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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라파누이의 수수께끼 -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라파누이의 수수께끼, Easter island


2014. 08. 22

 

라파누이는 이스터 섬의 옛 이름이다.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온 원주민은

이스터 섬에 정착해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모아이 석상을 세웠다.

그리고 이로 인해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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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많은 15개의 모아이 석상이 있는 아후 통가리키 Ahu Tongar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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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를 쓴 모아이 석상은 부족장의 권위와 능력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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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요로운 바다인 통가리키 앞에 세워진 모아이 석상 15개.

 


섬에는 총 887개의 모아이 석상이 남아 있다.

부족장이나 중요한 인물을 상징하는 모아이는

항상 바다를 등지고 마을을 품어 안는 위치에 세워진다.

이들은 마을과 부족을 지킨다.

"이오라나Iorana(안녕)!"

공항을 나서자 예약한 호텔의 팻말을 든 여인이 상냥한 인사를 건넨다.

'어떻게 알았지?'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이, 동양인은 나의 일행이 전부다.

여인은 순백의 꽃으로 엮어 만든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그녀의 귓가에도 같은 꽃이 달려 있다. 타히티를 대표하는 꽃인 티아레 tiare다.

 

맞은편엔 다른 호텔에서 나온 이들이 손님을 맞느라 분주하고

다른 한쪽엔 하와이언 셔츠를 입은 남자가 노래를 부른다.

영락없는 남태평양의 휴양지 무드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5시간 30분을 날아오긴 했지만

이곳은 칠레의 이스터 섬이 아니던가? 타히티나 하와이가 아니라.

이스터 섬은 칠레의 해안에서 3700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위에 홀로 자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섬으로 불릴 정도다.

지도의 반대편을 살펴보면 남서쪽의 뉴질랜드와 북쪽의 하와이가 나타나는데,

이스터 섬은 이들과 함께 '폴리네시안 트라이앵글'의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런 바, 이스터 섬의 원주민은 칠레 출신이 아닌 폴리네시안이다.

 

역사학자들은 700년에서 1100년 사이 타히티 섬에서 출발했던 하와이 개척자들의 일부가

이스터 섬으로 향했다고 추측한다. 선조들은 섬의 이름을 라파누이Rapa Nui라고 짓고

자신들 또한 라파누이라고 불렀다. 라파누이는 폴리네시아어로 '커다란 땅'이라는 뜻.

 

총면적 171제곱킬로미터로 우리나라의 안면도보다 조금 큰 정도지만 이들에겐 온전한 우주였다.

발견 당시엔 나무와 물이 풍족하고 뭍에는 특별한 맹수가 없으며 바다엔 싱싱한 식량이 널려 있어

천국이 따로 없었다. 라파누 이들은 농사를 짓고 고래를 사냥하며 삶의 터전을 꾸렸고

전성기를 맞았던 1500년대에는 1만 명에 다다르는 사람들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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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파누이와 유럽인, 메스티소가 모여 사는 이스터 섬.


 

"그 이후로부터 잔혹한 역사가 시작됐죠. 모아이Moai 상 때문이에요."

가이드인 세바스티안이 말했다.

사실 이스터 섬을 여행하는 이유는 오롯이 모아이 상에 있다.

 

모아이 상은 이스터 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얼굴과 몸통만 가진 거대 석상이다.

이 석상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 당시 인간이 손수 만들었다고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크기 때문이다.

대략적으로 3~10미터의 키, 3~10톤의 무게를 가졌고

가장 큰 모아이 상의 경우 21.6미터에 무게가 160톤에 육박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정말 불가사의한 건 모아이 상을 옮기는 방법이죠.

모아이 상을 만드는 곳과 모아이 상을 세워두어야 할 곳이 따로 있거든요."

일단 모아이 상을 가까이서 살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이스터 섬의 동쪽 해안에 자리 잡은 아후 통가리키 Ahu Togariki다.

이스터 섬의 시내인 항가로아Hangaroa에서 동쪽으로 40분을 달려 만날 수 있다.

아후 통가리키는 '통가리키의 제단'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100미터에 이르는 제단이 있고

그 위에 모아이 '떼상' 중 가장 많은 15개의 석상이 늘어서 있다.

