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일
이번 여행은 상당히 복잡한 경로가 되었다.
도중에 변수가 발생한 것이 여행에 매력을 더해 주었고
예상 못한 곳을 찾아간 것이 대박이 되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원래 계획은,
영등포-여수-고흥-벌교-장흥-강진-영암-영산포-나주-화순-구례-곡성-
담양-순창-임실-익산-영등포.. 이렇게 계획이었다.
일찍 출발하렸는데 호주 일을 처리하다보니 2시 30분에 겨우 집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기차 시간은 3시 10분발이다.
여의도에서 신길로 넘어가는 샛강 다리가 금년에 가설되면서 영등포역이 지척이 되어
굳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아도 도보 10분 거리가 된다.
흐린 날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 환경이다.
첫 기차의 출발은 역시 시원한 캔맥주가 신호탄이 된다.
집에서 가져온 멸치와 땅콩을 꺼내 한 모금씩 아껴가면서 마신다.
두 캔이면 배가 부르기 때문에 한 캔의 양이 가장 알맞다.
4시간 40분 정도 걸려 여수에 도착한다.
여태껏 수많은 여행 중에 여수가 초행길이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
흔히 생각했던 역세권 상권은 하나도 없이 칠흑같이 깜깜하다.
일단 시내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마침 버스가 온다.
기사에게 여수에서 가장 번화한 곳, 모텔이 많은 곳에서 내려줄 것을 부탁한다.
시간은 9시가 다 되어 식당들이 문을 닫고 있다.
마침 한 군데에서 선심을 베풀어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서대회..
서울에서도 간간이 보았던 메뉴지만 처음 접하는 음식이다.
간단한 식사를 생각했는데 주인이 엄청난 양의 회무침을 내놓아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런 놀라움은 전라도 곳곳을 여행하면서 반복된다.
밥도 한 공기 청해 뚝딱 해치운다.
주인에게 물으니 바로 앞 모텔이 깨끗하다고 추천한다.
조금 낡았지만 청결이 잘 되어 있어 숙면하여 감사했다.
* 제 2일
아침에 거리로 나오니 바로 옆이 바다이고 항구다.
모텔 주인에게 묻는다.
- 여수에서 볼만한 곳 두 곳만 소개 바랍니다.
- 오동도와 진남관을 보세요.
진남관으로 가기 전에 피씨방에 들러 그 동안 밀린 호주 관련 메일을
정리하고 답변하느라 한 시간이 후딱 흘러간다. 1200원.
진남관은 이순신 장군의 작전 사령실로 사용하던 곳으로 규모가 상당히 크다.
언덕배기에 있는 사령부에 올라서니 여수 앞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널리 시야가 펼쳐지는 곳에서 수백 년 전의 치열했던 수전을 잠시 상상해 본다.
鎭南館..
남쪽을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케 한다는 멋진 이름이다.
유물관에는 장군의 참도(斬刀)가 있는데 검에는 이렇게 새겨있다.
- 명령에 불복하여 후퇴하는 자는 참수한다.
또 이런 글도 있다.
-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 삼척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같이 떤다.
한 번 휩쓸어 소탕하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
장군의 기세가 이 정도이니 왜놈이 몰살된 것은 예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왜놈의 보급로인 남해를 통제하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는 일본어를 쓰면서 천황의 지배를 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장군은 죽어서도 광화문 한 가운데서 불침번을 서 계신다.
참 든든하다.
잠시 묵념을 하고 유물관을 나선다.
오동도를 가는 길에 버스가 여수역을 지나는데 엄청난 대규모의 공사가 진행 중이다.
여수 엑스포..
아파트가 들어서고 체육관이 들어서고 하나의 거대한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그래서 어제 불빛도 없이 깜깜했군..
부산의 광안리처럼 개벽이 일어날 모양이다.
麗水..
이름에 걸맞게 물이 깨끗하고 투명하다.
