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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食色之關(쎄빈거) (晝大夜小)
2005.7.22일자 위크앤에는 희한한 기사가 났다. 여자의 예쁨을 다섯 단계로 나눠서, 남편의 연봉과의 상관 관계를 따져보니, 한 단계 더 예뻐질 때 마다, 남편의 연봉이 평균 324만원이 올라가더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예쁨과 안예쁨 사이의 다섯 단계를 어떻게 나눴는지, 단계별로 구체적인 얼굴을 볼 수 있으면 훨씬 이해도를 높였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짐작만 했던 외모지상주의를 수치로 딱 제시해 놓으니 씁쓸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 기사를 취재한 기자는 말미에서 "사랑이라는 조건 하나 만으로 이뤄지는 커플도 무수히 많다"고 조사 결과와는 다른, 스스로의 견해를 달면서, 독자를 위로한다.

결혼은 거래다. 혹은 사랑은 거래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화를 내기도 하고, 혀를 차기도 한다. 우리는 그 거래의 삭막함을 숨기기 위해, 사랑을 지나치게 미화한 혐의가 있다. 사랑과 결혼을 동일시하려는 노력도, "우린 거래한 게 아니라, 아무 목적없이 결합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무의식이다. 결혼의 시작은 원시 동굴에서의 짝짓기였을 것이다. 남자는 고기를 잡아왔고, 여자는 자기의 몸을 주면서 그 댓가로 고기를 얻어먹었다. 혼교(混交)의 시대를 지나면서, 남자는 자신의 성욕을 획기적으로 돋우는 매력적인 여자를 차지하고 싶어했고, 여자는 자신에게 안정적으로 풍부한 고기를 가져다주는 능력있는 남자를 차지하고 싶어했다. 이 소유의 욕망이 거래를 시작한 것이, 바로 결혼이라는 제도다.

여자의 사랑은 고기를 가져다주는 남자에 대한 신뢰감에서 태어났다. 그 신뢰감은 저 남자의 보호 아래서 삶을 잘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바탕이 된다. 남자의 사랑은 여자의 유혹에 대한 반응이다. 예쁨은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매력이다. 예쁜 여자를 위해, 남자는 목숨을 걸고라고 고기를 잡아온다. 고기를 잡아오지 못할 때 예쁜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로 달아나 버릴지도 모른다. 여자를 지키는 것은, 그 마음을 지키는 일이다. 요컨대 외모 지상주의는 인간의 정신이 피폐해지거나, 미를 보는 안목이 천박해져서 나타난 게 아니라, 원시적인 무의식이다. 그렇다면 나처럼 '뚜렷한 능력'(돈을 포함해) 없이 태어난 남자나, 깔쌈한 미모를 갖추지 못한 채 태어난 여자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예스'다. 그 억울함이 바로, 인간을 진화시켜온 신의 '배터리'이다.

최근 들어 이 안정적인 거래 시스템이 문제가 생겼다. 우선 여자들이 밖에 나가 고기를 잡는 일이 일반화됐다. 남자보다 더 잘 잡는 여자도 많아졌다. 스스로 고기를 잡을 수 있는데 굳이 남자에게 의지해 고기를 잡을 필요가 있는가. 있다면 더 많이 잡아서 배불리 살고 싶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여자들은 스스로 잡는 고기 만으로도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독신으로 사는 여자가 늘어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은 딸린 식구를 만들어낸다. 그 딸린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고기를 더 많이 잡아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독신은 그런 문제를 해결한다. 여자가 고기를 잡는다면, 남자가 유혹기제를 갖추는 '역할 교환'도 하나의 현상이 된다. 예쁜 남자, 강한 여자는 바로 그런 신드롬이다. 인간의 사랑, 혹은 육체적 결합이 점점 사라지는 건, 고기의 풍요에서 오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자의 예쁨과 남자의 고기가 비례하는 저 조사 결과는, 매우 건전하고 고무적인 팩트일 수 있다. 사랑의 원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구나, 결혼이라는 제도가 쉽사리 소멸되지는 않겠구나 하는 전망을 주기도 한다. 이제 위크앤을 펴보라. 내 엉뚱한 견해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서 기사를 읽어보면 전혀 다른 맛이 날 것이다. ====중앙일보 이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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