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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유정의 작품감상 - 소낙비/봄봄/동백꽃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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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金裕貞 1908-1937) 소설가.

1908
1 11일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였다. 1929년 휘문고보(徽文高普)를 졸업하고 연희전문(延禧專門) 문과를 중퇴하였다.
한때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금광에 몰두하기도 했다. 1935년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각각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어렵게 자랐으며 작가가 된 뒤에도 심한 생활고(生活苦)와 폐결핵에 시달렸다.

폐결핵에 시달리면서 29세를 일기로 요절하기까지 불과 2년 동안의 작가생활을 통해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길 만큼 그의 문학적 정열은 남달리 왕성했다
. “금 따는 콩밭”(1935), “만무방”(1935), “산골”(1935), “가을”(1936), “따라지”(1937)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하여 그의 작품은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것인데 《금 따는 콩밭》은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린 것이고, 《봄봄》은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린 그의 대표적인 농촌소설이다. 그 밖에《동백꽃》 《따라지》 등의 작품이 있다.


그의 문학 세계는 희화(戱畵)와 골계(滑稽)가 특징이며 그의 세계 인식의 태도는 냉철하고 이지적이기보다 해학이 가득 차 있다. 그의 작품은 인물의 우직함과 엉뚱함, 결말에서의 의외적 행동, 서술자의 특수한 역할과 아이러니, 반미학적(反美學的)일 만큼 수치의 감정이 이완된 육담(肉談)과 속어(俗語) 등 그 담론(談論), 즉 언어에 있어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웃음의 뒤에는 그의 불행한 삶과 우울에서 오는 애수가 베어 있고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을 당대의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삶을 고통에 대한 웃음으로서의 대응으로 보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동백꽃”, “봄봄”(1935), “산골 나그네”(1936)와 같이 농촌의 자연스러운 생활에 대한 애정을 담은 작품과 착취당하는 농촌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낙비”(1935), “만무방”, “총각과 맹꽁이”(1933), “가을”(1936) 등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김유정은 농촌 현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노출시키면서도 그것을 웃음으로 치환시키는 우회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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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비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 줄기 할 듯하면서도 여전히 짓궂은 햇발은 겹겹 산 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이따금 생각하는 듯 살매 들린 바람은 논밭간의 나무들을 뒤흔들며 미쳐 날뛰었다.

산 밖으로 농군들을 멀리 품앗이로 내보낸 안말의 공기는 쓸쓸하였다. 다만 맷맷한 미루나무 숲에서 거칠어 가는 농촌을 읊는 듯 매미의 애끓는 노래 -------.

매응! 매매움!


춘호는 자기 집 --- 올 봄에 오 원을 주고 사서들은 묵삭은 오막살이 집 --- 방문턱에 걸터앉아서 바른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는 봉당에서 저녁으로 때울 감자를 씻고 있는 아내를 묵묵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사날 밤이나 눈을 안 붙이고 성화를 하는 바람에 농사에 고리삭은 그의 얼굴은 더욱 해쓱하였다.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졸라 보았다. 그러나 위협하는 어조로,

"이봐, 그래 어떻게 돈 이 원만 안 해줄 테여?"

아내는 역시 대답이 없었다. 갓 잡아온 새댁 모양으로 씻는 감자나 씻을 뿐 잠자코 있었다.

되나 안 되나 좌우간 이렇다 말이 없으니 춘호는 울화가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타곳에서 떠돌아 온 몸이라 자기를 믿고 장리를 주는 사람도 없고 또는 그 알량한 집을 팔려 해도 단 이삼 원의 작자도 내닫지 않으므로 앞뒤가 꼭 막혔다. 마는 그래도 아내는 나이 젊고 얼굴 똑똑하겠다, 돈 이 원쯤이야 어떻게 라도 될 수 있겠기에 묻는 것인데 들은 체도 안 하니 괘씸한 듯싶었다.


그는 배를 튀기며 다시 한 번,

"돈 좀 안 해줄 테여?"

하고 소리를 뻑 질렀다.

그러나 대꾸는 역시 없었다.

춘호는 노기 충천하여 불현듯 문지방을 떠다밀며 벌떡 일어섰다. 눈을 홉뜨고 벽에 기대인 지게 막대기를 손에 잡자 아내의 옆으로 바람같이 달려들었다.

"이년아, 기집 좋다는 게 뭐여. 남편의 근심도 덜어 주어야지, 끼고 자자는 기집이여?"

지게 막대는 아내의 연한 허리를 모질게 후렸다. 까부라지는 비명은 모지락스레 찌그러진 울타리를 벗어 나간다.

잼처 지게 막대는 앉은 채 꼬꾸라진 아내의 발뒤축을 얼러 볼기를 내리갈겼다.

"이년아, 내가 언제부터 너에게 조르는 게여?"

범같이 호통을 치며 남편이 지게 막대를 공중으로 다시 들어올리며 모질음을 쓸 때 아내는,

"에구머니!"

하고 외마디를 질렀다. 연하여 몸을 뒤치자 거반 엎어진 듯이 싸리문 밖으로 내달렸다. 얼굴에 눈물이 흐른 채 황그리는 걸음으로 문 앞의 언덕을 내리어 개울을 건너고 맞은쪽에 뚫린 콩밭 길로 들어섰다.


"
, 네가 날 피하면 어딜 갈 테여?"

발길을 막는 듯한 의미 있는 호령에 달아나던 아내는 다리가 멈칫하였다. 그는 고래를 돌리어 문안에 아직도 지게 막대를 들고 섰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어른에게 죄진 어린애같이 입만 종깃종깃하다가 남편이 뛰어나올까 겁이 나서 겨우 입을 열었다.

"쇠돌 엄마 집에 좀 다녀 올게유."

쭈뼛쭈뼛 변명을 하고는 가던 길을 다시 횅하게 내걸었다. 아내라고 요새 이 돈 이 원이 금시로 필요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마는 그의 자격으로나 노동으로나 돈 이 원이란 감히 땅뜀도 못 해 볼 형편이었다.

벌이래야 하잘것 없는 것 ---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섭게 남에게 뒤질까 영산이 올라 산으로 빼는 것이다. 조그만 종댕이를 허리에 달고 거한 산중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도라지, 더덕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깊은 산 속으로 우중충한 돌 틈바귀로 잔약한 몸으로 맨발에 짚신 짝을 끌며 강파른 산등을 타고 젖먹던 힘까지 녹아 내리는 듯 진땀이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린다.


아랫도리를 단 외겹으로 두른 낡은 치맛자락은 다리로, 허리로 척척 엉기어 걸음을 방해하였다. 땀에 붙은 종아리는 거친 숲에 긁혀 매여 그 쓰라림이 말이 아니다. 게다가 무거운 흙내는 숨이 탁탁 막히도록 가슴을 찌른다. 그러나 삶에 발버둥치는 순진한 그의 머리는 아무 불평도 일지 않았다.
가물에 콩나기로 어쩌다 도라지 순이라도 어지러운 숲속에 하나 둘 뾰족이 뻗어 오른 것을 보면 그는 그래도 기쁨에 넘치는 미소를 띠었다.

때로는 바위도 기어올랐다. 정히 못 기어오를 그런 험한 곳이면 칡덩굴에 매어 달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땟국에 절은 무렵 적삼은 벗어서 허리춤에다 꾹 찌르고는 호랑이 숲이라 이름난 강원도 산골에 매어 달려 기를 쓰고 허비적거린다. 골바람은 지날 적이라 알몸을 두른 치맛자락을 공중으로 날린다. 그제마다 검붉은 볼기짝을 사양 없이 내보이는 칡덩굴이 그를 본다면, 배를 움켜쥐어도 다 못 볼 것이다. 마는 다행히 그윽한 산골이라 그 꼴을 비웃는 놈은 뻐꾸기뿐이었다.


이리하여 해동 갑으로 해갈을 하고 나면 캐어 모은 도라지, 더덕은 얼러 사발 가웃, 혹은 두어 사발 남짓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동리로 내려와 주막거리에 가서 그걸 내주고 보리쌀과 사발 바꿈을 하였다. 그러나 요즘엔 그나마도 철이 겨워 소풀이 없다. 그 대신 남의 보리 방아를 온종일 찧어 주고 보리밥 그릇이나 얻어다 가는 집으로 돌아와 농토를 못 얻어 뻔뻔히 노는 남편과 같이 나누는 것이 그날 하루하루의 생활이었다. 그러고 보니 돈 이 원은커녕 당장 목을 딴대도 피도 나올지가 의문이었다.


