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어찌하여 저렇게 슬피도 흘렀던가?
겨울 날 오후 한강에 나갔었다.
비는 인적 없는 한강에 눈물처럼 뿌렸다.
뗏목을 타고 유장(悠長)히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오르듯
한강의 눈으로 본 슬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한때 건달이었던 당나라의 소정방이가 김유신을 앞장세워 백제 사비성을 짓이겨 놓고
의자왕이하 신민 일만 이 천 명을 양미리 엮듯이 엮어서 한강을 건넜다.
한강은 그 우스꽝스럽고도 슬픈 광경을 보고 심하게 요동쳤다.
김유신 장군은 왜 말이 없었고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어디로 갔나?
먼 훗날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병들이 평양성에 들어가 각각의 부대가 공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 백성 만 여명의 목을 베고선 왜놈의 수급이라고 속이고 보고했다는데
우리의 상감과 신료(臣僚)들은 못 본 척, 먼 산만 바라보았다.
명나라 군대에게 따지면 무슨 불이익이 생기기에 오두들 청맹과니가 되었나?
668년 당나라 만행에서 1592년 명나라 학살까지 90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상감도 신료들도 모르는 척 외면하는 것은 똑 같이도 닮았다.
땅 두드리면 죽는 것은 개구리라고 그 사이 죽는 것은 무고한 백성들 뿐이었다.
말없는 한강은 그걸 서러워하였다.
고구려의 평양성이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함락되었다.
이번에도 김유신이 앞장을 섰다.
소정방은 백제의 의자왕도 고구려 보장왕도 전리품으로 챙겼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장궤가 받는다고 하더니 재주는 김유신이 넘고
돈은 소정방이라는 장궤가 챙겼다. 김유신은 잘 훈련된 곰이었단 말인가?
고구려 군신 20여만 명이 개 끌려가듯 당나라로 끌려갔다.
끌려가면 종이 되고, 물건처럼 매매되고, 여자면 첩도 되고, 남자면 농부도 되고....
그리운 부모형제는 너무나 멀리 있어 생시에는 만날 수 없어 꿈속에서만 가끔 만났다.
이것이 군주를 잘못 만난 액(厄)이요 신료들을 잘못 만난 화(禍)였다.
1231년 몽고는 한반도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만만한 것이 홀아비 무엇이라고 북방에서 신흥국가가 일어나면
한반도가 무슨 “간이 화장실(簡易 化粧室)“이나 되는 것처럼 으레 들어와서 용변을 보고
난장판을 벌이고 나간다. 몽고가 노린 것은 중국 대륙이었는데
우선 저들의 ”간이 화장실“인 한반도부터 덮쳤다.
저 아름다웠던 강 양변에 백사장이 그럼처럼 펼쳐졌고 능수버들 춤추던 곳.
그 한강을 28년 동안 수도 없이 건너면서 능욕했던 몽고군.
특히 6차 침입 때는 우리 백성 20 만 명을 잡아 한강을 건너올라 갔다고 고려사에 적혀있다.
고려왕들도 한강을 건너 강화도로 도주했다.
끝내는 항복했고 원나라에 인질 보내고 조공 바치는 부마국(사위의 나라)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무렵 동남아의 베트남은 몽고의 세 번에 걸친 침입을 세 번 다 물리쳤다.
몽고의 수군을 전멸 시켰다. 베트남은 중국도 물리쳤다.
독립심이 강한 백성, 훌륭한 지도자를 끊임없이 배출한 본받을 나라이다.
조선의 건달 살인 청부업자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꾀주머니.
살생부를 만들어 닥치는 대로 죽였다. 단종도 사육신도 이 자의 작품이다.
세조가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되는데 공이 크다고
일등 공신만 두 번 하고 세 번의 영의정을 지내고,
세 명의 딸을 미끼로 세 명의 세자 혹은 왕을 낚은 낚시의 대왕.
학력도 없었어도 굴리는 머리 하나는 끝내 주었다.
한강변 전망 좋은 곳에 압구정(鴨鷗亭)이라는 호화 정자를 짓고
늘그막에 조선의 대신, 중국 사신들을 불러 호화로운 잔치를 열며 뚱땅거리다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한강도 구역질을 백 번도 더 했었다.
9대 성종이 이 말을 듣고 그 정자를 뭉개버렸다.
한명회는 성종의 죽은 첫 째 부인의 아버지였으니 첫 번 째 장인이었다.
압구정이 얼마나 원성의 대상이었으면 옛 장인의 정자를 헐어 버렸을까?
