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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앙일보"남기고 싶은 이야기들-문단여걸 손소희"를 읽고 (문학도)
26살인가 27살인가 기억되는데 자유업(무직선생)에 종사하고 독학으로 스스로 무상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하던 본 문학도는 이상의 "오감도"에 대한 자문(?)도 구할 겸 사당동(?) 김동리선생댁을 찾아갔었다.
그때는 스스로 문학에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여 국민대학의 장백일교수님, 걸레스님 중광, 김남조선생님, 서정주선생님 등은 물론 그리고 김동리선생님께도 찾아갔던 것이었다. 지금은 신기한 것이 어떻게 댁을 찾아갔을까? 싶고 나의 후안무치에 웃음도 나온다. 어떤 선생님의 댁에서는 2박을 한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죄송하고 참으로 좋은 시절이란 생각도 든다. 김남조, 장백일 2분의 선생님만 생존해 계시다.다시 본류로 돌아가서 김동리선생님댁의 초인종을 누르자 손소희여사님이 나오셨는데(당시에는 몰랐었음) 머리는 봉두난발이고 부시시했다고 기억된다. 선생님을 뵈러왔다 하자 몰골과 의복이 수상한 청년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따뜻하게 맞아주셨었다. 김동리선생님을 뵙고(나중에야 알았는데 그 당시 선생님께서는 중앙대 예술대학장을 지내셨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본 문학도는 일갈하여 선생님! 이상의 오감도에서 "뚫린 골목"은 뚫린 것입니까? 막힌 것입니까? 하자 선생님께서는 "절망야, 절망 - 불쌍해" 하셨다.
손소희선생님께서는 부군되시는 김동리선생님께서 중앙대학으로 갈 시간이라며 더 질문할 것이 있으면
차에서 물어보라는 말씀을 하셔서 밖에 대기하고 있는 차가 있길래 내가 상석(나는 그때 상석이 운전석 옆이고 내가 타려하는 상석이 상석인 줄 몰랐었음) 에 타려하자 손선생님께서 거기는 선생님이 앉으실 자리니 더 들어가라 하시고는 차가 떠나자 손을 흔드셨다. 물론 김동리선생님께 하시는 행동이셨지만은 참으로 편하게 대해 주셔서 오늘날도 고마움을 금할 길이 없고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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