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왜 ‘오빠’라는 말에 꼼짝 못할까
어린 숙녀의 관능을 탐구한 르누아르
김영진 미술칼럼니스트

▲ 르누아르 作 ‘잠자는 욕녀’
왜 아니겠는가.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출근길에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여학생을 바라보며 야릇한 상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여든이 다된 나이에 아흔 살의 남자와 열네 살 소녀의 사랑과 섹스를 다룬 소설을 출간하며 자신의 정력적인 집필 활동을 과시했고, 루이 15세는 베르사유궁 한쪽에 어린 창부들만 모아둔 별장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어린 여자에 대한 말초적 상상, 남세스러운 일이 아니다.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림은 즐겁고 예뻐야 해!”
화가들에게도 어린 여자는 뮤즈이자 창작의 동력이 됐다. 루이 15세가 가장 총애했던 루이즈라는 소녀는 부셰의 모델이었고, 발튀스는 꼬마 여자 아이의 허벅지와 팬티가 들여다보이는 포즈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에곤 실레는 여자 아이의 은밀한 곳을 노출시켜 징역살이까지 했다. 키르히너와 오토 딕스도 여자 아이를 출연시켰고, 그뢰즈와 마네도 옷가지를 그다지 많이 걸치지 않은 소녀를 등장시켜 남성의 유전자에 잠재된 ‘못된’ 판타지를 자극시켰다. 흥미로운 건, 빛과 색채의 화가이며 관람객에게 행복을 심는 그림으로 알려진 초기 인상주의 회화의 거장 르누아르도 말년에 어린 여자 그림을 꽤 남겼다는 것이다.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소녀들의 모습을 말이다.
‘잠자는 욕녀’는 1897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르누아르 나이 쉰여덟이었다. 르누아르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동료 화가, 알베르 앙드레는 그의 모델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타입의 여성은 이렇다. 마치 키스라도 해달라는 듯 튀어나온 입술, 밝고 쾌활한 눈, 엉덩이가 과장된 긴 몸통, 둥그스름하면서 그다지 근육질이 아닌 약간 짧은 다리, 뼈가 없는 듯한 느낌. 그는 늘 집안에 모델을 두고 자신의 눈으로만 찾아낼 수 있는 모델들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빠져버린다.”
앙드레의 표현대로라면 ‘먹기 편한, 뼈 없는 순 살코기’ 같은 여자 모델들이라고 할까. 당장이라도 회춘한 노화백의 핑크빛 염문설이 나돌 것 같은 설명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말년에 레콜레트라는 시골에 정착했던 르누아르는 심각한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았다. 붓을 잡지 못해 손에 묶어줘야 할 정도였으며 침대에 눕고 일어날 때도 부축을 받아야 했다. 르누아르가 평생토록 여자의 관능에 탐닉했던 로댕이나 루벤스처럼 여자를 밝힌 것도 아니었다. 그럼 왜 제 몸도 가누지 못했던 당대의 거장에게 갓 여자의 향기를 발산하는 모델이 필요했던 것일까?
르누아르는 1919년 생을 마친 그해, 알베르 앙드레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림이란 건 그렇지 않은가, 벽을 장식하려고 있는 거야. 따라서 가능한한 화려해야 해. 내게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예쁜 것, 그렇지, 예뻐야 해!” 르누아르 평생의 일관된 예술론이었다고 할까. 마네와 모네, 드가와 세잔 등 초기 인상파 그룹은 비타협주의로 일관하며 당시 프랑스 미술의 주류였던 살롱전에 반기를 든 집단이었다. 르누아르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 그는 비타협주의자가 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는 순교자 역할을 맡을 생각은 전혀 없었고, 만일 살롱전에서 내 그림들이 낙선되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림을 계속 출품했을 것이다.” 르누아르의 말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화풍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다른 인상파 작가보다 사물의 형태가 좀더 뚜렷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초기 인상주의 작가들이 숱한 비난을 받은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알다시피 인상파란 빛과 주변 사물들의 색에 따라 풍경과 사물의 색감이 달라지는 모습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 그룹이다. 예컨대 이전까지 인체의 피부를 표현하는데 살색 이외의 물감을 쓰는 건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상파 화가들은 나무 그늘에 있으면 피부에 푸른색이 번지기도 하고, 와인빛 커튼 옆에 서면 와인색이 물드는 현상을 그대로 수용했다. 인간 또한 주변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모습이었다고 할까. 그에 비해 르누아르는 좀 더 선명했다. 앙드레에게 남긴 말처럼 그에게 중요한 건 인상주의 풍의 그림을 완성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예쁘고, 즐거운’ 그림을 그리는 데 있었다.
르누아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며 흐뭇해 하길 바랐다. 이미 20대부터 즐겨 그리기 시작한 어린 소녀들의 모습은 언제나 깜찍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게 표현했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뱃놀이 일행의 오찬’에서처럼 야유회의 주체가 귀족이 아닌 서민들이어도 즐겁고 행복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르누아르의 여자들은 요염하다
인상파에 가장 호의적이었던 비평가 중 한 명이었던 테오도르 뒤레는 르누아르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르누아르는 빛과 속도감 있는 붓질로 여인에게 우아함과 유순함과 편안함을 더해 주고 여인의 피부를 투명하게, 그리고 뺨과 입술은 장밋빛 욕정으로 채색한다. 르누아르의 여자들은 요염하다.” 뒤레의 말은 누드화에서만 확인되는 건 아니다. 피아노를 치는 두 자매의 모습과 풀밭에서 들꽃을 꺾는 모습을 그린 작품, 비오는 날 우산을 쓴 거리의 여인들의 풍경 등, 어린 여자 아이는 물론 숙녀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과 행복의 세계를 공간에 기록한 화가’라는 평가처럼 각각의 인물에서 보는 이를 도취시키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냈다.
한 가지 화풍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내맡기지 않았던 르누아르는 초기 인상파 작가 중 가장 먼저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다. 인상파 작가 중 가장 먼저 프랑스 최고의 문화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의 수훈자가 되기도 했다. 항상 의심받고 비난받던 인상파 활동 때와는 달리 자신만의 작품 세계에 천착할 수 있는 기반을 얻는 것이었고, 그것은 르누아르가 자신 이전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회의 시작이었다. 이때 르누아르는 ‘키스하기 좋은 입술과 뼈가 없는 듯한 몸’을 가진 자신만의 어린 뮤즈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소녀에서 막 숙녀가 되는 순간
“아! 저 젖가슴! 얼마나 부드럽고 중량감 있는가! 금빛 색채를 띠며 밑으로 처진 저 아름다운 기복.” 르누아르의 말이다. 말년의 그는 소녀에서 숙녀가 되려는 여자의 몸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이건 그가 평생토록 그리고자 했던 ‘가장 예쁘고 즐거운 것’이었다. 앙드레의 표현처럼 이 시기에 그가 그린 나체의 여자들은 젖가슴과 등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게 만드는 충동을 일으킬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처음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을 때 ‘불가해한 매력을 가진 여배우’로 각광받고, 영화 ‘매치포인트’에서 ‘뭔가 (느낌이) 다를 것 같은 여자’로 표현된 것처럼, 르누아르의 여자도 어떤 마력처럼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다고 할까. 거장이 죽기 전에 몰두한 작품세계란 점을 떠올리면 이건 마치 인생을 통달한 사람만이 깨닫게 되는 무슨 진리처럼 여겨진다. 어린 여자에게 꼼짝 못하는 남자들의 습성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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