압구정이란 갈매기를 불러 논다는 뜻이라 하는데 압구정이 헐릴 때
한강은 피부암 덩어리가 떨어지는 것 같은 기쁨을 맛보았다.
압구정이 대단히 화려한 정자여서인지 지금의 압구정동은
한명회의 음덕(陰德)을 입어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한명회에게 고맙다고 제사를 지내야 하나?
1592년 임진년 왜적(倭敵)이 부산진과 동래에 상륙하여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북상하여
한강을 건너 개전 20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임금은 비오는 새벽 도주하기에 바빴고
백성들은 홧김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에 몽땅 불을 질렀다.
임금이 혼자서 도망하는 것에 대한 분풀이였다.
한강은 멀리서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길게 한숨을 쉬면서 눈물만 흘렸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임금 선조에게 감자만 먹였다.
왜적들은 이상한 짓을 하였다.
조선 병사고 백성이고 잡으면 죽이고 코를 베어 일본으로 보냈다.
몇 명을 죽였는지 세어서 장부에 기입하여 보고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확인하는 야만의 셈법을 위한 것이었다.
머리를 잘라 보내는 것은 수박덩이처럼 부피가 커서 불편하여 만든 꾀였지만
천벌을 받을 짓이었다. 지금도 교토에는 코(혹은 귀)무덤이 있다.
전쟁 막판에는 죽이지 않고 양미리 엮듯 엮어서 일본에 끌고 가
일부는 농사짓는 노예로 일부는 포르투갈 상인을 통하여 노예로 팔았다.
조선 남자 노예는 거세(去勢) 해 버렸다.
2차 대전 때 일본군은 조선의 위안부들의 배를 가르고
자궁도 들어내고 그 안의 애기도 들어냈었다.
일본인들은 조선 남녀들의 생식기를 망가뜨리는데 일류선수들이다.
그자들이 천인공노할 이런 못된 짓을 하고도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보면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은 정답인 것 같다.
한 때 국제노예 가격이 쏟아져 나오는 조선 노예로 하여 많이 떨어졌다.
“북쪽에서 오는 놈들에게 당하고 남쪽에서 오는 놈들에게 당하고 ...
조선백성은 도대체 어디에 기대어 살아간단 말인가?“라고 한강은 한탄했다.
1624년 3월 이괄이란 자가 난을 일으켰다.
인조반정에 가담한 무장인데 쿠데타 성공 후 논공행상에 대해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인조는 허둥지둥 한강을 건너 공주로 피난했다.
인조는 이괄의 난이 평정되고야 다시 한강을 건너 한양으로 들어갔다.
한강은 알았다. 인조가 얼마나 진인하고 암둔(闇鈍)한 인간인지를.
그는 세자인 소현을 독살했고 며느리도 폐서인하고 사사하였고
손자도 죽여 버린 천륜을 거역한 인간이었다.
조선의 왕 중에 정사는 잘 못해도 죽이는 데는 능한 왕들이 왜 이리 많았던가?
임진왜란이 끝나고 겨우 37년이 지나고
이번에는 만주에서 일어난 후금(여진족)이 압록강을 건너 질풍처럼 남쪽으로 내달았다.
이번에도 ‘간이화장실’은 인조였다.
그와 그의 신료들은 한강을 넘어 급한 김에 남한산성에 들었다.
나머지 태자 등 왕족 일행은 강화도로 피난했다.
그때가 1636년 12월이었다.
남한산성은 포위되었고 청(淸)군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구원군이 왔지만 청군에게 패퇴하였다.
다음해 1월 강화도가 함락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는 성문을 열고 나가서 항복해버렸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삼전도 나루터에 나아가 청 태종에게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땅에 찧는
항복의 예를 올리는 인조를 보는 한강은 부들부들 떨었다.
왜 조선은 번번이 이렇게 당해야 하나?
청은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1) 조선은 청에 대하여 신하의 예(禮)를 행할 것.
2) 조선은 왕의 장자(長子)와 제2자 그리고 대신의 자녀를 인질로 보낼 것.
3) 황금 100냥, 백은 1,000냥을 비롯한 물품 20여 종을 세폐(歲幣)로 바칠 것.
4) 청의 연호를 사용할 것
5) 별도의 조공을 바칠 것: 공녀(貢女)를 포함 쌀, 인삼 등
매번 이런 식이면 “노예근성”이라는 유전자가 형성된다.
미련의 덩어리 인조와 그의 신료들의 어리석음이 빚은 참사였다.
