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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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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9 13: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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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이말만큼 제게 있어 살아오면서 큰도움이 된말도 드믄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것이 가까운 사람들이 내기대나 신뢰를 배신했을때입니다. 그가 응당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건만 그는 그반대로 혹은 엉뚱하게 반응할때 우리들은 많은 실망과 분노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제가 인생속에서 보다더 많은 만남을 접하게 되면서 저는 제가 가진 기대나 신뢰라는것이 사실은 내가 내속에서 만들어가진 하나의 타인에 대한 개인적인 채점기준이요,틀이자 요구사항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다른 일반인들이라도 그렇게 기대하고 그렇게 생각할만한 상식적인 것이지요. 그것은 도덕이라든가 의리라든가 혹은 인품이라고 불릴만한 그런것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진리는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것들이 우리를 얽어매고 우리는 그것들에의해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언행을 그기준으로 평가하게 됨으로서 우리는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간에 시비분별과 분쟁에 곧잘 휘말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저는 그런기준들이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군림하며 가지고 노는 상태에서 벗어나기로 작심했습니다. 그렇지않으면 나는 죽을때까지 이세상사람들의 잘못된 행위에의해 하루종일 분노나 기분나쁨의 상태를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것은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있어서 큰장애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있어서 제게 가장큰 도움을 주었던 말이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사실 예수님역시 우리 인간들이 그를 배신하고 그에게 돌을 던지고 마침내는 그를 죽이기까지 했지마는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것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게 거창하게 말할것도 없습니다.
생활속에 작은 일들로부터도 이원칙은 그진가를 발휘합니다.
이유없이 아내가 짜증을 내고 이유없이 친구가 화를 냅니다.
아침 헬스클럽에서 다른사람이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공중질서를 무시하는 행동을 합니다.
이런일들에 다 일일이 반응할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내면의 평화로운 기운을 흩트리게 하고 깨지게 하므로 우리자신에게도 안좋습니다. 이때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이 활약할때가 아닌가합니다.
사실 그런것을 비판의 시선으로 바라다 보는 우리는 그럼 그와유사한 잘못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수가 있나요? 빈도의 차이일지언정 나도 알게 혹은 모르게 실수하고 잘못하긴 매한가지 입니다. 그래서 다같이 허물많은 중생들은 에지간 하면 서로가 서로를 덮어주고 용서하자는 것이지요.
또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들은 실질적인 이익을 봅니다.
왜냐하면 자기 내면의 평화가 쉽게 흔들리거나 깨지질 않으니까요. 게다가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면 상대방은 우리에게 미안한 느낌을 갖게 되지요. 설사 한번에는 아닐지라도 두번세번 그렇게 하다보면. 그래서 그런사람이 있는 곳에는 더큰 평화와 행복이 새로이 깃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오늘을 사는것은 서로에게 더좋은것 같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을 바로바로 심판하는 정신이 아니요, 오히려 그것을 잘못으로 보아 관계가 위기로 가게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사이가 좋아지는 새로운 창조의 기회로 삼는 자세이지요. 왜 위기를 찬스로 삼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렸을때부터 <어떻게 하든 너만 잘되라 >는 교육을 받아서인지 더불어 사는 질서나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매우 적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같이 고쳐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날 우리나라의 정치가 이렇게 어려운것도 정치인들의 습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아닌 그반대의 <네가 그러니까 나도>의 정신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는 내가 변할때입니다.
네가 잘못했을때 그잘못을 재빨리보는 <나>부터 참회를 해야 합니다.
진득하게 그걸 그냥 덮어두고 지나가면 상대도 느끼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혹 상대가 안느끼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상대의 그런일에 마음이 흔들리는 불행한 일이 일상속에서 더 생겨나지 않는것도 아주 좋은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생각은 이리 해봅니다만 실제로 잘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큰아이가 재수에도 대학입시에 실패하여 집안이 우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저녁도 웃으면서 들어가려고 합니다.
<야! 대학입시가 인생의 전부냐? 중국집을 해도 저만 행복하면 된다.>라고 말하면서요.
