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어제(9일) 돌아가셨습니다.
또 세월이 갑니다. 인간은 이래서 점점 죽음과 친해지는 것 같습니다.
슬픕니다.
2008년 여름 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임종을 보면서 “이건 꿈일거야”라고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어머니는 “내 아들이 잘되고 있는데... 내 아들 보며 호강 좀 하려했는데...” 라면서 당신의 다가오는 죽음을 원망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아마도 “내 아들 잘되는 모습 보고 싶었는데.. 결국 기다리지 말라는 말씀인가...”라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은사이셨습니다.
제가 대학입학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뵌 은사이셨고, 이후 20여년을 명절때면 은사님의 댁을 찾아뵈었습니다. 은사님은 저와 동기동창이자 같은 외아들인 병구 만큼 저를 아들처럼 대해주셨습니다.
은사님은 고교 때 교련선생이셨습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당신을 피하는 것만으로 우리들은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사실 저는 중고교 때 정학을 가장 많이 받은 문제아였습니다. 요즘 말로 특별관리 대상이었습니다.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일’을 또 저지를지 몰라 학교에서는 은사님의 통솔 하에 저를 포함한 몇 명을 아예 대천해수욕장으로 끌고가 거기서 여름방학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대학입시를 코앞에 둔 고교 3학년말 또다시 무기정학을 받았는데, 기적적으로 서강대에 입학했습니다. 선생님이 저를 껴안고 기뻐하시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제가 대학졸업을 앞두고 신문기자가 되어 인사를 드릴 때 선생님과 사모님은 저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바로 이 점입니다. 당신의 아들은 시원찮았거든요.
은사님 부부의 모든 것은 병구였을 겁니다. 저와도 아주 친한 사이였습니다. 이 친구 결혼식 사회를 제가 봤으니까요.
이 친구는 지금 태국 중범죄 수용소에서 복역 중입니다. 벌써 5년이 넘었습니다. 열대지방의 수용소에서 흉악범들과 지금까지 산 것만도 기적입니다.
이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영화 ‘빠삐온’ 제작자가 이 친구를 먼저 알았다면 훨씬 비참한 인간을 그려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괜찮은 대학에 진학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후 가출, 도박, 전국 슬로트머신 도박장 블랙리스트, 사문서 위조전문범, 히로뽕 상습, 급기야는 국제 마약범죄 조직단에 연루되어 태국에서 체포됐습니다.
그렇다고 험상궃은 친구는 아닙니다. 하리수와 비숫한 몸매와 용모에, 대학 부터 고급자가용을 몰고 다녔고, 끊임없이 여자가 꼬였을 정도로 핸섬합니다. 단언컨대 그는 파리 한마리도 죽일 배짱이 없는 친구입니다. 부모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철저한 쾌락주의자였을 뿐입니다.
은사님은 최근까지 암으로 간신히 생명을 연장하고 계셨습니다. 이미 5년전에 말기암이셨습니다. 병원에서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돌아가시지 않은 것은, 아니, 당신의 모든 것인 외아들을 보고 싶어 죽을 수가 없었다는 게 정답일 겁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49제 때는 꼭 찾아뵙겠습니다.
제가 마침 내일이 결혼 기념일이고, 며칠 뒤에는 외동딸 혼사를 치러야하거든요.
선생님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마 병구는 퇴소하면, 이젠 부모님을 잘 모실 거라 봅니다. 더 이상 그를 유혹할 범죄도, 쾌락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병구에게
병구야. 넌 이제 모든 것을 잃었을 거야. 가진 건 없는데 자신이 숨쉬고 있음이 느껴진다면, 너의 눈에 보이는 것, 네가 움직이는 것, 생각하는 것 모두가 새로운 것이 되겠지. 난 내려 놓는 게 너무 힘들더라. 넌 어찌됐든 모든 게 내려졌잖니. 갓난 아기가 되어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려무나.
11월 10일 이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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