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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학교 선생님들과의 아련한 추억

작년 11월 종구가 졸업앨범을 복사하여 게시판에 올렸다. 해묵은 졸업앨범을 들여다 보며 가끔씩 추억에 젖는다. 그 중에서도 선생님들과의 추억이 불현듯 생각난다. 친구들은 이런저런 자리에서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며칠 전(3월16일) 김송우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 문상을 다녀오며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뵈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과 함께... 다른 선생님들은 몇 분이나 생존해 계신지?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가 1965년 고등학교는 1968년이니 벌써 46~49년전 일이다. 내년이면 50년전의 옛날 이야기가 된다.
자꾸만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더듬어 학창시절의 추억을 짧게나마 반추해 보고자 한다. 친구들도 나와 함께 추억여행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틀린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또한 함께 나누고 싶은 추억거리가 있으면 댓글로 달아 주시기를 바란다.

 뒷쪽의 벽돌건물이 희중당...중1때 교실이 있었던 건물 희중당의 담벼락을 타고 기어오르던 담장이는 휘문의 상징이었다.
맨 왼쪽의 건물이 중2, 중3때 배웠던 건물인데 중2때(1966) 신축되었다. 이 건물이 신축된 후 희중당 건물에는 여러 특별활동반이 들어가게 되었다. 건물이 지어지는 동안 강당 아래 임시교실에 가서 수업을 받기도 하였고,
맨 오른쪽 건물이 고등학교 3년을 보낸 건물. 가운데 건물에는 교무실 등이 들어가 있었고... 두 건물의 사이에는 연결 구름다리가 있었다.


1

중1때 상업을 가르치셨던 민효기 선생님. 첫 시간에 들어오셔서 큰 눈을 부라리시며 훈시하시던 생각이 난다. 당시의 교장 선생님은 서병성 선생님이었는데 꽤 유명한 분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민효기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이 되면서 "아 그렇구나!" 하며 친구들과 함께 사립학교의 한계를 절감하던 생각이 난다.
서병성 교장 선생님 시절 1. 근면과 성실로 시작되던 세줄이었던 교훈이 "큰 사람이 되자!"로 바뀌었는데 "뭐가 큰 사람?" 하며 야유하던 생각도 난다.
휘문학교는 민씨가 세운 학교였으니... 나중에는 교련선생으로 부임했던 민욱기 선생이 교장직을 이어받았다고 들었다.
2

특유의 표정으로 호크부분을 지적하며 늘 호크 채우라고 하시던 모습. 양복바지를 걷고 열심히 복도를 누비고 다니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야 이자식아!" 하며 호크부분에 손을 대며 지적하시던 모습. 직접 가르침을 받은 기억은 없다. 수학을 가르치셨다고 들었다.
3

일산이 고향이라며 늘 일산쌀을 자랑하시던 영어선생님. 더운 여름에는 런닝구 바람으로 수업을 진행하시던 모습. 수업과 관련한 특별한 기억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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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고2, 고3, 3년을 연거퍼 담임이셨던 선생님. 고1, 2학기 때는 우열반을 가르느라고 반이 바뀌었지만... 고3때도 이과반으로 옮기느라 여러날 격론 끝에 결국 7반으로... 고1때는 1학기에 2반, 2학기에 7반(담임 황진락), 고2때는 1반, 그리고 고3때는 2반에서 시작해 결국 7반(담임 염태순)으로 옮겼다.
늘 열심히 칠판에 무언가를 쓰시며 열강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중에 대학에 가서 교양과목을 수강하며 김송우 선생님의 실력을 알게 되었다. 특히 국문학사 부분의 노트필기는 어느 참고서보다도 훌륭한 내용이었다. 그 이후로 선생님 과목의 노트를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요즘도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두한족온(頭寒足溫) 을 늘 생각한다.
따로 지으신 "현대문 특강" 이란 책으로 국어공부를 하였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별명은 "송아지". 아마 이름자의 발음대로 지은 듯.
