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글 상세보기
[제목]
"전우가 남긴 한 마디" (최영철)
🧑 정부영
|
📅 2016-01-10 14:10:06
|
👀 245
이미지 로딩중입니다....

러시아 최고의 음악교육기관을 들자면 상트 페테르부르그 국립음악원, 차이코프스키 음악원(모스크바 국립음악원), 그네신 국립아카데미를 들 수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상트 페테르부르그 국립음악원 교수들과 실내악 연주할 때의 에피소드이다.
이 학교 교수들은 대부분 러시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실력파들이며 세계 각국을 돌며 초청 연주여행을 다닐 정도의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피아노의 레비체프 교수는 모든 연주를 암보로 하며 400여곡의 레퍼터리를 자랑하는 대가였으며 자부심이 대단한 교수였다.
바이올린의 클리치코프는 전설적인 지휘자 므라빈스키가 이끌던 레닌그라드 필하모니(현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의 악장이었고, 첼로의 마사르스키도 전 독일 첼로 콩쿠르 우승자이자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입상자이며,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의 솔리스트였으며 두 사람 다 상트 페테르부르그 국립음악원 교수도 겸하고 있었다.
여기서 상트 페테르부르그 국립음악원과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러시아 최초의 컨서바토리인 이 음악원은 1862년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세워졌으며, 피아니스트, 작곡가 겸 지휘자인 Anton Rubinstein이 초대원장을 맡았으며 교수진으로는 Henryk Wieniawsky(바이올린), Anton Rubinstein(피아노), Nikoly Zaremba(작곡), Karl Schubert(첼로), Gavril Lomakin(합창)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Pyotr Tchaikovsky가 1865년 제1회 졸업생으로서 모스크바음악원의 초대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으니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명실공히 모스크바 음악원의 형님이 되는 셈이다. 1870년부터 90년까지 이 음악원은 눈부신 도약을 하였는데 이를 이끈 작곡가가 림스키 코르사코프였다.
이 음악원에서 키운 제자들이 신 러시아학과(작곡)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들 중 특히 Anatoly Lyadov와 Alexander Glazunov에 의해 음악원의 음악교육 프로그램이 정착되었으며 바로 이것에 의해 러시아 음악 신세대를 교육시키는 초석이 세워지게 되었다.
1944년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이 학교를 The Rimsky-Korsakov State Conservatory라 명명했다.
다음은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다.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구 레닌그라드 필)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서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거쳐 갔는데 므라빈스키, 가우크, 사모수드, 알리아스베르크, 아르비드 얀손스, 등 쟁쟁한 지휘자들이 역대 지휘자 명단에 올려져 있으며, 현재 상임지휘자는 유리 테미르카노프로 역시 세계적인 대가이다.
한국에 가끔 상트 페테르부르그 심포니란 이름으로 내한하는 연주단체가 있는데 이는 정통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가 아니다.
다시 돌아가서,
당연히 이 고귀한 연주자들은 자존심과 자부심이 남달랐을 것은 뻔한 이치...
클리치코프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신사였으나 첼로의 마사르스키는 젊어서 그런지 자부심의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한번은 마사르스키와 비발디의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했는데, 도대체 같이 맞추어 보자는 소리가 없다. 언제 연습하려느냐 물었더니 연주 당일 날 리허설 때 하자는 것이다.
보통 거기서는 그러한 예가 많지만 나는 외국 사람인데...
하지만 그 곡이 그렇게 빠르고 어려운 곡은 아니라 나도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보통 음반의 속도로 연습하고 당일 날 리허설에 들어갔다.
그런데 리허설을 시작하니 그 곡을 거의 두 배의 빠르기로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속도를 약간만 늦춰달라고 했으나 들은 척도 안한다.
그리고는 두 번을 맞추고는 다했다며 수영하러 간다며 나가버린다.
나는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았고...
결국 저녁 먹는 시간 잠깐을 제외한 3시간 정도를 대기실에서 온 정신을 집중하며 맹렬한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으니...
그 후 지금까지 오면서 내 인생에 커다란 경험은 이것이었다.
2, 3 시간이라도 온 정신을 집중하여 연습하면 안 되는 것이 없더라는 것이지...
그 날 저녁 꽉 찬 객석을 보며 잔뜩 긴장하며 무대로 들어갔는데,
마사르스키 3악장에서 너무 빨리 연주하다가 결국 반주부와 혼선을 빚었다.
“거봐 이 사람아... 너무 잘난 체하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하다.
이 학교 교수들은 대부분 러시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실력파들이며 세계 각국을 돌며 초청 연주여행을 다닐 정도의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피아노의 레비체프 교수는 모든 연주를 암보로 하며 400여곡의 레퍼터리를 자랑하는 대가였으며 자부심이 대단한 교수였다.
