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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서 밀러(Auther Miller)와 “세일즈 맨의 죽음”

 

아서 밀러(Auther Miller)와 “세일즈 맨의 죽음”

 

“Life, woman, life is God's most precious gift; no principle,

however glorious, may justify the taking of it.”


“여인이어, 생은 하나님의 가장 고귀한 선물이요; 아무리

영광스런 원칙도 생명을 빼앗는 것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오.”

 

밀러의 마지막 말을 찾을 수 없어 그의 어록을 올렸습니다.

그의 이 말을 읽으면 각종 종교의 근본주의를 연상하게 됩니다.

그 근본주의가 생명을 초개와 같이 여기는 “영광스런 원칙”이 되어

자살특공대가 되고 이라크에서 준동하는 ISIS 과격분자들이 외국인들을 참수하고

있습니다. 밀러가 위와 같은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제 나름대로 해석 한 것입니다.

 

밀러(1915-2005):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극작가 수필가

그는 유명한 ‘세일즈맨의 죽음’ 및 ‘나의 아들들’ ‘작은 방’등 희곡을 썼습니다.

이들 희곡들로 하여 그는 퓰리쳐 상을 수상하였고 영화배우 마릴린 몬로 와도

결흔 했습니다.

 

그는 뉴욕 맨허튼의 할렘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유태인이고

아버지는 커다란 방직공장을 운영했습니다. 1929년 대 공항을 만나

아버지 사업이 도산하여 10대의 밀러는 매일 아침 빵 배달을 하였습니다.

미시건 대학을 막일을 하면서 간신히 졸업했습니다. 대학 재학중 “악당은

없다”라는 희곡으로 상을 타면서 촉망받는 젊은 극작가로 인정 받습니다.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그는 해군에 근무하면서 방송극도 썼습니다.

1940년 매리 슬래터리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가집니다. 무릎부상으로 병역은

면제받았습니다. 1946년 “나의 아들들”로 토니 상을 수상합니다. 1948년

“세일즈맨의 죽음”을 발표합니다.

 

1956년 밀러는 부인과 이혼하고 마릴린 몬로와 결혼합니다.

이들은 1951년에 만나 정사를 나누다가 5년 만에 결합한 것입니다.

1956년 세기의 지성과 세기의 미모의 결합이라고 하였는데 마릴린은

무지몽매한 육체파 배우가 아니었습니다. IQ 150에 독서광으로 단단한

지성으로 무장한 지적인 미모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자본주의 쓰레기다.”

“섹스는 자연의 일부이다. 그래서 나는 자연과 사이좋게 지낸다.” “나는 누가

하이힐을 발명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여인들은 그에게 빚을 졌다.”

 

이렇게 촌철살인 할 것 같은 말들을 쏟아 내었습니다.

엘리자베쓰 테일러가 인형 같은 미인이라면

마리린 몬로는 두뇌가 꽉 찬 마네킹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또다시 이혼 합니다.

1961년 이혼 후 19개월 후 몬로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밀러는 사진사 모라쓰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가집니다.

모라쓰는 1962년에 별세합니다. 밀러는 미국 펜 클럽회장이 됩니다.

2004년 89세인 밀러는 34살 화가인 아그네스 발리와 동거한다고 발표합니다.

밀러가 사망하자마자 그녀의 딸 레베카가 발리를 내 쫓습니다.

그는 2005년 암, 폐렴 등으로 사망합니다.

펜 하나로 미국을 휩쓸었던 아써 밀러도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다음은
Death of a Salesman
(세일즈맨의 죽음)의 간략한 개관입니다.


* 윌리는 아내와 두 아들을 가진 가장으로 세일즈맨입니다.

젊어서는 그럭저럭 할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판매가 잘 되지 않아

회사에도 눈치를 보고 식구들 눈치도 보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가 꿈꾸던 “어메리컨 드림”이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각종 고지서며 자동차 월부금도 밀리기 시작하면서 윌리는 점점 위축됩니다.

 

결국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실적이 저조한 외판원 일생을 마감합니다.

장례식도 가족과 친구 한 둘이 참석한 초라한 것이 었습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의 장례는 어디서나 마찬가지 이군요.

 

이 작품은 1949년의 미국의 사회의 한 단면을 그려 대단한 문제작으로 부각되었는데

21세기를 사는 오늘 우리가 읽어도 전혀 진부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현실을 복사한 것 같습니다.

 

요즈음 한국의 아버지들이 얼마나 힘들고 마음이 무거운지는 겪어 본 사람들은 압니다.

한국에서 제 2 제 3의 세일즈맨들이 계속 무너지고 있습니다.

자살율 세계 1위라는 가슴 아픈 일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토요일 일요일 없이 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Korean dream”이 있었습니다.

몸은 고되도 3년 4년 고생하면 작은 아파트 한 채 장만할 수 있었고

진급도 빨랐고 다른 회사에 옮기기도 쉬웠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젊은이들은 토요일 일요일 월차 년차를 누리고

상당한 연봉을 받으면서도“Korean dream"을 꿈꿀 수가 없습니다.

 

억억하는 결혼비용, 떼어지지 않는 비정규직 꼬리표, 정리해고의 공포,

전세값 월세 폭탄, 아이들 과외비 등등. 이들에게는 코리언 드림은커녕

하루하루가 도솔산 전투입니다.

 

나라는 경제대국이고 국민소득도 2만 몇 천불 한다는데 이는 통계의 미신일뿐

그들은 늘 가난하고 내일이 없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아름다운 Korean dream이 그들에게 하루빨리 찾아와 주길 빌어봅니다.

 

이 회오리 바람속에 든 사회가 빨리 정상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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