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ston Churchil(윈스턴 처칠)

“I am bored with it all." "나는 모두가 지겹네.”
윈스턴 처칠은 이 말을 한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몇 일 후 사망했다고 합니다.
몸이 너무 아파서 한 말인가요? 아니면 영욕(榮辱)으로 점철된 살아 온 세월에
지쳐서 일까요? 이 글(명사들이 마지막 남긴 말)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은
죽기 전에 느끼고 하는 말이 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생김새도 다르듯이
죽음 앞에서 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다 다른 것 것 같습니다.
20세기 영국이 낳은 영웅 처칠은 1874년에 태어나서 1965년에 별세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말보로 후작가문을 이어온 귀족으로 재무상을 지낸
정치인이었습니다. 어머니 제니 제롬은 뉴욕에서 태어난 미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국의 재력가로서 딸을 영국의 귀족에게 시집 보내면서
신분상승을 기대하는 것이고 말보로 후작 쪽은 고성이나 장원 등을 유지하는데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미국 거부의 딸을 맞아들여 쪼들리는 금전적 형편을
면하게 되는 것을 기대하는 일종의 정략결혼이었습니다.
미국 신흥 부자들이 영국의 가난한 귀족들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 당시
유행이었습니다. 영국 귀족들은 지참금을 갖고 온 며느리로 하여 가난에서
벗어나고 미국부자들은 영국 귀족 집안과 사돈을 맺어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는 소위 윈윈(win win) 게임을 즐긴 것이지요.
젊어서 그는 청년 장교로 인도로 남아공으로 참전도 하였고 50년 정치 경력
초기에 해군 장관도 지내고 1차 세계 대전 중에는 다다넬스 해협을 장악하기
위하여 갈리폴리(터키의 유럽 쪽에 있는 지명이름)를 점령하려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불 연합군을 전선으로 계속 투입하고도 패퇴하고
말았습니다. 연합군 전사자만 약 50,000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처칠은 이 패전의 책임을 지고 해군장관을 사직합니다.
그는 전후 재무장관을 1920년부터 1925년까지 지냅니다.
그는 무슨 문제든지 강경책으로 일관하다가 선거에서도 패배하고
11년을 야인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이제 그는 잊혀진 정치인에 불과 했는데 훗날
그는 이때를 ‘황야에 버려진 세월’이라고 했습니다. 그를 지탱해준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고 합니다.
1930년대 중반부터 그는 독일의 나치의 팽창을경계하고 이에 대비해야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군비강화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영국 조야는
1차 대전의 악몽의 뒤 끝에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이어서
히틀러를 달래기에 급급했습니다. 특히 수상 쳄벌린은 히틀러에게 양보를 거듭하다
나중에는 체코를 히틀러에게 주고 서 ‘이제 전쟁은 없을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1939년 9월 1일 히틀러는 폴랜드를 침공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마지못해 선전포고를 하게 됩니다. 회유책만 쓰다가 일을 그르친 챔벌린이
물러나고 처칠이 수상이 되어 전쟁 수행을 해야 했습니다. 대륙에서 참패하고
몸만 빠져나온 30만 대군에게 소총도 제대로 배당이 안 되었으니 대공포며 전차
등 중화기는 거의 없어서 미국에서 차관으로 빌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피와
땀과 눈물로 영국을 지키자.’고 한 수상에게 영국 국민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이어서 미국의 참전과 전세의 역전으로 연합군은 1944년 5월에 나치
정부의 항복을 받아냅니다.
노벨 문학상을 탄 최초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2002년 여론 조사에서 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뽑혔습니다. 그는 ‘철의 장막’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전에 앞뒤가 있듯이 처칠이 위대하지만 항상 옳은 일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전쟁 때 맥아더 장군이 트루만 대통령에게 중공군의 개입을 중단하기
위하여 만주에 원폭을 투하하자는 건의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워싱톤으로
날아가 트루만에게 투하하지 말라고 극력만류한 사람이 처칠이었습니다.
전술한 바 있는 갈리폴리 전투의 패배와 희생에 대한 책임.
그리고 인도가 아직 영국 식민지 였을 때 영국당국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약
300만 명의 인도인이 굶어 죽어 부하들이 정책을 바꾸어 굶는 사람들을
살리자고 했을 때 그는 퉁명스럽게, “굶는 것은 인도사람들 책임이야. 애를
낳아도 토끼처럼 낳아서 그렇지.”
식민지 케냐에서 독립운동을 한다고 한꺼번에 15만 명을 수용소에 가두어 둔
적도 있습니다.
“나는 독가스를 쓴다고 메스꺼워하는 것을 이해 할 수가 없소.