만약 돈 이 원을 돌린다면 아는 집에서 보리라도 꾸어 파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리고 온 동리의 아낙네들이 치맛바람에 팔자 고쳤다고 쑥덕거리며 은근히 시새우는 쇠돌 엄마가 아니고는 노는 벌이를 가진 사람이 없다. 그런데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그는 자기 꼴 주제에 눌려서 호사로운 쇠돌 엄마에게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쇠돌 엄마도 처음에야 자기와 같이 천한 농부의 계집이련만 어쩌다 하늘이 도와 동리의 부자 양반 이 주사와 은근히 배가 맞아 금방석에 뒹구는 팔자가 되었다. 그리고 쇠돌 아버지도 이게 웬 땡이냔 듯이 아내를 내어 논 채 눈을 살짝 감아 버리고 이 주사에게서 나는 옷이나 입고, 주는 쌀이나 먹고 연년이 신통치 못한 자기 농사에는 한 손을 빼고는 히짜를 뽑는 것이 아닌가!


사실 말인즉, 춘호 처가 쇠돌 엄마에게 죽어도 아니 가려는 그 속 까닭은 정작 여기 있었다.

바로 지난 늦은 봄, 달이 뚫어지게 밝은 어느 밤이었다. 춘호가 보름 계추를 보러 산모퉁이로 나간 것이 이슥하여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집에서 기다리던 아내가 인제 자고 어려나 생각하고는 막 드러누워 잠이 들려니까 웬 난데없는 황소 같은 놈이 뛰어들었다. 허둥지둥 춘호 처를 마구 깔다가 놀라서 으악 소리를 치는 바람에, 그냥 달아난 일이 있었다. 어수룩한 시골 일이라 별반 풍설도 아니나고 쓱싹되었으나 며칠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동리 부자 이 주사의 소행임을 비로소 눈치 채었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춘호 처는 쇠돌 엄마와 직접 관계는 없단 대도 그를 대하면 공연스레 얼굴이 뜨뜻하여지고 몹시 어색하였다. 죄나 진 듯이…….

그리고 더욱 쇠돌 엄마가,

"새댁, 나는 속옷이 세 개구, 버선이 네 벌이구 행"하며, 아주 좋다고 핸들 대는 꼴을 보면 혹시 자기에게 한 점을 두고서 비아냥거리는 거나 아닌가 하는 옥생각으로 무안해서 고개도 못 들었다.


한편으로는 자기도 좀만 잘했다면 지금쯤은 쇠돌 엄마처럼 호강을 할 수 있었을 그런 갸륵한 기회를 깝살려 버린 자기 행동에 대한 후회와 애탄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괴롭히는 그 쓰라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러한 욕을 보더라도 나날이 심해 가는 남편의 무지한 배보다는 그래도 좀 헐할 게다. 오늘은 한맘 먹고 쇠돌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춘호 처는 이번 걸음이 헛발이나 안 칠까 일념으로 심화를 하며 수양버들이 쭉 늘여 박힌 논두렁길로 들어섰다.


그는 시골 아낙네로는 용모가 배우 반반하였다. 좀 야윈 듯한 몸매는 호리호리한 것이 소위 동리의 문자대로 외입깨나 하염직한 얼굴이었으되 푸레한 의복이며 퀴퀴한 냄새는 거지를 볼 지른다. 그는 왼손 바른손으로 겨끔내기로 치맛귀경이 되고 만다. 먼데서 개 짖는 소리가 앞뒷산을 한적하게 울린다. 빗방울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차차 굵어지며 무더기로 퍼부어 내린다.


춘호 처는 길가에 늘어진 밤나무 밑으로 뛰어 들어가 비를 그으며 쇠돌 엄마집을 멀리 바라보았다. 북쪽 산기슭 높직한 울타리로 삥 둘려 두르고 앉았는 오목하고 맵시 있는 집이 그 집이었다. 그런데 싸리문이 꼭 닫힌 것을 보면 아마 쇠돌 엄마가 농군청에 저녁 제누리를 나르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쇠돌 엄마 오기를 지켜보며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뭇잎에서 빗방울은 뚝뚝 떨어지며 그의 뺨을 흘러 젖가슴으로 스며든다. 바람은 지날 적마다 냉기와 함께 굵은 빗발을 몸에 들이친다. 비에 쪼르륵 젖은 치마가 몸에 찰싹 감기어 허리로, 궁둥이로, 다리로, 살의 윤곽이 그대로 비쳐 올랐다.


무던히 기다렸으나 쇠돌 엄마는 오지 않았다. 하도 진력이 나서 하품을 하여가며 정신없이 서 있노라니 왼편 언덕에서 사람 오는 발자취 소리가 들린다. 그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나 날쌔게 나무 틈으로 몸을 숨겼다. 동이 배를 가진 이 주사가 지우산을 받쳐 쓰고는 쇠돌네 집으로 향하여 응뎅이를 껍쭉거리며 내려가는 길이었다. 비록 키는 작달막하나 숱 좋은 수염이든지 온 동리는 털어야 단 하나뿐인 탕건이든지, 썩 풍채 좋은 오십 전후의 양반이다.

그는 싸리문 앞으로 가더니 자기 집처럼 거침없이 문을 떠다밀고는 속으로 버젓이 들어가 버린다.


이것을 보니 춘호 처는 다시금 속이 편치 않았다. 자기는 개돼지같이 무시로, 매만 맞고 돌아 치는 천덕꾼이다. 안팎으로 겹귀염을 받으며 간들대는 쇠돌 엄마와 사람된 치수가 두드러지게 다름 그는 알 수 있었다. 쇠돌 엄마의 호강을 너무나 부럽게 우러러보는 반동으로 자기도 잘했다면 하는 턱없는 희망과 후회가 전보다 몇 갑절 쓰린 맛으로 그의 가슴을 찌푸뜨렸다.

쇠돌네 집을 하염없이 건너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굴러 내린다. 언덕에서 쓸려 내리는 사탯물이 발등까지 개흙으로 덮으며 소리쳐 흐른다.

빗물에 폭 젖은 몸뚱어리는 점점 떨리기 시작한다.
그는 가벼웁게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당황한 시선으로 사방을 경계하여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손을 돌리어 그 집을 쏘아보며 속으로 궁리하여 보았다. 안에는 확실히 이 주사뿐일 게다. 그때까지 걸렸던 싸리문이라든지 또는 울타리에 널은 빨래를 여태 안 걷어들이는 것을 보면 어떤 맹세를 두고라도 분명히 이 주사 외에 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는 마음놓고 비를 맞아 가며 그 집으로 달려들었다. 봉당으로 선뜻 뛰어오르며,

"쇠돌 엄마 기슈?"하고, 인기를 내보았다.

물론 당자의 대답은 없었다. 그 대신 그 음성이 나자 안방에서 이 주사가 번개같이 머리를 내밀었다. 자기 딴은 꿈 밖이란 듯,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더니 옷 위로 불거진 춘호 처의 젖가슴, 아랫배, 넓적다리로 발등까지 슬쩍 음흉히 훑어보고는 거나한 낯으로 빙그레한다. 그리고 자기도 봉당으로 주춤주춤 나오며,

"쇠돌 엄마 말인가? 왜 지금 막 나갔지. 곧 온 댔으니 안방에 좀 들어가 기다렸으면……"하고 매우 일이 딱한 듯이 어름어름한다.

"이 비에 어딜 갔에유?"

"지금 요 밖에 좀 나갔지, 그러나 곧 올걸……."

"있는 줄 알고 왔는디……."

춘호 처는 이렇게 혼잣말로 낙심하며 섭섭한 낯으로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돌아갈 듯이 봉당 아래로 내려섰다.

이 주사를 쳐다보며 물차는 제비같이 산드러지게,

"그럼 요담에 오겠애유, 안녕히 계시유"하고 작별 인사를 올린다.

"지금 곧 온 댔는데, 좀 기다리지……."

"담에 또 오지유."

"아닐세, 좀 기다리게. 여보게, 여보게, 이봐!"


춘호 처가 간다는 바람에 이 주사는 체면도 모르고 기가 올랐다. 허둥거리며 재간껏 만류하였으나 암만해도 안 될 듯싶다. 춘호 처가 여기엘 찾아 온 것도 큰 기적이려니와 뇌성 벽력에
구석진 곳이겠다. 이렇게 솔깃한 기회는 두 번 다시 못 볼 것이다. 그는 눈이 뒤집히어 입에 물었던 장죽을 쭉 뽑아 방안으로 치뜨리고는 계집의 허리를 뒤로 다짜고짜 끌어안아서 봉당 위로 끌어 올렸다.


