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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送楊侯序 (윤여성)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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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10 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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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4
옛적에 소광과 소수 두 선생이 나이가 많으므로 하루아침에 자리를 내어 놓고 고향으로 떠나가니, 이 때에 公卿들이 성문 밖에서 잘 가시라는 노제를 지내는데, 수레가 수백 량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구경하면서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그 인품을 칭송하였다. 漢史가 기록하여 그 일을 전하였고 그림 잘 그리는 자가 그 자취를 그려놓아 지금까지 사람들 이목에 비추는 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혁혁하다.
국자감의 양후가 후진들을 가르치다가 하루아침에 나이가 만 70살이 되었다 하여 승상께 아뢰고 고향으로 돌아가니, 세상에서는 항상 말하기를 “옛 사람과 지금 사람이 서로 미치지 못한다.” 고 하나, 이제 양후와 두 소선생의 뜻이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
나는 외람되이 공경의 뒷줄에 있으면서도 병을 만나 나가보지 못하였으니, 양후가 떠나갈 때에 성문 밖에서 전송한 자가 몇 사람이었으며, 수레가 몇 량이었으며, 말이 몇 필이었으며, 길에서 구경하는 자들이 또한 탄식하면서 그 인품을 칭송하였는지, 사관은 傳을 만들어서 二疏의 종적을 계승하였는지, 너무 쓸쓸하지는 않았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 세상에는 그림 잘 그리는 자가 없으나, 그림을 그리고 안 그리는 것은 실로 논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내 들으니, 승상께서는 애석하게 여겨, 그 고향의 少尹으로 임명하여 녹봉이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또 시를 지어서 권면하니, 서울의 시 잘하는 자들이 또한 이어서 화답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二疏가 떠나갈 때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옛 사람과 지금 사람의 같고 같지 않음을 알지 못하겠다.
양후는 약관에 그 고장에서 천거되어 녹명장을 노래하면서 올라왔고, 지금 돌아가서는 ‘아무 나무는 우리 선친께서 심으신 것’ 이라 하고, ‘아무 물과 아무 언덕은 내가 어렸을 때 고기 잡고 놀던 곳’ 이라 하니, 고향 사람들은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어 자손들에게 ‘양후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을 법으로 삼으라’ 고 경계하니, 옛날에 이른바 ‘鄕先生으로 죽으면 그 사당에 제사 지낸다’ 고 하는, 그것이 이 분에게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분에게 있을 것이다.
한유 (768 - 824)는 가난한 집의 고아로서 형마저 일찍 죽으니 형수에게 양육되었고, 홀로 상경하여 문전걸식하면서도 학업에 정진하여, 마침내 文史哲을 꿰뚫고 첫 번째 八大家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과연 그 고초가 어떠하였겠는가? 일찍이 제자백가 속에서 맹자를 알아보고 ‘맹자는 순수하고 순수한 자요, 순자는 대체로 순수하나 약간의 하자가 있다.’ 라고 하고, ‘맹자가 아니면 공자의 도가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니, 그 공로가 결코 우임금의 아래에 있지 않다.’ 라고 하였다. 또 맹자가 양주와 묵적을 물리친 것처럼, 자신이 도교와 불교의 폐해를 물리칠 것을 자임하였으니, 정자께서도 ‘맹자 사후 실로 1100년 동안에 오직 한 사람 뿐’이라고 하여, 신유학의 여명을 밝힌 한문공의 공로를 존숭하였던 것이다. 道의 근원을 밝힌 ‘原道’가 유명하고, 또 많은 명문장이 전한다. 윗글은 양후를 전송하는 시집의 서문을 한문공이 지은 것인데, ‘지금 사람이 옛 사람만 못하다’는 뜻을 ‘古今人不相及’ 이라고 표현한 점이 우아하다.
국자감의 양후가 후진들을 가르치다가 하루아침에 나이가 만 70살이 되었다 하여 승상께 아뢰고 고향으로 돌아가니, 세상에서는 항상 말하기를 “옛 사람과 지금 사람이 서로 미치지 못한다.” 고 하나, 이제 양후와 두 소선생의 뜻이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
나는 외람되이 공경의 뒷줄에 있으면서도 병을 만나 나가보지 못하였으니, 양후가 떠나갈 때에 성문 밖에서 전송한 자가 몇 사람이었으며, 수레가 몇 량이었으며, 말이 몇 필이었으며, 길에서 구경하는 자들이 또한 탄식하면서 그 인품을 칭송하였는지, 사관은 傳을 만들어서 二疏의 종적을 계승하였는지, 너무 쓸쓸하지는 않았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 세상에는 그림 잘 그리는 자가 없으나, 그림을 그리고 안 그리는 것은 실로 논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내 들으니, 승상께서는 애석하게 여겨, 그 고향의 少尹으로 임명하여 녹봉이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또 시를 지어서 권면하니, 서울의 시 잘하는 자들이 또한 이어서 화답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二疏가 떠나갈 때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옛 사람과 지금 사람의 같고 같지 않음을 알지 못하겠다.
양후는 약관에 그 고장에서 천거되어 녹명장을 노래하면서 올라왔고, 지금 돌아가서는 ‘아무 나무는 우리 선친께서 심으신 것’ 이라 하고, ‘아무 물과 아무 언덕은 내가 어렸을 때 고기 잡고 놀던 곳’ 이라 하니, 고향 사람들은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어 자손들에게 ‘양후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을 법으로 삼으라’ 고 경계하니, 옛날에 이른바 ‘鄕先生으로 죽으면 그 사당에 제사 지낸다’ 고 하는, 그것이 이 분에게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분에게 있을 것이다.
한유 (768 - 824)는 가난한 집의 고아로서 형마저 일찍 죽으니 형수에게 양육되었고, 홀로 상경하여 문전걸식하면서도 학업에 정진하여, 마침내 文史哲을 꿰뚫고 첫 번째 八大家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과연 그 고초가 어떠하였겠는가? 일찍이 제자백가 속에서 맹자를 알아보고 ‘맹자는 순수하고 순수한 자요, 순자는 대체로 순수하나 약간의 하자가 있다.’ 라고 하고, ‘맹자가 아니면 공자의 도가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니, 그 공로가 결코 우임금의 아래에 있지 않다.’ 라고 하였다. 또 맹자가 양주와 묵적을 물리친 것처럼, 자신이 도교와 불교의 폐해를 물리칠 것을 자임하였으니, 정자께서도 ‘맹자 사후 실로 1100년 동안에 오직 한 사람 뿐’이라고 하여, 신유학의 여명을 밝힌 한문공의 공로를 존숭하였던 것이다. 道의 근원을 밝힌 ‘原道’가 유명하고, 또 많은 명문장이 전한다. 윗글은 양후를 전송하는 시집의 서문을 한문공이 지은 것인데, ‘지금 사람이 옛 사람만 못하다’는 뜻을 ‘古今人不相及’ 이라고 표현한 점이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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