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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녀의 촉촉히 젖은 눈빛 ! (정철)


우리 동네 어느 상가 지하엔 모 슈퍼마켓이 있고 그 바로 옆엔 오래 전부터 각종 전과 나물을 파는 제법 큰 가게가 있다. 일하는 아줌마만 6-7명 정도니 그 규모를 알만하다.
나도 가끔 집에 반찬이 없으면 그 가게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사거나 아니면 막걸리가 마시고 싶을 때 이제 막 만들어진 각종 전들을 고르곤 한다. 

그런데 그 주인집 아줌마는 대략 50대 중반 정도인 것 같은데 얼굴이 자애스럽고 항시 웃음을 머금고 있어 얼핏 천사같이 보이기도 한다.  또한 내가 가끔 반찬을 사러 가면 내가 독신인 줄 알고 괜찮은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말해 과히 싫지않은 여자라는 인상을 머리속에 항상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그녀의 이미지가 완전 깨지는 사건이 얼마전 발생했다.
그날은 그 상가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서 해산물을 사려고 했는데 저쪽 한구석에 아주 조그마한 나물가게에서
내가 잘 모르는 생소한 나물들을 조그마한 자판에 놓고 팔고 있었다.
새로 생긴 나물가게였고 그 주인은 아마도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참한 여인이었는데 장사하는 것이 조금은 어색한 듯 멋적어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쳐다보니 그녀의 얼굴에 조금은 슬프고 좌절스런 표정이 얼핏 스쳐갔다.
묘한 기분을 접어두고 기존에 있던 나물가게를 거쳐 출구로 나가려고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기존에 있는 나물가게에 웬 여인네들이 무지 바글바글 모여서 나물들을 고르고 있었다.
그렇게 손님들이 많은 모습은 처음이라 깜짝 놀랐고 다가가 자세히 보니 아니 이게 무엇이던가?

평소엔 그러한 나물을 만들어 팔지도 않았던 기존의 나물가게가 새로 생긴 나물가게에서 만든 나물들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놓고 그것도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어 덤핑으로 팔고 있으니 온 동네 아녀자들이 다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물들을 만드는 과정과 판매하는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내가 평소에 가졌던 온화하고 자애스런 천사같은 아줌마의 얼굴에는 단호하고도 결의에 찬 표정이 각인되어 있었다.

먹고 살겠다고 40대 초반 여인네가 그것도 조그마한 가게를 차려 독자적으로 개발한 나물상품들을 기존의 규모가 제법 큰 나물가게 아줌마가 여지없이 짓밟아 버리는 현실을 보고 아, 사는 게 생각보다는 힘들고 조금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그 천사같던 그 주인 아줌마가 조금은 악마처럼 보임은 아마도 새 나물가게 여인네의 촉촉히 젖은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건 그렇고 이번 한주도 열심히 살아왔고 이제 친한 동기들과 정담을 나누기 위해 빨리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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