계집은 몹시 놀라며,

"왜 이러시유, 이거 놓세유"하고 몸을 뿌리치려는 앙탈을 한다.

"아니 잠깐만."

이 주사는 그래도 놓지 않으며 허겁스러운 눈짓으로 계집을 달래 인다.

흘러내리는 고의춤을 왼손으로 연신 치우키며 바른 팔로는 계집을 잔뜩 움켜잡고는 엄두를 못 내어 쩔쩔매다가 간신히 방안으로 끙끙 몰아 넣었다. 안으로 문고리는 재빠르게 채이었다.


밖에서는 모진 빗방울이 배추 잎에 부딪치는 소리, 바람에 나무 떠는 소리가 요란하다. 가끔 양철통을 내려 굴리는 듯 거푸진 천둥소리가 방고래를 울리며 날은 점점 침침하여 갔다.

얼마쯤 지난 뒤였다. 이만하면 길이 들었으려니 안심하고 이 주사는 날숨을 후우, 하고 돌린다. 실없이 고마운 비 때문에 발악도 못 치고 앙살도 못 피우고 무릎 앞에 고분고분 늘어져 있는 계집을 대견히 바라보며 빙긋이 얼러 보았다. 계집은 온몸에 진땀이 쭉 흐르는 것이 꽤 더운 모양이다. 벽에 걸린 쇠돌 어미의 적삼을 꺼내어 계집의 몸을 말쑥하게 훌닦기 시작한다. 발끝서부터 얼굴까지 -----.


"
, 열 아홉이지?"하고 이 주사는 취한 얼굴로 얼간히 물어 보았다.

"니에"하고, 메떨어진 대답.

계집은 이 주사의 손에 눌리어 일어나도 못 하고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 있다.

이 주사는 계집의 몸을 다 씻고 나서 한숨을 내뿜으며 담배 한 대를 턱 피워 물었다.

"그래, 요새도 서방에게 주리경을 치느냐?"하고 묻다가 아무 대답도 없으매,

"원 그래서야 어떻게 산단 말이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있는 거냐? 그러다 혹시 맞아 죽으면 정장 하나 해볼 곳 없는 거야. 허니, 네 명이 아까우면 덮어놓고 민적을 가르는 게 낫겠지?"하고 계집의 신변을 위하여 염려를 마지않다가 번뜻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너 참, 아이 낳았다 죽었다더구나?"

"니예."

"어디 난 듯이나 싶으냐?"

계집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지면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외면하였다.

이 주사도 그까짓 것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웬 녀석의 냄새인지 무생채 썩는 듯한 시크무레한 악취가 불시로 코청을 찌르니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야 그런 줄은 도통 몰랐더니 알고 보니까 좋이 역하였다. 그는 빨고 있는 담배통으로 계집의 배곱께를 똑똑히 가리키며,

", 이 살의 배꼽 좀 봐라. 그래 물이 흔한데 이것 좀 못 씻는단 말이야?"하고, 모처럼의 기분을 상한 것이 앵하단 듯이 꺼림한 기색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계집은 참다 참다 이내 무안에 못 이기어 일어나 치마를 입으려 하니 그는 역정을 벌컥 내었다. 옷을 빼앗아 구석으로 동댕이를 치고는 다시 그 자리에 끌어 앉혔다. 그리고 자기 딸이나 책하듯이 아주 대범하게 꾸짖었다.

"왜 그리 계집이 달망대니? 좀 듬직하지 못하구……."


춘호 처가 그 집을 나선 것은 들어간 지 약 한 시간 만이었다.

비가 여전히 쭉쭉 내린다. 그는 진땀을 있는 대로 흠뻑 쏟고 나왔다. 그러나 의외로, 아니 천행으로 오늘 일은 성공이었다.

그는 몸을 솟치며 생긋하였다. 그런 모욕과 수치는 난생 처음 당하는 봉변으로, 지랄 중에도 몹쓸 지랄이었으나 성공은 성공이었다.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고생이 따르는 법이니 이까짓 거야 골백번 당한대도 남편에게 매나 안 맞고 의좋게 살 수만 있다면 그는 사양치 않을 것이다. 이 주사를 하늘같이, 은인같이 여겼다. 남편에게 부쳐먹을 농토를 줄 테니 자기의 첩이 되라는 그 말도 죄송하였으나 더욱이 돈 이 원을 줄게니 내일 이맘때 쇠돌네 집으로 넌지시 만나자는 그 말은 무엇보다도 고맙고 벅찬 짐이나 풀은 듯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다만 애키는 것은 자기의 행실이 만약 남편에게 발각되는 나절에는 대매에 맞아 죽을 것이다. 그는 일변 기뻐하며 일변 애를 태우며 자기 집을 항하여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을 가분가분 내려 달렸다.


춘호는 아직도 분이 못 풀리어 쀼루퉁하니 홀로 앉았다.

그는 자기의 고행인 인제를 등진 지 벌써 삼 년이 되었다. 해를 이어 흉작에 농작물은 말 못 되고 따라 빚쟁이들의 위협과 악다구니는 날로 심하였다.

마침내 하릴없이 집 세간살이를 그대로 내버리고 알몸으로 밤도주하였던 것이다. 살기 좋은 곳을 찾는다고 나이 어린 아내의 손목을 끌고 이 산 저 산으로 넘어 표랑하였다. 그러나 우정 찾아 들은 곳이 고작 이 마을이나, 산 속은 역시 일반이다. 어느 산골엘 가 호미를 잡아 보아도 정은 조그만치도 안 붙었고, 거기에는 오직 쌀쌀한 불안과 굶주림이 품을 벌려 그를 맞을 뿐이었다. 터무니없다 하여 농토를 안 준다, 일 구멍이 없으매 품을 못 판다, 밥이 없다. 결국에 그는 피폐하여 가는 농민 사리를 감도는 엉뚱한 투기심에 몸이 달떴다.


요사이 며칠 동안을 두고 요 너머 뒷산 속에는 밤마다 큰 노름판이 벌어지는 기미를 알았다. 그는 자기도 한몫 보려고 끼룩거렸으나 좀체로 밑천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이 원! 수나 좋아서 이 이 원이 조화만 잘 한다면 금시 발복이 못 된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으랴! 삼사십 원 따서 동리의 빚이나 대충 가리고 옷 한 벌 지어 입고는 진저리 나는 이 산골을 떠나려는 것이 그의 배포였다. 서울로 올라가 아내는 안잠을 재우고 자기는 노동을 하고, 둘이서 다구지게 벌으면 안락한 생활을 할 수가 있을 텐데, 이런 산 구석에서 굶어 죽을 맛이야 없었다. 그래서 젊은 아내에게 돈 좀 해오라니까 요리 매낀 조리 매낀 피하고 곁들어 주지 않으니 그 소행이 여간 괘씸한 것이 아니다.


아내가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집으로 달려들자 미처 입도 벌리기 전에 남편은 이를 악물고 주먹 뺨을 냅다 붙인다.

"너 이년, 매만 살살 피하고 어디 가 자빠졌다 왔니?"

볼치 한 대를 얻어맞고 아내는 오기가 걸리어 벙벙하였다. 그래도 직성이 못 풀리어 남편이 다시 매를 손에 잡으려 하니 아내는 질 겁을 하여 살려 달라고 두 손으로 빌며 개신 개신 입을 열었다.

"낼 되유--- , , 되유"하며 돈이 변통됨을 삼가 아뢰는 그의 음성은 절반이 울음이었다. 남편이 반신반의하며 눈을 찡긋하다가,

"?"하고 목청을 돋았다.

", 낼 된다유."

"꼭 되여?"

", 낼 된다유."


남편은 시골 물정에 능통하니 만치 난데없이 돈 이 원이 어디서 저렇게 되는 것까지는 추궁해 물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적이 안심한 얼굴로 방문턱에 걸터앉으며 담뱃대에 불을 그었다. 그제야 비로소 아내도 마음을 놓고 감자를 삶으러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니 남편이 겉으로 걸어오며 측은한 듯이 말리었다.

"병나, 방에 들어가 어여 옷이나 말리여, 감자는 내 삶을게."


