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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누아르의 여인 - 인상파에 속했던 프랑스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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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여인 

인상파에 속했던 프랑스의 화가


르노아르
(Pierre-Auguste Renoir 1841∼1919)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리모주 출생.



감각적(感覺的)인 즐거움의 경지(境地)


나부(裸婦)와 소녀들을 풍만하고 매력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화가이다.


1854년 도기공방(陶器工房)에 첨화(添畵) 직공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밤에는 데생을 공부하였다.


몇년 후, 공방의 일자리를 잃자 화가가 될 것을 결심,

C. 글레르의 화실로 들어갔다.

퐁텐블로 숲에서 만난 G. 쿠르베, 또는 F.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받았다.


글레르의 화실에서 알게 된 C. 모네·A. 시슬레·F.J. 마질과,

그들을 통해 알게 된 C. 피사로·P. 세잔 등과 함께

<카페 게르부아의 모임>에 참가하였고,

E. 마네와 모네의 영향하에 점차 인상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모네 등과 같이 화가(畵架)를 세운 파리 근교의 센강 주변,

특히 아르장퇴이에서의 작품은 1874·1876년의 인상파전()에 출품되었다.


1876년 무렵은 그의 독자적 화풍이 형성되던 시기였고,

1876년의 제2회 인상파전에는 15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1877년의 제3회전에는 《볕을 쬐는 나부》 등을 출품,

그의 인상파시대를 대표하는 작품군을 발표했다.


그는 동료화가들과는 달리 인물상에 집착했으며,

옥외나 실내의 광선이 인물에 비치는 효과를 추구하였다.


그는 샤르팡티에가()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에,

《샤르팡티에 부인과 그 자식들》 등

매혹적인 초상, 실내상()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


1881년 무렵 그는 그 자신이 말하는 <벽>과 맞부딪쳤다.

구도·형태의 견고성과 명확성 및 질감(質感)을 찾는 모색이

대략 10년간이나 이어졌다.


새로운 탐구를 위하여 1881년에 알제리와 이탈리아를 여행한 그는

S.V. 라파엘로와 폼페이의 벽화에서 큰 영향을 받고,

엷게 칠한 옻칠의 색면·구도성을 《대수욕(大水浴)》에서 시험하였다.


후기에 이른 그의 특징적인 주제인 나부도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890년 무렵부터 엷게 옻칠한 색채를 중층(重層)시키는 수법인

이른바 <무지개빛의 시기>가 시작되었고,

인상주의와 고전적 구조라든지 질감 표현의 조화가

그만의 독특한 수법으로 완성되었다.


《잠자는 욕녀(浴女, 1897, 라인하르트 컬렉션)》 등 많은 걸작도 이 시기에 속한다.

1903년 남프랑스의 카뉘쉬르메르로 이주한 이후의 노년에는 빨강·주홍색 등의

강도와 휘도(輝度)를 한층 늘려, 욕녀·어린이··풍경 등을 그렸으며,

그 같은 대상은 세속적인 매력을 유지하면서 상징적·시적인 세계에 도달하였다.


조각·리소그래프류도 이 시기에 가서야 취급하였다.

《파리스의 심판》 등 몇 개의 대작(大作)은 있으나,

손의 신경통 때문에 유채류는 소품이 많다.


그는 1881 40세 때 알리안과 결혼,

장남 피에르(배우차남 장(영화감독삼남 클로드를 두었다.

1900년에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도뇌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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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출세작이자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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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oulin de la Galette / 1876년 작 

몽마르트르에 있는 서민적인 야외 무도장에서

초여름의 햇빛이 나무 사이를 비추고
무리를 이룬 젊은 남녀의 춤과 즐거운 놀이를 그린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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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르셰 미술관에 걸려있는 물랭 드 라 갈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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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 1881년 작

젊은 날의 기쁨을 찬미하는 이 그림속 인물들의
다양한 동작들은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있다.

보트 놀이나 공원에서의 사교모임에서 보이는
여인들의 우아한 의상, 아이들과 꽃의 등장으로
이상주의의 대기와 광선의 효과를 느끼게 한다.

어두운 명암을 쓰지않고도 햇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창조하는
르느와르의 기법이 두각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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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꼬양의 초상화 / 1865년 작  


마치 사진을 보는 듯 지극히 사실적인 소녀상이다.
당시의 평론가 말마따나

[더 이상 오를래야 더 오를 데가 없을 만큼 고도의 회화 수법]을 보인 작품이다.

르노와르의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이 화폭 구석구석에서 번득인다.


1863년은 르노와르가 <춤추는 에스메랄다>로 살롱에 입선한 해다.