5

약간 혀짧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일반사회 담당 조희억 선생님. "자네네덜...이 다음에 가정이 행복하려면 자네덜이 돈을 잘 벌어야 하네." 여자가 아무리 절약해 봐야 별 거 아니라며 큰 돈은 남자가 벌어와야 한다고. 철들며 그 가르침이 새록새록. 지금까지 늘 가슴에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 감사합니다.
조희억 선생님도 일반사회 참고서를 지으셨는데 그 책으로 입시준비를 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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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2학기때 담임을 하셨던 국사 담당 황진락 선생님 무슨 일로 하여 며칠간 호되게 매를 맞던 기억이 난다. ㅠㅠ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많이 잘못한 일이었던 거 같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_()_
채점하기 편하도록 네모칸을 쳐서 빗금으로 칸을 채우도록 답안지를 작성하게 하시던 선생님. 별명은 "독사". 눈매가 무서워서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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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무게를 잡으시던 국어 담당 시인(黃命) 선생님. 본인의 필명이 황명이라며 첫 수업시간에 한자이름을 쓰시던 모습. 수업과 관련한 특별한 기억은 없고...
고1땐가? 고2땐가? 갑자기 바리깡을 들고 들이닥쳐 머리를 깎이는 바람에 (열십자로 ㅠㅠ) 동네 이발소에 가서 쪽팔려가며 이발하던 생각이 난다. 면도사 아가씨들이 킥킥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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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고에서 부임하셨던 분으로 기억하는데 아주 깐깐한 성격탓에 수업시간마다 수업분위기가 산만해 지는 것을 매우 언짢아 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내가 별로 취미없던 수학을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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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올라가 김송우 선생님과 여러날 담판끝에 이과로 전과. 고3-7반으로 옮겼는데, 담임이셨던 수학 담당 염태순 선생님. 칠판위에 점을 찍고, 이 점이 어디 있냐? 조기다 조기. 거기가 어디냐? 하시면서 X, Y, 축을 그리시던 모습.
옮겨간 첫 날, 이미 출석번호도 다 정해진 후였는데 유난히 키 큰 친구들이 많았던 7반이라서 그랬는지 출석번호가 2반에 있을 때보다 앞쪽으로 옮겨졌다. 대충 선생님께서 지정해 주시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양옆으로 성채와 이성이 앉았고...7반 가서 첨 사귄 친구들.
이 세상에서 뭘 모르는지 모르는 놈이 젤 한심한 놈이라시던... 그 가르침대로 내가 뭘 모르는지 알며 살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아는 것에 비해 아직 모르는 거 천지지요.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_
미국으로 이민가셨다고 하시는 거 같은데... 별명은 "염소" 아마도 염씨라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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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여고에서 전근오셨던, 가운데 가르마의 깔끔하셨던 모습. 8반에 가면 수업 후 손 닦으시라고 대야와 주전자에 물, 그리고 수건이 걸려 있었다. 말투도 여학교 근무 탓인지 여성스러우셨고, 수업에 열중하지 않는 애들에게 분필을 잘라서 던지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내가 별로 취미없어 하던 물리과목을 가르치셨다. 늘 두 손을 가지런히 마주잡고, 깔끔한 모습으로 강의하시던 모습. 전에 TV에서 보니 탤런트 박정수의 스승으로 초대손님으로 출연. 그때 이미 많이 늙으셨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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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자 국어 선생님. 수업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고 대학입시때 내가 응시한 대학에 오셨는데 내가 잘 못하던 수학시간에 마침 오시게 되었고, 남들보다 훨씬 먼저 백지 가까운 답안지를 내고 나오던 중 "야 왜 벌써 나오냐?" 며 날 붙들고 야단치시던 선생님.
