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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장군... (이해일)

 
... 上略

위와 같이 짐을 챙기니 가방이 약 30키로는 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도 빠뜨릴 것도 없이 필수 품목이다.


며칠 전 큰 아이 가족과 태백에 3박 4일 다녀왔지만

어린 손주에게 기준을 두고 움직이자니 작은 모험조차 없어

다소 지루하기만 했다.

이번 여행은 이에 대한 보상 차원이다.


장마가 끝나니 휴가철.

4인 멤버 중 둘은 휴가를 떠나고 학원도 대부분 휴가를 떠나서

이 뜨거운 날 꼼짝도 못 하고 한두 명 지도하느니 나도 떠나자..

이렇게 해서 학부모에게 통지를 하고 2박3일 여행 구상을 잡는다.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가고 싶은 곳을 모아놓은 파일을 보니 남해가 눈에 뜨인다.

금산 보리암, 다랑이 마을 등에 가고 싶은데 너무 멀다.

고창에 전봉준 고택이 눈에 띠어 그쪽으로 기획하면서 준비를 한다.

교통편도 알아보고 만나가든이라는 장어집도 확보한다.

고창 직행 열차는 없어서 정읍에서 내려 고창까지 버스로 이동하고

거기서 다시 전봉준 고택으로 이동한 후 선운사 만나가든에서

저녁을 하는 일정을 잡았는데 장어가 너무 비싸 포기하고

전라도식으로 반찬이 많이 나오는 한정식으로 대체하기로 한다.


담날은 전주로 가서 매스콤에서 보았던 2만원짜리 막걸리를 시키면

안주가 무한정 나오는 집도 검색해서 확보해 놓았다.


영등포-정읍는 8월 9일 11시 28분

전주-영등포는 9월 11일 10시 54분

전주에서는 천천히 오고 싶었는데 이미 매진되어 겨우 구한 것이 아침 열차다.


자.. 이제 떠나자..

그동안 집과 학원을 차량으로 움직이면서 운동을 거의 못했다.

이번 기회에 폭염 속에서 내 인내력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

온도는 35도 안팎.

공기는 지열을 받아 훅훅 뜨겁다.


집에서 영등포역까지 걸어간다.

간만에 운동이라 다리가 불규칙하게 후들거리고

내가 원하는 착점도 정확하게 찍지 못하나 곧 안정된다.


영등포역에서 돈을 인출하고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플랫폼으로 가니 바로 기차가 도착하여 올라탄다.

예약할 때 맨 앞 좌석을 예약했는데 타고 보니 맨 뒷좌석이다.

화가 나서 승무원에게 컴플레인했는데 오히려 잘 되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맨 앞 좌석은 다리를 뻗으면 앞 벽에 다리를 걸칠 수가 있어

수시로 온몸을 길게 뻗는 기지개가 가능한 곳이다.

근데 피서철인데도 객실에 사람이 없다.

그래서 앞 좌석을 빙그르르 돌려놓고 다리를 뻗으니 대박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칸은 사람이 많은데 내가 들어간 객실만 사람이 적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할 때 예약 상황이 화면에 뜨는데

예약이 가장 덜 된 곳으로 골라서 행운이 된 것이다.

이 것도 중요한 팁이니 잘 기억해 두자.


객실이 너무 춥다.

승무원이 춥지 않냐고 해서 괜찮다고 했다.

괜히 잘못 대답하면 실내 온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두 권 가져왔다.

하나는 루게릭 병에 걸린 사람이 쓴 책이고 다른 하나는 당구책이다.

늘어진 자세로 책을 보다가 잠이 들고 다시 깨면 당구책도 보고

지루하면 다시 그 책을 보고 또 잠들고..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여행이다.

친구들과 미국/호주 동생과도 시공을 무시한 카톡도 한다.


에어컨에 길들여 있다가 정읍에 내리니 한증막이 따로 없다.

정읍은 대학 1년 겨울 방학 때 친구집에 놀러온 기억이 있다.

그 이후 간간이 지나치긴 했지만 이번처럼 맘먹고 답사하기는 처음이다.