이 성공에 힘입어 초상화 주문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초기이기 때문에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성껏 그리고 꼼꼼히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르노와르는 그 성가가 높아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마치 에나멜과도 같은 염색(艶色)을 지니면서도 한편으로 전아(典雅)한 색조가

억제된 감성을 느끼게도 한다. 아카데믹한 작고의 수련을 쌓은 흔적이 엿보이는 초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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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젤리 라포르트의 초상 / 1864년 작

많은 초상화를 그렸던
르느와르의 작품을 평할 때
[라꼬양의 초상화]와 더불어 자주 보여지는 초상화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후 3년만에 그린 작품인데도 뛰어나다.
Camille Corot이나 앵그르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이 작품속 여인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게된다.

촉촉한 눈매와, 약간은 울음을 참는 듯한 앙다문 듯한 입매를 보면서
몇번을 기웃거렸던 작품인데 도록의 사진 품질이 하급이라
여러분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국은 언제 외국처럼 제대로 된 도록을 볼 수 있을지 짜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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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ame Georges Charpentier and Her Children

1878,
Oil on canva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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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ar the Lake
c.1879,
Oil on canvas
Art Institute of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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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Arbour at the Moulin de la Galette
C.1876, Oil on canvas
Pushkin Museum of Fine Arts, Mosc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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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eater Box(특별
관람석)
1874,
87x64cm, Courtauld Institute Galleries,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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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use (발레리나),
1874년 캔버스 유채 142X95Cm 워싱턴 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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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at Bougival / 1883년 작

밝고 신선하고 따뜻하고 풍요한 색채로
건강할대로 건강한 대기의 향기가 넘쳐 흐른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여행에서 알게된
폼페이 고대벽화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르느와르
그때까지의 인상파풍의 미묘하게 배치되는 색채의 광휘를 억누르고,
대비를 이루는 아름다움과 명쾌한 방향으로 나갔다.
이 작품은 이러한 변화의 전환점을 이루는 시기의 것으로
당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경에 춤추는 남녀의 백색과 짙은 청색의 대비가
여성의 빨간 두건을 축으로 해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그것을 둘러싸고 흥겹게 담소하고 있는
배경인물들의 원근의 대비도 아주 멋진 그림이다.

종래의 관능미의 표현에서 벗어나,
건강 그 자체와 색채의 대비만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려한르느와르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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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무도회 / 1883년 작

두 남녀는 거조하고 반짝거리는 빛 속에서
몸을 밀착시킨 채 아라베스크 춤을 추고 있다.
젊은 남자의 팔에 안겨 춤을 추고 있는
여인의 은근한 시선이 마치 관람객을 바라보는 듯하다.
여인의 발그레한 뺨, 바닥에 떨어진 남자의 모자에서
시골무도회의 흥취가 물씬 느껴진다.

이 여인은 훗날 르누아르의 아내가 된 Aline이고,
남자는 르누아르의 친구로 기자이자 작가였던 폴 로트로 알려져 있다.
사진으로만 보던 화려한 치마의 색감이
직접보니 더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정도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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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in the City(도시의 무도회), 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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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앞의 두 소녀 / 1893년 작

19세기 말엽 프랑스의 가정생활 환경을 상세하고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거칠거나 엄격함 등을 절제하고 색채를 엷고 부드럽게
온화한 황금빛등이 전형적인 르느와르적인 표현법이다.

두 아가씨가 한 멜로디를 익히려고 열심히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이 융합되어 있음을 보여 주려고,
르느와르는 부드러운 색조의 하모니를 꾀하고 있다.

여유만만한 곡선의 굽이침이 화면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는데,
르느와르는 이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간을 몹시 좋아했다.
주제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범속한 장면이긴 하지만,
이러한 일상성 속의 유연함을 그는 다양한 색조로 포착한 것이다.

빨강, 노랑, 파랑, 녹색 등 원색을 기조(基調)로 하여
이에 대비된 버무려진 색감으로 인물을 감싸고 있다.
그는 대상물 하나하나를 선명한 빛깔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엄격한 양식]을 거침으로써만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형(形)과 색(色)의 교향(交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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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ano Lesson
1889,
Oil on canvas
Joslyn Art Museum, Omaha, Nebra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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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이본느와 크리스틴느 로둘, 1897, 73x97cm, 오랑주리 미술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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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rait de Julie Manet (줄리 마네의 초상),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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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과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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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밭에서... 마리 앙리엣의 초상 (레옹 클라피송의 부인)

2003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280억에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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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의 두 자매 / 1879년 작

젊은 여인과 아이, 그리고 뜨개질 바구니 등은 피라미드 구도를 이루며,

인물들은 특정의 순간에 포착되어있어 친근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모자의 붉은 색은 주변의 색에 비해 두드러져보인다.
르느와르 그림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다.
시카고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는데 직접 가보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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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슬리 부부


르노와르의 다정한 벗이자 화가인 시슬리가 결혼한 무렵에 그린 초상화다.
이 무렵의 엄격한 사실(寫實) 기법 탓으로 부인의 스커트가 지나치리만큼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어 인물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다.

