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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응규성의 설악 회상기(하) (백운학)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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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5 18: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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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앞편에 이어서 계속함다.
산행의 묘미는 하산길에 있다. 이게 시원챦으면 마눌한테 사랑 못받음. 잘하고도 꼭 뒷말은 안들어 본기여. 그럼 잘 하고 있다는 거야. 산 야그를 하다가 초장부터 스티커 발부받게 생겼구만. 이러면 야그가 너무 길어지니까. 이제 내려갑니다.
중청봉으로 내려 오며 나으 아날로그 사진기도 연신 셔터소리로 바쁘다.너덜길을 내려와 왼편의 아담한 중청대피소를 끼고 올려다 보는 레이더 사이트는 뽀오얀 초유로 감싸진 이쁜 유두입니다.
왼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끝청봉과 설악루(한계령 정상의 거무 티티한 전망대 뒷편의 언덕배기에 있는 정자)를 지나 서북능선을 타고 귀때기 청봉(1578m)을 거쳐 대승령(1210m)으로 나가는 길이란다.
어제 우리가 지나온 원통, 한계리, 장수대로 이어지는 한계령 루트중에 산악반 선배가 노래를 부르는 코스인 가리봉(1,519m)이 남쪽 하늘벽 넘어 삼형제봉과 주걱봉이 연해 있고, 루트 북사면으로는 대승폭포, 대승령, 12선녀탕계곡을 지나면 남교리로 나가게 된다.
응규가 30여년을 들락거린 설악의 자취를 밟을 수 있는 뒷 맛을 남겨두기로 하고, 오늘의 본류인 설악동을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돌아 소청으로 내려가야 한다. 아직은 그래도 물매가 완만하다. 소청봉(1550m)에 도착한다. 여기서 부터 희운각(喜雲閣)대피소까지는 1.3km로 짧은 거리이기는 하나 내리막이 장난이 아닐쎄 그랴.
응규의 옛 이야기를 듣는다. 바로 이 장면에서 제수씨 보면 응규성 죽슴다. 자세한 야그 못함다.?이랑 내려가다 그만 평상심을 잃어 발목인대가 끊겨 헬기까지 동원하려 했다는 전설같은 얘기가 전해옴다. 그 때 깁스를 않해서 여전히 걸음이 시원치 않지만 세월이 좋아서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와 발바닥에 깐 큐션같은 고가장비로 도배를 해 그냥 저냥 다닌다는 구먼.
내려오는 중간에 나무들이 하나 하나 잘 보인다. 하얀 꽃이 아직 지지않은 쪽동백과 함박 웃고있는 함박꽃과는 구분이 잘 안되네. 신갈나무, 청단풍, 오리나무며 하얀 허리를 드러낸 자작나무의 감촉은 너무 좋다. 스틱을 안가져 온 죄로 나무를 닥치는 대로 잡고 내려왔으니 그런게 있는줄 알지.
그렇게 희운각까지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고 앞길을 내주며 무사히 내려왔다. 대피소 천막밑에 자리를 하고 물도 마신다. 여기서 부터는 길이 한결 비단이다.
조금 앞으로 가면 무너미 고개에 다다른다. "무너미"라는 말은 분수령의 우리말이다. 훨씬 살가운 느낌이 들지 않는가? 좌측으로 흐르는 물줄기 는 북천을 이루어 북한강으로 합류되고, 오른 쪽으로는 설악동을 관통하는 쌍천이 되어 동해로 흘러 든다. 그 뿐만 아니고, 서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름만으로도 어여쁜 가야동계곡과 구곡담, 수렴동계곡에 다을 수 있다.
북으로는 공룡능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 했다. 자! 갈 길이 바쁘네. 왜냐? 내가 앞서 설램이 있다고 말한 천불동계곡 안으로 깊숙히 들어와 오련폭포를 만나면서 응규성의 회상은 다시 이어진다. 지금은 철제 계단으로 협곡을 지나니까 풍광만 즐기면 되지만 응규의 소싯적 산행은 자일로 고리에 걸어 목슴걸고 그 길을 건넜다는 야그다.
오련폭포가 만들어 놓은 다섯개의 못은 농담의 차이는 있지만 옥빛이다. 조금 안타까운 건 폭포의 하늘벽에서 떨어진 낙석이 담을 이룬 그 앞을 막아버렸다. 난 안타까운 마음에 중장비를 동원해서라도 치웠으면 했지만 인간의 얕은 소견인 것을...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모습이 되니까! 드디어 양폭산장앞에 이른다. 기념품가게 앞에서 응규가 부른다. 설악산 안내도가 그려진 손수건을 몇장 사서는 그 중 네게 한장 건낸다. 나머지는 응규가 마음쓰이는 친구에게 줄려나. 설악의 비경을 오롯이 담고 있는 천불동계곡을 뒤로 하며 아쉬움에 여전히 벌어진 입을 되돌려 놓는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귀면암을 지나 비선대에 이른다. 이곳부터는 외설악의 관광객들이 많이 올라 오는 곳이라 장터를 방불케 한다. 이쁜이집에서 탁배기 한잔으로 함께한 일행 4인의 산행을 오사마리 참 공식적인데서 이런 말 쓰면 좀 그러니까 대장정의 막을 내리련다. 에필로그 응규가 나보고 술안먹는다고 향내가 한발짝도 못간다고 뼈있는 소리를 했다. "꽃향기는 천리를 가고요(花香千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情香萬里)"고 했다.
향기나는 친구의 정을 듬뿍 안고 돌아왔습니다.
글고 함께 못한 친구들의 아쉬움을 풀어줄 사진 몇장을 "한국의 산하"에서 퍼왔슴다.
