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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답변]역사의 현장에 서서 (머털도사)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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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22: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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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
『어제 저녁 "흰구름흘러가는곳"군의 나홀로 집에 시리즈에 의해 희중당 아이들 때 패싸움 자주 하던 장충체육관 앞 모 안가에서 "흰구름흘러가는곳"(운학), "철마는달리고싶다"(충로), "진돌이와춤을"(영철), "꺼진불도다시보자"(일붕), "청산리는살아있다"(기국) 군들이 번개같이 최근 국제정세의 심각함과 거기에 따른 경제 대책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자 모였다고 한다.』라고 문형타임즈 기자 양반이 리포팅을 했는데 아무리 친구 만나는게 좋고, 음식맛에 정신이 나갔다고는 해도 내가 보기에는 K,Y고딩들과 붙은 야그나 떠오르는 그런 무법천지 동네가 아니라니깐 그래
대한민국의 대표브랜드 기업 총수가 살며, 카지노의 대부로 한 때 명성이 자자한 그래서 이름도 "파라다이스"라고하는 회사의 총본산이 그 동네에 있으며 불교총림 사관학교도 있는
녹녹치 않은 곳인데.
조선조에는 어떤 곳이었는지 함 둘러보자구여
장충단 공원이 있는 신라호텔 옆 고갯마루길이 옛 버티고개다. 지금은 흔적 조차 없어졌지만 이 버티고개 마루턱에는 서울의 성곽 4소문 가운데 하나인 남소문(南小門)이 있었다. 이 남소문으로 인해 지금의 장충동 일대는 한때 남소동으로 불렸고 이곳에 병영이 있었으니 남소영(南小營)이다.
남소문 옆에는 조선시대 수도방위와 왕실 호위를 맡았던 어영청(御營廳)의 분영이 있었는데 바로 남소영이었다. 남소영은 건물만 194간에 이르고 영내에는 52간의 화약고가, 그리고 북쪽에는 137간의 남창(南倉)이 있었다.
수도경비를 맡았던 금위영 화약고도 남소문 부근에 있었다. 남소문 부근에 이러한 시설이 집결된 데는 도성방어의 요충지인데다가 교통이 좋아 한강진에서 곧바로 물자수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 장충동에서 버티고개로 통하는 장충단길 오른쪽에는 ‘장충단 공원’이 자리했다. 길과 공원, 동네 이름을 낳게 한 장충단은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乙未事變)때 순직한 충신과 열사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고종황제가 세운 초혼단(招魂壇)이었다.
옛 남소영 자리에 있던 사당은 6·25때 불타버리고 호텔신라 서쪽의 큰 길가에 있던 장충단비는 1969년 공원안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또 하나의 명물은 요즘 회자되는 드라마
"야인시대"의 어릴적 김두한과 떨거지들이 살았다는 수표교는 500년 넘게 청계천을 지키고 있다가 1959년 11월 청계천 복개공사 때 철거되어 세검정이 있는 신영동에 갔다가 1965년 지금의 장충단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한민국의 대표브랜드 기업 총수가 살며, 카지노의 대부로 한 때 명성이 자자한 그래서 이름도 "파라다이스"라고하는 회사의 총본산이 그 동네에 있으며 불교총림 사관학교도 있는
녹녹치 않은 곳인데.
조선조에는 어떤 곳이었는지 함 둘러보자구여
장충단 공원이 있는 신라호텔 옆 고갯마루길이 옛 버티고개다. 지금은 흔적 조차 없어졌지만 이 버티고개 마루턱에는 서울의 성곽 4소문 가운데 하나인 남소문(南小門)이 있었다. 이 남소문으로 인해 지금의 장충동 일대는 한때 남소동으로 불렸고 이곳에 병영이 있었으니 남소영(南小營)이다.
남소문 옆에는 조선시대 수도방위와 왕실 호위를 맡았던 어영청(御營廳)의 분영이 있었는데 바로 남소영이었다. 남소영은 건물만 194간에 이르고 영내에는 52간의 화약고가, 그리고 북쪽에는 137간의 남창(南倉)이 있었다.
수도경비를 맡았던 금위영 화약고도 남소문 부근에 있었다. 남소문 부근에 이러한 시설이 집결된 데는 도성방어의 요충지인데다가 교통이 좋아 한강진에서 곧바로 물자수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 장충동에서 버티고개로 통하는 장충단길 오른쪽에는 ‘장충단 공원’이 자리했다. 길과 공원, 동네 이름을 낳게 한 장충단은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乙未事變)때 순직한 충신과 열사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고종황제가 세운 초혼단(招魂壇)이었다.
옛 남소영 자리에 있던 사당은 6·25때 불타버리고 호텔신라 서쪽의 큰 길가에 있던 장충단비는 1969년 공원안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또 하나의 명물은 요즘 회자되는 드라마
"야인시대"의 어릴적 김두한과 떨거지들이 살았다는 수표교는 500년 넘게 청계천을 지키고 있다가 1959년 11월 청계천 복개공사 때 철거되어 세검정이 있는 신영동에 갔다가 1965년 지금의 장충단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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