제방을 따라 운행하는 열차 식 차량이 있어 그 것을 이용하여 들어갔다가
별로 볼 것이 없어 차에서 내리지 않고 다시 타고 나왔다.
여수 터미널에서 고흥 행 버스를 탄다.
고흥은 호주에 있는 사촌 동생의 처의 고향이다.
高興..
나로호가 발사된 곳이니 지명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마침 고향이 순천이라는 친구가 고흥 아래 있는 거금도를 추천한다.
정처 없이 가는 발길이니 목적지가 생겨서 좋다.
고흥에서 녹동으로 가니 상권이 무척 활발하다.
엄청나게 많은 건어물 점포가 수백 개 진을 치고 있으니
대한민국에 건어물은 이 곳에서 장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배를 타고 옆에 소록도를 끼고 거금도로 향한다.
선착장에서 내리니 달랑 구멍가게 두 개뿐이다.
구멍가게 사내에게 모텔이 있는 마을 정보를 얻는다.
섬을 일주하는 도로는 깔려있는데 버스는 섬의 반만 운행한다고 하면서
해수욕장까지는 자가용으로 이동해야 한다니 일찌감치 포기한다.
금산으로 가면 식당과 모텔이 있다고 한다.
- 이 작은 섬에 아스팔트가 잘 깔려있네요. 돈이 많은가 봅니다.
- 그래서 이름이 거금도, 금산입니다.
巨金島, 金山..
이름 하나만으로 부자 동네인 모양이다.
버스로 5분 거리인데 다음 배차까지 1시간이 남아 걸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해는 떨어지려고 하고 해 떨어지는 곳이 쉬는 곳이다.
5분 거리를 만만하게 보았다가 한 시간 동안 죽도록 걸어 체력을 소진하고 말았다.
사람도 차도 만날 수가 없어 그저 사막 걷듯이 무작정 걷는다.
지루한 시간을 아까 그 친구와의 문자 소통과 엠피 쓰리가 구제해 준다.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면 체력 한계점에 도달한다.
점점 어두워 오고 다리는 아프고..
길가에 인도턱에 주저앉아 고민하는데 마침 저쪽에 화물차에서 사람이 내린다.
후다닥 뛰어가 금산 가는 길을 물으니 좌측으로 10분 거리에 있단다.
그냥 지나쳤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면소재지인데 아주 작고 아담한 마을이다.
경제 활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 고요하고 적막한 마을..
금산 성당이 보여 대성당에 들어가 주기도문 두 번 읊조린다.
수녀님 두 분이 정갈한 자세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나는 신앙심이 그리 두터운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예측 못할 액을 피하도록 도와주실 것 같다.
공짜 보험인 셈이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데 수녀님이 따라 나온다.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으로 이런저런 말을 시키는데
응답을 하기에 내 심신이 너무 지쳤다.
구멍가게에 들어가 시원한 병맥주로 목을 축인다.
내 옆에는 마을 주민 4명이서 소맥을 만들어 마시고 있다.
혼자인 내가 안쓰러웠는지 일행 중 젊은 여자가 오징어 찢은 조각 몇 개를 건네준다.
나도 미안해서 맥주 한 병을 답례로 건넨다.
내일의 일정을 구상하면서 늙은 주인 여자에게 자문을 구하지만
잘 모르는 모양으로 답변이 시원치 않다.
거북장이던가..
작은 모텔에 찾아 들어갔는데 한 동안 고객이 뜸했는지
방구석 거미줄이 내 머리에 엉키고 말았다.
차가운 샤워를 하고 거금도를 소개해준 친구에게 감사 문자를 보낸다.
저녁은 김치찌개로 간단히 하려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 첫 번째 식사 아닌가.
두 공기를 해치우고서야 비로소 배가 든든해진다.
새벽에 잠이 깨어 창 밖을 보니 저 멀리 편의점 불빛이 아니었다면
핵폭탄을 맞은 죽은 동네처럼 보일 뻔 했다.
거리에는 인적이 전혀 없으니 온 세상에 나 혼자 뿐인 착각이 들어
오싹하고 무서운 기분이 든다.