역 앞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 들어가서 온갖 팜플렛을 하나씩 거두어서

자리를 잡고 일독하다보니 전봉준 고택이 정읍에서도 가깝다.

교통편을 물으니 121번을 타면 된다고 한다.

- 버스는 그거 하나요?

- 예 121번 하나입니다. 내려서 조금 걸어가면 됩니다.


동시에 최근에 지은 모텔도 알려 달라고 하니

냉큼 H 호텔로 가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도 알려준다.

아니.. 단골인가?


모텔로 전화를 하니 시청을 지나 동초등학교에서 하차하고

천변을 따라 걸으며 된다고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아무 모텔에서 잘 생각이다.

천변이라는 용어를 쓰는 걸 보니 나이 좀 되는 양반인가보다.


식당은 시청 앞 정촌식당 한정식을 권한다.

전화를 해보니 2인분 아니면 안 판다고 하고 6천 원짜리 백반도 있단다.


안내원이 가르쳐 준대로 한 7-8분 쯤 걸어가서

전라 병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도저히 더위를 못 참고

맥주 한 캔을 사서 가지고 간 오징어을 씹으면서 기다린다.


30분 쯤 달리더니 기사가 내리라고 가르쳐준다.

이정표를 보니 전봉준 고택 1.4키로.

왕복 3키로 정도.

그러나 고생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폭염을 즐긴다지만

체온마저 식히지 않으면 몸의 활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생수를 꺼내 가슴과 등에 흠뻑 뿌리고 얼굴에도 뿌린다.

그러나 얼굴은 어느 정도 열기가 내려가지만

뜨거운 바람을 맞이하는 몸은 기화열을 발산하지 못해 그저 훈훈하기만 하다.


전봉준 단소라는 곳이 보인다.

壇所.. 서울에 와서 사전을 찾아보니 제단이 있는 곳이라는데

무덤 앞에 제단이 있는 곳이라고 표현해야 정확한 것 아닌가..

단소 앞에 비석이 여럿 있는데

장군이 6살 때 지었다는 시와 절명하기 전에 지은 절명시가 있고

그 절명시는 여초 선생의 글씨고 음각되어 있다.

기타 다른 비석의 글씨는 수준 이하다.

관리가 무척 잘 되어 있다.

갈 길이 바쁜 몸이라 간단히 묵념을 하고 떠나려다가

가방에 있는 펫 소주가 생각나서 봉분 위에 휘둘러 골고루 뿌린다.


전봉준을 지칭할 때 선생 또는 장군 이렇게 혼용해서 부르는데

혁명대 선두에 섰던 지휘자니까 장군이 맞는 것 같다.

목이 잘려 저자거리에 효수되었으니 장군이 더 폼난다.

이런 것도 지자체에서 얼른 정리해서 통일시켰으면 좋겠다.
전장군.. 하니까 누군가 떠오르는데 선명하지 않다.

여하튼 정읍은 여러 가지로 미완의 도시다.


근데 더 가야 하는지 지나왔는지 몰라서

아까 그 관광 안내소로 전화를 하니 잠시 기다리라면서 전화해 준단다.

전화가 오더니 위쪽으로 5분만 더 가면 된다고 한다..

근데 5분을 가도 10분을 가도 15분을 가도 어떤 이정표도 안 보인다.

이 시골까지 차량이 보급되어 행인은 찾아볼 수가 없다.

허긴 이 뜨거운 대낮에 누가 나오겠는가..


고택은 포기하고 담을 기약하기로 했다.

안내원과 통화해서 확인되더라도 걸어갈 기력은 이미 없다.

걸어도 걸어도 아까의 단소가 안 나타난다.

단소에서 30분 정도 걸은 모양이다.

너무 지쳐 송림 사이 바닥에 앉았는데 바람이 무척 경쾌하다.

걸을 때는 바람을 못 느꼈는데 송림 사이에서는 바람이 왜 잘 부는지 모르겠다.

15분 정도 쉬고 다시 한참을 걸으니 아까의 단소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다시 1.4키로를 걸어야 하니 죽을 지경이다.

