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했다… 찬밥이 됐다… 집에서 난 뭘까요
여러분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사연의 주인공과 같은 입장에 계신 분, 혹은 아내의 입장, 자녀의 입장에 계신 분들은 '별별다방'커뮤니티(troom.premium.chosun.com)에서 의견 달아주세요. 다음 주에는 여러분의 의견을 소개하고, 제 생각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홍여사 드림
-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Q1: 저는 68세, 제 아내는 61세로 서울에 거주하는 평범한 노부부입니다. 자식들은 저마다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있고, 저는 58세 때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쉰 건 두세 달뿐, 퇴직 후 곧 지인의 소개를 받아 건물 관리소장으로 지금껏 일해오고 있습니다. 급여는 얼마 안 되지만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근무하고 있지요. 요즘 같은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는 퇴직자인 셈인데, 문제는 아내의 태도 변화입니다.
퇴직 전까지는, 30년을 한결같이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먹었습니다. 한데 정년퇴직 후 아내가 서서히 변하더군요. 평소 안 하던 잔소리가 심해졌어요. '밥상 차릴 때는 거들어라' '청소기 좀 돌려라' '빨래 같이 널자' 등등 집안일을 같이하자는 겁니다. 전에는 혼자서 김치도 잘 담그더니 요즘은 '힘 있는 남자가 배추 소금에 절여라' '무거운 건 남자가 들어야지' 하면서 많은 것을 저에게 떠넘깁니다. 퇴직하고도 나 나름대로 계속 일을 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집안일을 시키느냐고 따지면 다른 집은 벌써부터 남자들이 거들고 있다며 더 큰소리칩니다. 하루는 큰맘 먹고 도와줄 생각으로 음식 쓰레기를 치우러 가는데, 뒤통수에 대고 아내가 말합니다. '음식 쓰레기 좀 치워줘!'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기분이 상하더군요. 속담에 '하던 일도 멍석 깔아 주면 안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부드럽게 부탁해도 될 일을 명령조로 나오니 나도 오기가 발동합디다. 싫다고 하면 다툼이 일어나죠. 그러면 또 아내는 애들에게 전화하고, 애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항상 엄마 편을 들지요. 한번은 아들이 한마디 하더군요. '아버지, 황혼 이혼 당하기 전에 엄마 잘 도와주세요.'
황혼 이혼이라…. 어떤 때는 차라리 이혼하고 혼자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혼자 사는 남자는 왠지 처량해 보일 것 같네요. 보기 좋게 늙어가는 노부부 모습은 저 혼자만의 꿈이었던 모양입니다.
Q2: 안녕하세요? 저를 뭐라고 소개해야 좋을지 막막하네요. 올해 61세인 남자고, 아내, 두 딸과 함께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로 무슨 설명이 될까요? 61이라는 숫자도, 남자라는 말도, 아내나 딸이라는 말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제 느낌으로는 그저 퇴직자, 퇴물, 투명인간일 뿐입니다.
저는 5년 전에 퇴직했습니다. 일을 할 당시에는, 일중독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열심이었습니다. 원래 제 성격이 뭐든 하나밖에 모르고, 내 몸, 내 시간 아낄 줄을 모릅니다. 덕분에 저 나름대로 성공도 했고, 주위에서 인정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을 놓고 집에 있게 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집 안에서 저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없으면 아쉬우니까 한자리에 가만히 모셔놓으면 되는 존재였습니다. 아내와 두 딸은, 같은 여자라 그런지 속닥속닥 서로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다가가면, 예의 바른 얼굴로 밀어냅니다. 어릴 때는 정말로 귀여운 아이들이었고 바빠서 한번 놀아주지도 못하는 게 한이었는데, 20대 후반의 딸들은 어색할 정도로 멀기만 합니다. 사내놈들 같으면 못 먹는 술이라도 같이 먹으며 말문을 터보겠는데, 다 자란 딸애들한테는 대체 무슨 말로 운을 떼야 할지….이제 와 새삼 아들 없는 게 아쉬워지네요. 아내 역시 서로 편하자고 각방을 쓴 지 한참이고, 저를 아예 하숙생 취급합니다. 애들은 바빠서 식사도 따로따로, 출퇴근도 제각각인 상황에, 아내하고는 서먹하니 저만 혼자 식사를 하거나 잠자리에 드는 일이 대부분이죠. 여자들끼리는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아도 평소에 서로 주고받은 게 많아서인지 전혀 어색하지가 않은가 봅니다. 답답한 마음에 외출해서 친구라도 만나면 좀 풀리는가 싶지만 집에 돌아오면 다시 원점입니다. 제가 원래 놀 줄을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가족이 이 모양인데 취미며 사교가 무슨 의미인가요?
우리 집 여자들이 내게 바라는 건 뭘까요? 내가 이대로 아무 사고 안 치고 조용히 늙어주기만을 바라는 모양입니다. 나 없이도 잘만 돌아가는 집, 나만 소리 없이 사라져주면 더 바랄 게 없어 보입니다.