남편과 아내를 화면 가득히 채우면서 삼각형 도법(圖法)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하고 있다.
특히 르노와르는 두 인물의 얼굴의 볼륨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초기의 사실적인 수법이 잘 드러나 있는 이 그림은
화려한 색조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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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Parapluies (The Umbrellas)
,
1881-82 and 1885-86,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at London.

번잡한 파리의 한 거리에 봄비가 내린다...
손에든 우산을 황급히 펼 쳐든 사람들, 거리는 한결 더 붐비는 인상이다.
르노와르다운 발랄함과 서민적인 친숙함이 넘치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치고는 뭔지 모르게 차가운, 그리고 창백한 톤을 이 그림에서 느낀다.
이는 르노와르가 라파엘로의 예술에 끌려, 이태리의 여행에서
품페이의 벽화(壁畵)에 감복하여 전환기를 맞기 시작할 무렵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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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ne Cahen d'Anvers,

1879, E.G. Buhrle Collection at Zurich 

그의 예술의 옹호자였던 은행가 루이 깡 단베르 씨의 귀여운 막내딸이 모델이 되어 주어서
퍽 조심스레, 그리고 정성스레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가슴을 조이고 있듯 긴장한 눈매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응시하고 있는
가련한 소녀상은 뭔지 모를 연민(憐憫)의 정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소녀상은 르노와르가 즐겨 다루는 소재의 하나이다. 

놀란 토끼처럼 동그란 눈, 투명한 살결의 프로필은
유연한 붉은 자색의 머리칼에 감싸여 더욱 돋보인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의 한 가닥, 한 가닥은 르노와르 특유의 흐르는 듯한 붓놀림으로,
산만한 듯하면서도 매끄럽게 다듬어졌다. 청결하고 감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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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 with a Fan
c.1881,
Oil on canvas
Sterling and Francine Clark Art Institute, Williamstown, Massachuset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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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eeping Girl, (known as Girl with a cat)
1880, Oil on canvas, 120 x 94 cm
Sterling and Francine Clark Art Institute,
Williamstown, Massachuset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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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manade(산책), 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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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안고 있는 소녀 - 줄리 마네(Julie Manet 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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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오 부인(Madame Henriot 1876)"
앙리에트 앙리오(Henriette Henriot)는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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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오 부인을 모델로 그린 "파리지엔느(La Parisienne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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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Reading, 1874-76, Musee d'Orsay at Paris

인상파 시대의 르노와르 작품에는 자연의 묘사보다는 인물,
특히 여인을 주제로 한 명작들이 많다.

이 그림도 그러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서 젊은 시절의
르노와르의 특질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작이다.

이 그림에서도 창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을 받아
역광(逆光) 속에서 젊은 아가씨의 즐거운 독서 삼매경의 한 순간을 잘 포착했다.
얼굴 한 면의 햇빛 반영이 밝아 싱싱한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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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하는 마리-테레즈 뒤앙-뤼엘(Marie-Thérèse Durand-Ruel Sewing 1882)"

옆모습이고, 바느질에 몰두하고 있으며,

시선은 바느질 작업에 고정되어 있다.
따사로운 햇살의 화려한 색깔과 빛깔이
자연스럽게 비치고 있는 한낮의 풍경이다.

이 작품에는 어떠한 엄숙함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르느와르는 다만 단순하고 순수한 아름다움과
걱정없는 평온한 인생의 즐거움을 표현하려 했을 뿐이고,
화사한 빛이 하나되어 어우러지는
그 유연성과 순간성을 나타내고자 했다.


풍요로운 자연의 풍경속에서 마리-테레즈의 미모는
마치 활짝 핀 꽃과 같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마리-테레즈가 입고 있는 옷과 장식의 파란색, 주황색, 빨간색은
뒷 배경의 무성한 꽃들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르느와르는 이제 막 피어 오르는 소녀의 아름다움과 함께,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작업에만 집중하고 있는
소녀의 수줍은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 역시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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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 인상파에 속했던 프랑스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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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 Auguste Renoir, 1841.2.25일~191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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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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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초기 작품들은 반짝이는 색채와 빛으로 가득 차 있는 현실생활의 단편을 그린

전형적인 인상파 그림이었다. 그러나 1880년대 중엽부터는 인상파와 결별하고 초상화와 인물,

특히 여인상(예를 들면 〈목욕하는 여인들〉에 좀더 엄격하고 형식적인 기법을 적용하게 되었다.

 

그의 정물화는 정원에서 따온 꽃과 과일로 이루어졌으며, 풍경화는 주변 경치를 그린 것이 많다.