다시 물을 머리끝에 뿌려 온몸을 적신다.

근데 옆으로 122번 버스가 부웅하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이거 모야?

121번 하나라더니..


아까 버스 내린 곳에서 할머니를 만나 버스가 언제 있냐고 물으니

- 지금 몇 시냐?

- 6시요.

- 15분에 와..

뭐.. 90은 되어 보이니 할 말은 없다.


버스 대기소라고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민가 주택에는 처마도 없어

따가운 햇살을 고스란히 받는다.

관광객이 나름 돈 뿌리고 가는데 지자체는 너무 오만한 것 같다.


지나가는 화물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아무도 안 태워준다.

마침내 버스가 와서 올라타니 시원한 에어콘 공기에 폐부를 날카롭게 찌른다.

자리 잡고 앉으면서

- 에이, 고택 구경도 못 하고 가네..

그랬더니 기사가

- 고택 바로 저기 보이잖아요?

- 엥? 단소까지 갔다가 20분 정도 더 올라갔지만 안 보이던데요.

- 올라가면 안 되고 길 건너편으로 조금 들어가면 초가집 고택이 있어요.

- 관광 안내소에서는 올라가라고 그러던데요..


비로소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밝혀졌다.

단소 건너편에 고택이 있는 것인데 방향을 지시하는

어떤 이정표도 없었던 것이 문제..

띠발놈들..

나라의 녹을 처먹고 나무 조각 하나 매달지도 못해?

큰맘 먹고 정읍을 찾은 나그네를 이 따위로 골탕을 먹여?

그리고 122번을 타면 고택 앞에 딱 내려준다는 것이다.

이런 젠장..

광관 안내소에 근무하려면 실제 관광 동선을 스스로 경험하도록 한 후

근무 배정을 해야지 대학을 갓 졸업한 계집을 그냥 앉혀 놓기만 하니

제 역학을 제대로 못하는 거 아닌가.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쐬면서 시간이 남아돌아 카톡이나 하면서

엉뚱한 자료를 제공하니 참으로 게을러빠지고 한심한 탁상 행정의 표본이다.

지금 전국이 전력 비상으로 대통령이 솔선하여 냉방기기를 자제하고 있는데

할 일도 없는 계집 둘이 에어컨 빵빵하게 가동하고 호강하고 있으니

이런 게 세금을 축내는 짓이지..

내가 내국인이었으니 망정이니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이었다면

국가 이미지는 어쩔 것인가..


다리에는 마른 소금기가 가득 엉겨 붙어 있다.

운전기사가 친절하게 인근 관광 안내를 해주는데

차를 세우면서까지 관광지까지 걸리는 시간과 방향, 이용할 버스를 설명한다.

난 이미 마음은 전주로 향해 있는데

기사의 친절을 거부할 수가 없어 말을 끊을 수가 없다.

한참을 설명하더니 지 핸드폰을 나한테 주면서

이따 10시에 근무가 끝나면 지가 한 잔 살 테니 전번을 찍으란다.

또 뭔가..

저녁을 같이 할 의향을 먼저 물은 후 핸폰을 건네는 것이 순서 아닌가.

과공은 부담스럽다.

둘이 만나 무슨 대화를 할 게 있는가.

그냥 엉터리 전번을 찍으려다가 나중에 정중히 거절하기로 하고

번호를 찍어 건네주었더니 그 자리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음식점 소개해준다고 해서

한정식을 먹고 싶었는데 1인분은 안 판다고 해서
백반이나 먹으려고 한다고 했더니

자기가 잘 가는 정금 식당을 소개한다.

거기 가면 6천 원짜리 먹을 수 있다고 하면서 내려준다.

이따 통화하기로 하고 작별한다.


시청이 인근이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고 정금식당으로 가니 백반을 1인분 안 판단다.

띠발 새끼들..

너무 화가 나서 손님들 들으라고

- 그럼 혼자 다니는 나그네는 굶어 죽으라는 거냐? 정읍 인심이 왜 이리 더러워?


일단 나는 큰소리로 터트려야 진정이 된다.