신흥 청을 우습게 보고 망해가는 명나라에만 충절의 절개를 지키느라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비웃으면서,
약속한 것은 번번이 어기고 배신했던 뒤끝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한강은 항상 기름 쏟고 깨알 줍는 외교를 하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느냐고 혀끝을 찼다.
한강은 기가 막혔다.
이놈한테 터지고 저놈한테 까이고 이러다 조선이 어찌 살아 남겠나?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선 백성 약 60만명이 포로가 되어 만주로 끌려갔다.
이중 여자들은 노예로 팔리거나 청의 기혼 남자들의 첩이 되어 갖은 수모를 당하였다.
청나라 남편과 본처가 얼마나 구박을 했으면
청 태종이 조선인 첩을 구박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을까?
조선의 부모들이 돈을 마련하여 그 머나먼 만주에 가서 자기 딸 아들을 돈을 주고 사왔다.
이렇게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還鄕女)”라고 불렀는데
돌아와 시집에 가면 남편이 버리고 그러면 친정으로 쫓겨 갔고
또는 비구니가 되었고 아니면 창녀가 되었다.
이런 비극을 연출한 조선의 왕이나 신하들은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심장을 달고 태어난 기형아 들이었다고 한강은 조롱했다.
양화진(楊花津)은 지금의 마포구 한강변에 있던 나루터였는데
조선조에는 수운이 발달하여 여기서 배를 타고
황해도로도 나가고 강을 거슬러 강원도에도 올라갔다.
각지에서 바치는 세곡을 부리는 터미널도 여기였다.
경치가 빼어나 양반들이 나와 놀이를 하고
또는 중국 사신들이 오면 여기서 뱃놀이 하면서 접대 하였다.
양화진 동쪽에 있는 절두산(折頭山)은 조그만 바위산으로
천주교도들이 여기서 참형을 당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프랑스 신부 9명이 죽음을 당했고 3명이 중국으로 도망갔다.
대원군이 변덕이 일어 천주악쟁이(천주교도)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아름다운 한강가 양화진과 절두산은 피바다가 되었다.
잡혀죽고 굶어죽고 아파서 죽은 천주교도가 만 명이 넘었다.
대원군은 자기의 부인 민 씨가 신도인데도
모르고 못 죽였는지 알고도 안 죽였는지 죽이지는 않았다.
정적이라고 친형도 죽이고 처남도 죽인 냉혈한이 마누라와 자기친척은 왜 살려 두었나?
한강은 권력의 노예 대원군이 비겁하다고 욕을 퍼부었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들어왔다가 철수하였다. 한강도 긴장했다.
1950년 6월 스탈린의 전폭적인 지원과 모택동의 보증서를 움켜쥐고
38선을 넘어 밀고 내려온 전쟁광 김일성,
그의 졸개들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한강을 건너 순식간에 낙동강에 도달했다.
또다시 한강은 강간당하는 것 같은 아픔에 치를 떨었다.
붉은 짐승들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U.N.군과 사투(死鬪)를 벌렸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에 상륙하여 인민군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며 지리멸렬하였다.
U.N.군이 한강을 넘어 북상할 때 어린이들은 신나게 불렀다,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북한백성 남한백성이 수도 없이 한강을 건너 피난의 길을 떠났다.
그 뒤를 중공군이 따라 건넜다.
또 몇 달 있다가 U.N.군이 다시 한강을 건너 북상하였다.
너무나 많은 참혹한 일을 목도한 한강은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마지막으로 1961년 5월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3,500명의 작은 규모의 군대가
혁명을 한다고 한강을 건넜다. 미군 사령관과 미국대사가 이 반란을 진압해야 된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윤보선 대통령도 이한림 1군 사령관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족 간에 흘리는 피를 더는 볼 수 없다면서 두 사람은 버텼다.
장면 총리는 수녀원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최소한의 군대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둔 5.16 쿠데타.
박 소장을 중심으로 국민들은 땀 흘려 일했다.
그리하여 “한강의 기적” 이라는 훈장을 외국에서 달아주었다.
한강은 경제개발 난리통에 많이 훼손되었어도 조금도 속이 끓지 않았다.
신라시대부터 본 조선인들이 이만큼 잘 먹고 잘 산 적이 없었다.
그것이 고마웠다.
지나온 천 수 백년 울면서 가슴 아파 했던 한강은
겨우 수십 년 만에 이룩한 “한강의 기적“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잠간동안의 우연(a fleeing happening)이 아니기를 간절히 빈다.
"아시아 선진국 중 가장 부패한 나라라는 낙인이 찍힌 우리 대한민국이 불안하다.
하루 빨리 환부를 도려내고 건강을 회복하여 주기를 바란다.” 라고 한강은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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