"놀아줘, 밥좀줘" 은퇴남편 24時… 아내는 속 터져
[한국 여성 72%, 늙어가는 남편 부담스럽다는데… 은퇴 후 40년, 위기의 부부]
할말 많은 남편 - 몸 바쳐서 가족 먹여살렸건만 이제와서 집에서는 찬밥 취급
더 할말 많은 아내 - 몸 바쳐서 애들 다 키웠는데 늙어서 남편까지 돌봐야 하나
한국 아내들이 惡妻일까 - 이젠 은퇴후 40년 함께 사는데
아내는 음식준비에 1시간 43분, 한국 남편은 17분만 도와줘
매일 거실에서 빈둥거리는 '공포의 거실남', 온종일 잠옷 차림에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를 귀 쫑긋 세우고 엿듣는 '파자마맨', 어딜 가나 따라오는 '정년(停年)미아', 하루 세끼 밥 차려줘야 하는 '삼식(三食)이'….
은퇴해서 집에 있는 남편을 묘사하는 이 농담들이 고령화가 급진전하는 우리 사회에서 마냥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6일 발표한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국민인식 조사'에서 여성의 71.8%가 '늙은 남편 돌보는 일이 부담스럽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같은 질문에 남성도 66.4%가 동의했다. 한국 남성들 스스로 '나이 먹으면 아내에게 부담되는 존재'라고 자인(自認)한 셈이다.
◇고령화가 가져온 도전, '은퇴 후 40년, 초장기 부부시대'
그럼에도 남편들은 충격받고 분노한다. "평생 고생하며 가족들 먹여 살렸는데, 은퇴하고 돈 못 버니 아내들의 괄시가 시작됐다"며 아내들의 이기주의를 개탄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에 지난 1년간 상담을 요청해온 남성의 44%가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부부 갈등과 이혼을 고민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그중에서도 혼인기간이 25년 이상 된 남성 내담자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이는 30년 전만 해도 생각하기 힘든 고민이다. 1980년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은 65.7세,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다가 65세 정년 채우고 퇴직하던 시절이었다. 은퇴 후 부부가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야 채 10년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고령화가 가속화돼 '100세 시대'가 눈앞에 닥쳤고, 쉰 안팎에 조기 퇴직하는 고용 불안정까지 겹치면서 은퇴 부부가 함께 사는 기간이 30~40년에 달하는 '초장기(超長期) 노인부부' 시대가 도래했다. 노부부 간의 '평화로운 공존'과 '갈등 관리'가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이다.
◇빨리 변하는 女, 느리게 변하는 男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누구 일방의 잘못이 아니라 은퇴 이후 30~40년을 함께 살아야 할 부부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방법을 몰라 빚어지는 갈등이라고 말한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는 "'늙은 남편이 부담스럽다'는 여성들의 표현은 '싫다' '밉다'는 뜻이 아니라 '불편하다'는 의미"라면서 "눈 뜨면 회사에 나갔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돌아오던 남편과 갑자기 24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데서 오는 불편함"이라고 말했다. "결국 아내는 은퇴한 남편을 위해 새로운 내조를 해야 할 처지가 되는 거죠. 놀아줘야 하고, 점심밥·저녁밥까지 신경 써 차려줘야 하고, 은퇴해 위축된 남편의 기분도 달래줘야 하니까요. 어느 누가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은퇴 남편의 당황스러움도 그 못지않다. 경제발전의 주역으로만 살아왔지 혼자서 놀 줄 모르고, 집안일이라면 숟가락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만큼 무관심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남편들이여, 영국 남자를 본보기 삼아라
한국 여성들이 유난히 '이기적이고 못된 악처(惡妻)'가 되어가는 걸까. 조주은 여성·가족정책 담당 입법조사관은 "'돌봄 노동'을 여성 몫으로 전담시켜온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성별 분업이 '은퇴 남편 증후군'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남성들은 은퇴하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집안일을 별로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남성들의 가사노동시간(1시간 1분)은 미국(1시간49분)이나 영국(2시간48분)의 은퇴 남편들보다 훨씬 짧다. 특히 아내들이 하루 평균 1시간 43분을 음식 준비하는 동안, 은퇴 남편들은 단 17분 거든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부장적 권위는 무너지고 부부간 대등한 관계가 필요한데, 어느 일방의 희생을 기반으로 더 이상 부부관계가 유지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 결과로 황혼이혼도 늘고 있다. 1995년 138건에 불과했던 65세 이상 여성의 이혼 건수는 지난해 1734건으로 늘었다. 자생력 없는 가부장적 권위는 법정에서도 단죄받는다. 지난해 11월 법원은 권위적인 남편(80)으로부터 6년 동안 메모지로 살림 지시를 받은 76세 아내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남편은 '생태는 동태로 하고 삼치는 꽁치로 바꿀 것', '두부는 비싸니 각종 찌개에 3, 4점씩만 양념으로 사용할 것' 등의 메모로 아내를 통제했고, 법원은 이런 통제를 이혼사유로 인정했다.
◇그래도 열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
지난해 서울에서 부부끼리 사는 65세 이상 노인(26만1399명)이 전체 노인의 28.1%를 차지했다. 서울의 노인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부부끼리 사는 셈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이삼식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은 "자식이 몇 안 되는 고령화 사회에서는 모든 돌봄에서 양성 평등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며 "신(新)가족갈등의 해법은 부부가 공평해지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돌봄의 책임을 가족, 특히 나이 든 아내에게만 떠넘기지 말고 사회적 돌봄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는 "노인돌보미바우처사업,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등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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