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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쟈클린느의 눈물" (최영철)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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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9 23:01:17
|
👀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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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갑니다. 며칠 문득 집을 떠났습니다. 떠나 있던 그 길에 동해의 푸른 바닷가에도 가보았습니다. 끝없이 흰 파도가 사태처럼 밀려오는 모래사장에 우두커니 서 있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주위를 살펴보고 누군가 보는 이 없다면 저 파도,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만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으로 북쪽으로 이어진 해안을 따라갈수록 흰 빨래처럼 정결하게 걸려있는 오징어 건조대를 보며 나의 삶도 저처럼 푸른 바닷물에 씻어 세상의 바람 끝에 걸어놓고 싶다는, 그럴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 생각 끝에 들던 또 한 생각, 듣지 말아야 될 소리를 듣고 강가에 나가 귀를 씻었다는 은자의 말에 그의 벗이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러 강으로 나가다가, "이 물을 먹이면 우리 송아지의 입이 더러워지겠네"하며 그 강물을 먹이지 않고 되돌아갔다는 요임금 때의 은자 소보와 허유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씁쓸한 웃음이 일었습니다.
돌아오는길, 집을 나서기 전에는 어떻게 눈에 띄지 않았었는지 산자락에 접어들다 나는 아 - 하고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여기저기 감나무들이 잎들을 벌써 수북히 떨구어내고 푸르던 감들을 노을빛으로 물들여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깊어가는구나, 겨울이 머지 않았구나.
마당 가득 감잎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떨어진 지 며칠 된 것들, 낙엽 밟는 소리, 그 위를 지나면 밤바다의 머리맡에 아련히 들려오던 파돗소리가 따라왔습니다. 손에 들었던 싸리비를 그냥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낙엽 사이를 헤집고 개미들, 집게벌레, 작은 날벌레들이 겨울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지난 밤엔 솜이불을 덮고 잤는데도 자는 동안 한두 번은 깨어 이불을 추스르며 몸을 구부렸습니다.
나무를 좀 했어요. 마른 삭정이를 한 단 했는데 한 사흘은 군불로 지필 수 있겠어요.
밤이 깊어가요. 문 밖 소쩍새 소리 오늘은 목이 트였는지. 어젯밤에는 잔뜩 목이 잠긴 소쩍새 한 마리 안간힘으로도 울어지지 않아 가슴 미어지게 하던데, 그치지 않는 밤벌레 소리 누구를 위한 노래인지 밖은 꽤 차가울 텐데 저 소리 추위에 몸 떠는 신음 소리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자크 오펜바흐의 첼로곡 [자크리느의 눈물]은 이런 가을밤이었을까요. 툭툭 이따금 떨어져 내리는 감 소리에 쿵 하고 가슴에 파문이 일어요. 감잎들 우수수 져 내리는가 보아요. 누구 이 밤 산길을 더듬어 찾아올 이 없는데, 옛사랑의 창가 저만큼 길 멈추고 되돌아가던 밤길, 별빛에 하얀 억새꽃들 숨죽여 눈물짓던 그 가을 발소리처럼…….
-박남준 시인-
오펜바흐의 "쟈클린느의 눈물"
2000년 11월 25일 예술의 전당
오케스트라 : 카메라타 서울 앙상블
첼로 협연 : 최영철
북으로 북쪽으로 이어진 해안을 따라갈수록 흰 빨래처럼 정결하게 걸려있는 오징어 건조대를 보며 나의 삶도 저처럼 푸른 바닷물에 씻어 세상의 바람 끝에 걸어놓고 싶다는, 그럴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 생각 끝에 들던 또 한 생각, 듣지 말아야 될 소리를 듣고 강가에 나가 귀를 씻었다는 은자의 말에 그의 벗이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러 강으로 나가다가, "이 물을 먹이면 우리 송아지의 입이 더러워지겠네"하며 그 강물을 먹이지 않고 되돌아갔다는 요임금 때의 은자 소보와 허유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씁쓸한 웃음이 일었습니다.
돌아오는길, 집을 나서기 전에는 어떻게 눈에 띄지 않았었는지 산자락에 접어들다 나는 아 - 하고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여기저기 감나무들이 잎들을 벌써 수북히 떨구어내고 푸르던 감들을 노을빛으로 물들여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깊어가는구나, 겨울이 머지 않았구나.
마당 가득 감잎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떨어진 지 며칠 된 것들, 낙엽 밟는 소리, 그 위를 지나면 밤바다의 머리맡에 아련히 들려오던 파돗소리가 따라왔습니다. 손에 들었던 싸리비를 그냥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낙엽 사이를 헤집고 개미들, 집게벌레, 작은 날벌레들이 겨울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지난 밤엔 솜이불을 덮고 잤는데도 자는 동안 한두 번은 깨어 이불을 추스르며 몸을 구부렸습니다.
나무를 좀 했어요. 마른 삭정이를 한 단 했는데 한 사흘은 군불로 지필 수 있겠어요.
밤이 깊어가요. 문 밖 소쩍새 소리 오늘은 목이 트였는지. 어젯밤에는 잔뜩 목이 잠긴 소쩍새 한 마리 안간힘으로도 울어지지 않아 가슴 미어지게 하던데, 그치지 않는 밤벌레 소리 누구를 위한 노래인지 밖은 꽤 차가울 텐데 저 소리 추위에 몸 떠는 신음 소리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자크 오펜바흐의 첼로곡 [자크리느의 눈물]은 이런 가을밤이었을까요. 툭툭 이따금 떨어져 내리는 감 소리에 쿵 하고 가슴에 파문이 일어요. 감잎들 우수수 져 내리는가 보아요. 누구 이 밤 산길을 더듬어 찾아올 이 없는데, 옛사랑의 창가 저만큼 길 멈추고 되돌아가던 밤길, 별빛에 하얀 억새꽃들 숨죽여 눈물짓던 그 가을 발소리처럼…….
-박남준 시인-
오펜바흐의 "쟈클린느의 눈물"
2000년 11월 25일 예술의 전당
오케스트라 : 카메라타 서울 앙상블
첼로 협연 :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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