뭐 그래도 운좋게 합격해서 그 바닥에서 여태 먹고 살았습니다. ㅎ 시험지나 이리 내라며 수학시험지를 갖고 가셨다. 아주 씩씩하고 늠름한 미남자로 각인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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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던 전광일 학생주임 화학 선생님. 나도 언젠가 화장실에서 담배피우다 걸려서 뺨이 볼록 나올 정도로 맞은 기억이 난다.
그래도 두발불량으로 머리를 깎였을 때 마저 깎아달라며 교무실로 찾아 갔더니 아무 말없이 머리를 깎아 주셨던 자상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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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시작하면 우선 질문부터 던지시던 지리 선생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일방적으로 암기를 강요하고 필기를 시키는 수업이 아니라 지리의 이치를 깨우치게 하는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사물을 이치대로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안데스 산맥이 높으니, 거대한 아마존강이 생겨나고 루르/자르 지방의 철과 석탄을 이용해 낭시라는 철강도시가 생기고 그런 식으로 가르치셨던, 당시로서는 좀 특이한 수업방식이었다. 자연지리와 인문지리가 절묘하게 버무려지는 재미난 수업이었다. 여러가지의 다른 지도작법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가르쳐주셔서 아주 이해하기가 쉽고, 필요에 의한 지도작법의 발전을 알게 되었다.
필기와 암기보다는 이해하기 쉽도록 지도를 해 주셨다는 말이다. 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내가 질문과 답변을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선생님 드시라고 사다놓은 박카스를 여러번 내게 주셨다. ㅎ
한번은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선생님들에 대한 무슨 시상식을 하였는데 진행자가 전일성을 김일성이라고 잘못 호명하는 바람에 잠시 온 운동장이 다 떠나갈 듯 웃음바다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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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빤스"라는 앙징맞은(?) 별명의 화학선생님 늘 큰 체구를 흔들며 바삐 걸어 다니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별명 때문이었는지, 선생님 걸으시는 모습을 보면 "아기코끼리의 걸음마"란 음악이 머리에 떠오르던...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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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때 담임이셨던 체육 선생님 키도 크시고, 호남형으로 생기셨는데 시간날 때마다 "공부보다 먼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선생님 덕분에 사람노릇하려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집에 와서 본교로 진학하라고 부모님을 열심히 설득하셨다. 고등학교 때에도 우리들을 위해 체육과목을 담당하셨는데, 비교적 자유롭게 구기종목 위주로 편하게 진행하셨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북아현동 굴레방다리 그 맞은 편의 아현동에 사셨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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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 중에 영어 해석을 시키다가 대답을 잘 못하면 모두 눈감고 책상위에 손을 얹고 반성하라시던 영어 선생님. 그 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호소하시던 그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었다. 아마도 휘문 선배님이셨던가? 선생님의 훈시덕분에 더욱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던거 같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곽용수 결혼식 때 주례로 오셨던 (경복궁 옆 출판문화회관?) 그 때 그렇게 반가워 하시더니... 한반 이었던 정태철이의 고모부(?)라고 했던가? 가물가물...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남용우 선생님께서 번역하셨는데, 열심히 읽던 생각이 난다. 조금 야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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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부기를 담당하셨던 우흥식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나중에 사회생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복식부기의 기초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던 꼬장꼬장한 선생님. 그렇지만 늘 미소를 잃지 않으시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성격이셨다. 연한 갈색의 뿔테 안경을 쓰셨던 선생님 모습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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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선생님답게 직간접적으로 성교육(?)을 담당 "x 따라 삼천리" 시간이 되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장가간 남자 손닦은 물은 산성, 총각 손씻은 물은 알카리성"이라며 산과 알카리를 알기쉽게 풀어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
선생님께서 지으신 참고서로 공부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서 전공도 생물학이 많이 관련되어 있는 학과라서 늘 선생님 생각을 많이 하며 지냈습니다.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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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돌아가신 아버님과 같았던 도덕 선생님. 다리가 약간 불편하셨고, 강의하시는 말씀이 끊어지는 법 없이 이어지는 특이한 대화법의 선생님.