산행의 묘미는 하산길에 있다. 이게 시원챦으면 마눌한테 사랑 못받음. 잘하고도 꼭 뒷말은 안들어 본기여. 그럼 잘 하고 있다는 거야. 산 야그를 하다가 초장부터 스티커 발부받게 생겼구만. 이러면 야그가 너무 길어지니까. 이제 내려갑니다.
중청봉으로 내려 오며 나으 아날로그 사진기도 연신 셔터소리로 바쁘다.너덜길을 내려와 왼편의 아담한 중청대피소를 끼고 올려다 보는 레이더 사이트는 뽀오얀 초유로 감싸진 이쁜 유두입니다.
왼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끝청봉과 설악루(한계령 정상의 거무 티티한 전망대 뒷편의 언덕배기에 있는 정자)를 지나 서북능선을 타고 귀때기 청봉(1578m)을 거쳐 대승령(1210m)으로 나가는 길이란다.
어제 우리가 지나온 원통, 한계리, 장수대로 이어지는 한계령 루트중에 산악반 선배가 노래를 부르는 코스인 가리봉(1,519m)이 남쪽 하늘벽 넘어 삼형제봉과 주걱봉이 연해 있고, 루트 북사면으로는 대승폭포, 대승령, 12선녀탕계곡을 지나면 남교리로 나가게 된다.
응규가 30여년을 들락거린 설악의 자취를 밟을 수 있는 뒷 맛을 남겨두기로 하고, 오늘의 본류인 설악동을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돌아 소청으로 내려가야 한다. 아직은 그래도 물매가 완만하다. 소청봉(1550m)에 도착한다. 여기서 부터 희운각(喜雲閣)대피소까지는 1.3km로 짧은 거리이기는 하나 내리막이 장난이 아닐쎄 그랴.
응규의 옛 이야기를 듣는다. 바로 이 장면에서 제수씨 보면 응규성 죽슴다. 자세한 야그 못함다.?이랑 내려가다 그만 평상심을 잃어 발목인대가 끊겨 헬기까지 동원하려 했다는 전설같은 얘기가 전해옴다. 그 때 깁스를 않해서 여전히 걸음이 시원치 않지만 세월이 좋아서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와 발바닥에 깐 큐션같은 고가장비로 도배를 해 그냥 저냥 다닌다는 구먼.
내려오는 중간에 나무들이 하나 하나 잘 보인다. 하얀 꽃이 아직 지지않은 쪽동백과 함박 웃고있는 함박꽃과는 구분이 잘 안되네. 신갈나무, 청단풍, 오리나무며 하얀 허리를 드러낸 자작나무의 감촉은 너무 좋다. 스틱을 안가져 온 죄로 나무를 닥치는 대로 잡고 내려왔으니 그런게 있는줄 알지.
그렇게 희운각까지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고 앞길을 내주며 무사히 내려왔다. 대피소 천막밑에 자리를 하고 물도 마신다. 여기서 부터는 길이 한결 비단이다.
조금 앞으로 가면 무너미 고개에 다다른다. "무너미"라는 말은 분수령의 우리말이다. 훨씬 살가운 느낌이 들지 않는가? 좌측으로 흐르는 물줄기 는 북천을 이루어 북한강으로 합류되고, 오른 쪽으로는 설악동을 관통하는 쌍천이 되어 동해로 흘러 든다. 그 뿐만 아니고, 서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름만으로도 어여쁜 가야동계곡과 구곡담, 수렴동계곡에 다을 수 있다.
북으로는 공룡능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 했다. 자! 갈 길이 바쁘네. 왜냐? 내가 앞서 설램이 있다고 말한 천불동계곡 안으로 깊숙히 들어와 오련폭포를 만나면서 응규성의 회상은 다시 이어진다. 지금은 철제 계단으로 협곡을 지나니까 풍광만 즐기면 되지만 응규의 소싯적 산행은 자일로 고리에 걸어 목슴걸고 그 길을 건넜다는 야그다.
오련폭포가 만들어 놓은 다섯개의 못은 농담의 차이는 있지만 옥빛이다. 조금 안타까운 건 폭포의 하늘벽에서 떨어진 낙석이 담을 이룬 그 앞을 막아버렸다. 난 안타까운 마음에 중장비를 동원해서라도 치웠으면 했지만 인간의 얕은 소견인 것을...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모습이 되니까! 드디어 양폭산장앞에 이른다. 기념품가게 앞에서 응규가 부른다. 설악산 안내도가 그려진 손수건을 몇장 사서는 그 중 네게 한장 건낸다. 나머지는 응규가 마음쓰이는 친구에게 줄려나. 설악의 비경을 오롯이 담고 있는 천불동계곡을 뒤로 하며 아쉬움에 여전히 벌어진 입을 되돌려 놓는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귀면암을 지나 비선대에 이른다. 이곳부터는 외설악의 관광객들이 많이 올라 오는 곳이라 장터를 방불케 한다. 이쁜이집에서 탁배기 한잔으로 함께한 일행 4인의 산행을 오사마리 참 공식적인데서 이런 말 쓰면 좀 그러니까 대장정의 막을 내리련다. 에필로그 응규가 나보고 술안먹는다고 향내가 한발짝도 못간다고 뼈있는 소리를 했다. "꽃향기는 천리를 가고요(花香千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情香萬里)"고 했다.
향기나는 친구의 정을 듬뿍 안고 돌아왔습니다.
글고 함께 못한 친구들의 아쉬움을 풀어줄 사진 몇장을 "한국의 산하"에서 퍼왔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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