* 제 3일
모텔을 나서 터미널로 걸어가니 마침 버스가 막 출발하려고 한다.
참 운도 좋다.
이걸 놓치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어제 걸어왔던 그 길은 정확히 5분 만에 도착한다.
금진항을 뒤로 하고 배를 타고 녹동신항으로 귀환..
녹동항에는 갯장어 간판이 내 시야를 현혹시키고 있다.
마침 녹동 성당이 있어 대성당에 들어간다.
두 번째 보험이다.
바다까지 와서 회 한 점 못 먹어서야 되겠는가.
근데 가는 곳마다 일인분은 안 판다고 문전축객이다.
마침 어시장으로 찾아 들어가니 갯장어 무려 3마리가 1만원이다.
노량진에서 1만5천 원 하는 크기의 우럭은 7천원..
이걸 회로 썰어 2층으로 가면 양념장 파는 곳이 있다.
뜨거운 태양에 익어가는 바다를 창가에 끼고
회 한 점, 소주 한 잔 하면서 남국의 정취에 젖어든다.
밥을 못 먹을 정도로 회가 너무 많았는데
장어가 정말 원기 회복이 되는지 그날은 내내 지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바다마다 어김없이 어시장이 있게 마련인데
이런 곳을 이용하면 일반 대중식당에서 4-5만 원짜리를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까 대중식당은 관광객용이고 어시장은 지역 주민이 애용하는 저가 식당이다.
이 것도 여행하면서 배운 팁이다.
자, 이제 강진으로 가자.
마포에 있는 대규모 회집인 강진 수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는 길이다.
중간에 장흥에서 내려 마을 구경 좀 하려다가 추가 요금을 내고 강진으로 직행한다.
영랑 생가와 다산 초당이 있는 양반 도읍이다.
생소한 도시에 내리니 다시 바다가 그리워진다.
터미널 주민에게 가장 가까운 바다가 있느냐고 물으니 마량으로 가라고 한다.
20분 거리의 마량에 도착하니 난 다시 행운아임이 확인되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어촌이다.
현대식으로 개발을 해놓아 이태리의 작은 해안마을에 온 듯이 외국 분위기가 있다.
이태리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관광객도 거의 없고 조용하고 친절하고 혼자 지내기 정말 좋은 곳이다.
사람이 너무 없어 주민에게 물으니 주말이 되어야 복작거린단다.
지금 한창 휴가 시즌인데 평일이래도 너무 사람이 없다.
아직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소개되지 않은 모양이다.
모텔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저녁거리를 찾아 밖으로 나온다.
어시장이 있는데 이미 마감되어 문을 닫았다.
작은 회집을 지나는데 주방장이 가게 앞에서 전어를 썰고 있는 게 보인다.
벌써 전어?
1만원 어치만 팔 수 있겠냐고 물으니 쉽게 수락한다.
깔끔한 내부에 25명 대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이 사진 한 장이 가화만사성을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장과 일하는 분들 가족관계가 되는지 모두 인상이 좋다.
넉넉하게 나온 전어회를 보니 주인의 인심을 짐작할 수 있다.
야채도 눈치 없이 넉넉하게 먹고 밥 한 공기를 청해 전라도 김치와 함께 맛있게 비운다.
모텔도 잘 이용하면 돈이 절약되는 팁이 있다.
모텔에는 일회용 커피 2개, 생수 2병, 음료수 2병이 있게 마련인데
지금까지 작은 가방에 짐이 되는 것이 싫어서 버리고 왔다.
생수물을 데워 커피 두개를 타면 굳이 다방 들어가 비싼 커피를 마실 필요가 없고
소주 펫트병에 넣으면 부피를 줄일 수 있어서 좋다.
음료수는 버스 탈 때마다 기사에게 권하면 친절한 지역 정보를 얻어들을 수가 있다.
커피, 생수, 음료수 모두 이렇게 처리하니 모텔 본전 뽑은 기분이 썩 좋은데
계속 쌓이는 콘돔의 처리가 문제다.
