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커뮤니티 메인

휘문교우회 로고
📖 게시글 상세보기
[제목] 인갱의 길라잡이 4제

 

1. 날마다 하는 생각 

 

 

백지 한 장을 보면서 어느면이 정면이고 어느 면이 뒷면인지 말할 수 없다.

이는 비폭력과 진리의 관계와 같다. 진리는 비폭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신체적인 약함은 진정한 허약이 아니다. 정신의 허약만이 진정한 허약이다.

 

 

마음의 평정 혹은 무집착은 욕설과 모욕, 심지어 폭행조차도

참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배척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친구로 삼으신다.

 

 

자아에 대한 지식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자산인데, 우리는 이를 노력 없이 얻으려고 한다.

반대로 부나 명성 등은 가치가 없는데도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주려고 한다.

 

 

음악은 목구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머리의 음악, 마음의 음악, 감각의 음악  그리고 혼의 음악도 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이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과 나무와 벌레와 새와 짐승등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분 밖에서 우리의 존재는 없다.

하나님의 무릎을 빼놓고는 우리에게 안전이란 있을 수 없다.

 

 

천성이 겸허한 사람의 겸손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세

상 사람들에게 물과 같은 축복이 된다.

 

 

작건 크건 실수로 죄를 짓는 것은 분명히 나쁘지만,

그 실수를 숨기는 것은 더욱 나쁘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스스로 했노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

못을 반복하는 일이요, 그 잘못에 숨기는 죄를 더하는 일이다.

 

 

진정한 행복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얻는 데서 오는 것이 니다. 

그것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도록 훈련하는 데서 오것이다.

 

 

눈으로는 이것을 보고 혀로는 저것을 이야기하며,

마음은 또 다른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가치 없는 사람이다.

 

 

죽음이 언제나 우리를 붙잡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내일로 미룰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마음의 불결은 육체의 불결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그러나 육체의 불결은 마음이 불결하다는 표시이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이 계심을 진

정으로 깨닫기 바란다면 우리 안에서  에고(ego)를 쫓아내고

그분을 위한 자리(room)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시면 악한 생각을 할 수도,

악한 행동을 할 수도 없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하늘의 빛으로 채워지면 그가 가는 길에 모든 장애물이 사라진다.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연못을 채우듯이, 매 순간의 진지한 기도가 영혼을 살찌운다.

인간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자신을 내맡기면 인간은 모든 것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안내자가 되었을 때는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

 

 

사람은 두 눈과 두 귀가 있지만 혀는 하나뿐이다. 

그러므로 본 것의 반만 말하고 들은 것의 반만 말해야 한다.

 

 

125세까지 살 가능성은 희박해저 간다.

분노와 집착을 완전히 이길 수 없는 사람이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살 수 있겠는가?

 

 

..

 

2.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미루지 마세요

 

 

어느 교회에 목사님은 오랫동안 일요일 예배 때마다

사람들에게 글로리아 벡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열심히 교회에 나오는 진실한 신자였는데,

명적인 암에 걸려 신음하고 있었다.

 

나도 간혹 글로리아 벡의 상태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에 대해 깊이 생각것은 아니었다.

 

어느날 나는 교회에서 한 소녀 옆에 앉게 되었다.

소녀는 병원에 입원에 있는 글로리면회를 갔다 왔다고 했다. 

글로리아는 태가 몹시 좋지 않았고, 그 소녀는 자신의손을

아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글로리아를 생각했고, 밤에는 그녀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만일 그녀을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할까 상상도 해보았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는 선생님이었던 글로리아에게서 컴퓨터를 배웠다.

그녀의 차분음성과 얌전한 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날 나는 그녀에게 병문안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다시 시작되면서 생활에 너무 분주한 나머지 

그 결심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렇게 다시 일요일이 돌아왔다.

목사님은 글로리아 벡이 전날 밤에 세상을 떠났슬픈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10분만라도 시간을 내글로리아를 찾아가 그녀가 내게 얼마나 중한

였는가를 말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이제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날 나는 매우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어서는 안 된것을 깨달았다.