이말만큼 제게 있어 살아오면서 큰도움이 된말도 드믄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것이 가까운 사람들이 내기대나 신뢰를 배신했을때입니다. 그가 응당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건만 그는 그반대로 혹은 엉뚱하게 반응할때 우리들은 많은 실망과 분노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제가 인생속에서 보다더 많은 만남을 접하게 되면서 저는 제가 가진 기대나 신뢰라는것이 사실은 내가 내속에서 만들어가진 하나의 타인에 대한 개인적인 채점기준이요,틀이자 요구사항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다른 일반인들이라도 그렇게 기대하고 그렇게 생각할만한 상식적인 것이지요. 그것은 도덕이라든가 의리라든가 혹은 인품이라고 불릴만한 그런것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진리는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것들이 우리를 얽어매고 우리는 그것들에의해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언행을 그기준으로 평가하게 됨으로서 우리는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간에 시비분별과 분쟁에 곧잘 휘말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저는 그런기준들이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군림하며 가지고 노는 상태에서 벗어나기로 작심했습니다. 그렇지않으면 나는 죽을때까지 이세상사람들의 잘못된 행위에의해 하루종일 분노나 기분나쁨의 상태를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것은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있어서 큰장애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있어서 제게 가장큰 도움을 주었던 말이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사실 예수님역시 우리 인간들이 그를 배신하고 그에게 돌을 던지고 마침내는 그를 죽이기까지 했지마는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것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게 거창하게 말할것도 없습니다.
생활속에 작은 일들로부터도 이원칙은 그진가를 발휘합니다.
이유없이 아내가 짜증을 내고 이유없이 친구가 화를 냅니다.
아침 헬스클럽에서 다른사람이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공중질서를 무시하는 행동을 합니다.
이런일들에 다 일일이 반응할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내면의 평화로운 기운을 흩트리게 하고 깨지게 하므로 우리자신에게도 안좋습니다. 이때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이 활약할때가 아닌가합니다.
사실 그런것을 비판의 시선으로 바라다 보는 우리는 그럼 그와유사한 잘못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수가 있나요? 빈도의 차이일지언정 나도 알게 혹은 모르게 실수하고 잘못하긴 매한가지 입니다. 그래서 다같이 허물많은 중생들은 에지간 하면 서로가 서로를 덮어주고 용서하자는 것이지요.
또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들은 실질적인 이익을 봅니다.
왜냐하면 자기 내면의 평화가 쉽게 흔들리거나 깨지질 않으니까요. 게다가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면 상대방은 우리에게 미안한 느낌을 갖게 되지요. 설사 한번에는 아닐지라도 두번세번 그렇게 하다보면. 그래서 그런사람이 있는 곳에는 더큰 평화와 행복이 새로이 깃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오늘을 사는것은 서로에게 더좋은것 같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을 바로바로 심판하는 정신이 아니요, 오히려 그것을 잘못으로 보아 관계가 위기로 가게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사이가 좋아지는 새로운 창조의 기회로 삼는 자세이지요. 왜 위기를 찬스로 삼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렸을때부터 <어떻게 하든 너만 잘되라 >는 교육을 받아서인지 더불어 사는 질서나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매우 적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같이 고쳐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날 우리나라의 정치가 이렇게 어려운것도 정치인들의 습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아닌 그반대의 <네가 그러니까 나도>의 정신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는 내가 변할때입니다.
네가 잘못했을때 그잘못을 재빨리보는 <나>부터 참회를 해야 합니다.
진득하게 그걸 그냥 덮어두고 지나가면 상대도 느끼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혹 상대가 안느끼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상대의 그런일에 마음이 흔들리는 불행한 일이 일상속에서 더 생겨나지 않는것도 아주 좋은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생각은 이리 해봅니다만 실제로 잘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큰아이가 재수에도 대학입시에 실패하여 집안이 우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저녁도 웃으면서 들어가려고 합니다.
<야! 대학입시가 인생의 전부냐? 중국집을 해도 저만 행복하면 된다.>라고 말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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