* 제 4일
다시 강진으로 나와 영암을 거쳐 나주로 가기로 한다.
강진 터미널에서 알아보니 영랑 생가가 바로 도보 5분 거리다.
영랑 김윤식.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주인공이다.
춘천에 있는 김유정과 잠시 혼동되었다.
영랑은 본명보다 호를, 김유정은 호보다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이상하다.
두 사람 모두 휘문고등학교 대선배이자 국어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려 있다.
영랑 문학관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생가로 올라가니
저택이라고 할 정도로 마당이 널찍하니 동네 유지(有志)였던 모양이다.
춘천의 김유정 생가도 재벌 집처럼 으리으리해서 놀란 적이 있었는데
과거 문학은 가난한 사람들이 하던 직업이라는 편견을 지울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다산이 집필했던 집이 나온다.
마당에서 강진 시내를 내려보다가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풍광이 기가 막힌 곳이다.
산턱 바로 밑에 울창한 수풀 사이에 둥지를 틀고 있는 한옥과 그 앞마당,
그리고 내려다보이는 저 멀리 바다 실줄기..
그 동네 전부가 이런 여건을 갖추고 있는 멋진 곳이다.
정말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글씨 쓰고 그림 그리면서..
김밥 한 줄 1,500원짜리 하나로 요기하다가 맛이 너무 좋아 한 줄 더 먹고는
조금 뒤 후회를 하게 된다.
영암에는 첫 인상은 미국 엘에이 분위기이다.
넓은 길, 푸르른 녹지 잔디밭, 얕은 단층집들, 드문드문 차와 여유 있는 주민들...
마을 전체가 전원도시다.
이 분위기는 나주까지 이어져서 바깥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주는 역사적 유물이 많은 곳이다.
내 친구 병오가 바로 나산 태생이다.
마침 가까운 곳에 동사무소가 있어 30분 동안 호주 일을 처리한다.
아.. 피씨방에서 돈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면 잠시 컴퓨터를 빌려도 욕먹을 일이 없겠다.
복지관, 군청, 면사무소, 우체국, 경찰서가 모두 피씨방 대용으로 가능하다.
동사무소 직원에게 가볼만한 곳 추천을 부탁했더니
인터넷으로 지도를 프린터 해준다.
지도에 나타나 있는 나주성당을 가장 먼저 방문해보니 [성지]다.
성지일 뿐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은 또 처음 본다.
별천지, 무릉도원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이다.
아.. 너무 아름답다. 너무 황홀하다.
역시 대성당에서 간단히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가족의 안녕을 간절히 빈다.
세 번째 보험 가입이다.
나주목문학관, 금성관, 남고문 등을 둘러보는데
갈증이 나서 아무 식당에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생수병에 물을 담는다.
근데 우공이산.. 멋진 작품이 내 동공을 뚫고 들어온다.
80세가 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해탈의 글씨가 찬연하게 빛을 뿜고 있지 않은가.
얼른 핸드폰에 저장한다.
금성관 또한 기가 막힌 건축물에 압도당한다.
초서체의 현판 글씨가 너무 명필이라 이 것도 저장한다.
금성관 앞에는 곳곳이 나주곰탕 일색이다.
아까 김밥을 두 개나 먹었으니 모처럼 토속 음식을 접할 기회를 놓치고 많다.
후회스럽다..
다음 목적지가 함평, 영광인데 직통은 없고 광주에서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광주에서 함평으로 다시 거꾸로 내려온다는 것은 돈과 시간의 낭비라서
영광을 거쳐 고창으로 방향을 틀었다.
광주, 역시 대도시..
영광에서 하차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영광 무척 거대한 도시다.
고창은 수박으로 유명한데 수박 구경은 못 하고 작은 마을일뿐이다.
고창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가 어디냐고 물으니
줄포로 가서 곰소항으로 가라고 한다.
곰소항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는데..