바이올린의 클리치코프는 전설적인 지휘자 므라빈스키가 이끌던 레닌그라드 필하모니(현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의 악장이었고, 첼로의 마사르스키도 전 독일 첼로 콩쿠르 우승자이자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입상자이며,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의 솔리스트였으며 두 사람 다 상트 페테르부르그 국립음악원 교수도 겸하고 있었다.
여기서 상트 페테르부르그 국립음악원과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러시아 최초의 컨서바토리인 이 음악원은 1862년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세워졌으며, 피아니스트, 작곡가 겸 지휘자인 Anton Rubinstein이 초대원장을 맡았으며 교수진으로는 Henryk Wieniawsky(바이올린), Anton Rubinstein(피아노), Nikoly Zaremba(작곡), Karl Schubert(첼로), Gavril Lomakin(합창)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Pyotr Tchaikovsky가 1865년 제1회 졸업생으로서 모스크바음악원의 초대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으니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명실공히 모스크바 음악원의 형님이 되는 셈이다. 1870년부터 90년까지 이 음악원은 눈부신 도약을 하였는데 이를 이끈 작곡가가 림스키 코르사코프였다.
이 음악원에서 키운 제자들이 신 러시아학과(작곡)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들 중 특히 Anatoly Lyadov와 Alexander Glazunov에 의해 음악원의 음악교육 프로그램이 정착되었으며 바로 이것에 의해 러시아 음악 신세대를 교육시키는 초석이 세워지게 되었다.
1944년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이 학교를 The Rimsky-Korsakov State Conservatory라 명명했다.
다음은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다.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구 레닌그라드 필)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서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거쳐 갔는데 므라빈스키, 가우크, 사모수드, 알리아스베르크, 아르비드 얀손스, 등 쟁쟁한 지휘자들이 역대 지휘자 명단에 올려져 있으며, 현재 상임지휘자는 유리 테미르카노프로 역시 세계적인 대가이다.
한국에 가끔 상트 페테르부르그 심포니란 이름으로 내한하는 연주단체가 있는데 이는 정통 상트 페테르부르그 필하모니가 아니다.
다시 돌아가서,
당연히 이 고귀한 연주자들은 자존심과 자부심이 남달랐을 것은 뻔한 이치...
클리치코프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신사였으나 첼로의 마사르스키는 젊어서 그런지 자부심의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한번은 마사르스키와 비발디의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했는데, 도대체 같이 맞추어 보자는 소리가 없다. 언제 연습하려느냐 물었더니 연주 당일 날 리허설 때 하자는 것이다.
보통 거기서는 그러한 예가 많지만 나는 외국 사람인데...
하지만 그 곡이 그렇게 빠르고 어려운 곡은 아니라 나도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보통 음반의 속도로 연습하고 당일 날 리허설에 들어갔다.
그런데 리허설을 시작하니 그 곡을 거의 두 배의 빠르기로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속도를 약간만 늦춰달라고 했으나 들은 척도 안한다.
그리고는 두 번을 맞추고는 다했다며 수영하러 간다며 나가버린다.
나는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았고...
결국 저녁 먹는 시간 잠깐을 제외한 3시간 정도를 대기실에서 온 정신을 집중하며 맹렬한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으니...
그 후 지금까지 오면서 내 인생에 커다란 경험은 이것이었다.
2, 3 시간이라도 온 정신을 집중하여 연습하면 안 되는 것이 없더라는 것이지...
그 날 저녁 꽉 찬 객석을 보며 잔뜩 긴장하며 무대로 들어갔는데,
마사르스키 3악장에서 너무 빨리 연주하다가 결국 반주부와 혼선을 빚었다.
“거봐 이 사람아... 너무 잘난 체하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하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25609 휘문67회 정부영 제10차 광화문 포럼 안내 (전영옥) 2016-01-10
- 25608 휘문67회 정부영 "전우가 남긴 한 마디" (최영철) 2016-01-10
- 25607 휘문67회 정부영 장덕영 교우 부친 별세 (관리자) 2016-01-10
- 25606 휘문67회 정부영 I wanna be there! (최영철) 2016-01-10
- 25605 휘문67회 정부영 재상해(중국) 교우회원, 모교은사 와 교사를 반기다. (주춘화) 2016-01-10
- 25604 휘문67회 정부영 [답변] TV 깜짝 출연 (위재준) 2016-01-10
- 25603 휘문67회 정부영 [답변] 휘문100년사 배포 (위재준) 2016-01-10
- 25602 휘문67회 정부영 [답변] 휘문100년사 배포 (김용진) 2016-01-10
- 25601 휘문67회 정부영 LA 총 동문 골프회 회장 이 성원 교우 부친 별세 (이 종규) 2016-01-10
- 25600 휘문67회 정부영 삶에 힘들고 지친 그대여! (김연수) 2016-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