 

석상은 6~8미터의 키와 육중한 몸체를 가지고 있는데,

이 중 가장 큰 모아이 상은 모자를 쓴 것으로 그 무게가 86톤이나 된다.

15개의 석상 앞에 서서 한 번에 훑어보니 생김새가 서로 닮아 있었다.

석상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얼굴이다. 좁은 이마, 푹 꺼진 눈,

크고 오뚝한 코, 굳게 다문 엷은 입술이 제법 매력적이다.

 

이보다 조금 더 동글동글하긴 한데, 얼핏 보면 제주도의 돌하르방도 닮았다.

모아이 상은 멀리에서 보든 가까이에서 보든 처음 예상보다 훨씬 크고 위엄 있는 품새가 느껴졌다.

과연 모아이 상은 무엇을 위해 탄생한 것일까?

세바스티안은 죽은 왕이나 부족의 수장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조상을 기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다는 건 조상에 대한 예우만은 아니다.

그 부족 후손들의 힘이나 능력이 좋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세바스티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이렇게 큰 모아이 상이 15개나 모여 있다는 것은'파워'를 의미하죠.

나도 라파누이인데 내 가족은 이 섬에서 가장 큰 세력을 쥐고 있던 통가리키 출신이에요. 바로 여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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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터 섬의 시내인 항가로아 Hangaroa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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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가로아 해변에 호텔과 레스토랑, 바 등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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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가로아의 기념품 숍에서 만난 수공예 아티스트



아후 통가리키는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모아이 상 뒤로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펼쳐지고

왼편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절경을 가지고 있어서다.

그 풍경은 호주 멜버른의 12사도나 아일랜드 카운티 케리County Kerry의

클리프 언덕Cliffs of Moher만큼이나 장엄하다.

 

나는 그중 일출을 보기로 했다.

새벽 6시, 아후 통가리키 앞엔 30여 명의 여행자들이 모여 함께 동이 트는 찰나를 기다렸다.
느덧 아후 통가리키 앞바다의 수면 위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해는 바다를 붉게 물들이더니 모아이 상의 어깨 너머로 따스한 햇살을 뿜어냈다.

땅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생겼고 이는 그 앞에 자리한 마을 위로 뻗어나갔다.

그제야 알았다. 모아이 상은 단순히 힘자랑을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후손들을 품어 안는 든든한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음 날, 모아이 상이 만들어진 제작 현장을 탐색하기 위해 라노 라라쿠 Rano Raraku 화산으로 향했다.

라노 라라쿠 화산은 라파누이들이 오랫동안 신성한 산으로 모시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산 전체가 모아이 상에 쓰이는 암반을 캐고 모아이 석상을 조각하는 작업실이었다.

이곳에 가면 앉아 있는 모아이, 누운 모아이, 쓰러진 모아이, 만들다 만 모아이,

부서진 모아이 등 다양한 형상과 크기의 모아이 상을 만날 수 있다.

이 화산에 있는 모아이 상만 무려 397개. 160톤짜리 가장 큰 모아이 상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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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아이 석상을 만들었던 라노 라라쿠 채석장.

 


모아이 상을 만드는 것도 경이롭지만 이를 운반하는 것은 더 불가사의해 보인다.

라노 라라쿠에서 서쪽으로 아후 통가리키가 조그맣게 내려다보인다.

 

많은 역사학자,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통나무 굴림판을 만들어

완성된 모아이 상을 굴려 산기슭 아래로 내려보냈을 것으로 추측했다.

 

어떤 과학자는 외계인이 모아이 상을 만들었으며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해 운반했을거란 황당한 가설을 내놓았다.

그의 주장인즉,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하단 소리다.

반면 라파누이들은 모아이 상이 오른쪽, 왼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어

스스로 바다를 향해 걸어 나갔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여전하다.

라파누이는 모아이 상 제작과 운반에 과열 경쟁을 치르다

이스터 섬에 필요한 나무들을 몽땅 베어냈고, 나무가 없어지면서 생태계의 파괴가 따랐으며

이에 의한 농사도 어려워져 멸망하게 됐다고 한다.

 

라노 라라쿠에 버려진 석상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데,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아 모아이 상이 주는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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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아이 석상이 세워진 해변가에서 서핑을 즐기는 스위스인



이스터 섬에는 모아이 석상만 있는 게 아니다.

