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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는 라면만큼 괜찮은 사람이냐 (탁발행자)
지난 토요일 휘공 정기 산행때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 먹었던 라면 생각이 나서 함 옮겨 봤네요

1. 너는 라면만큼 자기 값을 싸게 매기는 사람이냐
너는 희망소매가격이 500원인 안성탕면보다 더 귀한 존재인가. 늘 음식계의 바닥을 낮은 포복하며 빈한한 자의 요기와 국물이 되어주는 그 성자의 길을 가면서도, 자기에 대해서 그토록 낮추는 바로 그런 사람인가.

2. 너는 라면만큼 가난한 사람이냐
라면은 스프 한 두 봉지 외엔 딸린 식구가 없다. 그 스스로의 몸 또한 최소한의 뼈대만 유지한다. 그렇게 가볍고 단촐해야 슈퍼마켓을 전전하는데 부대낌이 없다. 얇은 비닐조각의 보온과 차단막에 의존하여 집과 옷을 해결하는 저 소박과 무욕을 갖춘 그처럼, 너도 그런 사람인가.

3. 너는 라면만큼 뜨거운 적이 있는가
바로 안도현 멘트이다. 라면은 생애에서 딱 두번 뜨거워진다. 몸을 만들 때가 처음이고, 그 다음 누군가의 젓가락에 걸쳐지기 직전이 그 두번째다. 너는 누군가의 밥이 되기 위해 누군가의 굶주림과 한기를 털어주기 위해 스스로 뜨거워진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너는 무엇에 뜨거웠던가. 너는 오직 한번 뜨거워지기 위하여 긴 기다림의 생을 사는 라면만큼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었느냐.

4. 너는 라면만큼 흔하며 라면만큼 요긴한 사람인가
이 땅의 시골 어느 구멍가게에서도 너는 먼지쌓인 비닐 속에 들어있을 음식이다. 너는 네 존재의 고유함과 빼어남을 주장하지 않으며 세상에 나뒹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너는 어떤 사람이든 네가 필요한 누군가의 손에 닿는 곳에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가 너를 집을 때 너는 그에게 가장 긴요한 존재이다. 너는 그의 피와 살이 되겠고 그의 생명의 일부가 되리라. 그렇지만, 그걸 자랑삼지 않고 그걸 고집하지도 않으며, 그저 그의 손길이 닿기 만을 기다린다.

5. 너는 라면만큼 잘 참고 평화로운 무표정을 유지하는 사람이냐
30년 라면만 먹은 사람이 어느날 아침 고꾸라져 죽었다는 이야기나, 라면 기름이 짐승도 못먹을 더러운 것이라는 뉴스나, 혹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에 대한 온갖 경멸의 말들까지도 너는 못들은 듯 참아낸다. 욕설을 견디며 비난을 감수한다. 옥생각을 품는 일이 없다. 오히려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 앞에 반색을 하며 너는 옷을 벗어준다. 너는 평화로우며 고요하다. 너의 몸 속에는 인간이 상찬하는 건강의 비결이 들어있는 건 아니지만, 네게는 목숨의 위기를 건너가게 해주는 신의 손길이 숨어 있다. 사람이여, 너는 라면만큼 견뎠느냐. 한 번의 좋은 쓰임을 위해 네 얼굴에 뱉어지는 침을 고요히 말렸느냐.

6. 너는 라면만큼 뒤끝이 깨끗한 사람이냐
먹고 난 뒤에 봉지 하나와 작은 부스러기 몇 밖에 남지않는 그 철저한 빈 그릇. 떠나야하는 때를 알고 떠나는 바로 그 깨끗한 별리의 존재. 누군가에게 포식과 쾌락을 안겨주는 게 아니라 가볍게 스쳐간 듯, 그러나 실은 좋이 한 끼를 베풀어준, 그런 '바램 없는' 은혜의 손길. 너는 라면만큼 가볍고 깨끗하게 떠나는 사람이냐.

7. 너는 라면만큼 그리운 사람이냐
외국에 가서 좋은 음식 실컷 먹은 뒤 드디어 물리기 시작했을 때, 문득 생각나는 붉은 국물, 꼬부랑 면발. 후루룩 쩝쩝 그 소리로 시작되는 그리움. 너는 라면만큼 그리운 사람이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잠깐 없고 보니, 그게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바로 그런 존재. 너는 라면만큼 빈자리가 느껴지는 사람이냐. 너는 라면만한 존재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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