안내소에서 알려준 정촌식당으로 전화해보니 백반도 1인분은 안 판단다.

참 드러운 도시네..


세무서가 보이고 그 옆에 있는 백반집 아무 곳이나 들어가니

다행히 1인분은 판단다.

자리를 잡고 앉아 술도 한 병 시켜 더위에 찌든 몸에 알콜을 부어넣는다.

정갈한 반찬에 조기와 돼지고기 볶음이 나왔는데

순식간에 한 공기를 비우고 한 공기 추가와 조기와 고기도 부탁하면서

식대를 더 내겠다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한 잔씩 곁들이면서 맛나게 먹으면서

손님 떠난 옆 테이블을 치우는 양을 무심코 보는데

남은 음식은 전부 버리는 게 아닌가.

서울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까 그 기사에게 문자를 보낸다.

- 소개해 주신 곳과 정촌에서는 백반도 1인분은 안 판다고 하여

  가까운 아무 곳에서 저녁을 해결하였습니다.

  낮의 강행군으로 더위를 먹어 심신이 너무 지쳤습니다.

  전주에 있는 친구가 오라고 해서 아침 일찍 전주로 가려 합니다.

  다음에 차량으로 다시 방문할 때 한 잔 합시다.


이렇게 보냈더니 아쉬운 답변이 온다.

- 혹 인연이 되면 뵙겠습니다. 전주행 막차는 10까지 있습니다.


여행이란 것도 약간의 묘한 여운을 남겨야 다음에 또 올 마음이 동하는 것이다.

안내 지도를 보니 정읍에 무척 많은 유적이 있어

반드시 차량으로 한 번 올 만한 곳이다.

맛있는 음식을 남겼다 먹듯이, 재미있는 부분에서 책을 덮듯이

이 것도 내 여행 스타일이다.


계산을 하는데 한사코 추가 비용을 안 받는다.

좁은 구석에 아직도 인심은 살아 있으니 내가 흐뭇하다.

버스를 타고 다시 에이치모텔을 찾기 귀찮아서

모텔 많이 있는 곳을 물으니 뒤쪽으로 가면 5개 정도 있다고 한다.

찾다 찾다 보니 또 20여분을 걷게 되어 다리가 후들거린다.

근데 저 멀리 에이치 모텔이 보이는 게 아닌가.

계획이 너무 치밀해도 오히려 손해다.

현금으로 낼 테니 3만5천원에 하자고 현금을 내니 주인이 카드 달란다.

내가 무안해지네..


새로 지은 모텔은 완벽해서 흠잡을 곳이 없다.

샤워 줄기가 약한 것이 다소 아쉽다.

욕조도 없으면서 물살이라도 세게 해주면 좋겠다.

수도가 약한 곳은 대개 주인이 무척 인색하다.

머리까지 시원하게 감고 땀에 젖은 옷도 에어컨 바람에 말려 입으니

쾌적한 기분이 온몸을 감싼다.


주인에게 인근 당구장을 물어 찾아가서

90분 동안 에어컨 바람 속에서 신선 노름을 하니

당구에 취미 붙인 것은 노후에 참 좋은 현상이다.


모텔에 돌아와 바로 잠에 쓰러져 자다가 잠을 깨니 새벽 3시쯤이다.

책을 보다가 티브이를 보다가 다시 깊은 잠.

눈을 떠보니 9시 15분..

나른한 자유를 느끼면 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11시 15분.

원 없이 잔셈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어제 저녁 9시 정읍 온도가 무려 34도였다고

내 스맛폰에 찍혀있다.

24도가 아니라 34도!!

보통 저녁 기온이 25도면 열대야라고 하고

지금 금성의 표면 온도는 500도니 지구에 태어난 걸 감사해야 한다.

폭염을 못 느끼고 푹 잤으니 4만원의 값어치를 충분히 한 셈이다.


오늘은 임실 또는 김제를 들어 전주에 가서 막걸리 마시면 일정이 끝난다.

