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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최영철)

폴란드의 크라코프는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비극이 일어났던 오슈비엥침 수용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시이다.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슷한 도시로서 비교적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아 중세의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크라코프의 게토를 지나며 2차대전의 참화를 생각한다.
이 크라코프의 유대인 거주지인 게토를 바탕으로 유명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제작되었으며, 영화 속 빨간 코트의 소녀가 실존 인물로서 자신이라 주장하던 이도 있었다.
이 게토에서 실제 거주하다 간신히 도주하여 후에 명 영화감독이 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이 쉰들러 리스트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으로부터 영화감독을 제의 받았으나 거부하고, 십여 년 후에 폴란드 피아니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2차대전의 명화 “피아니스트”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국도를 달리는데, 도로가 바로 옆으로 길게 뻗은 철길과 평행을 이룬다.
그 두 갈래 철길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철길이 바로 오슈비엥침으로 향하는 철길임을 직감했고...
그 철로를 따라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짐짝같이 실려 죽음으로 향했을까 잠시 몸서리치는 상상을 해본다.
작은 강 위의 철교는 독일군과 연합군의 수많은 전쟁영화의 파노라마를 떠올리기도 하고... 

폴란드어로 오슈비엥침은 독일어로 일명 아우슈비츠이다.
현재 일반인에게 개방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제1수용소로 규모가 작다.
그래서 실제로 가본 사람들은 영화의 수용소 규모보다 훨씬 작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나치는 수용 능력의 한계를 보인 제1수용소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제2수용소를 짓게 되는데, 영화에서 보는 대규모의 수용소는 바로 이 제2수용소이다.
아우슈비츠 규모의 10배 가량 되는 이 수용소가 바로 악명 높은 비르케나우 수용소이다.  

오래 전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인근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순례로 아우슈비츠의 생지옥을 간접 경험했던 나는, 실제 상상할 수 없는 만행이 자행되었던 현장을 찾는다는 데 대해 또 다른 감회를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성경의 수천 년 전부터의 예언과 기록, 그 기록이 수천 년 후 상상키 어려울 정도로 정확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익히 보여진 대로 수용소 건물과 내부, 고압전류가 흐르던 철조망과 각종 유품들을 돌아보며, 사람이 사람의 존엄성을 상실하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가의 실제를 깊이 체험한다.

"ARBEIT MACHT FREI"
노동은 자유를 얻는다라는 글이 붙어있는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유대인 정신대 격인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던 붉은 벽돌 건물이 자리잡고 있고...
인류사 온갖 전쟁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과정이다.
가스실에서는 가스가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자 아비규환의 절망 속에서 죽어가며 손톱으로 벽을 긁어댄 수많은 흔적들도 확인할 수 있었고...
바로 옆에는 예의 인류사 최대 비극인 시체 소각장이 기다리고 있다.  

피아니스트는 바르샤바의 게토 옆에 숨어 지내다가 끝내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된다.
그러나 그 장교는 주인공이 직업이 피아니스트라며 삶의 끝에서 절망의 답을 하자, 피아노를 쳐보라 한다.
그리고 숨겨주며 도리어 빵을 건네준다.
소련군이 진군해오자 마지막 음식을 전해주며 자신들은 퇴각한다며 떠난다.
전쟁이 끝난 한참 후 피아니스트는 독일군 장교를 본 친구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들었으나, 그는 이미 소련군 수용소에서 사망한 후였다.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뛰어난 감성과 당시의 현실로 직접 들어간 듯한 긴박감은 이 전쟁 영화가 세계적 걸작임을 증명한다.
피아노를 치던 주인공은 만국 공통어인 음악으로 적국의 장교를 굴복시켰으며, 그로써 이념이나 주의, 인간의 온갖 더러운 치부를 덮어버렸다.
어쩌면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될 지도 모르는 연주에 혼신의 힘을 다했고 독일군 장교의 깊은 감동을 사, 삶을 연장하는 기적을 낳았던 실화인 것이다.

그 실화를 바탕으로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녹여 내린 폴란스키 감독의 예술혼은 훗날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과 감동을 선사한 것이고...
영화에 삽입된 피아노 곡은 폴란드가 낳은 최대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며, 피아노의 시인이라 일컬어지는 쇼팽의 야상곡이었다.

차창 밖으로 흩뿌리는 비 속의 오슈비엥침 역 팻말이 차차 과거로 멀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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