특히 누드화는 그가 평생 동안 일하는 즐거움에서 찾아낸 평온함을 보여준다.

 

그는 젊은 리샤르 기노의 도움을 얻어, 여성의 육체에 대한 찬미를 조각으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는 만성류머티즘 으로 결국 붓을 손가락에 묶고 그림을 그려야 했다.

 

 젊은 시절

 르누아르는 장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7명의 자식을 거느린 양복장이였던 아버지는

1845년경 가족을 데리고 파리로 이주했다. 르누아르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며

부모는 아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차리고 13세 때 도자기 공장에 보내어 훈련을 시켰다.

이곳에서 그는 접시에 꽃다발 그리는 법을 배웠다. 그뒤에는 부채에 그림을 그렸고,

그 다음에는 교회에 걸 헝겊 패널에 종교적 주제를 다룬 그림을 그렸다.

 

그는 그림솜씨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릴 때면 커다란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정식으로 그림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약간의 돈을 모은 그는

1862년 에콜 데 보자르의 야간부에서 소묘 및 해부학 강의를 듣는 한편,

19세기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의 제자였던 스위스의 화가 샤를 글레르의 화실에서

그림 교습을 받게 되었다. 스승의 전통적 화풍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화가가 되는 데 필요한 기본 지식을 얻기 위해 그는 아카데미 예술의 규칙을 받아들였다.

 

르누아르는 몇 달 뒤 화실에 들어온 세 학생,

즉 알프레 시슬레와 클로드 모네 및 프레데리크 바지유에게 훨씬 더 친밀감을 느꼈다.

이들은 모두 현실생활에 좀더 충실하고 과거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을 꿈꾸고 있었다.

네 젊은이의 공통된 이상은 곧 강한 우정으로 이어졌다.

 

같은 무렵, 스위스 아카데미의 또다른 실기실에서는 폴 세잔과 카미유 피사로라는

젊은 화가들이 똑같은 문제에 몰두해 있었다.

바지유의 소개로 두 그룹은 서로 자주 만났다.

 

 인상파 화가들과 제휴

 르누아르는 이런 상황에 용기를 얻어 표현 양식에서 새로운 자유와 실험적인 방식을 시도했다.

그림을 심지어는 풍경화까지도 화실에서 그리는 것이 그 당시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1864년 봄 글레르의 제자 4명은 퐁텐블로 숲으로 거처를 옮겨,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리는 작업에 몰두했다.

 

퐁텐블로 숲은 전에도 테오도르 루소와 장 프랑수아 밀레 같은 화가들을 매혹시켰는데,

이들은 예술이 일상 생활의 현실을 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전통적 표현 양식의 제약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못했다.

 

1863년 에두아르 마네는 훨씬 더 대담한 방법을 택했다.

〈풀밭 위의 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라는 그의 그림은

맹렬한 비난을 받았는데,

이 그림의 주제와 기법은 현실 관찰을 통한 그림의 부활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담성으로 인해 젊은 예술가들은 마네를 새로운 운동의 지도자로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회화 언어가 탄생할 수 있는 상황이 무르익자 갑자기 나타난 이 인상주의는

1874년 살롱전과는 별도로 열린 첫번째 인상파 전시회에서 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 운동의 명확한 형식과 독자적인 시각, 독특한 통찰력을 얻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근대 예술이 낳은 이 인상파 운동의 출발점은 1874년이라고 볼 수 있다.

 

르누아르의 작품은 구상과 기법에서 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완벽하게 나타내 보이는 한 예이다.

그는 공기의 진동, 잎사귀의 반짝이는 효과, 그리고 특히 야외에서 빛을 받은 젊은 여인의 살갗을

섬세하고 다채로운 붓놀림으로 훌륭하게 묘사했다.

 

르누아르와 그의 동료들은 검은색을 배제한 밝은 색깔의 그림을 그리려고 애썼지만,

이러한 노력 때문에 그들은 숱한 좌절을 겪어야 했다.

 

그들의 그림은 전통적인 규범에서 너무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살롱전 심사위원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그림을 팔기도 무척 어려웠다.

 

반면에 일부 인상파 화가들은 계속 비난을 받으면서도,

비평가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한테도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르누아르는 인체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풍경에 더 매혹되어 있는 다른 화가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다.

 

얼마 후 그는 초상화를 몇 점 주문받았고

출판업자인 조르주 샤르팡티에게서 중상류층 사람들을 소개받아,

그 계층에 속하는 여자와 어린이의 초상화를 그렸다.

 

르누아르는 점차 자신의 기술에 숙달되었고,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시달리면서도 생기에 가득 찬 그림을 그렸다.

 

그의 걸작 가운데 〈객석 La Loge·〈물랭 드 라 갈레트 Le Moulin de la Galette·

〈뱃놀이에서의 점심 The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 Mme Charpentier and Her Children〉 등은 이 시기의 작품이다.