근데 막걸리집에서 1인분은 안 된다고 해서

손님이 없는 4-5시에 가겠다고 양해를 구했으니

술자리가 끝나면 겨우 6시 안팎..

밤에 할 게 없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일 아침 10에 출발하려고 전주에서 하루 자느니

오늘 저녁에 귀경하는 것이 실리적이라고 판단되어 일정을 조정하기로 했다.


정읍터미널까지 또 걸어간다. 잘 걷는다.

해는 중천에서 헬륨의 핵분열로 발생한 열기를 지구로 쏟아 붓고 있다.

이건 또 뭔가..

임실 또는 김제로 가려면 전주까지 가서 갈아타란다.

일단 전주로 가자..


시원한 버스 안에서 책 두 권 삼매경에 빠진다.

정읍에서 얻은 안내 책자를 보니 전동성당, 한옥마을, 경기전이

유명하다고 나와 있다.


전주 터미널..

관광안내소가 있어 전주역 가는 길을 물으니

72번 또는 79번 버스를 타라고 일러준다.

전주역에서는 105번을 타면 전동성당에 가는데

한 곳에 한옥마을, 경기전이 같이 몰려있다고 한다.

거기서 다시 105번을 타면 삼청동 막걸리 골목으로 간다고 한다.

여기서도 안내원은 안에서 빵빵하게 시원하고
나는 밖에서 햇살을 받으면 상담을 하니

전주라는 곳은 전력도 남아돌아가고 여행객을 개밥 취급하는 인심인 모양이다.

이 더운 날 안으로 모셔주면 좀 감사한가.

참 서비스 마인드 개판이다.

띠발놈들..


근데 내가 코레일 회원인데 굳이 전주역까지 갈 필요 없다.

철도청으로 전화해서 내일 표는 취소하고

오늘 저녁 표를 스맛폰으로 예매해보기로 했다.

전화를 하니 저녁 6시 55분 기차가 있다고 한다.

스맛폰으로 예약하는 과정에서 맨 마지막 주민번호에서 에러가 난다.

약 30분 동안 길거리에서 씨름하느라 진이 빠지고 말았다.

철도청에 전화를 하니 카드가 본인 것 맞냐고 한다..

빙신 같은 놈..

내가 내 카드도 모를까..


그 시간 표 놓치면 끝장이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전주역에서 카드를 들이밀고 아주 간단히 결재가 되었다.

전에도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철도청 예약 시스템에서 발생한 오류임에도 놈들은 고객에게 절대 사과 안한다.

빙신 같은 새끼..

뭐.. 철밥통이니까 눈에 뵈는 게 없을 게다.


이번에는 자천이 장모상이 문자에 뜬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 일찍 올라가려던 차에 잘되었다고 문자답을 하니

발인 장소가 광주라고 오지 말란다.

그래서 그냥 내 계획대로 하기로 했다.


전동성당.. 고색창연하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호주에서 보았던 성마리아 성당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지만

당시 건축 기술로는 대단한 작품이다.

구석구석이 건축 예술이다.

벽돌도 얼마나 잘 구웠는지 요새 서울에 지은 벽돌집과는

품격에서 벌써 다르다.


근데 또 강암 서예관이 있는 게 아닌가.

서예관 가는 길에 원불교가 보인다.

아.. 옛날 우관 서실이 원불교 인근에 있었지.

국가 부도 때 이후 발길을 끊었으니 찾아뵙기도 송구스럽다.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실력으로 보답하기로 하다.


다시 15분 한참을 걸어 서예관에 도착한다.

전시물은 실망 그 자체..

선생의 작품 겨우 몇 점을 걸어놓고 기념관이라니..

강필에 매료되었으나 근대 중국 작가의 화려한 운필에는 대적하기 힘들다.

역대 대통령의 글씨도 진열되어 있는데 핸펀에 저장할 가치조차 없다.


다시 나와 경기전으로 들어가 사진 한 방 찍고 나온다.

이렇게 구경하다보니 막걸리 집 약속 시간이 지나고 있다.

105번을 타려고 했는데 한 번 더 확인하기 위에 옆의 아줌마에게 확인했더니

105번은 빙 돌아가니 119번을 타면 바로 간단다.

