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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팽목항.. (이해일)
[팽목항] [6월 17일 첫째 날] 참으로 우연찮게 며칠의 시간이 확보되었다. 평소 기회를 노렸던 팽목항을 목적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등포에서 친구를 만나 대구탕으로 낮술 한 잔 하고 목포로 긴 여행을 떠난다. 근래 먹기 시작한 보조식품의 명현으로 인해 잠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먹기 시작한지 30일 째에 명현이 터지더니 도저히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동공이 아른거리면서 깊은 잠에 빠진다. 깨면 책을 읽다가 또 자고 이렇게 반복하니 어느새 목포 도착. 느낌은 비행접시를 타고 순식간에 날아온 기분이다. 인터넷으로 검색된 북항이란 곳을 버스를 타고 갔다. 생각보다 별로 크지도 않다. 아나고를 주문하고 자리 잡고 앉으니 비로소 객지의 회포가 꿈틀거린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아나고를 두툼하게 썰어 기름기가 충만하다. 난 이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러고 보니 수년 전 녹동항에서 먹었던 장어도 이렇게 두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설사를 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고 하루 종일 에너지 넘치던 것도 기억난다. 인근에 모텔이 몇 개 있다. 제일 호화스런 곳을 택해 들어가려고 보니 현관 유리문이 온통 먼지와 손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바로 옆 모텔로 가니 마당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객실 또한 주인의 성격을 읽을 수 있도록 정갈하다. 새벽에 눈을 뜨니 2시 반. 7시에 있을 러시아와의 월드컵 때문에 졸음과 초인적인 사투를 벌이고 드디어 결전이 시작되었다. 전반전 영대영. 후반전이 시작되어 좀더 편한 자세로 베개를 껴안고 화면을 응시하다가 깜빡 잠들어 버렸는데 아차하고 얼른 눈을 떠보니 후반전 하이라이트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깜빡 사이에 서로 한 골씩 넣어 일대일로 끝났다. 낮잠을 충분히 잤건만 명현의 힘은 대단하다. [18일 둘째 날] 조반을 모텔에서 소개해 준 곳으로 가서 백반을 먹었는데 6-7천 원짜리 백반 인심이 참으로 푸짐하다. 추가 고등어 한 마리, 밥 한 공기 그냥 준다. 목포 터미널에서 진도까지 가고 거기서 다시 팽목으로 간다. 버스 안에서 꾸벅 졸기만 하니 여행의 지루함은 느낄 새가 없다. 팽목의 느낌은 그저 적막감만 맴돌고 있다. 신문에서 보았던 아비규환의 비명은 이미 바다 속에 묻혀 버린 지 오래다. 자원봉사자, 각 종교 단체의 하얀 천막이 그나마 그날의 절규를 덮어주고 있다. 노란 리본이 있는 곳에서 가지고 간 음료수를 바다에 뿌리고는 잠시 묵념을 한다. 이 검은 바다 깊은 곳에 바로 며칠 전 집 떠난 내 새끼가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면 어느 부모가 제 정신이겠는가.. 늦은 아침으로 시장기는 없지만 한 잔 없이 팽목을 떠날 수가 없다. 팽목 휴게실에 들어가니 갑오징어를 권한다. 한 잔 들이키고 안주는 씹으니 톡톡 터진다. 경찰들이 짝을 지어 팽목을 순찰하고 있고 모든 음료, 식사, 커피 등등은 전부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진도까지 왕래하는 무료 셔틀버스가 있다는 것을 친절한 경찰에게 들어 알게 되었다. 약 2-30분 거리다. - 사진 찍지 마세요. 유가족분들이 싫어합니다. 이래서 유가족 모여 있는 곳의 사진은 없다. - 신원 확인소 시신 확인소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팽목에서 가장 단장의 고통이 절절한 곳이 바로 이 곳일 것이다. 팽목에서 사고 지역인 맹골수도까지 약 1시간 뱃길이라고 한다. 