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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들 나이를 생각함(삽질한 글) (백운학)
<사춘기>란 말을 뜯어보는 일은 뜻밖에 어떤 통찰을 가져다준다.
왜 하필 사춘(思春)일까? 몸도 마음도 풀잎처럼 싱싱하고
꽃잎처럼 화사하여 그대로가 봄일 터인데 왜 그냥 봄이라고 하지 않고
봄을 생각함이란 표현을 달았을까? 봄을 품음(抱春)이나 봄이 됨(化春)이나
봄을 잡음(把春)이나 봄을 사랑함(愛春)이나 봄을 찬미함(讚春)이나
봄에 들어감(入春)이나 봄에 서있음(立春)이 아니라
밋밋하게 그저 봄을 생각함일까?

아직 봄이 아닌데 봄을 생각함.
이것은 몸과 마음의 어떤 시차를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몸이 변하는 시기, 마음은 어떤 낯선 꿈을 꾼다.
여기가 어딜까? 한번도 와보지 못한 곳인데?
아늑하고 황홀하여 깨기 싫은 꿈이네?
몸은 이제 준비를 하고 있건만 마음은 벌써 거기에 도달해있다.
이 생각과 몸의 차이들이 빚어내는 서먹한 불화,
지독한 낯설음, 그것이 사춘기의 한 특징이다.
이때는 몸의 나이와 마음의 나이가 서로 다르다.
마음이 앞서 있다. 물론 사려분별이나 정신적 성숙이 갖춰진 마음은
아니다. 그저 성적인 욕망의 크기, 그리고 삶을 한시 빨리
향유하고자 하는 조급함이 빚어내는 마음의 갈급증(渴急症)이다.
이 마음이 사고치기 딱 알맞게 만들어준다.
아직 여물지 못한 몸과 그 몸의 미숙에 머물러있는 인격 사이에,
갑자기 툭 튀어오른 욕망의 마음.그것이 사춘기의 요약이다.
사춘(思春)은 아직 봄이 아니다. 그 봄의 예감으로 가득찬,
마음이 벌써 따뜻하게 달아올라있는 기다림의 상태이다.
사춘은 청춘의 집행유예,그러나 탈주를 꿈꾸는
반항끼 가득한 마음의 내연(內燃)이다.

사추기(思秋期)는 사춘기란 말의 변주이리라.
이를 테면 9월 초순같은 시절이다.
아직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여전히 여름이긴 하지만
달력은 이미 가을 풍경화 하나를 그려내고 있다.
사춘이 성급한 고개듬이라면 사추는 성급한 고개숙임이다.
상승 만이 있던,갈 수록 힘차고 희망찬 일 만이 있던
인생의 오르막길이 그 꼭지점을 접는 시기이다.
놀랍다. 내게도 이런 날이 온다니...
이제 죽음을 향한 하강 만이 내게 기다리고 있구나하는
섣부른 절망이 마음의 한 귀퉁이에 젖어오는 물기처럼
묵직하게 축축하다.
사춘의 급상승이 주던 어색함과 낯설음처럼
사추의 하강도 어색하고 낯설다. 그것이 사고치기
딱 알맞은 기분으로 데려다 준다.
피서를 떠나기에는 너무 어색하고
그렇다고 만산홍엽이 손짓하는 날들도 아닌,
무늬만 가을인 9월 어느 아침.
문득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밀려오면서
지독히 쉬고싶은 마음, 세상에서 잠시 꺼져버리고 싶은
깊은 절망같은 고독감이 내부에서 미슬미슬 일어나는
날들이다. 허리가 괜히 찌부드드해 기지개를 펴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도 이제 한물 가기 시작하나?

갑자기 봉긋 솟아오르기
시작한 가슴, 거뭇거뭇한 하초(下草),그리고 굵직해지고
쉰 쇳소리로 바뀌는 변성(變聲), 그리고 코밑에 돋아나는
수염, 무엇보다도 아침마다 불편하면서 황홀해지기 시작하는
아랫도리의 신기(晨起) 등이 화려한 사춘기의 징후들이라면
사추기는 별 다른 특징이 없다. 불편하던 아침이
좀 덜 불편해지면서 잠이 부쩍 줄어드는 것 외엔
그저 내면의 강습하는 공허감 밖엔 이렇다할
특징이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神)은 한창 잘나가는 시절에 대한 홍보는 열심히 했지만,
이제 한풀 꺾이는 시절에 대한 예고편은 무척 간결하고
은근하게 어물쩍 해버리고 만다.인간의 상심과 절망의 기분을
배려했을까? 별 것 아냐, 하는 기분으로 슬쩍 지천명(知天命)
-天命之謂性(중용:천리와 인성은 같은 것이라서 하늘의 이치를 알면
인성을 알게 되고 인성을 알면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의
나이를 쥐어준다. 별 것 아냐, 가만히 따라서 반복해본다.

사춘이 아직 몸의 미숙이었듯이,
사추 또한 아직 몸의 상태는 쓸 만하다.
크게 고장난 부분도 없고, 급속한 욕망의 감퇴도 없다.
낮도 밤도 아직은 괜찮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없다는 아니다.
무엇인가 쓸쓸한 거대한 암벽같은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예감이 삶의 꼭지점에 선 자를 고독하고 우울하게 한다.
어쩌면 고장이 자주 나기 시작하는 자동차처럼
어디를 달려도 불안한,늘 폐차를 생각하면서 순간순간
먹먹한 삶을 이어가는 그 나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나이를 먹는, 아아 사추(思秋).

양희은의 <사랑,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나이> 즉 사추기의 쓸쓸병(病)을 울부짖고
있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모든 것도 끝나...그 노랫말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없는 나이,
그 무기력증의 연륜이 찍어내는 정신 공황, 그 섬세한 울림이
가슴을 에인다. 내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추억을 파먹고 사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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