삭막한 도시 모텔보다는 아무래도 바닷가가 좋겠다는 내 결정이다.
줄포.. 작은 마을이다.
거기서 곰소항으로 들어가니 온통 젓갈 상권이다.
건어물은 고흥(녹동)을, 굴비는 영광을 먹여 살리더니 젓갈은 곰소항을 먹여 살린다.
지역 특산물 하나만 잘 키우면 지역 경제가 이렇게 활발하다.
곰소항 버스 판매소 시간표를 보니 10분 거리에 내소사가 있다.
내일 찾아가기로 하고 모텔을 찾아 들어간다.
모텔 1층에서는 주인이 젓갈 가게도 겸하고 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민박을 알아보았더니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고 2만원에 준단다.
샤워를 안 하면 안 되는 체질이라 어쩔 수없이 모텔을 택한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바다 쪽으로 가니 아담한 수상 가옥들이 무척 정겹다.
남당항에서도 이런 분위기에서 젖었던 기억이 난다.
전어는 어제 먹었으니 맛조개 1만원 어치로 마지막 저녁의 회포를 푼다.
상권이 이렇게 활발한데 관광객이 없으니 모든 가게가 텅 비어있다.
그래서 1만원이라도 내게 파는지 모르겠다.
싱싱한 조개로 한 잔 하다가 밥 한 공기를 주문한다.
전라도 김치는 전부 내 입에 잘 맞아 밥 한 공기 간단히 뚝딱 한다.
따로 매운탕을 시키면 많은 양에 과식이 되어
그저 간단히 밥 한 공기로 때우는 것이 여행 습관이다.
근데 주인이 반찬으로 하라고 전어 3마리를 구워 서비스 하는 것이 아닌가.
감사한 마음에 후딱 해치우니 이번에는 5마리를 더 올려준다.
아.. 이런 인심이라니..
* 제 5일
아침에 물방울이 내 허벅지로 떨어져 잠이 깨었다.
창을 통해 빗줄기가 들어온 것이다.
창 밖으로 바라본 곰소항..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을 본 적이 없다.
가까이에 바다가 보이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은 비에 촉촉이 젖어있다.
나른한 아침.
어떤 간섭도 없는 무한한 자유에 나는 전율한다.
여장을 챙겨 모텔을 나온다.
피씨방을 이용하려했더니 부안까지 나가야 한단다.
요령이 생겨 해양 경찰서를 찾아가니 컴퓨터로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다.
서울 근무 경찰이라면 24시간 중노동인데 시골 경찰은 이렇게 여유가 있다.
우체국에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인터넷으로 호주 업무를 처리한다.
마침 인출기도 있어 3만원을 뽑는다.
내소사로 가는 길은 마량과 더불어 이 번 여행의 두 번째 대박으로 기록한다.
내가 시인이었다면 멋진 시 한두 편이 탄생했을 그런 경치가
버스 창을 통해 사방에서 펼쳐진다.
표현을 못하는 내 마음이 답답하고 가슴이 먹먹하다.
내소사.. 來蘇寺라고 쓴다.
풀이하면 되살아온다는 뜻이면서 부활의 의미가 있다.
불교에서 부활??
예수를 한자로 야소(耶蘇)라고 쓰는데 蘇는 되살아날소.. 라는 뜻이니
이름에 부합되지만 불교에서는 부활보다는 환생의 종교 아닌가.
절까지 도보 7분이라니 걸어가기로 했다.
아침을 안 먹은 탓에 도토리묵과 동동주만 봐도 침이 꿀꺽 넘어간다.
도토리묵 1만원, 동동주 5천원..
친절한 주인이 혼자인 나를 위해 도토리묵을 5천원 어치 준비해 주겠단다.
여느 절과 다름없이 평범한 절인데 비에 젖은 절의 분위기는 또한 색다르다.
입구의 현판은 내 스승이셨던 일중 선생의 명필이 걸려있다.
楞伽山來蘇寺(능가산내소사)..
