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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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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는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민중을 중심인물로 등장시키고,

민중의 눈과 글을 통하여 각 시대의 풍속과 그것에 대응하는 상하부구조를 분석한다.

인류의 복장. 연애. 결혼. 매춘, 그리고 종교와 사회제도 등이 성에 의해 지배받고 있고,

또 그 성은 그 사회의 경제적 관계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것을 밝힌다.

 

저자는 성행동의 역사가 인간의 역사이며,

인간의 성행동이 각 시대에 따라서 각각 다른 형태로 형성되었고,

그 변화의 방식의 틀은 다양했으며 계속 새롭게 변해왔다는 것이다.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도덕(성 모럴)이란각각의 특수한 계급이익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모든 삶의 이해관계에 기초를 둔 사고방식이다.

 

2. 풍속이란 성 모럴, 결혼제도와 성에 대한 관점과 태도,

그리고 이와 연관지어 볼 수 있는 복식이나 예의범절과 행동양식이다.

 

3. 풍속, 즉 인류의 복장, 연애, 결혼, 사교 생활, 매춘 제도 등은 물론이고

종교와 사회 제도 등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다수의 제도와 행위가 성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다

 

4. 일부일처제는 자연적인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인 조건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일부일처제는 피할 수 없는 사회구조로서의 간통과 매춘을 낳았으며,

간통과 매춘은 어느 시대에서도 없어지지 않는 사회의 구조적 특징이다.

 

5. 물질적인 이해관계가 성 모럴의 모든 토대를 결정하고,

시대와 계층에 따라 풍속은 다르며, 도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모순된 여러 현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주 정연한 질서가 있다.

성 모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성 모럴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물이나 의회에 의해서,

예컨대 루터나 루소, 칸트에 의해서 그리고 군주나 교회, 의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물이나 의회 등은 기껏해야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을 공표하거나 형식적으로 비준할 뿐이다.

그것은 결과이지 결코 원인이 아니다.

 

또한 성 모럴은 모든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계급의 이익을 초월하여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도덕의 원칙이 있거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도덕의 표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계급의 특수한 성 모럴은 계급연대나 계급차별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계급지배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각 시대의 지배계급은 여타의 계급을 향해

자신들의 특수한 지배이익을 대표하는 이데올로기를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이데올로기라고 강제하게 되었다.

 

◎ 풍속의 역사 1 : 풍속과 사회


오늘날의 모든 문명의 토대는 사유재산제이다.

사유재산제는 성 모럴 분야에서도 그 토대의 형태를 결정하며 형성하고

이 토대의 형태가 바로 일부일처제이다.

 

일부일처제는 개인적인 성적 사랑이 아닌 인습 위에 구축된 것이기 때문에

자연적인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인 조건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일부일처제는 사유재산을 한 사람(남성)이 독점하고

이를 자손에게 상속시키기 위한 목적의 결혼제도이다.

 

아내는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못한 채

오직 정해진 남편과의 사이에서 잉태된 자식들을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부일처제에 반하는자연의 복수가 나타났는데, 간통과 매춘이 그것이다.

간통과 매춘은 피할 수 없는 사회의 구조이며

어느 시대에서도 없어지지 않는 사회의 구조적 특징이다.

 

결국 성 모럴이란 결국 각각의 특수한 계급이익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모든 삶의 이해관계에 기초를 둔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토대의 변혁이 근본적이고 혁명적일수록 성 모럴의 변혁도 근본적이다.

생산관계의 변화 속도가 느린 과거에는 오랜 기간동안풍기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15세기, 18세기, 19세기에서처럼 완전히 새로운 경제원칙이 등장한 시기에는

성 모럴도 송두리째 변혁되었다.

 

◎ 풍속의 역사 2 : 르네상스


인간의 육체가 신을 대신하여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르네상스는

정신세계에서도 관능이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이 의식에 눈을 뜬 결과 에로틱한 팽창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르네상스 시대란 유럽 역사에서 전혀 새로운 경제조직의 등장으로 화폐경제가 팽창한다.

상업자본에 의한 최초의 자본축적으로 인해 최초로 자본의 세계사적 팽창이 나타난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경제력의 여러 가지 관계의 변혁과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발전은 중부 및 북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어

이미 13세기 초에 활발한 기세로 나타났고, 다른 나라들로 퍼져나갔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관능적인 행동의 면에서도 창조적이고 정력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성욕을 최대로 팽창시키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는 대중현상으로서의 에로틱한 팽창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런 풍속은 결국 성애를 해결하려는 공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특히 참을 수 없는 성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남자들의 야성을 쉽게 방출하는 곳이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바로 사창가였다. 당시 사창가는 음산한 뒷골목에 있는 그런 장소가 아니었고

귀족들이 모인 사교 클럽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다 보니 이곳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남자를 끌어들였다.

 

방탕한 생활로 인한 도덕적 타락과 함께 자성의 목소리도 같이 커진다.

기독교는 방탕한 생활 뒤에는 지옥이 기다린다고 이야기하며 스스로 절제된 삶을 살게 하고자 했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나 지옥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을 잠시 반성하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미 향락 생활에 빠져든 사람들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 풍속의 역사 3 : 색의 시대


앙시앙 레짐, 즉 프랑스 대혁명 이전 절대주의 왕정 하의 쾌락주의 사회는

소수의 집권계층이 다른 계층을 착취하여 누린 것이다.