나는 야만인에게 독가스 쓰는 것은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인도는 신이 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땅이예요.”
그는 전쟁에서 이긴 위대한 영웅인데 다른 한 편으로는 인종주의자이고
제국주의자였습니다. 처칠은 영국 사람이나 소수의 백인 빼고
민주주의를 한다는 것을 무척 혐오했습니다.
그는 중동에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일을 했습니다; 그는 지도상에 자로 금을
그어 이라크를 발명했고 그가 식민지 장관이었을 때 ‘약속의 땅’을 유대인에게도
팔레스타인인들 모두에게 준다고 약속하여 오늘의 불행을 초래케 하였습니다.
젊어서부터 다변에 달변에 거짓말도 잘하여 동료들에게 혐오감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운 전쟁기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탄 것은 너무나
부럽습니다. 돈을 퍼붓고 갖은 쇼를 다하면서 나라의 안보를 위태롭게 까지 하며
평화상을 탄 사람에 비하면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는 195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를 위하여 국장을 치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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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경의 뛰어난 유머

윈스턴 처칠 경 (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년 11월 30일 ~ 1965년 1월 23일)
영국의 전 총리(2회), 노벨 문학상 수상자, 작가.
20세기 영국 정치사에서 유일한 귀족 혈통의 총리.
160cm를 겨우 넘는 단신에 뚱뚱한 대머리.
그리고 일그러진 인상에 등은 굽어있고, 목은 거의 안보이며
입술은 너무 얇아 없는 듯 보였다.
나비넥타이, 시거는 그의 상징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시거를 피지 않고,
언론이 사진을 찍을 때만 시거를 입에 물어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2002년 BBC에서 설문조사한 가장 위대한 영국인 중에
세익스피어, 뉴턴, 엘리자베스 1세를 뛰어넘는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되었다.
욕이었던 V자를 빅토리의 의미로 만들어낸 처칠
<뛰어난 유머감각의 소유자>
그는 본래 사치를 하며 고급스러운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가 귀족이었고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명망높은 귀족가문의 자제였지만 유산은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도 낙제할 수준의 처칠은 후에는 노벨문! 학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작가였기에, 그 인세로 생활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의 유머감각은, 웃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신의 주관과 오랜 독서의 산물이기도 했다.
1. 처칠의 교수형
미국을 방문한 처칠에게 한 여인이 질문을 던졌다.
"연설할 때마다 사람들이 자리가 미어 터지게 모여드니
기분이 정말 짜릿하시겠어요?"
처칠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물론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정치연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형을 당하는 것이라면 지금보다
최소한 2배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란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2. 윈스턴 처칠 불독
어느날 처칠의 비서가 일간신문을 들고 돌아와
처칠 앞에서 그 신문사를 맹 비난했다.
처칠을 시거를 문 불독으로 묘사한 만평을 실었기 때문이다.
처칠은 신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기가 막히게 그렸군.. 벽에 있는 내 초상화보다 훨씬 나를 닮았어.
당장 초상화를 떼어버리고 이 그림을 오려 붙이도록 하게."
3. 윈스턴 처칠 경은 알아도 얼굴은 몰라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세계의 결속을 모으는 연설을 하러
방송국에 가야 했던 처칠.
택시를 잡았다.
"BBC 방송국으로 갑시다."
운전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오늘 저는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 없습니다.
한시간 후에 방송되는 윈스턴 처칠 경의 연설을 들어야 하거든요."
이 말에 기분이 좋아진 처칠이
1파운드짜리 지폐를 꺼내 운전수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자 운전수는 처칠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타십시오 손님.
처칠이고 뭐고 우선 돈부터 벌고 봐야겠습니다."
."그럽시다 까짓 것!"
4. 난감한 노출 상황
2차 대전 초기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으로 건너간 처칠.
숙소인 호텔에서 목욕을 한 뒤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는데
갑자기 루즈벨트 대통령이 나타났다.
그때 공교롭게도 허리에 감고 있던 수건이 스르르 내려갔다.
정장의 루즈벨트를 향해 처칠은 어색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전환 시킨다.
양팔을 넓게 벌리며
"보시다시피 영국은
미국과 미국 대통령에게 아무 것도 감추는 것이 없습니다."
5. 마누라가 예뻐(1)
처칠이 처음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
처칠의 상대후보는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처칠은 늦잠꾸러기라고 합니다.
저렇게 게으른 사람을 의회에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처칠은 아무렇지 않게 응수했다.
"여러분도 나처럼 예쁜 마누라를 데리고 산다면
아침에 결코 일찍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연설장은 폭소가 터졌다고 한다.