먹물같이 짙은 밤이 내리었다. 비는 더욱 소리를 치며 앙상한 그들의 방벽을 앞뒤로 울린다. 천장에서 비는 새지 않으나 집 지은 지가 오래되어 고래가 물러앉다시피 된 방이라 도배를 못 한 방바닥에는 물이 스며들어 귀축축하다. 거기다 거적 두 잎만 덩그렇게 깔아 놓은 것이 그들의 침소였다. 석유 불은 없어 캄캄한 바로 지옥이다. 벼룩 이는 사방에서 마냥 스물거린다.

그러나 등걸 잠에 익달한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나란히 누워 줄기차게 퍼붓는 밤 빗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가난으로 인하여 부부간의 애틋한 정을 모르고 나날이 매질로 불평과 원한 중에서 복대기는 그들도 이 밤에는 불시고 화목하였다.

단지 남편의 품에 들은 돈 이 원을 꿈꾸어 보고도,

"언제 서울 갈라유?"

남편의 왼팔을 베고 누웠던 아내가 남편을 향하여 응석 비슷이 물어 보았다. 그는 남편에게 서울의 화려한 거리며, 후한 인심에 대하여 여러 번 들은 바 있어 일상 안타까운 마음으로 몽상은 하여 보았으나 실지 구경은 못 하였다. 얼른 이 고생을 벗어나 살기 좋은 서울로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곧 가게 되겠지, 빚만 좀 갚아도 가뜬하련만."

"빚은 낭종 줴더라도 얼핀 갑세다유."

"염려 없어. 이 달 안으로 꼭 가게 될 거니까."

남편은 썩 쾌히 승낙하였다.

딴은 그는 동리에서 일컬어 주는 질꾼으로 투전장의 가보쯤은 시루에서 콩나물 뽑듯하는 능수였다. 내일 밤 이 원을 가지고 벼락같이 노름판에 달려가서 있는 돈이란 깡그리 모집어 올 생각을 하니 그는 은근히 기뻤다. 그리고 교묘한 자기의 손재간을 홀로 뽐내었다.


"
이번이 서울 첨이지?"하매, 그는 서울 바람 봄 한 번 쐬었다고 큰 체를 하며 팔로 아내의 머리를 흔들어 물어 보았다. 성미가 워낙 겁겁한지라 지금부터 서울 갈 준비를 착착 하고 싶었다. 그가 제일 걱정되는 것은 둠 구석에서
자라 먹은 아내를 데리고 가면 서울 사람에게 놀림도 받을 게고 거리끼는 일이 많을 듯싶었다. 그래서 서울 가면 꼭 지켜야 할 필수 조건을 아내에게 일일이 설명치 않을 수 없었다.


첫째, 사투리에 대한 주의부터 시작되었다. 농민이 서울 사람에게 '꼬라리'라는 별명으로 감잡히는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투리에 있을지니 사투리는 쓰지 말며 '합세' '하십니까' '하게유' '하오'로 고치되 말끝을 들지 말지라, 또 거리에서 어릿어릿하는 것은 내가 시골뜨기요 하는 얼뜬 짓이니 갈 길은 재게 하고 볼 눈은 또릿또릿이 볼지라----하는 것들이었다. 아내는 그 끔찍한 설교를 귀담아 들으며 모깃소리로 ", "를 하였다.


남편은 두어 시간 가량을 샐 틈 없이 꼼꼼하게 주의를 다져 놓고는 서울의 풍습이며 생활 방침 등을 자기의 의견대로, 그럴싸하게 이야기하여 오다가 말끝이 어느덧 화장술에 이르게 되었다. 시골 여자가 서울에 가서 안잠을 잘 자 주면 몇 후에는 집까지 얻어 갖는 수가 있는데, 거기에는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소문을 일찍 들은 바 있어 하는 소리였다.

"그래서 날마다 기름도 바르고, 분도 바르고, 버선도 신고 해소 쥔 마음에 썩 들어야……."

한참 신바람이 올라 주워섬기다가 옆에서 쌔근쌔근 소리가 들리므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는 이미 곯아져 잠이 깊었다.

"이런 망할 거, 남 말하는데 자빠져 잔담.,"

남편은 혼자 중얼거리며 바른 팔을 들어 이마 위로 흐트러진 아내의 머리칼을 뒤로 쓰담아 넘긴다. 세상에 귀한 것은 자기 아내! 명색이 남편이며 이날까지 옷 한 벌 변변히 못 해 입히고 고생만 짓시킨 그 죄가 너무나 큰 듯 가슴이 뻐근하였다. 그는 왁살스러운 팔로 아내의 허리를 꼭 껴안아 자기의 앞으로 바특이 끌어당겼다.


밤새도록 줄기차게 내리던 빗소리가 아침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치고 점심때에는 생기로운 볕까지 들었다. 쿨렁쿨렁 눈물 나는 소리는 요란히 들린다. 시내에서 고기 잡는 아이들의 고함이며, 농부들의 희희낙락한 미나리도 기운차게 들린다. 비는 춘호의 근심도 씻어 간 듯 오늘은 그에게도 즐거운 빛이 보였다.

"저녁 제누리 때 되었을 걸, 얼른 빗고 가 봐 ----."

그는 갈증이 나서 아내를 대고 재촉하였다.

"아직 멀었어유."

"!"


아내는 남편의 말대로 벌써부터 머리를 빗고 앉았으나 원래 달포나 아니 가리어 엉클은 머리가 시간이 꽤 걸린다. 그는 호랑이 같은 남편과 오랜만에 정다운 정을 바꾸어 보니 근래에 볼 수 없는 화색이 얼굴에 떠돌았다.

어느 때에는 매적하게 생글생글 웃어도 보았다.


아내가 꼼지락하는 것이 보기에 퍽으나 갑갑하였다. 남편은 아내 손에서 얼래 빗을 쑥 뽑아 들고는 시원스레 쭉쭉 내려 빗긴다. 다 빗긴 뒤, 옆에 놓인 밥사발의 물을 손바닥에 연신 칠해 가며 머리에다 번지르하게 발라 놓았다. 그래 놓고 위서부터 머리칼을 재워 가며 맵시 있게 쪽을 딱 질러 주더니 오늘 아침에 한사코 공을 들여 삼아 놓았던 짚신을 아내의 발에 신기고 주먹으로 자근자근 골을 내주었다.

"인제 가 봐!"하다가

"바루 곧 와, ?"하고 남편은 그 이 원을 고이 받고자 손색없도록, 실패 없도록 아내를

모양내 보냈다

 

 

1935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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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및 감상]


■ 작품 개관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1석 당선작. 원명은 《따라지 목숨》이다. 가난한 농부 춘호는 산골생활을 벗어나기 위한 노름 밑천 2원이 없어 젊은 아내를 때리며 돈을 구해 오라고 한다. 춘호의 아내는 마을 부자인 이주사의 눈에 들어 팔자를 고친 쇠돌어멈을 찾아 나선다. 가는 도중 소낙비가 쏟아지고 이주사가 쇠돌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밖에서 기다리며 생각하다가 이주사 혼자 있는 쇠돌네 집으로 들어가 몸을 맡기기로 약속하고 다음날 2원을 받기로 한다. 이튿날 춘호는 돈을 얻어 빚을 갚고 서울로 가서 아내와 안락한 생활을 하겠다는 기대에 차 아내를 곱게 단장시켜 이주사에게로 보낸다.
 유랑농민의 적빈(赤貧)과 아내의 성(性)을 생계수단으로 삼고도 수치를 모르는 도덕성의 마비를 해학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 줄거리
 흉작과 빚쟁이의 위협 때문에 야간 도주를 한 춘호는 아무리 떠돌아 다녀도 살 방도가 없다. 그래 생각해 낸 것이 노름이다. 그러나 밑천 2원이 없어 울화가 치민 그는 아내를 때리며 돈을 구해 오라고 윽박지른 다.  매를 맞고 뛰쳐나온 춘호의 처는 돈을 구할 방도를 생각하다가, 마침 이 마을 부자인 이 주사의 눈에 들어 팔자를 고친 쇠돌 어멈네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소낙비를 만나 밤나무 밑에서 피하던 중 이상한 일을 목격한다. 아무도 없는 쇠돌 어멈 집에 이 주사가 들어가지 않는가. 춘호의 처는 밖에서 기다리며 생각하다가 이 주사 혼자 있을 쇠돌 어멈 집으로 들어선다. 그녀는 한 시간쯤 뒤, 다음날 2원을 받기로 하고 이 주사와 헤어진다. 이튿날, 춘호는 2원을 얻어서 빛도 갚고 서울로 가서 아내와 함께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아내를 곱게 단장시켜 이 주사에게로 보낸다.

