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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종의 통곡" (최영철)

조선의 말기 근대화의 격변기 수많은 사건들을 감내해야 했던 조선 제 26대 왕 고종 황제.

그는 아버지 흥선 대원군과 부인 명성황후 사이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으며, 서구 열강과 러시아, 일본,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나라를 지키려 무진 애를 쓰던 분이었습니다.
결국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이어 본인도 독살로 추정되는 죽음으로 한 많은 삶을 마감하지요...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된 이유가 헤이그 밀사 사건이었으며, 고종의 의문의 죽음은 결국 삼일운동의 기폭제가 됩니다.

고종이 창설한 조선 최초의 양악대에 대해 살펴봅니다.
헤이그 밀사로 자결했던 민영환의 신문물 탐방에서 시작된 황실 군악대는 망국으로 향하는 백성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으나, 결국 일제에 의해 군대 해산과 더불어 양악대도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 종로 도서관 자리의 양악대 출신들은 당시 명문 사학 등에 음악 교사로 진출해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게 되었지요... 

당시 일제에 의해 치욕의 국치를 당하던 고종 황제는 양악대의 해산을 애통 속에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나라가 망국으로 향하는데 무기력함의 쓰라림 속에서 이 조선의 양악대가 쓰던 악기들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겁니다.
“조선의 혼을 악기를 통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이어가야겠다.”
일제에 의해 폐기처분 되었을 악기들에 대해 먼저 손을 쓰십니다.

지금의 현대건설 자리에 위치했던 원서동 휘문의숙에 양악대 악기들을 하사하시어, 최초의 학교 밴드부가 창설됩니다.
결국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었으나, 조선 양악의 명맥은 휘문의숙 밴드부의 악기를 통해 이어집니다.
그 휘문의숙의 후신 휘문고보, 휘문 고등학교 밴드부 출신들이 나라를 대표하던 국립교향악단에 입단합니다.
그리고 그 국립교향악단은 KBS교향악단으로 이어지지요...
그 KBS교향악단의 단원들을 인도하던 휘문고 밴드부 출신이 있었어요... 

조선의 법통을 잇던 양악의 역사와 나라를 대표하던 음악이, 낙하산 꼭두각시 지휘자와 무지한 운영진에 의해 거리로 내몰리고, 그들이 서야할 연주장을 떠나 지하철 역사에서 일반 서민들을 상대로 연주를 합니다.
물론 화려한 연미복, 드레스 대신 허름한 점퍼가 그들의 복장이었습니다.
그들은 삼일운동 당시 애국지사 33인이 모여 독립 염원의 종을 치던 보신각이 있는 종각역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가던 서민들의 박수를 받습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악단의 음변 사태는 국가의 위태로움을 예감케 합니다. 

지하에 계신 고종의 통곡은 지금도 친일 잔재 세력의 강압에 의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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