6. 마누라가 예뻐(2)
5번의 유머는 총리가 되고도 한 번 더 쓰였는데
국회에 늦은 처칠은 늦어서 미안하다면서 같은 유머를 사용했다.
단지 이번에는 발전해 추가되는 게 있었으니
"그래서 앞으로는 회의가 있는 전날에는 각 방을 쓸 생각입니다."
7. 화장실 유머(1)
대기업 국유화를 놓고 치열한 설전을 벌이던 의회가
잠시 정회된 사이 처칠이 화장실에 들렀다.
의원들로 만원이 된 화장실에는 빈자리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국유화를 강력히 주장하는 노동당의 당수,
애틀리의 옆자리였다.
하지만 처칠은 다른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를 본 애틀리가 물었다.
"제 옆에 빈자리가 있는 왜 거길 안 쓰는 거요?
혹시 저한테뭐 불쾌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처칠이 말했다.
"천만에요. 괜히 겁이 나서 그럽니다.
당신은 뭐든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주장하는데,
혹시 제것을 보고 국유화 하자고 달려들면 큰 일 아닙니까?"
8. 나도 나이가....
처칠이 정계에서 은퇴한 후,
80이 넘어 한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처칠의 젊은 시절 유머감각을 기억하는 한 부인이
짖궂은 질문을 한다.
"어머 총리님. 남대문이 열렸어요."
일제히 시선이 처칠에게로 향했지만
처칠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인.
이미 '죽은 새'는 새장 문이 열렸다고 해서
밖으로 나올 수 없으니까요."
9. 죽음도 두렵지 않다!
영국 의회 사상 첫 여성 의원이 된 에스터 부인.
하지만 처칠과는 매우 적대적인 관계였다
(처칠은 여성의 참정권을 반대했다).
"내가 만약 당신의 아내라면 서슴치 않고
당신이 마실 커피에 독을 타겠어요."
처칠은 태연히 대답한다.
"내가 만약 당신의 남편이라면 서슴치 않고 그 커피를 마시겠소.
10. 왕따 처칠
영국이 나은 세계적인 극작가, 버나드 쇼가 처칠에게
연극표 두장을 건네며 말했다.
"제 연극에 초대합니다.
혹시라도 동행하실 친구분이 계시다면 함께 오십시오."
처칠은 동행할 친구조차 하나 없은 외톨이라는 점을 비꼰 것이다.
처칠이 응수했다.
"첫날은 바쁜 사정으로 어려우니 다음날 가지요.
연극이 하루만에 끝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11. 부인 그건 신성모독입니다
한 미모의 여성이 공화당의 남부재건정책을 반대한 사실을 들어
"처칠 의원님! 지금 의원님 앞에
재건(Reconstructed)을 반대한 사람이 있습니다!"
라며 처칠의 반응을 살폈다.
처칠은 깊게 팬 그의 가슴을 힐끔 쳐다본 뒤 말했다.
"부인! 부인께서 재건(Reconstruction 유방재건수술)하신다면
그것은 신성모독행위가 될 것 같습니다!
12. 다시 한번 넘어지겠습니다!
처칠은 연단 위에 오르려다 넘어져 청중들이 웃자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제가 넘어져 국민이 즐겁게 웃을 수 있다면,
다시 한번 넘어지겠습니다!"
13. 화장실 유머(2)
1940년 첫 임기가 시작되는 날,
연설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데
그곳의 직원들은 처칠의 모습에 당황했다.
만세를 하듯 벽에 두 팔을 붙이고 볼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처칠에게 묻자 처칠이 말했다
"의사가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고 해서."
14. 난 괜찮은 사람...
몽고메리 장군은 북아프리카에서 제 8군을 지휘할 시절 처칠에게
독일군에 대한 공세를 빨리 취하라는 열화같은 독촉 때문에
처칠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처칠을 만났을 대 이런 농담을 했다.
"저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100%로 괜찮은 사람입니다."
처칠이 넉살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술과 담배를 하는 200%로 괜찮은 사람입니다.
15. 저작권은?
미국을 여행하던 중에 할리우드에서
찰리 채플린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처칠은 채플린에게 다음에는 어떤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지 물었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플린은
"예수 그리스도 역활을 하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처칠은 그에 되물었다.
"저작권은 확보해 두셨습니까?"
16. 시거를 즐겼던 처칠
옥스퍼드 대학의 졸업 축사를 하게 된 처칠
비장한 각오로 담배를 문 채 나온 처칠에게 환호성이 쏟아진다.
작은 목소리로 처칠이 말했다
"포기하지 마라! You, never give up!"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You! never give up!"
그리고 강단에서 내려왔다.
처칠의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한 연설이다.
우리는 모두 벌레처럼 하찮은 존재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벌레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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