■ 등장 인물
▷ 춘호 : 돈도 없고 배우지도 못한 소박하고 우직한 인물.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름판에서 요행수를 바람.
▷ 춘호 처 : 희생적이며 순박한 여인. 남편의 매질과 극도의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음(賣淫)을 함.
▷ 이 주사 : 탐욕과 아집의 인간.
▷ 쇠돌 엄마 : 물욕에 집착하는 여인.  

■ 작품 구성
▷ 발단 : 자연 묘사를 통해 주인공들의 운명을 암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 전개 : 춘호가 처에게 돈을 구해올 것을 강요한다.
▷ 위기 : 춘호 처는 이 주사에게 몸을 허락한 다.
▷ 절정 : 춘호 처가 돌아와 돈을 구하게 되었음을 알린다.
▷ 결말 :  춘호가 아내를 단장시켜 이 주사에게 보낸다.

■ 작품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1930년대 농촌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주제 : 농촌 사회의 현실적 모순과 도착 된 성 윤리 풍자

■ 이해와 감상
 <소낙비>는 <따라지 목숨>이라는 원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고향을 버리고 타관으로 떠도는 1930년대 한국 유랑 농민의 서글픈 삶의 한 단면을 그린 작품이다. 


 실제로 1930년대 우리 나라 농가의 경제 사정과 부채 문제는 매우 심각했으며 당시 토착 농민의 상당수가 궁핍과 고리 대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당시의 농촌 상황을 생각할 때, 작중 인물의 경제적 궁핍은 당대의 빈궁하고 괴로웠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작중 인물들은 성실하게 살려고 했으며,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생활의 보금자리를 갖겠다는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있다. 남편은 아내의 매음(賣淫)을 재촉하고 아내는 남편의 매가 무서워 매음을 행하게 된다.


 문제는 그들의 태도이다. 남편은 매질을 해서 아내를 매음길로 내보낸다. 그의 아내 역시 매음을 모욕과 수치로 여기면서도 남편에게 매맞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양치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무리 빈곤하다지만 자기의 아내로 하여금 몸을 팔게 하는 행위나, 몸을 팔아서라도 숨돌리고 살아 보려는 아내의 행위는 보편적인 우리의 윤리 의식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극도의 가난 속에서 윤리나 도덕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춘호 내외의 윤리 의식 결여를 탓하기에는 그들의 무지와 빈곤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탐욕과 가난 때문에 아내에게 매음을 사주하거나 아내를 매매하는 경우는 김유정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춘호처럼 돈에 대한 허망한 탐욕에 이끌린 남자들은 아내를 가축이나 물건으로 취급하거나 성(性)을 생계 수단으로 이해하면서도 하등의 도덕적 수치감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소설은 <만무방>과 같이 빈곤 때문에 도덕성이 압살당하는 사회적 아픔을 서정성 짙게 그려 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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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장인님! 인제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하고 꼬박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말이 많다. 허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빙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초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년이면 삼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 만 알았지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만 해 왔다. 그럼 말이다. 장인님이 제가 다 알아채서, "어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들어라." 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 지레 펄펄뛰고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데릴사위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 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언젠가는 하도 갑갑해서 자를 가지고 덤벼들어서 그 키를 한번 재 볼까 했다. 마는 우리는 장인님 이 내외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마주 서 이야기도 한마디하는 법 없다. 우물길에서 언제나 마주칠 적이면 겨우 눈어림으로 재보고 하는 것인데 그럴 적마다 나는 저만침 가서 '제에미 키두!'하고 논둑에다 침을 퉤, 뱉는다. 아무리 잘 봐야 내 겨드랑(다른 사람보다 좀 크긴 하지만) 밑에서 넘을락 말락 밤낮 요모양이다.

 

개 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 크는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아하, 물동이를 자꾸 이니까 뼉다귀가 움츠라 드나보다, 하고 내가 넌즈시 그 물을 대신 길어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하러 가면 서낭당에 돌을 올려놓고 '점순이의 키 좀 크게 해줍소사.'

 

그러면 담엔 떡 갖다 놓고 고사드립죠니까.' 하고 치성도 한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되먹은 긴지 이래도 막무가내니…….

 

그래 내 어저께 싸운 것이지 결코 장인님이 밉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모를 붓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또 싱겁다. 이 벼가 자라서 점순이가 먹고 좀 큰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한 걸 내 심어서 뭘 하는 거냐. 해마다 앞으로 축 불거지는 장인님의 아랫배(가 너무 먹는 걸 모르고 냇병이라나, 그 배)를 불리기 위하여 심곤 조금도 싶지 않다.

 

"아이구 배야!"

 

난 몰 붓다 말고 배를 쓰다듬으면서도 그대루 논둑으로 기어올랐다. 그리고 겨드랑에 꼈던 벼 담긴 키를 그냥 땅바닥에 털썩 떨어 치며 나도 털썩 주저앉았다. 일이 암만 바빠도 나 배 아프면 고만 이니까. 아픈 사람이 누가 일을 하느냐. 파릇파릇 돋아 오른 풀 한 숲을 뜯어 들고 다리의 거머리를 쑥쑥 문대며 장인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논 가운데서 장인님도 이상한 눈을 해 가지고 한참 날 노려보더니, "넌 이 자식, 왜 또 이래 응?"

 

"배가 좀 아파서유!"하고 풀 위에 슬며시 쓰러지니까 장인님은 약이 올랐다. 저도 논에서 철벙철벙 둑으로 올라오더니 잡은 참 내 멱살을 움켜잡고 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이 자식. 일 허다 말면 누굴 망해 놀 속셈이냐. 이 대가릴 까놀 자식?" 우리 장인님은 약이 오르면 이렇게 손버릇이 아주 못됐다. 또 사위에게 이 자식 저 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님은 어디 있느냐. 오죽해야 우리 동리에서 누굴 물론하고 그에게 욕을 안 먹는 사람은 명이 짜르다 한다.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그를 돌아 세놓고 욕필이(본 이름이 봉필이니까) 욕필이, 하고 손가락질을 할 만치 두루 인심을 잃었다. 허나 인심을 정말 잃었다면 욕보다 읍의 배참봉댁 마름으로 더 잃었다. 번히 마름이란 욕 잘하고, 사람 잘 치고, 그리고 생김 생기길 호박개같애야 쓰는 거지만 장인님은 외양이 똑 됐다. 장인에게 닭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 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해 가을에는 영락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 치던 놈이 그 땅을 슬쩍 돌라 안는다. 이 바람에 장인님집 외양간에는 눈깔 커다란 황소 한 놈이 절로 엉금엉금 기어들고, 동리 사람들은 그 욕을 다 먹어 가면서도 그래도 굽실굽실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내겐 장인님이 감히 큰소리할 계제가 못된다.

 

뒷생각은 못하고 뺨 한 개를 딱 때려 놓고는 장인 님은 무색해서 덤덤히 쓴 침만 삼킨다. 난 그 속을 퍽 잘 안다.

 

조금 있으면 갈도 꺾어야 하고 모도 내야 하고, 한참 바쁜 때인데 나 일 안하고 우리집으로 그냥 가면 고만이니까.

 

작년 이맘때도 트집을 좀 하니까 늦잠잔다구 돌멩이를 집어던져서 자는 놈의 발목을 삐게 해 놨다. 사날씩이나 건숭 끙끙, 앓았더니 종당에는 거반 울상이 되지 않았는가…… ", 그만 일어나 일 좀 해라. 그래야 올 갈에 벼 잘되면 너 장가들지 않니." 그래 귀가 번쩍 띄어서 그날로 일어나서 남이 이틀 품들일 논을 혼자 삶아 놓으니까 장인님도 눈깔이 커다랗게 놀랐다. 그럼 정말로 가을에 와서 혼인을 시켜 줘야 온 경우가 옳지 않겠나, 볏섬을 척척 들여쌓아도 다른 소리는 없고 물동이를 이고 들어오는 점순이를 담배통으로 가리키며, "이 자식아, 미처 커야지 조걸 무슨 혼인을 한다구 그러니 원!"하고 남 낯짝만 붉혀 주고 고만이다.

 

골김에 그저 이놈의 장인님, 하고 댓돌에다 메꼰코 우리 고향으로 내뺄까 하다가 꾹꾹 참고 말았다.