당시 구조되었던 학생들이 임시로 거처한 곳이 서거차도인데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진혼을 하려고 했으나 배편이 아침에 한 번뿐이라고 해서 일정에서 놓치고 말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진도 터미널에서 내리는 것을 놓치고 진도 체육관까지 가게 되었는데 티비에서 보았던 체육관에는 모두 떠나고 남은 가족만 드문드문 한산한 풍경이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어린 영혼들을 다시 한 번 위로한다. 자.. 이제 다음 일정을 잡아야 한다. 남해 지도를 펼치고 새로운 지역을 답사하려고 하는데 당숙으로부터 구미로 오라는 신호가 자꾸 나를 유혹한다. 그래서 광안리에서 하루 자고 담날 구미로 이동하기로 한다. [19일 세째 날] 인터넷으로 검색된 민락타운횟집이란 곳으로 향하니 하나의 건물에 거대한 회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그 주변에 그런 건물이 많이 모여 있다, 역시 아나고가 먹고 싶어 3마리 1만5천원. 이것을 가운데 툭툭 칼질로 힘줄을 끊어놓더니 위 양념집으로 가면 회를 떠준다고 한다. 젠장.. 우려했던 대로 양이 터무니없이 쪼그라들어버리고 한 가운데에 빠져있는 머리카락을 종업원이 얼른 집어낸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경이 그나마 나그네의 심신을 위로해준다. 광안리 주택가는 저쪽인 모양으로 주상복합으로 보이는 고층이 집단으로 모여 있다. 식사를 마치고 부산역으로 이동하여 구미행 열차에 올라탄다. 픽업 나온 당숙과 이마트에 가서 백숙 재료를 구입하여 숙소로 간다. 당숙의 요리 솜씨는 일품으로 집에서는 이런 맛이 잘 안 나온다. [20일 네 째날] 당숙이 회사에 가 있는 사이 혼자 버스를 타고 구미역 씨지브이로 가서 영화 한 편을 선택했는데 다리가 2-30개 달린 외계인이 나오는 공상 영화다. 거기서도 졸음이 어떻게나 쏟아지는지 영화 내용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당숙이 픽업 나와 이번에는 사우나에 내려주고 다시 회사로 간다. 나야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니 느긋하게 탕에 몸을 담그고 이런저런 구상을 하는데 또 잠이 쏟아져 3-4시간을 잔 듯싶다. 참 지독한 명현이다. 당이 다시 픽업 와서 스크린 골프로 가서 회사 사장과 이사가 합류하여 4명이서 게임을 즐기다보니 4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다. 저녁 11시.. 나는 24살 때 처음 골프를 접하여 열심히 배웠는데 그 당시 나의 단점은 슬라이스나 너무 많이 나오고 퍼팅이 형편없었는데 이게 스크린에서도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되어 놀라고 말았다. [21일 다섯째 날] 어제 골프에 미련이 남아서 나는 스크린으로 당숙은 회사로 간다. 화면을 보고 자세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교정을 하니 비로소 뭔가 깨달아지는 느낌이 강렬하게 온다. 다운 시 둔부로 시작하는 타이밍이 맞아떨어질 때 타선은 일직선이 되는데 이 타이밍의 간극을 몸으로 감지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여의도 37,000원. 구미 12,000원.. 좋은 동네다. 한 달 정도 연구하면 일직선 타구를 성취할 수 있는 것도 같다,. 서둘러 상경했으나 심한 정체로 인해 늦은 시간에 여의도에 도착했다. 이렇게 해서 여행은 끝났지만 구미에서 무전취식하는 바람에 20만원이 남아 집에서 하루 쉬고 굴봉산, 가평, 도고, 익산으로 연결되는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반추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자식 잃은 고통을 함부로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月華如汝面 밝은 달은 너희 얼굴과 같아 夜夜上東園 밤마다 동쪽 정원에 떠오르누나 萬事皆成恨 지난 일들 다 한스럽기만 하여라 九天欲訴寃 저 하늘에 원통함 하소연 하고프네 新添枕邊淚 머리맡에 눈물은 새로 더해만 가고 時接夢中魂 꿈속에 떠도는 넋 마주하곤 한다 猶有殘花馥 아직도 쇠잔한 꽃의 향기가 남아 凄然入酒罇 서글프게 술병으로 들어오는구나 아.. 悲劇이여.. 人間事의 悲劇이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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