올라가는 길의 정돈이 잘 되어 있고 경사도 완만하니 산림욕 하는 기분이 된다.
요새는 지자체별로 경쟁이 되어 관광지 개발이 무척 잘 되어있다.
아까의 산촌식당에 약속대로 들렀더니 이게 또 뭔가.
5천원 어치 도토리묵이 4명이 먹을 만큼 많다.
젓가락을 대면 남은 것을 버릴 수가 있으니 따로 그릇을 청해 반은 덜어놓는다.
예상대로 반도 겨우 먹어치우고 동동주도 한 병을 다 비운다.
이름 모를 나물의 향취가 입속에 오랫동안 머문다.
넉넉한 전라도 인심에 감동 또 감동.. 끝없이 감동..
쉼 없는 강행군으로 내내 샛노랗고 찔끔거리던 오줌이
막걸리 한 사발에 하얀색으로 변하여 폭포수처럼 터져버린다.
배가 쏙 들어가 버리니 놀라운 일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막걸리 회사 전화번호나 알아올 걸.. 후회막심..
부안에 도착하여 익산행 버스로 갈아탄다.
익산 터미널에서 역까지 한참 걸었던 기억이 있어 서둘러 발길을 재촉한다.
가는 길에 누추한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으로 요기를 하는데
옛날 짜장의 정수 아닌가..
종업원도 없이 75세쯤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너무 맛있게 먹어 덕담을 한다.
- 진짜 옛날 짜장을 먹을 것 같습니다. 서울에는 재료와 양념이 너무 변질되었어요.
- 그거보다 앞 손님이 드신 것이 진짜 옛날 짜장으로 된장을 풀어서 만들었고
손님이 드신 것은 춘장을 푼 것으로 나중에 나온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 짜장의 색깔이 된장색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원재료가 넉넉지 않아 재료를 아껴서 만들었는데
이 곳 중국집이 딱 그렇게 만들어 옛날 명동에서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중국집이 영상처럼 떠오른다.
앞으로 익산에 오면 꼭 들어야할 곳이 되어버렸다.
다시 역으로 향하는데 간만에 기름기가 들어갔는지 급한 설사 기운을 느낀다.
화장실을 못 찾아 급히 들어간 곳이 피씨방이다.
변통을 하고 그냥 나갈 수가 없어서 메일을 열어 호주 일을 다시 처리하기 시작한다.
밖으로 나와 보니 역이 바로 2분 거리 아닌가..
시간에 맞춰 기차가 오니 이번 여행에서 길거리에서
시간 낭비가 전혀 없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몸에 걸친 모든 옷가지를 벗어 빨래 통에 넣고
시원한 샤워로 5일 묵은 때를 벗겨낸다.
집사람이 해주는 시원한 물냉면을 한 사발 먹으니
오장육부가 다 시원해진다.
[대미]
- 26530 휘문67회 정부영 휘공회 제 111차 산행 안내 (이종신) 2016-01-23
- 26529 휘문67회 정부영 함영준 동기 출판기념회 사진 1 (윤자천) 2016-01-23
- 26528 휘문67회 정부영 교우회 주관 제1회 당구대회 참가 결과보고 (김기국) 2016-01-23
- 26527 휘문67회 정부영 4박 5일.. 남도 기행 (이해일) 2016-01-23
- 26526 휘문67회 정부영 토욜 교우회 주관 기별 당구대회 관련하여 (김기국) 2016-01-23
- 26525 휘문67회 정부영 9월 휘산회 특별 200회 기념 산행안내. (이종신) 2016-01-23
- 26524 휘문67회 정부영 김교선 (3학년 9반)과 통화했다. (김홍수) 2016-01-23
- 26523 휘문67회 정부영 하반기 삼씹회 반창회안내 (김기수) 2016-01-23
- 26522 휘문67회 정부영 함영준 동기 출판기념회 알림 (전영옥) 2016-01-23
- 26521 휘문67회 정부영 광화문포럼 사진 (윤자천) 2016-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