 

참말이지 난 이 꼴하고는 집으로 차마 못 간다. 장가를 들러갔다가 오죽 못났어야 그대로 쫓겨 왔느냐고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논둑에서 벌떡 일어나 한풀 죽은 장인님 앞으로 다가서며, "난 갈 테야유. 그동안 사경 쳐내슈."

 

"너 사위로 왔지 어디 머슴살러 왔니?"

 

"그러면 얼찐 성례를 해줘야 안하지유. 밤낮 부려만 먹구 해준다, 해준다……" "글쎄, 내가 안하는 거냐, 그년이 안 크니까."하고 어름어름 담배만 담으면서 늘 하는 소리를 또 늘어놓는다.

 

이렇게 따져 나가면 언제든지 늘 나만 밑지고 만다. 이번엔 안 된다, 하고 대뜸 구장님한테로 판 단 가자고 소맷자락을 내끌었다.

 

", 이 자식이 왜 이래 어른을."

 

안 간다구 뻗디디구 이렇게 호령은 제맘대로 하지만 장인님 제가 내 기운은 못 당한다. 막 부려 먹고 딸은 안 주고, 게다 땅땅 치는 건 다 뭐야…….

 

그러나 내 사실 참 장인님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전날, 왜 내가 새고 개 맞은 봉우리 화전 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밭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 소리를 친다. 바위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 몸살(병을 아직 모르지만)이 날려구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어러이! 말이! 맘 마 마……"

 

이렇게 노래를 하며 소를 부리면 여느때 같으면 어깨가 으쓱으쓱한다. 웬일인지 밭을 반도 갈지 않아서 온몸이 맥이 풀리고 대구 짜증만 난다. 공연히 소만 들입다 두들기며…… "안야! 안야! 이 망할 자식의 소(장인님의 소니까) 대리를 꺾어 들라." 그러나 내 속은 정말 안야 때문이 아니라 점심을 이고 온 점순이의 키를 보고 울화가 났던 것이다.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된다. 그렇다구 또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 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뭉툭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에는 감참외가 제일 맛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둥글고 커다란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 아니냐. 헌데 한 가지 과가 있다면 가끔가다 몸이(장인님이 이걸 채신이 없이 들까분다고 하지만)너무 빨리빨리 논다. 그래서 밥을 나르다가 때없이 풀밭에서 깨빡을 쳐서 흙투성이 밥을 곧잘 먹인다. 안 먹으면 무안해 할까 봐서 이걸 씹고 앉았느라면 으적으적 소리만 나고 돌을 먹는 겐지 밥을 먹는 겐지……,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지 성한 밥채루 밭머리에 곱게 내려 놓았다. 그리고 또 내외를 해야 하니까 저만큼 떨어져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웅크리고 앉아서 그릇 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다 먹고 물러섰을 때, 그릇을 챙기는데 난 깜짝 놀라지 않았느냐. 고개를 푹 숙이고 밥함지에 그릇을 포개면서 날더러 들으라는지, 혹은 제 소린지,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하고 혼자서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가 있나 없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그럼 어떡해?"

 

하니까,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빨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친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되는 심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뒷모양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 내에 부쩍 (속으로) 자란 듯싶은 점순이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멀쩡하게 아직 어리다구 하니까…….

 

우리가 구장님을 찾아갔을 때 그는 싸리문밖에 있는 돼지우리에서 죽을 퍼주고 있었다. 서울엘 좀 갔다오더니 사람은 점잖아야 한다구 웃쇰이(얼른 보면 지붕 위에 앉은 제비 꼬랑지 같다) 양쪽으로 뾰죽히 삐치고 그걸 애헴, 하고 늘 쓰담는 손버릇이 있다.

 

우리를 멀뚱히 쳐다보고 미리 알아챘는지, "왜 일들 허다 말구 그래?"하더니 손을 올려서 그 애헴을 한번 후딱 했다.

 

"구장님! 우리 장인님과 츰에 계약하기를……"

 

먼저 덤비는 장인님을 뒤로 떠다밀고 내가 허둥지둥 달려들다가 가만히 생각하고, '아니 우리 빙장님과 츰에.'하고 첫번부터 다시 말을 고쳤다. 장인 님은 빙장님, 해야 좋아하고 밖에 나와서 장인님, 하면 괜스리 골을 내려고 든다. 뱀두 뱀이래야 좋으냐구 창피스러우니 남 듣는 데는 제발 빙장님, 빙모님, 하라구 일상 당조심을 받아 오면서 난 그것두 자꾸 잊는다.

 

당장두 장인님, 하나 옆에서 내 발등을 꾹 밟고 곁눈질을 흘기는 바람에야 겨우 알았지만…… 구장님도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퍽 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구장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그럴 게다.

 

길게 길러 둔 새끼손톱으로 코를 후벼서 저리 탁 튀기며, "그럼 봉필씨! 얼른 성례를 시켜 주구려, 그렇게까지 제가 하구 싶다는 걸……" 하고 내 짐작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 말에 장인님이 삿대질로 눈을 부라리고, "아 성례구 뭐구 계집 애년이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 하니까 고만 멀쑤룩해져서 입맛만 쩍쩍 다실 뿐이 아닌가.

 

"그것두 그래!"

 

"그래, 거진 사년 동안에도 안 자랐더니 그 킨 은제 자라지유" 다 그만두구 사경 내슈……" "글쎄, 이 자식!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 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사실 빙모님은 점순이보다도 귓배기가 작 다)"

 

장인님은 이 말을 듣고 껄껄 웃더니(그러나 암만 해두 돌 씹은 상이다) 코를 푸는 척하고 날 은근히 곯리려고 팔꿈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다.

 

더럽다. 나두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그 궁둥이를 콱 떼밀었다. 장인님은 앞으로 우찔근하고 싸리문께로 쓰러질 듯하다 몸을 바로 고치더니 눈총을 몹시 쏘았다. 이런 쌍년 의 자식, 하곤 싶으나 남의 앞이라니 차마 못하고 섰는 그 꼴이 보기에 퍽 쟁그러웠다.

 

그러나 이밖에는 별반 신통한 귀정을 얻지 못하고 도로 논으로 돌아와서 모를 부었다. 왜냐면 장인님이 뭐라구 귓속말로 수군수군하고 간 뒤다. 구장님이 날 위해서 조용히 데리고 아래와 같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뭉태의 말은 구장님이 장인님에게 땅 두 마지기 얻어 부치니까 그래 꾀엿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

 

"자네 말두 하기야 옳지, 암 나이 찼으니 아들이 급하다는 게 잘 못된 말은 아니야. 허지만 농사가 한층 바쁜 때 일을 안한다든가 집으로 달아난다든가 하면 손해죄루 그것두 징역을 가거든!(여기에 그만 정신이 번쩍 났다) 왜 요전에 삼포말서 산에 불 좀 놓았다구 징역간 거 못 봤나. 제 산에 불을 놓아도 징역을 가는 이 땐데 남의 농사를 버려두니 죄가 얼마나 더 중한가. 그리고 자넨 정장을(사경 받으러 정장 가겠다 했다) 간대지만 그러면 괜스리 죄를 들쓰고 들어가는 걸세. 또 결혼두 그렇지. 법률에 성년 이란 게 있는데 스물 하나가 돼야지 비로소 결혼을 할 수가 있는 걸세. 자넨 물론 아들이 늦을 걸 염려하지만 점순이루 말하면 이제 겨우 열 여섯이 아닌가. 그렇지만 아까 빙장님의 말씀이 올 갈에는 열일을 제치고라두 성례를 시켜 주겠다 하시니 좀 고마울 겐가. 빨리 가서 모붓든 거나 마저 붓게, 군소리 말구 어서가."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끽소리 없이 왔다.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은 지금 생각하면 전혀 뜻밖의 일이라 안할 수 없다.

 

장인님으로 말하면 요즈막 작인들에게 행세를 좀 하고 싶다고 해서, "돈 있으면 양반이지 별게 있느냐!"

 

하고 일부러 아랫배를 쑥 내밀고 걸음도 뒤틀리게 걷고 하는 이판이다. 이까진 나쯤 두들기다 남의 땅을 가지고 모처럼 닦아 놓았던 가문을 망친다든가 할 어른이 아니다. 또 나로 논지면 아무쪼록 잘 봬서 점순이에게 얼른 장가를 들어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자면 결국 어젯밤 뭉태네 집에 마슬간 것이 썩 나빴다. 낮에 구장님 앞에서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구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맞구두 그걸 가만 둬?"

 

"그럼 어떡허니?"