샤르팡티에는 1879 '현대생활'(La Vie Moderne)이라는 화랑에서 르누아르 개인전을 열어주었다.

 

 

인상파와 결별

 1881년과 1882년 르누아르는 알제리와 이탈리아 및 프로방스 지방을 몇 차례 여행했는데,

이 여행은 결국 그의 예술과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인상주의 기법을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조되는 색채들을 섬세한 붓놀림으로 나란히 칠하는 기법으로는

매끄럽고 윤이 나는 살갗의 인상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인상파 화가들은 그가 검은색을 사용한 것을 비난했지만,

르누아르는 검은색의 사용이 그런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으며

어떤 경우에는 인상적인 효과를 낼 뿐만 아니라

주변의 색채들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그는 라파엘로의 그림들을 보았고

거기에서 고전주의의 매력, 즉 소묘의 아름다움, 형태를 규정짓는 또렷한 윤곽의 순수함,

인체의 유연함과 입체감을 더해주는 부드러운 채색의 표현력을 배웠다.

 

이무렵 그는 우연히 첸니노 첸니니가 쓴 〈회화론 Il libro dell'arte

(1437, 1844 A Treatise on Painting으로 영역)을 읽게 되었는데,

이 논문은 그의 새로운 생각을 뒷받침해주었다.

 

그가 이들을 통해 배운 것은 너무나 강력하고 대담하며 예기치 못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켰고,

그는 이미 의문을 품기 시작한 인상파와 결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가졌다.

 

1883~84년에 그가 제작한 작품들의 대부분은 새로운 규칙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예술사가들은 앵그르의 기법과 막연한 유사점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 작품들을 '앵그르 시대'라는 이름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르누아르의 인상주의적 시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의 팔레트는 여전히 여러가지 색채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에 대한 그의 강한 반발은 1890년경까지 계속되었다.

그동안 엑스앙프로방스와 마르세유 및 마르티그 같은 프랑스 남부 지방을 몇 차례 여행했다.

햇빛 찬란한 이 지역의 자연은 인상주의와의 결별을 더욱 촉진시켰다.

그는 인상주의를 센 강 유역의 풍경과 연결지어 생각했다.

 

남부 프랑스는 색채와 관능으로 가득 찬 풍경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와 동시에 고전주의의 엄격한 규칙에서 떠나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그리고픈 욕망을 불어넣었다.

남부 프랑스에 있는 동안 그의 예술은 타고난 참신함을 되찾았다.

그는 목욕하는 여인들을 마치 꽃다발을 그릴 때처럼 건강하고 아름답게 묘사했다.

 

그의 경제 사정은 상당히 좋아졌다. 1890년 알리스 샤리고와 결혼했고,

1892년 뒤랑 뤼엘이 열어준 개인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미래는 보장되었고, 이 시기에 그린 작품에서는 새로 찾은 안정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보여주었다.

 

 후기

 그로부터 2년 뒤, 르누아르는 첫번째 류머티즘 발작을 일으켰고,

발작이 점점 잦아질수록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곳의 날씨가 건강에 더 좋았기 때문이다.

 

1899년경 그는 카뉴라는 작은 마을에서 안식처를 찾았다.

1907년 레콜레트라는 영지를 사들여 카뉴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1910년 더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몸의 자유를 구속하는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움직여지지 않자 손에 붓을 묶은 채 그림을 그렸다.

이런 불운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여전히 삶에 대해 쾌활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파리 부르주아지의 미소띤 초상화에 만족하지 않고,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하녀인 가브리엘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은 그를 위해 자주 나체로 포즈를 취해주곤 했다.

 

그의 정물화는 정원에서 따온 꽃과 과일로 이루어졌으며,

풍경화는 주변 경치를 그린 것이 많다.

 

특히 누드화는 그가 평생 동안 일하는 즐거움에서 찾아낸 평온함을 보여준다.

그는 젊은 리샤르 기노의 도움을 얻어, 여성의 육체에 대한 찬미를 조각으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이무렵 르누아르는 손수 조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1913년경 기노를 조수로 삼았다.

기노는 르누아르의 지시를 기꺼이 따르는 솜씨좋은 도구가 되었다.

 

그는 르누아르의 개성 앞에 굴복했고 솜씨가 좋았기 때문에,

그가 조각한 작품들은 르누아르의 표현 양식이 갖고 있는 특성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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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아내는 1915년 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아들 장을 만나러 제라르메르에 갔다가

돌아온 뒤 세상을 떠났다. 르누아르는 아내보다 4년 더 살았는데,

죽기 몇 달 전 국가가 구입한 〈조르주 샤르팡티에 부인의 초상

Portrait de Mme Georges Charpentier〉이라는 자신의 그림을 보러 파리에 갈 수 있었다.