승강 대기소에 붙어 있는 노선표를 보니 과연 그러하다.

앞으로 교통 정보는 지역 주민에게 신세지는 것이 정확하다.
여튼 관광 안내원의 근무 태도는 70년대를 방불케 한다.


삼익 수영장 앞에 내리니 일련의 대학생들도 우루루 내린다.

그들에게 막걸리 골목을 물으니 그들도 찾아가는 모양으로

핸펀을 보면서 방향을 지적해 준다.

행인에게 물어 찾아간 용진집..

어제 전화를 한, 서울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자 흔쾌히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4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라 손님은 나 혼자다.


막걸리 한 주전자가 2만원.

안주는 무한정 나온다고 티브이에서 보았다.

혼자 온 것이 미안해서 모든 안주는 다 먹지도 못하니 1/5씩 달라고 했다.


막걸리 두 종류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나는 맑은 막걸리를 달라고 했다.

차가운 막걸리 한 사발을 쉬지도 않고 들이키니

오장육부가 차가운 기운에 경련한다.

계곡물처럼 맛이 무척 신선하다.


5분도 안 되어 젊은 여자 3명이 들어오더니 연달아 손님이 들어차서

순식간에 홀이 전부 차버렸다.

이렇게 되면 주인에게 참 염치없고 미안하다.

근데 이상하게 처음에 안주가 10가지 정도 나오더니

그 이후는 옆 테이블에게만 가고 나에게는 더 나오지 않는다.

아하..

쥔놈은 2만원에 해당되는 안주만 내놓는 것이다.

안주를 더 먹고 싶으면 막걸리 한 주전자를 추가해야 한다.

씁쓸하다.

오늘 첫 번째 식사라서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배가 불러서 결국 막걸리 한 잔을 남기로 일어선다.


거리는 아직도 열폭 중이다.

전주역 가는 119번에 올라타고 기사에게 몇 분 정도 걸리냐고 물으니

40분 걸린단다.

지금 시간을 보니 6시 10분.

기차 시간은 6시 55분..

초읽기 아닌가?

기사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고 시간 내에 어려우면

가까운 택시에 내려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속도를 낸다.


누리호라는 게 차량도 몇 개 안되고 에어컨은 미약하고

좌간 폭도 좁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기차 하면 무궁화가 최고다.


영등포에 도착하니 11시..

열대야 속을 집까지 또 걸어간다.

온 몸이 축축하고 끈끈해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차가운 샤워를 연신 떠올리기 때문이다.


원래는 내일 도착이었는데 너무 늦은 시간에 귀가하니 집사람이 놀라는 눈치다.

차가운 물냉면 하나 먹고 깊은 잠에 빠진다.

물을 충분히 적신 물수건을 가슴과 배에 연달아 올려놓으면
체온이 급격히 조정된다.

내가 아는 열대야 극복법이다.


그토록 많이 걷고 그토록 땀을 흘렸는데도 더위 먹은 증상이 없던 것이 신기하다.

서울에 와서 신문을 보니 체온 조절이 안 되어

40도까지 올라가는 것이 열사병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간에도 손상이 와서 황달에 걸린다고 한다.

나는 아직 견딜 만한가보다.


정읍은 75년도 겨울 방학 때,

전주는 79년도 겨울에 왔던 추억을 되살린 만족도 높은 여행이었다.

정읍에는 내 친구 재용이가, 전주에는 내 친구 봉길이가 살았던 곳이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두 놈은 전라도 촌티를 아직 벗지 못하고 있다.

말투를 들으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재작년 남도 기행 때는 넉넉한 인심에 감동했는데

이번에는 왜 그런가 했더니 도심으로만 돌아서 그렇다.

도심으로 치면 오히려 서울이 나그네에게 훨씬 젠틀하고 쿨한 곳이다.

혼자서 밥도 못 먹는 도시라니..

인심은 개에 줘버린 모양이다.


이 기행문을 정읍과 전주시청, 청와대 사이트에 올릴 생각이다.

띠발놈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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