 

"임마, 봉필일 모판에다 거꾸로 박아 놓지 뭘 어떡해?"하고 괜히 내 대신 화를 내가 지고 주먹질을 하다 등잔까지 쳤다. 놈이 번히 괄괄은 하지만 그래 놓고 날더러 석유 값을 물라구 막 찌다우를 붙는다. 난 어안이 벙벙해서 잠자코 앉았으니까 저만 연신 지껄이는 소리가, "밤낮 일만 해주구 있을 테냐?"

 

"영득이는 일년을 살구두 장갈 들었는데 넌 사년이나 살구두 더 살아야 해?" "네가 세번째 사윈줄이나 아니? 세번째 사위"

 

"남의 일이라두 분하다. 이 자식, 우물에 가 빠져 죽어." 나중에는 겨우 손톱으로 목을 따라고까지 하고, 제 아들같이 함부로 훅닥이었다. 별의별 소리를 다해서 그대로 옮길 수는 없으나 그 줄거리는 이렇다…….

 

우리 장인님 딸이 셋이 있는데 맏딸은 재작년 가을에 시집을 갔다. 정말은 시집을 간 것이 아니라 그 딸도 데릴사위를 해 가지고 있다가 내보냈다. 그런데 딸이 열 살 때부터 열 아홉 즉 십년 동안 에 데릴사위를 갈아들이기를, 동리에선 사위 부자라고 이름이 났지마는 열네 놈이란 참 너무 많다.

 

장인님이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 고로 그담 딸을 데릴사위를 해 올 때까지는 부려먹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머슴을 두면 좋지만 그건 돈이 드니까, 일 잘하는 놈을 고르느라고 연방 바꿔 들였다. 또 한편 놈들이 욕만 줄창 퍼붓고 심히도 부려먹으니까 밸이 상해서 달아나기도 했겠지, 점순이는 둘째딸인데 내가 일테면 그 세 번째 데릴사위로 들어온 셈이다. 내 담으로 네 번째 놈이 들어올 것을 내가 일도 잘하고 그리고 사람이 좀 어수룩하니까 장인님이 잔뜩 붙들고 놓질 않는다. 세째딸이 인제 여섯살, 적어두 열 살은 돼야 데릴사위를 할 테므로 그 동안은 죽도록 부려먹어야 된다. 그러니 인제는 속 좀 채리고 장가를 들여달라구 떼를 쓰고 나자빠져라, 이것이다.

 

나는 겉으로 엉, , 하며 귓등으로 들었다. 뭉태는 땅을 얻어 부치다가 떨어진 뒤로는 장인님만 보면 공연히 못 먹어서 으릉거린다. 그것도 장인님이 저 달라고 할 적에 제 집에서 위한다는 그 감 투(예전에 원님이 쓰던 것이라나, 옆구리에 뽕뽕 좀먹은 걸레)를 선뜻 주었더면 그럴 리도 없었던 걸…….

 

그러나 나는 뭉태란 놈의 말을 전수히 곧이 듣지 않았다. 꼭 곧이 들었다면 간밤에 와서 장인님과 싸웠지 무사히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딸에게까지 인심을 잃은 장인님이 혼자 나빴다.

 

실토이지 나는 점순이가 아침상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는 오늘은 또 얼마나 밥을 담았나, 하고 이것만 생각했다. 상에는 된장찌개하고 간장 한 종지, 조밥 한 그릇, 그리고 밥보다 더 수부룩하게 담은 산나물이 한 대접, 이렇다. 나물은 점순이가 틈틈이 해 오니까 두 대접이고 네 대접이고 멋대로 먹어도 좋으나 밥은 장인님이 한 사발 외엔 더 주지 말라고 해서 안된다. 그런데 점순이가 그 상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제말로 지껄이는 소리가, "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하고 엊그제 산에서와 같이 되우 쫑알거린다. 딴은 내가 더 단단히 덤비지 않고 만 것이 좀 어리석었다, 속으로 그랬다.

 

나도 저쪽 벽을 향하여 외면하면서 내 말로, "안된다는 걸 그럼 어떡헌담!"하니까, "쇰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하고 또 얼굴이 빨개지면서 성을 내며 안으로 샐죽하니 튀들어가지 않느냐, 이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게 망정이지 보았다면 내 얼굴이 에미 잃은 황새 새끼처럼 가여웁다 했을 것이다.

 

사실 이때 만치 슬펐던 일이 또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은 암만 못생겼다 해두 괜찮지만 내 아내 될 점순이가 병신으로 본다면 참 신세는 따분하다. 밥을 먹은 뒤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갈려 하 다 도로 벗어 던지고 바깥마당 공석 위에 드러누워서 나는 차라리 죽느니만 같지 못하다 생각했다.

 

내가 일 안하면 장인님 저는 나이가 먹어 못하고 결국 농사 못 짓고 만다. 뒷짐으로 트림을 꿀꺽 하고 대문 밖으로 나오다 날 보고서, "이 자식, 왜 또 이러니."

 

"관격이 났어유, 아이구 배야!"

 

"기껀 밥 처먹구 무슨 관격이야, 남의 농사 버려 주면 이 자식 징역간다 봐라!" "가두 좋아유, 아이구 배야!"

 

 

참말 난 일 안해서 징역 가도 좋다 생각했다. 일후 아들을 낳아도 그 앞에서 바보, 바보, 이렇게 별명을 들을 테니까 오늘은 열 쪽이 난대도 결정을 내고 싶었다.

 

장인님이 일어나라고 해도 내가 안 일어나니까 눈에 독이 올라서 저편으로 힝하게 가더니 지게 막대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걸로 내 허리를 마치 돌 떠넘기듯이 쿡 찍어서 넘기고 넘기고 했다.

 

밥을 잔뜩 먹어 딱딱한 배가 그럴 적마다 퉁겨지면서 밸창이 꼿꼿한 것이 여간 켕기지 않았다. 그래도 안 일어나니까 이번에는 배를 지게 막대기로 위에서 쿡쿡 찌르고 발길로 옆구리를 차고 했다.

 

장인 님은 원체 심청이 궂어서 그러지만 나도 저만 못하지 않게 배를 채었다. 아픈 것을 눈을 꽉 감 고 넌 해라 난 재밌단 듯이 있었으나 볼기짝을 후려갈길 적에는 나도 모르는 결에 벌떡 일어나서 그 수염을 잡아챘다. 마는 내 골이 난 것이 아니라 정말은 아까부터 벽 뒤 울타리 구멍으로 점순이 가 우리들의 꼴을 몰래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말 한마디 톡톡히 못한다고 바라보는데 매까지 잠자코 맞는 걸 보면 짜장 바보로 알 게 아닌가. 또 점순이도 미워하는 이까짓 놈의 장인님하곤 아무것도 안되니까 막 때려도 좋지만 사정 보아서 수염만 채고(제 원대로 했으니까 이때 점순이는 퍽 기뻤겠지) 저기까지 잘 들리도록 '이걸 까셀라부다!'하고 소리를 쳤다.

 

장인 님은 더 약이 바짝 올라서 잡은 참 지게막대기로 내 어깨를 그냥 내려갈겼다. 정신이 다 아 찔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엔 나도 온몸에 약이 올랐다. 이녀석의 장인님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 아래 밭 있는 넝알로 그대로 떠밀어 굴려버렸다.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하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허지만 장인님이 선뜻 오냐 낼이라두 성례시켜 주마,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나야 이러면 때린 건 아니니까 나중에 장인 쳤다는 누명도 안 들을 터이고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랭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매달렸다. , 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빙장님! 빙장님!"

 

"이 자식!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 ! 할아버지! 살려줍쇼, 할아버지!"하고 두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 보다 했다. 그래두 장인 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 맸다. 그러나 얼굴을 드니(눈엔 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짓가랭이를 꽉 움키고 잡아나꿨다.

 

내가 머리가 터지도록 매를 얻어맞은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가 또한 우리 장인님이 유달리 착한 곳이다.

 

여느 사람이면 사경을 주어서라도 당장 내어쫓았지, 터진 머리를 볼 솜으로 손수 지져 주고, 호주머니에 희연 한 봉을 넣어 주고 그리고,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만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 얼른 갈아라." 하고 등을 뚜덕여 줄 사람이 누구냐. 나는 장인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어느덧 눈물까지 났다.

 

점순이를 남기고 인젠 내쫓기려니 하다 뜻밖의 말을 듣고, "빙장님! 인제 다시는 안그러겠어유!"