 

그때 몇몇 친구들은 그를 루브르 박물관으로 데려가,

그가 평생 존경해왔던 걸작들을 마지막으로 보여주었다.

 

R. Cogni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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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the 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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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나들이


이제 가까스로 어엿한 예비 숙녀가 된 한 소녀가 어머니를 따라서 극장 관객석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두리번거리고 있는 이 그림은 자유자재로운 시각으로 퍽 자연스럽다.
얼핏 즉흥적인 붓놀림으로 쉽사리 그린 것 같기도 한 이 작품은 학교를 마치고

이제 어른들의 사회 속에 뛰어드는 듯한 첫나들이를 겸한 관극(觀劇)에 나선

소녀의 이 도큐멘터리 터치는 [현대를 그려보겠다.]는 르노와르의 야심작이기도 하다.
이 아가씨를 옆으로 보고 이를 근경으로 처리했으며, 계단 아래의 객석이나 무대를

조금 엿보이게 하여 원경 처리를 함으로써 교묘한 구도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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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있는 여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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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옷을 입은 책읽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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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ame Sev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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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돌린을 치는 여인


1890년경에 이르면 르노와르의 부인상은 한껏 무르익어 간다.

모델도 점점 더 풍만한 여인이 많아지며, 그런 풍만한 육체속에 감각적인 표현이 여물어 간다.
이 그림에서는 그런 풍만한 여인을 벗기지 않은 채 화려하고 우아한 느낌을 물씬 풍기게 한다.

이러한 여인의 속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 앉은 의자도 이에 대응하여 화려하고 밝게 칠했다.


그 위에 이 그림의 악센트를 넣기 위해 여인으로 하여금 만돌린을 연주하는 포즈를 취하게 했다.

감각의 풍족함과 양적(量的)인 충실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 그림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르노와르 부인사의 연작으로 특유의 예술성을 구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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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ame H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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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라 뒤리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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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통 베른하임 드 비예 부인, 수잔 아들러 (1883-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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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of a Young Woman (also known as Yellow Hat)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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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의자에 앉은 모네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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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에르부인(夫人)의 초상(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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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끈을 묶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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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rsmen at Chatou / 1879년 작

햇살과 물빛을 잘 잡아내고 있는데
주황과 파랑은 원래 보색이라
배와 물은 더욱 대비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어
인상파 화가다운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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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와 노는 여인, Woman with a Parrot, 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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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의 초상(18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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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onsine Fournaiseon the Isle of Chat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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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with a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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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블라우스를 입은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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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있는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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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아 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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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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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사마리의 초상

이 그림의 모델은 당시 파리에서 인기 절정에 있었던 유명한 여배우이다.
그녀는 매우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발랄하면서도 지적(知的) 매력이 넘치는
미인이었다고 한다. 이에 매혹된 르노와르는 그녀의 전신상도 그렸다.

밀도(密度) 짙은 눈부신 핑크 빛깔을 배경으로 깔고, 마치 이 화려한 분위기 속에 
 흠뻑 젖어 있는 듯이 우아한 여인이 턱밑에 손을 받치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 청징(淸澄)한 눈은 지적(知的)으로 빛나고 있고,
입술과 어깨 언저리에 붉은 색조가 산점(散点)하고 있고,
한편으로 여기에 짙은 녹색의 의상이 알뜰히 대비(對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뭇 빛깔들이 마치 하나로 용해된 듯도 하면서 쾌적한 색감으로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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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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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장식을 단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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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wearing a Hat with wild R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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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베라르 부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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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네츠를 든 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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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버린을 든 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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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elle A Sa Coiff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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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앉아있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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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lle in a straw 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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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in a flowered 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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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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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Woman in Red in the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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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Woman Wearing a Black 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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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샤르팡티에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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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을 꽂은 금발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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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Girl with Dais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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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상반신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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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in a White 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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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를 단 젊은 여인, 푸른 옷을 입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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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인. 1900년. 캔버스에 유채. 56 x 4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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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Woman Wearing a 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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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of a Young Girl in 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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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Girl Holding at Bouquet of Tu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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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Girl in a 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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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of a Young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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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코베스쿠 부인의 초상 (루마니아 여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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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인. 1900년. 캔버스에 유채. 56 x 4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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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하는 아가씨

편물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 여인을 사생풍(寫生風)으로 가볍게 그린 작품이다.
물론 이 그림은 초상화가 아니라 일종의 스냅으로서 편물하는 동작의 한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즉 인물의 표현임에는 틀림없으나, 인물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이처럼 짠 직물의 아라베스크에 그는 더욱 흥미를 느낀 것 같다.