 

시간을 내서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

에게 다는 말을 하라. 그사람이 당신에게

행한 이 비록 보잘것 없을도...

 

 

3.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걸으면, 그 가운데 틀림없이 나를 가르칠 선생이 있다.

나는 좋은 점을 찾아 그것을 배울 것이며, 부족한 점을 찾아 그것을 고쳐 나갈 것이다.

 

 

지혜(智慧)있는 사람은 알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 하지 않고,

현재 해야 할 일을 가장 중요하고 급하게 여긴다.

 

인덕(仁德)이 있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현인들과 조금이라도 더 닯으려고 애쓴다.

 

 

유익한 친구를 사귀는 세 가지 기준,

첫째,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인가?   

둘째, 신용을 중히 여기는 사람인가?

셋째, 견문이 넓어 박식한 사람인가?

 

해로운 친구를 멀리하는 세 가지 기준,

첫째, 아첨하는 사람은 아닌가?       

둘째, 앞에서 아첨하고 뒤에서 비방하는 사람은 아닌가?            

셋째,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아닌가?

 

 

좋은 친구를 만나면 무조건 그와 사귀어라.

그것은 곧 충성, 신의, 존경, 양보의 행동으로

의로운 일에 힘쓰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해 준다

 

나쁜 친구와 절대로 어울리지 말라.

그것은 곧 우롱, 기만, 거짓된 행동으로

추잡하고, 음탕하고, 그릇되고, 탐욕스럽기 그지없다.

 

성현이 말했다.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의 친구를 보고,

군주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의 신하를 보라."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우선 가정부터 잘 지켜야 한다.

가정을 잘 지키지도 못하면서 나라를 잘 다스릴 수는 없다.

그것이 곧 나라를 잘 다스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그것이 곧 왕에게 충성하는 길이며,

형제간에 우애가 있으면 밖에서도 선배를 존경할 수 있게 된댜.

집에서 아이를 잘 보살피면 백성을 사랑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

 

 

훌륭한 스승이 되는 방법,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도록 존엄을 갖춘다.

둘째,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신의를 지킨다.

셋째, 가르침이 예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넷째, 자세히 관찰하고 사리에 맞는 행동을 한다.

 

훌륭한 선생이 되는 네 가지 방법에 깊은 학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논밭이 없을 때는 논밭이 없어서 걱정하고,

집이 없으면 집이 없어서 걱정이다.

집에 재물이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

한 가지가 있으면 또 한 가지가 모자라서 걱정,

큰 것 작은 것 모두 있으면 또 행여나 어떻게 될까 걱정,

수재, 화재, 혹은 도둑, 원수들로 인해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인색한 마음을 없애버릴 방법이 없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손을 놓지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 모두가 여기서 벗어나질 못하니 이 또한 걱정이다.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귀신을 어떻게 모셔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산 사람도 모시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모실 수 있겠느냐?"

 

자로가 다시 공자에게 물었다.

"죽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삶의 도리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의 문제를 알 수 있겠느냐?"

 

 

강물이 한 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듯,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오늘이 지나가면 수명도 따라서 하루가 줄어든다.

마치 물이 점점 줄어드는 늪의 고기와 같으니 그렇게 살아서 또 무슨 재미가 있는가!

 

 

인생의 고통이란 어떤 것인가? 

태어날 때의 고통과 늙었을 때의 고통,

병이 생겼을 때의 고통과 죽을 때의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의 고통,

원수와 마주칠 때의 고통,

추구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의 고통이다.

 

-중국 이야기들 중에서 편집-



4. 개똥밭에 굴러도 세상은 즐겁다.

 이웃에 형님으로 모시는 분이 있습니다.
형수님은 중병에 시달리며 10년이 지난 지금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치매에 거동도 못하고 호수로 음식을 받아먹는,

객관적으로 보면 거의 식물인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 된 이야기지만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볼 수 있지만
이는 나의 어리석은 판단일 뿐 형님의 생각은 아무리 중병을 앓는 사람이지만
내가 돌보아야 할 부인인 이상,

요양원에 보내 다시 못 올 먼 곳을 쓸쓸한 병상에서 홀로 보내지는 않겠다고 하며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아들, 딸이라 한들 이런 상황에서는 무어라고 이야기 할 계제가 아닙니다.

