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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크리 & 낮거리 (백운학)
영옥 성이 전날 우리홈피에 올려놓은 염려지 덕분으로 우리의 산행시간은 당초의 계획과는 거리가 먼 09:15이나 되어서야 도봉매표소로 향할 수가 있었는데 그게 다 8호태풍 나크리의 여파 때문이지 뭐 하여튼 휘공당 골수당원 4명(석길, 영옥, 기국, 나)은 우중 속으로 나아갔다. 지난 검단산 산행 때는 비를 맞아도 좋을 정도의 이슬비에 가까웠는데 이번에는 정도가 달라 행장들이 확연히 달라 있었다.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우산들을 모두 들고 가는 모습에서 아직은 경험과 준비부족의 순진함이 배어있어 그것도 좋아 보였다.



오늘 코스는 비도 오고 하니 가볍게 갔다 올 수 있도록 기국이가 녹야원 쪽으로 잡았다. 평소에도 이 곳은 등산객들이 없는 터였다. 그런데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조금은 으스스 한 기분이다. 그 기분은 녹야원의 대문을 들어서면서 한층 에스컬레이터 되어갔다. 옛 영화는 어디가고 퇴락한 한옥 건물 한 채만 을씨년스럽게 덩그러니 내팽개쳐져 있다. 오늘의 산행시작부터 내 머릿속에는 도덕경에 나오는 그 구절이 계속해서 되뇌어지는 건 어쩐 일 이다냐?



谷神不死(곡신불사), 계곡의 신은 죽지 않으니,

是謂玄牝(시위현빈) 이를 일컬어 가믈한 암컷이라 한다.

玄牝之門(현빈지문), 가믈한 암컷의 아랫문,

是謂天地根(시위천지근) 이를 일컬어 천지의 뿌리라 한다.

綿綿若存(면면약존), 면면히 이어져 있는 듯 하니,

用之不勤(용지불근)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




산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겸재 정선의 금강산 일만 이천봉을 그려놓은 진경산수에도 우뚝선 봉우리만 눈에 두드러지지만 실재는 봉우리사이에 구름이 걸려있는 보이지 않는 계곡의 기능과 아름다움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자태를 뽐내는 봉우리보다 감추고 있는 계곡이 더 본질적이고 근원적이고 본연적인 도의 모습이라고 노자는 생각하였단다.



정말 오늘 산행은 자궁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만장봉을 향해 올라가는 4인방은 운무속을 가다 바위위에 올라서면 산록 쪽으로 치솟아 올라오는 눅눅한 바람은 우리들로 하여금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양팔을 들고 바람을 향해 맞이하는 그런 포즈를 취할 수도 있었을텐데 뇨자가 옆에 없는 관계로 팔만 안들고 그렇게 바람을 맞았다. 비가 퍼붓는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머리위의 나무이파리에 떨어지는 소리며 저벅거리는 발밑의 신끄는 소리로 도봉의 골짜기라는 골짜기는 모두 앓는 소리[感唱]로 뒤덮인다. 그리고는 무수한 생명들이 그런 교감속에서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언제 나왔는지 버섯의 갓은 우산을 펼치듯 활짝 젖혀져 있다.



우리 일행은 다락능선을 통해 만장봉 근처에서 잠시 쉬며 이명박 시장의 무대포 행정감각을 평가하는 석길이의 노가다 패러디는 정말 일품이었다. 리플레이로 다시 보고 싶다. 서울시장 영옥이를 시키면 그보다 못할까? 그런 이야기도 했지. 기국이가 준 월드컵기념품인 금빛나는 호루라기를 하나씩 받아 목에 걸고는 거리가 떨어지면 그걸 불어 신호를 하면서 우리의 팀웍을 다졌다. 이런 일도 있다. 우리가 한참을 걷다 마주 오는 등산객들로부터 위치를 물어 물어 산행을 20여분을 했을까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이냐 그래! 출발한 장소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인간의 감각능력이란 그것밖에 안되나 보다. 하산을 하면서는 아래쪽부터 운무가 걷히기 시작하더니 밥솥을 열면 등천을 하는 김살처럼 초록의 소나무위를 설설기어간다.



무사히 도봉매표소까지 내려온 우리들은 섬진강가에다 솥을 걸고 메기+빠가살이 매운탕을 얼큰이 끓여 고픈 배를 달랬다. 나중에는 달래는 정도가 아니라 같이 퍼졌다. 그 와중에 규환이의 친구 좋아하는 어리광의 목소리도 전화속에서 들을 수 있었다. 기국이한테 꽁으로 얻어 먹어 더 맛이 있었지. 나크리 덕택에 낮거리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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