이러한 색감과 무늬가 여자다운 우아한 얼굴이나 머리 따올림,
그리고 배경에 감싸여 하나의 조화 있는 색채의 세계를 창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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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man with a Yellow Tur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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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앉은 욕녀, 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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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외에 앉은 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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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on a Coach (Gabrielle),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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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나
(아르테미스)

르노와르의 처녀작 가운데 일품(逸品)이다.
그의 나이 스물 여섯 살 때 그린 작품으로 화가로서의 첫발을 기념하는,
이를테면 기념비적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 사냥의 여신(女神) 디아나를 성스런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관능적인 풍만한 젊은 여자, 즉 요녀 같은 인상마저 준다.
이처럼 여체에 충만한 양감(量感)은 선배인 쿠르베의 영향 탓이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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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욕, Seated Bather / 1884년 작

목욕하는 여인네들 그림 중에서 널리 알려진 그림인데
비교적 젊은 시절에 그려진 작품이라 그런지
여인의 풍성함이 노년기에 그려진 작품들보다 훨씬 덜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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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하는 여인들 (1918~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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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후' 1888년, 캔버스에 유채, 65×54, 도쿄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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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만지는 慾女

 

"만일 여인의 유방과 엉덩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이는 르노와르의 유명한 말이다.
이 양적(量的)인 육체를 짙은 녹음 앞에 놓아 자연의 청신한 빛깔과

여인의 뜨거운 육감을 하나로 버무려서 풍윤한 색채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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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for "Nude in the Sunlight"

1875-76, Musee d'Orsay in Paris

 

비너스가 바다의 물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르노와르의 이 나부는 무성한 숲 덤불을 비집고 빛나는 햇빛속에서 태어난 비너스..

거친 붓자국의 뿌우연 빛깔 속에서 풍요롭고도 요염한 여체가 어슴푸레하게 부각되었다.
제2회 인상파 전람회에서 [모델이 마치 수포창(水泡瘡)에 걸린 것 같다]

험담을 들을 정도로,  햇살의 효과는 대단하다.


얼굴, 어깨, 가슴 등 전체에 눈이 부실 정도로 태양의 직사광선이 감싸고 있는 이 여체는,

마치 숲 속의 요정과도 같은 동화적 분위기마저 느낀다.
배경인 수풀도 역시 햇빛을 듬뿍 받아 하나로 버무려진 아름다운 색채의 효과를 내고 있다.

순간적인 색채의 소용돌이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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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 유일한 화가라 불리울 만큼
그의 그림은 밝고 화사하며 아름다운 그림들 뿐이며,
따뜻한 색을 즐겨 사용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저절로 따뜻한 느낌이 느껴지게 한다.
너무나 가난했지만 희망을 그렸고, 아름다운 빛을 묘사했으며
특히 검정색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결국 르느와르의 그림은 삶의 환희와 기쁨이 묻어나는
빛과 색채의 예술임에 틀림이 없다.



르느와르처럼 신화로 남은 화가는 많지만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며 낙천적으로 살았던 화가는 없는 것 같다.
생전에 그림 한 점 팔지 못했으나
지금은 범작마저 몇백억원에 팔리는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렇고,
"영광을 막 잡으려는 순간에 죽다" 라는 묘비명처럼
서른여섯에 요절한 모딜리아니도 그렇다.
물랭루즈의 꼽추 화가 툴루즈 로트렉,
멀고 먼 남태평양 타이티까지 흘러갔던 고갱,
살아 생전에 예술가로서 누릴 수 있는 성공과 명예, 부를 다 얻었지만
결코 행복한 삶을 살다가지 못한 피카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환희의 선물이 되어야 한다"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
"풍경일 때는 그 속에서 산책을 하고 싶어지는 그림,
여체를 그린 그림일 때는 그들을 껴안고 싶어지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예술철학으로 삶의 기쁨과 환희를 현란한 빛과 색채의 융합을 통해
무려 5,000 여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젊은 시절 가난했던 이유로 모델을 구하지 못해
인물화를 그리지 못했던 르느와르
운 좋게도 Lise란 18세 소녀를 친구를 통해 알게되었는데
르느와르가 31세가 될 때까지 그의 작품 모델이 되어주었다.
그의 전기작품에 자연과 함께 등장하는 여인은 거의 전부가 그녀이다.


결국 40세 즈음에 르느와르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는데,
무려 19살이나 연하인 20세의 Aline이란 여성이었다.

1890년대 말엽에 이르러서는 지병인 관절염이 점점 악화되어
손에 붓을 묶어 놓고 그릴 정도로 부자유스러운 몸이 되었지만
누드화를 비롯해 왕성한 작품활동은 계속했다.
하지만 그의 말년 작품들은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차라리 작품활동을 하지않은 편이 좋았을지 모르겠다.
은퇴할 시기에 용감하게 은퇴하는 것도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후기에는 그의 부인 Aline(1860~1915)을 비롯해
Aline의 먼 친척이었던 가브리엘(1878~1959)과
데데라는 별명을 지닌 앙드레 외슐렝
르느와르(1841~1919)의 모델 역활을 나누어 맡았다.