당사자인 형님은 10년 이상을 대소변이다, 목욕이다 온갖 굿은 일을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몸소 수발하며 깔끔히 보살피고 있으나
그 같은 지극정성에도 불고하고 더 나아지기보다는 점점 더 악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내일을 기다림에 지처 창가에 기대어 한없는 눈물을 흘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고, 내 모든 꿈들이 사라져 간 내일이 없는 세월이지만
언젠가는 완치 된 다는 희망 하나만을 가지고 살아가며
그 희망이 있기에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합니다.

위로 차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인의 점심을 챙기기 때문에 갈 수가 없거나
집에 돌 볼 사람이 있어도 부인 때문에 오래 밖에서 지체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차마 힘 든다는 말을 밖으로 토해내지 못하고
참아왔으니 그 속이야 어떠했겠습니까?

말 안 해도 압니다.
중병에 효자 없고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10년간 병 치례에 짜증이 안 나고

힘들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이리라.

팔자라 생각하고 당신을 만날 때의 그 감동을 생각합니다.
그걸 생각하면 지난 괴로운 10년의 세월도 견딜 수 있었으며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셀 수 있는 세월도
충분히 견뎌 낼 수 있다는 말을 들을 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숙연해 집니다.

역시 사랑이란 모든 것을 뛰어넘고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이상 무엇을 바라리오.
사랑이란 모든 종교에서 다 다루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大慈大悲로 표현되고
기독교에서는 사랑으로 표현 될 뿐 맥락은 같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며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다 간 성자들을 봅니다.
평생 동안 한센 병자를 돌보며 나병환자와 더 가까이 지내고 싶어 했고
그들에게 거부감 없이 하느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저를 나병환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며
결국은 나병 환자가 되어 16년 동안을 나병 환자를 위하여 봉사하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다 바친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고
49세로 생을 마감 한 데미안 신부님,


오랜 내전과 질병으로 신음하는 아프리카의 수단의 톤즈에서
희망과 사랑의 꽃을 피우다 대장암으로 서거하신 이태석 신부님,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밥 동량을 해 18명의 거지를 먹여 살렸던
최규동 할아버지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서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고 말하며
가진 것 없고, 불쌍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아 온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

이런 분들의 숭고한 신앙적 사랑에는 미치지 못 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형님의 사랑도
우리의 심금을 울려 주기에 족합니다.

요즈음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도 부부가 지지고 볶고 하는 세상에
10년 이상을 병간호 하면서도
겉으로는 짜증도, 싫은 내색 없이 부인을 돌보다니
세상에 귀감이 될 이토록 정겹고 아름다운 부부의 사랑이
어디 있고,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진정한 사랑이 주는 의미는
주는 것밖에 모르는 어진 성자의 마음 인가 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날도 굿은 날도 있습니다.
날마다 좋은날(日日時好日)만 기대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을 쏟다 보면 때때로 거짓말 같이 완치의 기적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완치의 기적이 부인에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비록 완치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인이 누어 거동은 못 할망정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 한다는 마음속의 그 말 한 마디라도 한다면
형님의 10년 이상의 돌봄의 아픔도 보상받고도 남으리라.

해서, 완치 될 수 없다고 하여 내가 생각했듯이
마음의 문을 미리 닫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는 언젠가는 완치 된다는 형님의 한 가닥의 가느다란 희망의 끈마저
잘라놓고 마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加被를 빌어, 주님의 恩寵에 힘입어 높으신 당신께 뵙니다.
어서 회복 해 주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다 힘들게 삽니다.
비록 힘들게 살며 개똥밭에 구르는 한이 있더라도
누구에게나 그래도 세상은 참 즐겁다(轉糞世樂)라는 믿음과

긍정적인 자세를 갖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십시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