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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 가지 떠남의 의미 (최영철)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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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9 23: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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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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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로 바쁜 일상 중 어느 날 갑자기 정들었던 이가 곁을 떠나간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떠남이 생을 마감하는 떠남이든,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아주 떠나가는 떠남이든, 많게는 수십 년, 혹은 수년을 가까이하던 당사자와의 얽힌 추억이 고스란히 나에게 남겨진 몫이 되어 곱씹게 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동네 친구였으면 아스라한 어릴 적 추억이 되살아나고, 학창 시절의 친구였으면 철없이 뛰놀던 아름답던 시절을 반추하게 되지...
그 이별이 가족이나 가까운 단짝 친구였다면 심각함의 깊이가 더할 것이고...
며칠 전 학창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오랜 선배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모 음악대학의 작곡과 교수로 근 25년을 재직하고 있는 선배이다.
“나 이제 미국으로 아주 들어간다. 2월부로 학교 교수직도 사임했어... 남은 생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찬양 선교에 전력하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잠깐씩 들었지만 설마 했는데 드디어 결단을 내렸구나...
“내 동기 바이올린 하던 철현이 말이야. 엊그제 미국 후배한테서 전화 받았는데 신학교 들어갔다던데...”
“나는 직분하고 상관없이 평신도로서 선교할거야. 그리고 너무 미안한데 준비하느라 바빠서 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내 주에 떠나거든...”
팔리지 않아 두고 가는 집 문제 때문에 다시 들어와야 한다며 그 때 만나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주고받았다.
잠깐 동안 그 선배와의 수십 년간 얽혔던 추억이 주마등같이 머리를 훑고 지나간다.
밤에 집에 들어와서도 무언가 머릿속이 정돈되지 않아 컴퓨터 앞에서 그 선배의 미니 홈피를 찾아 들어갔다.
지인들을 향한 짧은 고별인사가 올려져 있었다.
오랜 기간을 장고한 결정치고는 너무나 짧았다.
오랜 심사숙고 끝의 무거운 결정 후에는 오히려 홀가분해지고, 떠날 때는 긴 말이 없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교수직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한번 되면 영원히 놓지 않으려 하고, 거기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만족해 하는데, 특히 자기가 가진 신앙의 정조까지도 헌신짝같이 생각하는 교육계의 대체적인 현실 가운데서 보기 드문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선배의 앞날이 형통하기를 기도한다.
나는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늙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 것을 본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인 육체적인 노쇠로 인한 세포 소멸 현상 외에, 정신적으로는 얼마나 자유로워지고 깊어지는가에 대한 통찰은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형이상과 형이하의 차이,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다가 유물론적 한계에 머무른 걸까?
TV를 켜면 광고든 프로그램이든 천편일률적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법, 그리고 오락, 연예, 섹스, 폭력이 주를 이룬다.
정신세계에 대한 건전한 양식에 관한 프로그램은 이미 멀리 내팽개쳐진 지 오래다.
날이 갈수록 물질에의 욕구가 커지는 사회 분위기 탓도 있으리라.
사람 일평생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봄에 심고 여름에 열심히 일하고 가을에 거두면 겨울에 동면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의 변함없는 철저한 법칙이지...
가을에는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추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삭막한 겨울을 대비해야 한다.
인생에는 온실재배란 없지...
50대 이후에는 청장년 때의 심고 가꾸던 곡식이 열매를 맺고 서서히 추수할 준비를 해가는 때이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두 가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 가지는 세상의 미련 없이 모든 걸 청산하고 아름답게 후회 없이 가는 생애가 있고, 또 한 가지는 죽을 때가 되어서도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누추하게 가는 반대의 경우이다.
우리는 한 세상을 살면서 갖가지 미련을 겪으며 성숙해간다.
그 성숙의 도가 더할수록 마음은 비워져 청결해지고, 영혼과 살과 뼈에 깊이깊이 박혀있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차츰 걷어내게 된다.
혈기가 왕성하던 젊었을 때에는 들어도 몰랐던 진리를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니 새삼 하나하나 깨닫게 되는 것도 나이 먹는 묘미가 아닐까 한다.
선배는 이제 오랜 교수직을 떠나 더 나은 추수를 위한 인생 후반기 결실을 맺으려 하는 것이다.
자아를 찾아 남은 여생을 뜻깊게 보내고, 폭 넓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으려 한다.
이제까지의 삶은 자기와 자신의 가족들, 주위 사람들을 위한 좁은 의미의 충실한 삶이었다면, 앞으로의 삶은 더 넓은 범위의 수많은 이웃을 위한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그 결실이 참으로 풍성할 것이라는 일말의 부러움도 갖는다.