 

절대주의 시대는 인류가 이를 악물지 않으면 안되었던 가장 비참한 비극의 시대였다.

절대주의 왕권은 신대륙 발견과 해외무역으로 상업이 발전하면서

상인들의 이익이 자치도시를 넘어 민족국가로 확대되며

이들의 이익을 보장하기에 가장 적합한 정치제도가

강력한 절대군주의 중앙집권체계로 요구되었다.

 

절대주의 시대의 특징은

약자를 강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정의로운 국가권력이 행사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절대군주도 사회적 왕권에 관한 사명을 느낀 일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의 특수 이익 밖에는 몰랐다.

 

절대주의 시대의 이상적인 미는 항상 정치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계급

적어도 정치를 지도하는 계급의 이해관계에 부응해서 형성되기 때문에,

절대군주제 시대는 빈둥거리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인간을 아름답게 여겼다.

 

절대주의 시대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지 않았다.

그 시대의 여자는 진정한 권리를 결코 보장받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남자의 정치적 지배와 여자에 대한 남자의 전제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것이었다.

 

여자의 부정이 성을 향락하는 데에 가장 좋은 자극제라고 공언하던 시대에도

남자는 자기의 힘을 휘둘러 간통 혐의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아내에게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형벌을 가했다.

 

남자는 전능했으므로 자기의 욕망을 기분 내키는 대로 발산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그들은 자연히 자기 기분이나 욕망의 노예가 되었다.

그래서 엉뚱한 변덕이 일반적인 관습이 되어 남자는 자기 노예, 곧 여자에게

주인의 권리를 주고 자기는 노예가 되어 노예로서 여자를 섬겼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조히즘이 사랑의 일반 법칙이 되었다.

그것이 곧 절대주의의 성 모럴이었다.

 

◎ 풍속의 역사 4 : 부르주아의 시대


자본주의의 발전은 여성을 다시 부르주아 계급의 남자들을 위한 사치품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물론 이때의 여성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사치품이었다.

그런데 사치품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물질적인 의미로서 향락을 누리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향락에 일치하는 공상 속의 곡선이야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찬양되었다.

그러나 그런 곡선이 여성의 에로틱한 아름다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때문에 이러한 에로틱한 아름다움이 가장 강하게 표출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산계급은 여성을 다시 에로틱한 미식으로서 바라보고자 했는데

이와 같은 주문은 여성의 지위가 사회 속에서 실제로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던 까닭에

즉시 받아들여졌다. 자본주의적 관념이 절대주의적 관념에 승리함으로써

여성은 관념적으로는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남성에 대한 여성의 현실적 지위는 옛날과 다름없이 노예에 불과했다.

 

부르주아의 시대는 18세기에 등장한 순수한 상품생산 경제양식을 바탕으로 했던

근대 자본주의 시대이다. 근대 자본주의는 사유재산 제도의 급격한 발전에 기초하여

현대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를 지배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우리들의 생활을 놀랍도록 복잡하게 만들었으며

연애도 복잡한 생활에 얽혀서 수많은 어려운 문제를 야기 시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문제를 사유재산을 토대로 한 자본주의라는

사회제도의 틀 속에서
개인적인 타협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서 위선이 어느 정도까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냉엄한 법칙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만 하는 부르주아적 사회제도의 규칙의 핵심은

외형적인 예의범절은 지킨다는 것이었다.

외형적인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하는 가장 큰 의도는

공적인 행위에서 성이라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비공식적인 부분에서는 거의 행동에 제한이 없었다.

그것은 순결하지 않은 것은 가능한 한 몰래 하라는 의미를 가졌다.

 

부르주아 시대가 되면서 개인의 사회적 가치는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되며

이 가치는 결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시대에는 결혼을 남녀의 순수한 사랑의 결과로 보지 않았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부르주아 시대의 복장은

이전 앙시앵레짐 시대 귀족의 복장과 정반대 형태로 나타난다.

앙시앵레짐 시대 귀족들의 생활은 오직 놀고 먹는 것이었기 때문에

‘빈둥대는 생활에 어울리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는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부르주아 시대가 되면서 부르주아는 주로 경제적인 활동을 하였으므로

항상 동선이 살아있는 옷을 선호했고 그것은 이전 시대 귀족들의 주무대였던

살롱이나 극장의 특별석이 아닌 공장과 사무실에서 입기 편한 옷이었다.

 

현대적 의미에서 유행은 개인적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 동기를 갖는다.

이 유행은 신분적 허영심의 술래잡기이며 끊임없이 반복된다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런 유행은 단순히 심리적인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친다.

 

자본주의 시대의 생산 양식은 많이 만들고 많이 소비하게 만든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공장주인 부르주아들에겐 기계제가 반드시 필요했다.

옷 또한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많은 사람이 가지고 싶어하도록

재료, 색채, 배합을 계속해서 바꿔가며 옷을 만들어냈다.

 

오늘 상류층에서 유행했던 것이 내일은 대중의 유행이 되어야 했다.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가 확실히 자리잡으면서 유행의 변화는 더욱 빠르게 되었다.

 

● 풍속의 역사,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이기웅 박종만 옮김, 까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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