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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동길 칼람 4제

 

1. 간첩을 안 잡는 까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래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의 독재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개인이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훌륭한 정치 이념이요 아름다운 생활 철학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용납이 되고 보장이 됩니다. ‘법’을 어기면 그 사람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살인강도를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남의 집에 불을 지른 놈을 잡아가지 않으면 사회가 불안해서, 자유를 누리며 살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 수가 없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노인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의견을 가진다는 것만으로는 처벌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노인들이 뭉쳐서 집단적으로 행동하면 교도소 신세를 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1950년 9월 15일에 만일 맥아더 장군의 지휘 하에 유엔군이 인천 상륙을 하지 않았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소멸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늘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두 번 국정원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세 번째 초대는 내가 거절했습니다. 만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6.25의 전란을 겪은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국가 안보에 대하여는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국정원장에게 물었습니다. “왜 간첩을 잡지 않습니까?” 그의 대답은 “간첩인 것은 확실한데 아직 증거가 불충분해서 체포를 못하고 있습니다”였습니다. 그런 국정원, 그런 국정원장과 대답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생각되어, 불러도 가지 않았습니다.

요새는 간첩을 잡아도 재판장에서 판사가 ‘증거 불충분’을 구실로 ‘무죄석방’한다는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래야 선진국이 되는 겁니까? 천만에!

간첩을 잡지 않고, 잡아도 무죄 석방하는 나라는 앉아서 망합니다. 간첩들은 ‘간접침략’의 일선을 담당하는 자들이라, 방임하면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독사를 잡듯 간첩은 모조리 잡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김동길
www.kimdonggill.com

 

 

 

 

2. 부끄럽지 않은 삶을

 

나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진명여고의 영어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진명에는 이세정 교장이 계셨는데 이 어른처럼 ‘현모양처’ 육성에 고심하신 교육자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 교장께서는 어느 날 교직원 모임에서 중국 한나라 무제 때의 역사 기록을 담당했던 사관 사마천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사마천은 말하기를 “나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은 한 적이 없다”고 하였답니다.

나는 원전을 뒤져, 사마천의 그 말을 찾아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른이 한학에 능통한 어른이셨으므로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지난 60년 동안 사마천을 우러러 보며 나 자신을 반성하며 살아왔습니다. “남에게 말하지 못할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말고 살자!” 그 말을 늘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86년의 생애를 돌이켜 보면, 유년기를 마치고 80년 동안, 남에게 말해줄 수 없는 일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삶은 결코 떳떳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전에 한 번 이런 양심적인 고백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가 봅니다. 내 죄는 용서 받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날마다 용서를 빌며 나의 인생의 얼마 남지 않은 황혼 길을 갑니다. 해가 지기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김동길
www.kimdonggill.com 

 

 

 

 

3. 오늘 하루뿐인데!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이 <오늘>을 두고 이렇게 읊었습니다.

푸르른 새 날이 밝아오나니
그대 생각하여라, 이 하루를 헛되이 보낼 것인가
영원에서 태어난 오늘 하루는
밤이 되면 행운으로 다시 돌아가

<프랑스 혁명사>를 저술한 저명한 역사가의 한 마디인지라 그 뜻이 더욱 오묘하게 느껴집니다. 영원 속에 오늘 하루가 있다고 생각할 때 이 하루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무서운 하루라고 여겨집니다. 꼭두새벽에 눈을 뜨는 87세의 이 노인은 우선 나 자신에게 타일릅니다. “오늘 하루뿐이다”라고.

시인 롱펠러는 이렇게 우리를 격려합니다.

아무리 즐거워도 내일을 믿지 마라!
어제는 죽었으니 그대로 땅에 묻고!
일을 하세 일을 하세 살아있는 오늘!
가슴에는 사랑을, 머리 위엔 하나님을!

이것이 나의 생활의 신조입니다. 늙은 몸이 이제 무슨 큰 욕심이 있겠습니까? 다만 오늘 하루를 정직하게 살면 됩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사랑을 베풀면 됩니다. 큰 사랑을 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내가 1년 앞을 설계하지도 않는 까닭은 나에게는 오늘 하루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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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또다시 가을은 오고

 

전에 없이 추석이 빨리 다가와, “가을도 아닌데 벌써 추석이냐”하는 의아스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추석이 지나고 열흘도 안 되었건만 이제는 가을빛이 완연하다는 느낌이 앞섭니다. 세월처럼 무서운 건 없습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던 그 옛날에는 추수하는 가을이 오기를 몹시 기다렸습니다. ‘보리 고개’라는 달갑지 않은 고개도 넘어야만 했습니다. 기차도 자동차도 없던 그 시절, 단풍구경 가기 위해 가을을 기다리는 시인‧풍류객은 몇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절대다수의 백성은 먹을 것이 없어서 추수하는 가을을 애타게 기다렸을 겁니다.

현대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인은 가을에 ‘이별’을 생각하고 홀로 웁니다. 영국시인 테니슨은 그의 절친하던 친구를 그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계절이 가을이었기에.

눈물이여, 속절없는 눈물이여
나 그 뜻을 헤아리지 못 하네
어떤 거룩한 절망의 깊음에서 생겨나
가슴에 솟구쳐 두 눈에 고이는 눈물
행복한 가을의 들판을 바라보며
돌아오지 못할 날들을 생각할 적에

인생의 가을도 덧없이 왔다 덧없이 가는 것! 우리는 청록파의 시인 박목월과 함께 겨울을 바라보며 아직도 오지 않은 ‘이별’을 슬퍼합니다.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아,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이 되었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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