무슨 인성검사인지 그런 걸 적어 낸 적이 있었는데 가장 존경하는 사람 "히틀러"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 히틀러의 "나의 투쟁" 이라고 썼다가 선생님한테 불려가서 장시간 카운셀링도 받고 토론하던 기억. 나는 아직도 히틀러에 관한 기록과 영상물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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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을 가르치셨던가? 경상도 사투리로 옛글을 풀어주시던 생각이 납니다. 휘문 선생님들이 국어과목과 영어과목은 아주 훌륭하셨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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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중1 입학하자마자 첫 미술시간이 생각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삐라를 생각하고 추상화를 그리라고 하셨던... 나름 서로 다른 삐라가 날리는 추상화를 그리던 추억. 그렇게 그려진 삐라 날리는 그림들이 복도에 액자로 걸리고...
고2때는 일홍이가 대신 그려주었던 간판그림풍의 초상화 때문에 따귀를 꽤 여러 대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ㅠㅠ 실력파 미술 선생님으로서 홍대에도 출강을 하셨다. 다소 억센 아바이 사투리를 쓰시던 함경도 아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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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네 선생님이셨고, 고문인지, 한문인지?? 백묵을 반으로 잘라 옆으로 쥐시고 붓글씨 쓰듯 한자를 쓰시던 선생님.
휘문 선배님이셨는데, 늘 중앙애들이 예전엔 기호학원이라고 휘문의숙 발끝에도 못 쫓아오던 학교라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시며 열변을 토하셨던... 선생님. 지금은 휘문이 중앙보다 훨씬 웃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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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때는 영문법을 가르치셨지요. Model은 표한용 선생님 Universal은 신현국 선생님이 가르치셨지요. 책을 무지하게 빨리 유창한 발음으로 읽으시던 선생님.
옆에 오시면 늘 짙은 향수냄새가 났구요. 그 영향인가? 저도 향수를 씁니다. aramis. ㅋ 약간 올백스타일이었던 머리모양이 생각납니다. 자습을 시켜놓고 잠시 양호실로 가시던 선생님. ㅎ
고등학교 시절엔 가끔 노래자랑도 했습니다. 모자에다가 돈을 갹출해서 상품도 마련하고 박자, 음정, 제스처 세분의 심사위원(?)을 모시고 상품도 주고, 그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었지요.
선생님 영어 발음이 너무 좋아서 그걸 따라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던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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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교수를 역임하셨다던 영어 선생님. 아침 조회시간 뒤쪽에 서서 새하얀 와이셔츠 바람에 맨손체조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말끔한 모습에 잘 정돈된 머리에... 제가 선생님 덕분에 지금도 오른 가르마를 합니다. ㅋ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는거 아닌줄은 알지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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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회 과목을 가르치셨던 다부진 체격의 선생님. 목소리도 카랑카랑하셨고, 열심히 가르치셨지요. 별명은 "올챙이" 배가 나와서 그랬나요? ㅎ
사회생활 할 때 보험을 하신다며 전화를 하셨다. 지금 마음 같으면 그때 하나 들어드릴껄 하는 마음이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땐 제가 너무 젊어서 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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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마른 얼굴에 아주 키가 크셨던 수학 선생님. 우리가 배웠던 적이 있었나? 없었나? 가물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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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를 담당하셨던 염세주의 철학자 선생님. 50분 수업에 40분 철학강의 하시고 나머지 10분에 국어강의를 마치시던... 그리고 수업종료 벨이 울리면 "조금만 더 해! 조금만 더!" 하시던 선생님.
언젠가 더운 여름 잠시 교탁아래 벗어 놓으셨던 양말을 그대로 두고 맨발로 가셨던 선생님.
