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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비 적시던 봄날 (전우에게) (최영철)

그동안 연주회 준비, 여러 행사 등으로 바빠 동창회를 들어오지 못한 사이 친구의 부음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제 오후 왕년의 분당지회 일곱 친구가 이세현이의 일시 귀국으로 부부동반 저녁 모임을 함께 하자 약속하고 갈 준비를 하는데 상진이가 전화를 했습니다.
"연락 못 받았니? 재준이가 세상을 떴다."
더불어 승환이 어머니 돌아가셨다는 소식까지 전했습니다.
바쁘다며 가까운 친구들의 소식을 멀리하고 있었구나...
그 길로 우리 분당지회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나는 대전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뒤이어 분당지회 친구들의 조의금을 대신 가지고 학주와 상진이와 함께 내 차로 대전으로 향했지요.

대전으로 향하는 도중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만에 내리는 봄비였구요.
GP 소대장으로 있었던 고 위재준 군과 위생병이었던 내가 군 생활 같이하던 금강산 밑 까치봉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이맘 때 쯤이면 멀리 뵈던 해금강의 기암괴석 위로 푸르른 동해의 파도가 새하얗게 부서지던 그림 같은 곳이었습니다.
우리 정치사의 격변기에 국토의 최전방에서 전시 포기지역의 외로움을 같이했던 친구였습니다.
정치 회오리 속 언제 터질지 모르던 전쟁의 공포와, 영문도 모른 채 특급 비상 상황을 가장 가까이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던 곳이었지요.
그 곳에서 같이 근무하던 고 임근수 군은 가장 먼저 세상을 등졌구요.
사령부 비서실의 유수현은 어제 조의금을 대신 부쳤습니다.

잔잔한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이미 4,5 년 전 사선을 넘나들던 재준이었으니까요.
천만다행으로 심장 기증자가 나타나 제 2의 삶을 꾸리기 시작했었지요.
저녁상을 마주한 채 김연수 회장을 비롯한 67회의 십여 명의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호상으로 봐야 할 것 같아..."
그동안 재준 군은 생전에 못 다한 일들을 거의 마무리했다고 봅니다.
논산훈련소 훈련병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각 곳을 돌며 간증을 했었지요.
이제 쉬어도 될 정도가 되었나 봅니다.
다만 재준이의 봄 소풍 가자던 메시지를 받았던 친구들이 불과 몇 시간 후 부음 소식을 들어 애꿎은 술병을 바닥낸 것 빼구요.
울산에서부터 올라온 손리오 군은 이미 얼굴이 벌개져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봄비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뒷자리의 동덕여대 교수협의회장 만규가 교육계의 현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창밖의 봄비를 보며 한 마디 던집니다.
"더 많이 와야 돼... 아주 가물었거든..."
오랜 가뭄 뒤의 봄비는 재준이가 떠나는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재준이가 봄에는 반드시 일을 저지르겠다며 회현재에 꼭 들르겠다고 하던 게시판의 글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빗길 고속도로의 차 양쪽으로 펼쳐지는 흰색 선이 눈에 가물가물하였습니다.

"잘 가게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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