해변가, 분화구, 들판 등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모아이를 둘러봤다면

이젠 이스터 섬의 자연을 즐길 차례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자동차 드라이브다. 근사한 해안 절벽들이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다.

이 길을 말을 타고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투어에 나서는 말들은 완벽히 훈련된 것들이다.

해안 도로는 물론 황량해 보이는 너른 벌판을 달리는 것도 스릴 있다.

 

또 한 가지, 바다를 마음껏 즐겨볼 것.

이스터 섬의 서쪽 해안에는 남미며 유럽에서 찾아온 서퍼들로 북적인다.

배를 타고 스노클링을 하거나 열대어를 낚는 바다낚시에 도전해 볼 수도 있다.

 

 


 

 


칠레 이스터섬 [Easter Island, Ch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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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칠레):

이스터섬의 상징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면석상의 수는대략 550 개.
높이는 1 ~ 30 m. 대개는 해안을 따라 위치함.

 

칠레 서쪽의 남태평양에 위치한 이스터 섬에 서 있는 커다란 석상들을 말한다.
12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세워졌는데, 원주민들은 이것들을 '모아이'라고 부른다.

높이가 평균 3.5~5.5m, 무게는 40~50톤이 넘는 거대한 석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숫자만 887개, 각종 신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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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를 쓴 모아이 석상은 부족장의 권위와 능력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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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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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터섬 원주민들이 관광객들에게 전통춤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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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노카우 분화구[Rano Kau Crater]는 이스터섬을 구성하는 3개의 화산 중 하나로
분화구의 직경이 1.6km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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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터섬 [Easter Island, Chile]

 

칠레 서쪽의 남태평양상에 있는 섬으로 1988년에 칠레령이 됐다.

네덜란드 탐험가인 J. 로게벤이 1722년 부활절(Eeaster day)에 상륙한 데서

이스터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칠레에 속해 있긴 하지만 본토에서 3,526km 떨어져 있다.

20개 가까운 화구가 있는 화산섬으로서 거의 삼각형이다.

토지의 대부분은 양과 소의 방목에 이용되고 있다.

수목은 없고 초원이며, 물은 적은 편이다.

 

 

이스터섬의 상징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면석상(人面石像)인 모아이(Moai)는 약 550개 있으며,

높이 1~30m에 이르는 거대한 것으로서, 라노라라크라는 화산에서 잘라내어 운반된 것으로

채석장 옆으로 뚫린 굴 속에는 지금도 돌을 떠내다만 상(像)이 남아 있다.

그것들을 근거로 하여 인면석상은 옆으로 눕힌 형으로 조각되어

최후에 등 부분이 잘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러한 거석상 제작에 필요한 목재나 로프로 쓸 만한 재료는 물론

돌을 운반할 동물도 없었기 때문에 섬 주민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위에 많은 거석상들이 쓰러져 있는 이유도 불가사의하였다.

 

이를 밝히려는 고고학 및 고생물학의 연구 조사 결과

최초의 원주민이 거주한 연대는 400~700년으로 나타났으며,

거석상은 1200~1500년에 조각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당시 원주민의 숫자는 7천 명~2만 명으로 추정되었다.

 

 

운반에 필요한 목재에 관한 연구는 화분(花粉) 분석을 통하여 해결되었다.

늪지나 못의 바닥에서 수직으로 잘라낸 잔해물층에 있는 수천 가지의 화분을 일일이 분석한 결과

이 섬에는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30만 년 이전부터 아열대수림이 우거졌음이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칠레산 와인 야자수 화분이 무더기로 발굴되었다.

직경 6피트에 높이 82피트나 되는 이 야자수는

거석상을 운반하거나 카누를 만드는 데 안성맞춤의 목재이다.

주민들은 이 야자수로 만든 대형 카누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래를 포획하였음이 돌고래뼈 화석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화분층에서 숯덩이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아열대수림에 대화재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증가한 인구로 많은 나무가 벌채되고,

야자수는 1400년경에는 사라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숲이 사라짐에 따라 토양도 황폐해져, 식량이 부족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종족간의 분규가 일어났으며, 그들은 경쟁 상대 부족의 거석상을 쓰러뜨리거나

거석상의 머리를 부수는 방법으로 증오심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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