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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성자(惺惺子)와 단검 (최영철)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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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7 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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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 남명 조식선생은 그의 일상 중 몸에 지니고 다니던 두 가지 물건이 있었으니 그 하나는 성성자라 이름하는 방울이요 또 하나는 작은 단검이다.
曺植선생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조선시대의 학자(1501-72)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세상에 나오지 않고 두류산(지리산)의 산천재에서 성리학의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독특한 학문을 이룸.
조정에서 수차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퇴함. 저서에 남명집, 남명 학기, 파한 잡기 등이 있고 작품에 남명가, 왕롱가, 권선지로가 등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고 다만 해동가요, 청구영언에 시조 3수가 전함.
합천의 삼가에서 탄생한 조선중기의 성리학자로서 실천유학을 역설하였으며, 평생 산림에 은거하며 성리학을 연구하여 경과 의로 집약되는 독특한 학문을 이룩하여 사림의 종사로 추앙받았다.
선생은 평생동안 일체의 벼슬을 마다하고 선비정신에 바탕한 산림처사로서 민본주의 정치사상으로써 잘못된 국정을 과감히 비판하고, 절실명쾌한 대책을 제시하여 사림의 언로를 열었다. 또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여 실학의 비조로 꼽히며,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과, 정치, 학술계를 주도한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우리나라 교육사에 있어 가장 성공한 교육자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평생을 지리산과 함께 한 남명은 12번에 걸쳐 각각 다른 길로 지리산 종주를 하였으며 가족과 함께 지리산에서 은거했는데 그의 실천유학에 바탕 한 대쪽같은 선비정신은 당시 수렴청정을 풍자하며 명종이 하사한 벼슬에 대해 일패도지의 각오로 명종을 고아라고 지칭한 고사상소 등으로 확연히 알 수 있다. 남명의 이 정신은 조선시대의 여러 사화로 친척과 친구들이 부관참시 등 멸문지화를 당하는 가운데도 오히려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남명이 지리산의 옥류를 만나 읊은 노래는 산행의 피곤과 땀을 깨끗이 씻으며 만일 내 속에 티끌만큼의 더러움이 있다면 배를 갈라 이 물에 씻어 보내겠다는 내용으로 후학들에 의해 시비로 지리산에 남아있다.
그가 성성자와 단검을 소지한 이유는 옷에 달린 방울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내어 정신이 산란해짐을 깨우쳤으며 단검은 마음에 약간이라도 사욕이 일면 사정없이 베어 내겠다는 각오라고 한다.
시류에 따라 춤을 추면서도 칼을 남에게만 들이대며 자기는 의인인양 학문을 논하는 아류 식객들에게 귀중한 교훈이 되는 방울과 검이다.
曺植선생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조선시대의 학자(1501-72)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세상에 나오지 않고 두류산(지리산)의 산천재에서 성리학의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독특한 학문을 이룸.
조정에서 수차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퇴함. 저서에 남명집, 남명 학기, 파한 잡기 등이 있고 작품에 남명가, 왕롱가, 권선지로가 등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고 다만 해동가요, 청구영언에 시조 3수가 전함.
합천의 삼가에서 탄생한 조선중기의 성리학자로서 실천유학을 역설하였으며, 평생 산림에 은거하며 성리학을 연구하여 경과 의로 집약되는 독특한 학문을 이룩하여 사림의 종사로 추앙받았다.
선생은 평생동안 일체의 벼슬을 마다하고 선비정신에 바탕한 산림처사로서 민본주의 정치사상으로써 잘못된 국정을 과감히 비판하고, 절실명쾌한 대책을 제시하여 사림의 언로를 열었다. 또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여 실학의 비조로 꼽히며,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과, 정치, 학술계를 주도한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우리나라 교육사에 있어 가장 성공한 교육자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평생을 지리산과 함께 한 남명은 12번에 걸쳐 각각 다른 길로 지리산 종주를 하였으며 가족과 함께 지리산에서 은거했는데 그의 실천유학에 바탕 한 대쪽같은 선비정신은 당시 수렴청정을 풍자하며 명종이 하사한 벼슬에 대해 일패도지의 각오로 명종을 고아라고 지칭한 고사상소 등으로 확연히 알 수 있다. 남명의 이 정신은 조선시대의 여러 사화로 친척과 친구들이 부관참시 등 멸문지화를 당하는 가운데도 오히려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남명이 지리산의 옥류를 만나 읊은 노래는 산행의 피곤과 땀을 깨끗이 씻으며 만일 내 속에 티끌만큼의 더러움이 있다면 배를 갈라 이 물에 씻어 보내겠다는 내용으로 후학들에 의해 시비로 지리산에 남아있다.
그가 성성자와 단검을 소지한 이유는 옷에 달린 방울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내어 정신이 산란해짐을 깨우쳤으며 단검은 마음에 약간이라도 사욕이 일면 사정없이 베어 내겠다는 각오라고 한다.
시류에 따라 춤을 추면서도 칼을 남에게만 들이대며 자기는 의인인양 학문을 논하는 아류 식객들에게 귀중한 교훈이 되는 방울과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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