하마같은 동물은 왜 태어났냐고 하시던 선생님. 그런 동물들을 보면 슬퍼지신다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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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때 영어 선생님. 고등학교 때는 배웠는지? 안 배웠는지? 가물가물 중간에 몇 년 하와이인가 어디로 유학까지 다녀오신 선생님. 내가 영어반 활동을 하다가 그만두고 난 다음(?) 영어반 담당 선생님으로 오셨나? 어쨌나? 영자 신문 Whimoom Times도 만들고...
그 당시 장안의 고등학교 중에 영자신문을 만든 학교는 경기고가 유일.
지금도 중1때 표한용 선생님이 들어와서 가르치셨던 첫 영어시간이 생각난다. 박술음 선생님이 지으신 영어교과서 "Model" 첫 과가 "Morning! Good Morming!" 이었다.
박술음 선생님은 휘문학교 영어선생님이셨다가 외국어대학을 설립하신 분이라고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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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체육과를 나오신 체육선생님. 빵빵한 체격에 작은 키. 체육시간마다 띔틀, 철봉, 덤블링 등 주로 기계체조를 시키셨던 선생님.
고정기 선생님은 주로 공을 던져 주시며 배구, 농구, 축구하며 즐거운 체육시간이었던데 반해 유인전 선생님의 체육시간은 고난의 행군. ㅠㅠ
게다가 생활지도부주임이라 단화를 신었다고, 뒤에 와서 내 구두를 툭툭 걷어차시며 "벗어라!" 하시면 생겨울에도 언 땅에 맨발로 조회를 서야했다. 운동장에 그렇게 벗긴 단화들이 수북하게 쌓이고... 나중에 그 신발을 찾으려면 또 어떤 벌을 받아야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나중에는 가방에 모범생 운동화를 넣고 다니며, 학교앞에서 갈아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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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때 수학선생님으로 만났고, 다시 고등학교로 올라오신 이욱주 선생님. 별명은 "말대가리". 아마 얼굴이 좀 길어서...ㅎㅎ 강의 도중에 웃으시면 잇몸이 드러나시던 호인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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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중 2학년 때 풍문여중에서 전근오신 선생님. 그 당시 영어책이 두권이었는데 Companion과 Universal 그렇게 두 가지. 박지용 선생님은 Universal을 가르치셨다. 고등학교 때도 배웠던가? 가물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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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윗주머니에 안경알을 넣고 이미 쓰고 계신 안경 안으로 넣었다 뺐다 요즘 같으면 다촛점 렌즈를 끼셨겠지요. 무슨 과목을 가르치셨드라???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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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을 가르치셨던 조금은 시골틱하던 선생님 그래도 강의는 아주 열심히 하셔서 제가 지학에 취미를 붙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지구과학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얼마전 김송우 선생님 문상시에 정혁채를 만났는데 지금도 이욱상 선생님과 연락을 한다고 하니...참 멋쟁이 선생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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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일반사회? 기억이 가물가물. 어디선가 새로 오신 선생님인데 기억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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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 고등학교 6년 세월 중, 가장 수학을 잘 가르쳤다고 생각하는 수학 선생님. "이거 어려워 보이지? 별거 아녀"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알기쉽게 강의를 풀어내시던 선생님 덕분에 미/적분과 확률 등을 아주 쉽게 깨우쳤습니다. 대학입시에서도 그 문제만 맞췄구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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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접촉이 없었던 양호선생님. 나중에 사회생활하며 함께 일했던 후배직원의 이모인가? 외숙모인가?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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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때 영어선생님. 연로하셔서 구부정한 걸음걸이와 늘 콜록콜록 기침하시던 생각이 난다. 친한 친구의 담임이셨는데, 그 친구 장기 결석문제때문에 찾아가 뵈면 오히려 친구 걱정을 많이 해 주시던 자상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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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말기 입시준비 막바지에 잠시 독일어 문제집을 특강으로 받았던 기억이 난다. 대단한 열성과 실력파였던 독일어 선생님. 잠시였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1문제 틀리고 다 맞췄으니까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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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평안도 사투리를 쓰시던 지리 선생님 씩씩한 걸음걸이와 투박한 이북사투리로 지리과목을 열강하시던 선생님.