가브리엘은 둘째 아들 장이 태어나던 1894년
보모로서 르누와르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은 후
1914년 미국인과 결혼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20년간 르느와르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주된 모델이었다.


르느와르가 아무리 전문모델을 싫어했다지만
아내와 사촌지간이었던 가브리엘에게
누드 모델 노릇까지 요구한 것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소위 예술을 위해 헌신할 수는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결국 르느와르의 아내 Aline의 질투로 르느와르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앙드레 외슐렝 르느와르의 마지막 누드 모델이었지만
르느와르가 세상을 떠난 후 둘째아들 과 결혼을 하여
르느와르 집안의 며느리가 되는 아이러니한 일도 생긴다.
하지만 두 모델 모두 르느와르
사랑하는 관계까지는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림이란 건 그렇지 않은가,
벽을 장식하려고 있는 거야.
그래서 가능한 한 화려해야 해.
내게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예쁜 것이라네.
그렇지, 예쁜 것...
그림이 위대한 동시에 즐거울 수 있다는 개념을
받아드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평범한 미술품 수집가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 같은 이 말은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가 했다.
그는 말 값을 하듯 평생 아름답고 즐거운 장면만을 그렸다.
슬픔이나 고단한 삶의 찌꺼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의 그림들을 보자면 화가의 일생도 그림처럼 행복했거니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르느와르 자신은 가난에 쫓기고 콤플렉스에 시달린 삶을 살았다.


삶이 고단해서였을까?
그의 그림은 누구보다도 밝고 아름답다.
여인들은 터질 듯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며
농염한 살내음을 풍기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과
단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과일은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먹고 마시고 떠드는 유쾌함은
다른 어느 인상주의자의 그림보다도 실감난다.
인생에 괴로운 것이 많다면
그림까지 그럴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그의 좌우명대로 르느와르
아름다운 것에 설레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해냈다.
화가가 남긴 말은 솔직하다.


"아! 저 젖가슴! 얼마나 부드럽고 중량감 있는가!
금빛 색채를 띠며 밑으로 처진 저 아름다운 기복...
만일 젖가슴이 없다면 내가 과연 인물들을 그렸을까 의심스러워..."


르느와르가 여성의 누드화를 자주 그렸던 탓에
그가 여성을 존중하지 않앗다거나
혹은 여성의 육체적인 면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르느와르의 초상화 작품들을 보면
그가 모델들에게 진심어린 찬사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녀들의 시선, 태도, 미소는 행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꿈에서도 가질 수 없는 능력,
즉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네"라고 르느와르는 말했다.
그러나 르느와르는 이러한 말을 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과 초상화를 통해 이 사실을 직접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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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노와르 약사


 
1. 인물(1841~1919)

   *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프랑스 리모주 출생)

   * 빛의 세계를 갈구한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

   *1841년 프랑스 리모주 출생

   * 1900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음

   * 13세에 도자기 공장에서 도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

   * 마네와 모네를 만나 많은 영향을 받음으로 인상주의를 지향

   * 프랑스 예술을 계승한 대표적 화가  

 


2. 대표적 작품

   * 나꼬양의 초상(지극히 사실적인 소녀상), 목욕하는 여인들, 

피아노 앞에 앉은 소녀, 목욕하는 여자와 강아지,

관객석, 우산, 테라스에서, 나부

 


3. 특징

   * 옥외나 실외의 광선이 인물에 비치는 효과 추구

   * 표현이 부드럽고 관능적인 작품이 많음

   * 예술과 외설 사이에서 고뇌, 관능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을 따뜻하고 풍만하게 그림

   * 색채가 미묘하게 융합하고 있어서 선묘적인 요소는 찾아볼수가 없다

   * 그의 색채에 있어서도 매우 단순 명료한 것을 애호

   * 프랑스 미술의 우아한 전통을 근대에 계승한 색채가

 


4. 인상파

   * 르노와르의 <인상 일출> 이라는 작품에서 비롯(카페 게르부아의 모임)

   * 태양광선을 프리즘을 통해 일곱가지 색으로 분해하듯 순도 높은 색만을 화폭에 담음

   * 태양광 밑에서 색채가 풍부한 자연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목표

   * 아틀리에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야외, 옥외에서 많이 그림

   * 외광파 회화라 한다

   * 빛으로 가득한 밝은 화면이 신인상파에 의해 이어짐

   * 검은 색을 사용하지 않음

   * 빛을 이용하여 색조를 다양하게 하여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차이를 둠

   * 마네, 피사로, 르누아르, 시슬레, 드가, 세잔 등이 대표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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