 절을 찾아가면 이런 원리를 좀 설명해주면 좋겠다.
사찰에서 산사음악회만 한다고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니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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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전 판사는 "세상 어떠한 것도 고정된 것은 없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걸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 생활 10년을 마치고 다시 판사가 됐다.
법원에는 대법원과 고등법원, 지방법원이 있다. 지방법원은 도청소재지에 있다.
그 아래 큰 도시에는 지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조그만 도시에는 법원이 없거나 순회재판을 한다.

시민들의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원이 없는 작은 도시에 판사가 상주하게 하는 시군법원 판사 제도가 생겨났다.
그때 지원했다. 경기도 광주와 파주에서 시군법원 판사를 하면서 초기불교 경전 번역에 매진했다.
 그렇게 다시 10년간 판사 생활을 했다.
2011년 퇴직하고 나서 8년간 매진한 끝에 최근에서야 『아함경』을 완역했다.  
 
그는 “방대한 분량인 『아함경』의 골수를 추리고 또 추리면
다음과 같다”며 넉 줄의 글을 건넸다.
『아함경』의 메시지를 직접 요약한 게송이다.  
 
‘형성된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을 관찰하라(觀諸行無常)
 이것을 이름해서 바르게 보는 것이라 하는데(是名爲正觀)
 바르게 보면 곧 욕망에서 떠나고(正觀卽離欲)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에서 벗어난다네(解脫諸苦蘊)’
 
  
양평=글·사진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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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이란?


아함경阿含經은 니까야(합송으로 전해지던 붓다의 말씀(설법, 가르침)을

고대인도 민중어인 빠알리어로 기록한 경전 모음집)를 소수 지배계층이 사용하던

고대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옮겨서 편찬한 경전모음집인 아가마를 (산스크리트어로

저술된 작자미상의 대승경전인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정토경 등이 중국에서 한창 번역되던)

AD 4~5세기 이후에 다시 중국어(한문)로 번역 편찬한 경전모음집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아함경이다.


아함阿含은 산스크리트어 아가마āgam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한 것으로

법장法藏 또는 전교傳敎라고 한역된다. 산스크리트어 아가마āgama의 뜻은 전승傳承,

즉 붓다(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해서 전해져 내려왔다는 뜻이다.


아함경阿含經(산스크리트어로 아가마 수트라)은

'붓다의 말씀(가르침, 법法)을 전傳하는 경전 모음藏'이라는 뜻이다.


니까야와 아함경은 생각보다 꽤 차이가 있다.

그 원인은

첫째, 옛날에는 요즘처럼 정보의 전달이 상대적으로 원활하고 정확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보다 번역 시 오류가 상대적으로 많다.


둘째, 언어학적으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산스크리트어가 (빠알리어 또한) 표음문자로서

어미의 굴절 현상을 나타내는 언어인데 반하여, 시나-티베트어족에 속하는 중국어(한자)는

표의문자로서 단음절로 이루어진 언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전의 미묘한 내용을 서로 다른 구조의 언어로 번역하는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하였을 것이다.

(참고로 한글과 영어는 빠알리어와 같은 표음 문자다)


셋째, 산스크리트어로 번역 편찬한 경전(아가마 수트라)과 산스크리트어로 저술 편찬한 경전

(대승경전)을 중국에서 번역하던 시대의 중국인들은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과 같은

주요 대승경전에 비해서 아함경(아가마 수트라)을 그리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함경(아가마 수트라)의 번역에 상대적으로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고

번역이 상대적으로 정교하지 못하고 허술하다.


붓다는 '법法; 실상(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를 완전히 바르게 깨닫고 나서

언어란 실제가 아니라 실제의 근사치일 뿐임을 명확히 이해했기 때문에

자신이 깨달은 법法(실상과 진리)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

즉 어떤 말(Word; 언어)로 어떤 용어와 표현으로 어떤 수준으로

어떻게 법法을 설(설명)할 것인가?를 매우 고심했다.


붓다는 소수의 지배계층이 사용하던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당시 붓다가 활동하던 갠지스 강(항하恒河) 유역에서 대중(일반인 또는 민중)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고대인도 민중어인 마가다어(당시의 공용어 역할을 했던 마가다어는

당시 갠지스 강 유역에서 가장 큰 국가였던 마가다국의 민중어)를 사용해서

듣는 사람의 수준(근기; 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여러가지 능력-이해력, 인내력, 집중력.. 등)과

처지(처해 있는 상태; 사정이나 형편, 환경, 상황.. 등)에 맞춰서,


비유적, 우화적, 시(게송)적, 문학적, 함축적, 서술적, 분석적, 종합적, 논리적, 과학적

(=경험적+합리적) 표현 등 다양한 표현 방법을 사용해서,

당시의 다양한 대중들(예컨대, 브라만 계급 ... 불가촉천민 계급, 정치인, 군인, 상인, 농민, 노예 ...

남녀노소 등)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법法('실상과 진리' 그리고 '팔정도와 팔정도를 닦는 수행')에

대한 다양한 수준의 많은 설법說法(법法을 설명說明함)을 했다.


그러나 마가다어는 사장되었고 마가다어와 가장 (거의) 유사한 고대인도어가 빠알리어인데,

이 빠알리어가 후대 제자들이 합송으로 전해지던 붓다의 말씀(가르침, 설법; 法)을 기록한

경전 모음집인 니까야를 기록하는데 사용되었다.


빠알리어는 붓다의 말씀을 경전으로 기록하던 시대에 가장 널리 가장 많이 사용되던

고대인도 민중어였기도 하다. (참고로 2001년 기준으로 인도에는 총 3,372개의 언어가 존재하며

 이중 1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사용 중인 언어는 216개, 헌법이 인정한 지정 언어는 22개이다)


붓다의 설법을 기록한 경전 모음인 니까야를 보면 붓다가 설법 시 사용한 언어(용어와 표현)는

장엄한 문체나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매우 소박하면서도 적확(=적절+명확)하다.


훗날 AD 1~4세기 경에 등장하는 금강경류, 화엄경류, 정토경류, 법화경류 경전들의

화려하고 장엄한 문체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러한 점도 훗날 등장하는 이들 경전들이 붓다가 직접 설법한 것을 기록한 경전,

소위 불설 경전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또한 이들 경전들에는 붓다가 가르친 법法(실상과 진리)을 깨닫는 실천(수행) 방법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에 대한 내용은 없고,

유명무실해진 용어로서의 팔정도는 어쩌다 가끔 등장한다.


언어는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한 이래,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인식경험을 기호화(개념화)한 것이다.

언어는 실제가 아니라 실제의 근사치(개념)일 뿐이다.

실제에 가까운 것도 있지만 실제와 아주 먼 것도 있다.


붓다는 실상과 진리를 깨달은 후 이러한 점을 매우 잘 알았기 때문에

설법 시 언어의 사용, 즉 적확(=적절+명확)한 용어와 표현의 사용에 매우 고심했다.

이것이 우리들이 붓다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을 공부할 때

붓다가 사용한 용어와 표현을 왜곡없이 바르게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중국어(한문), 한국어(한글)나 영어 경전 등 번역된 경전을 읽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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