젊어서는 그렇게 호랑이 선생님이셨다는데 우리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이미 노인네 선생님. 그래서 그랬는지 아주 자상하셨던 선생님으로 기억. 일홍이가 선생님 말투를 곧잘 흉내내곤 하였다. (?) "이누무 쉐이덜! 조용히 못 하간? 조용히 하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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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을 꼭 영어하듯이 묘하게 뒤집어 하시던 선생님 중학교 때는 공업과목을 가르치셨는데, 모르타르의 물과 시멘트 배합비율이 잘 안 맞으면 잘 안 섞인다는 말을 "잘 섞어 안져" 이런 식으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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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부를 담당하셨던 선생님인데 음악선생님이 공석이었는지? 어쨌는지? 임시로 음악과목을 가르치셨던 기억이 난다. 전공이 아닌 피아노를 치시느라 자주 틀리시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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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때 인가? 고2때인가? 교련과목이 생기며 부임했던 교련 교관. 깡마른 체구에 가무잡잡한 피부색에 사지군복을 입고 총을 올렸다 내렸다 구령을 붙여가며 기합을 받았다. 과목 탓이었는지, 늘 강압적이었던 교관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기합도 많이 받고, 군발이도 아니고 어린 학생들이었는데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슬픈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군인들이 나와서 열병/분열 및 기본군사훈련을 검열하고 합격을 못하면 무슨 불이익을 준다고 공갈을 치던 시절. 더불어 이준상 교관의 목소리도 커지지 않았나 생각.

단상 위의 군발이들이 서슬이 퍼렇던 시절...박정희 시대의 어두운 단면이다. 박정희가 3선개헌을 하고나서 국민들을 강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희생양 역할. 고등학교 1학년때인가?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달달 외우게 하고...일본의 황국신민서약처럼 북한의 청년근위대를 본따 나중에는 학도호국단을 만들게 된다. 우리 졸업 후에(?)...가물가물
아마도 고2때 였던가? 우리도 동참한다며 3선개헌반대 데모하다가 종로2가에서 도망치던 생각이 난다. 결국 1972년 우리 대학2학년 시절, 메이지 유신을 본딴 10월 유신으로 영구집권을 기도. 그 후 7년만에 심복이었던 부하 김재규의 흉탄에 맞아 부인을 따라 현충원으로 갔다. 지금도 박정희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구국의 영웅? 군사독재의 화신? 그래도 어쩌다 현충원엘 가게 되면 꼭 참배를 하고 오게 된다.
그의 사후에는 똘마니들이었던 전두환, 노태우가 정권을 이어받아 계속 군발이 세상. 그의 딸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었고, 아들 지만이는 청량리 588을 헤매고 마약을 하다가 지금은 변호사 마누라 얻어 애도 낳고, 고 박태준 포철회장의 배려로 거부가 되었다. 그의 시절에는 연설문이나 뉴스에서도 군, 관, 민 순이었다. 요즘은 민, 관, 군, 격세지감.

만약 전쟁이 터졌다면 모두 총알받이가 되었을...안 그래도 입시준비에 찌든 애들을...ㅉㅉ 어느 해인가? 소풍대신 걸어서 한독약품에서 태능까지 간 기억이 난다. 모두 각반을 차고... 각반, 요대, 교련복, 모두 부모님들 돈으로 사서 입고 차야했다. 얼어죽을...

요즘 이런 군사교육을 한다고 하면 어떨까? 학부모들이 헌법재판소로 달려가지 않을까? 훈련은 대학생들보다 훨씬 빡세게 받았는데도 교련혜택은 전혀 없었고...착한 국민들 대학생들에게는 어영부영 시간때우는 교련과목 이수 1년당 1개월 병역단축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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