참으로 복 받은 인생이구나...
심은<
그 떠남이 생을 마감하는 떠남이든,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아주 떠나가는 떠남이든, 많게는 수십 년, 혹은 수년을 가까이하던 당사자와의 얽힌 추억이 고스란히 나에게 남겨진 몫이 되어 곱씹게 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동네 친구였으면 아스라한 어릴 적 추억이 되살아나고, 학창 시절의 친구였으면 철없이 뛰놀던 아름답던 시절을 반추하게 되지...
그 이별이 가족이나 가까운 단짝 친구였다면 심각함의 깊이가 더할 것이고...
며칠 전 학창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오랜 선배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모 음악대학의 작곡과 교수로 근 25년을 재직하고 있는 선배이다.
“나 이제 미국으로 아주 들어간다. 2월부로 학교 교수직도 사임했어... 남은 생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찬양 선교에 전력하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잠깐씩 들었지만 설마 했는데 드디어 결단을 내렸구나...
“내 동기 바이올린 하던 철현이 말이야. 엊그제 미국 후배한테서 전화 받았는데 신학교 들어갔다던데...”
“나는 직분하고 상관없이 평신도로서 선교할거야. 그리고 너무 미안한데 준비하느라 바빠서 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내 주에 떠나거든...”
팔리지 않아 두고 가는 집 문제 때문에 다시 들어와야 한다며 그 때 만나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주고받았다.
잠깐 동안 그 선배와의 수십 년간 얽혔던 추억이 주마등같이 머리를 훑고 지나간다.
밤에 집에 들어와서도 무언가 머릿속이 정돈되지 않아 컴퓨터 앞에서 그 선배의 미니 홈피를 찾아 들어갔다.
지인들을 향한 짧은 고별인사가 올려져 있었다.
오랜 기간을 장고한 결정치고는 너무나 짧았다.
오랜 심사숙고 끝의 무거운 결정 후에는 오히려 홀가분해지고, 떠날 때는 긴 말이 없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교수직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한번 되면 영원히 놓지 않으려 하고, 거기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만족해 하는데, 특히 자기가 가진 신앙의 정조까지도 헌신짝같이 생각하는 교육계의 대체적인 현실 가운데서 보기 드문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선배의 앞날이 형통하기를 기도한다.
나는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늙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 것을 본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인 육체적인 노쇠로 인한 세포 소멸 현상 외에, 정신적으로는 얼마나 자유로워지고 깊어지는가에 대한 통찰은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형이상과 형이하의 차이,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다가 유물론적 한계에 머무른 걸까?
TV를 켜면 광고든 프로그램이든 천편일률적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법, 그리고 오락, 연예, 섹스, 폭력이 주를 이룬다.
정신세계에 대한 건전한 양식에 관한 프로그램은 이미 멀리 내팽개쳐진 지 오래다.
날이 갈수록 물질에의 욕구가 커지는 사회 분위기 탓도 있으리라.
사람 일평생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봄에 심고 여름에 열심히 일하고 가을에 거두면 겨울에 동면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의 변함없는 철저한 법칙이지...
가을에는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추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삭막한 겨울을 대비해야 한다.
인생에는 온실재배란 없지...
50대 이후에는 청장년 때의 심고 가꾸던 곡식이 열매를 맺고 서서히 추수할 준비를 해가는 때이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두 가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 가지는 세상의 미련 없이 모든 걸 청산하고 아름답게 후회 없이 가는 생애가 있고, 또 한 가지는 죽을 때가 되어서도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누추하게 가는 반대의 경우이다.
우리는 한 세상을 살면서 갖가지 미련을 겪으며 성숙해간다.
그 성숙의 도가 더할수록 마음은 비워져 청결해지고, 영혼과 살과 뼈에 깊이깊이 박혀있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차츰 걷어내게 된다.
혈기가 왕성하던 젊었을 때에는 들어도 몰랐던 진리를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니 새삼 하나하나 깨닫게 되는 것도 나이 먹는 묘미가 아닐까 한다.
선배는 이제 오랜 교수직을 떠나 더 나은 추수를 위한 인생 후반기 결실을 맺으려 하는 것이다.
자아를 찾아 남은 여생을 뜻깊게 보내고, 폭 넓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으려 한다.
이제까지의 삶은 자기와 자신의 가족들, 주위 사람들을 위한 좁은 의미의 충실한 삶이었다면, 앞으로의 삶은 더 넓은 범위의 수많은 이웃을 위한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그 결실이 참으로 풍성할 것이라는 일말의 부러움도 갖는다.
참으로 복 받은 인생이구나...
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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