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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지 추위가 기세부리던 날...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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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추위가 세밑을 맞아 기세가 등등하던 며칠 전 저녁을 먹으러 우리 스튜디오 앞 단골 한식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해가 진 건물 뒤편은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지요.

설렁탕을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탁자 몇 개 건너에서 누가 손짓을 하며 부릅니다.

“선생님 이리 와서 같이 드세요”

그렇지 않아도 혼자 앉아 먹는 게 쓸쓸하던 차라 같이 합석했습니다.

예술의 전당 근처에는 많은 음악 관련 업체와 음악인들의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이 날도 악기점 사장과 수리사, 기획사 직원이 저녁을 들고 있다가 저를 청했던 것입니다.

나를 부른 악기점 사장은 거나하게 취해서 옆자리에 앉은 기획사 직원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습니다.

맥주와 소주를 어떠한 비율로 섞어서 어떤 식으로 마시는지 한참 설명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얼굴과 목이 벌써 벌개져 있었지만 권하는 대로 받아 마시고 있었습니다.

식탁 위의 구이판에는 제주도 흑돼지가 바짝 구워지고 있었구요.

나도 같이 앉아서 시켰던 설렁탕을 먹습니다.



“요즘 경제가 안 좋아서 문 닫은 악기점이 많다고 하던데 어떻습니까?”

“더 닫아야 합니다. 그래서 몇 개만 남아야지 너무 엉터리들이 많아서 안 됩니다.”

나는 옆의 친구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 친구도 얼마 전 운영하던 악기점 문을 닫은 친구거든요.

지금은 기획 일이니 그 외 잡다한 일을 하며 그냥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내 옆자리의 수리사가 그 친구한테 말합니다.

“이제 술 그만 먹어요 벌개졌는데...”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는데 차차 괜찮아지고 있어요. 사장님 덕분에 조금씩 술이 세지는 중입니다.”

“그게 세지는 게 아니고 뱃속이 점점 상하는 걸텐데...”

악기점 사장이 앞자리의 수리사에게 말합니다.

“그냥 놔두세요. 24시간 좋은 일 하나 없는데, 술 먹는 시간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삽니까?”

종부세와 김정일 핵 얘기로 잠시 실랑이도 벌이며 즐겁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식사를 끝낸 후 레슨때문에 나는 곧 일어났습니다.

“선생님 그냥 가세요. 제가 내는 자리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소맥으로 벌개졌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그 악기점 사장님 새벽에 운동하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는데, 병원에 가보았더니 의식도 없고 살 가망이 없다고 합니다... 평소에 술을 너무 많이 드셨어요.”

“나보다 5, 6년 젊은 나이 아니었나?...”

언제든지 부고를 듣는 순간에는 그 사람의 구원 문제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 다음에 남겨진 가족 생각이 나지요.

누구든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는 일생이 파노라마같이 그려집니다.

그 순간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요.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바로 전에도 그렇게 팔팔하게 살아서 같이 저녁도 먹고 얘기도 했는데...



올해 들어 가장 추웠던 날 발인이 있었습니다.

첼로 하는 외동딸을 캐나다로 조기 유학 보낸 후 10여일만의 불상사라고 하더군요.

그토록 사랑하던 외동딸은 유명을 달리한 아빠의 소식을 전혀 모릅니다.

매서운 추위가 온몸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2006년을 과거 속으로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눈보라 치는 러시아 시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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