 

 

이렇게 맹세를 하며 부랴부랴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갔다.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장인님을 원수로만 여겨서 잔뜩 잡아당겼다.

 

"! ! 이놈아! 놔라, ."

 

장인 님은 헷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짖궂이 더 댕겼다. 마는 장인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났다.

 

"할아버지! 놔라, , , , 놔라."

 

그래도 안되니까, "애 점순아!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헐레벌떡하고 단숨에 뛰어 나왔다. 나의 생각에 장모님은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수해 하겠지---. 대체 이게 웬 속인지(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아버질 혼내 주기는 제가 내래 놓고 이제 와서는 달겨들며,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하고, 귀를 뒤로 잡아댕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이 탁 꺾이어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도 덤벼들어 한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해 놓고 장인 님은 지게 막대기를 들어서 사뭇 내려조졌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지도 않고 암만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이 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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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및 감상]

 

 

작품 개관
 1935
년에 <조광(
朝光)> 12월호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혼인을 핑계로 일만 시키는 교활한 장인과 그런 장인에게 반발하면서도 끝내 이용당하는 순박하고 어리숙한 머슴 ''의 갈등을 해학적으로 그린 소설. 희극적 상황의 설정과 유머러스한 토속적 언어 사용, 엇갈린 시간 구성이 뛰어나다. 이 작품에서 1930년대 농촌 사회의 '있는 자' '없는 자' 사이의 갈등 구조를 읽어 낸다는 것은 과잉 해석이다. 농촌 젊은이들의 순박한 사랑이 중심일 것이다.

작품 줄거리
 
내 아내가 될 점순이는 열 여섯 살인데도 불구하고 키가 너무 작다. 나는 점순이보다 나이가 십 년이 더 위다. 점순네 데릴사위로 3 7개월이나 일을 해 주었건만 심술 사납고 의뭉한 장인은 점순이의 키가 작다는 이유를 들어 성례시켜 줄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나는 '돼지는 잘 크는데 점순이는 왜 크지 않는지' 고민을 하기도 한다. 서낭당에  치성도 드려 보고 꾀병도 부려 보지만 도통 반응이 없고 장인은 몽둥이질만 한다. 그러는 가운데 점순이는 나에게 '성례를 시켜 달라고 장인에게 조르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어느 날, 나는 점순이의 충동질에 장인과 대판 싸움을 벌였는데, 장인이 나를 땅 바닥에 메치자 나는 장인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쥔다. 장인은  놓으라고 헛손질을 하며 고함을 지르지만 나는 더욱 세게 움켜쥔다. '할아버지'를 연발하던 장인이 점순이를 부르자,  점순이와 장모가 나와 갑자기 장인의 역성을 드는 바람에 오히려 얻어맞기만 했다. 그러나 장인은 나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결국 가을에 성례를 시켜 준다는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  
핵심 정리

갈래 : 단편 소설,  토속적 소설,  향토적 소설
배경 : 시간:1930년대로 연대기적 시간이 설정되어 있어 나와 장인의 과거를 과거를 회상
           
공간:강원도 산골 마을인 점순이의 집과 전답
성격 : 해학적, 토속적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공정한 위치에서 서술하기가 쉽지 않은 단점을 유정은 교묘히 극복하고 있다. 서술자인 인물이 자기의 이야기를 토속적인 어법으로 이끌어 나가면서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문체 : 향토적 어휘 속에 희극적 어투와 문장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살림
어조 : 해학적 어조
갈등 : 마름인 장래의 장인(봉필)과 우직하고 순박한 머슴이며 장래의 사위인 나 사이에, 3 7개월 동안 해결되지 않은 혼인 문제가 얽혀 갈등의 고조를 이루고 있다.
제재 : 혼인 문제
주제 : 향토적 서정의 세계, 인간 본연의 갈등과 그 해결, 시골 남녀의 진솔한 사랑


작품 구성
전체구성:주인공인 ''를 중심으로 점순이와 장인간에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단순구성이다.
발단 : 결혼 문제를 둘러싼 ''와 장인 간의 갈등 내용을 제시함.
전개 : ''와 장인 간의 갈등이 차차 심각해져 감. (뭉태의 충동질과 점순이의 쫑알거림이 요인.)
절정 : ''와 장인 사이의 해학적 활극 장면. 사타구니를 서로 잡아 당기고, ''의 머리가 터짐.
결말 : 희극적 싸움이 끝나고 화해가 이루어짐. ― '절정' 부분 속에 삽입됨.


등장 인물

▶'
' : 주인공. 작중 화자. 우직하고 순박한 데릴사위인 머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알면서도 거기서 탈피할 수 없는 어리숙한 인물.

장인(봉필) : 자신의 딸을 미끼로 여러 명의 데릴사위를 번갈아 두고 무보수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교활하고 욕심많은 영감

점순 : ''의 배필감. 16세가 되었으나 키가 작다. 당돌하고 야무진 성격. ''를 배후에서 조종하며, ''의 장인과의 싸움에서는 엉뚱하게 장인 편을 든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김유정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강원도 산골이라는 향토적인 배경에서 일어나는 해학적인 사건을 그리고 있다. 데릴사위라는 봉건 사회적인 모순된 제도를 상황으로 한 희극적 주인공 ''가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믿고 충실해 보지만 결과는 착각과 희극적인 장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의뭉스런 주인과 그 주인이 사위삼겠다고 약속한 우직한 머슴 사이의 갈등이 익살스러운 문체로 형상화된다. 가난하고 무식하나 순결하기 그지없는 사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에 걸맞은 토속어를 실어 가진 자들의 약삭빠른 세태주의를 꼬집으면서 한편에서 꾸밈없는 삶의 건강성을 일깨우는 김유정 문학의 걸작이다.  대부분의 평자들이 김유정 문학의 현실 규탄과 저항의 정신이 없음을 지적하지만 이 작품에는 최소한의 현실 비판과 풍자적인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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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드득 푸드득 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


점순네 수탉(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 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며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 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지게막대기를 메고 달려들어 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 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나흘 전 감자 건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 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뒤로 살며시 와서,

"
!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긴치 않는 수작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체 만 척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만 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 보구…….

"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듸?"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
너 일하기 좋니?"

또는,

"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집께를 할금 할금 돌아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지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동네에 들어온 것은 근 삼 년째 되어 오지만 여태껏 가무잡잡한 점순의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가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바구니를 다시 집어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횡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 동리 어른이,

"
너 얼른 시집을 가야지?"

하고 웃으면,

"
염려 마서유.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점순이었다. 본시 부끄럼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어리를 바구니로 한번 모질게 후려쌔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감자를 안 받아먹는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느 집엔 이거 없지.'는 다 뭐냐. 그 렇잖아도 저희는 마름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땅을 부치므로 일상 굽실거린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집이 없어서 곤란으로 지낼 제 집터를 빌리고 그 위에 집을 또 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순네의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 때 양식이 딸리면 점순이네한테 가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 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동네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점순이 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계집애가 까닭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간 담날 저녁나절이었다. 나무를 한 짐 잔뜩 지고 산을 내려오려니까 어디서 닭이 죽는 소리를 친다. 이거 뉘집에서 닭을 잡나, 하고 점순네 울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똥그랬다. 점순이가 저희 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이게 치마 앞에다 우리 씨암탉을 꼭 붙들어 놓고는,

"
이놈의 씨닭!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레 패 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마는 아주 알도 못 낳으라고 그 볼기짝께를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한번 휘둘러보고야 그제서야 점순이 집에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잡은 참 지게 막대기를 들어 울타리의 중턱을 후려치며,

"
이놈의 계집애! 남의 닭 알 못 낳으라구 그러니?"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점순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제 닭 가지고 하듯이 또 죽어라,죽어라, 하고 패는 것이다. 이걸 보면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닭을 잡아가지고 있다가 네 보라는 듯이 내 앞에서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집에 뛰어들어가 계집애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 닭이 맞을 적마다 지게 막대기로 울타리를 후려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울타리를 치면 칠수록 울섶이 물러앉으며 뼈대만 남기 때문이다. 허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

"
, 이년아! 남의 닭 아주 죽일 터이야?"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울타리께로 쪼르르 오더니 울 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닭을 내팽개친다.

"
에이 더럽다! 더럽다!"

"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년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횡허케 돌아내리며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랐다, 라고 하는 것은 암탉이 풍기는 서슬에 나의 이마빼기에다 물지똥을 찍 갈겼는데 그걸 본다면 알집만 터졌을 뿐 아니라 골병은 단단히 든 듯싶다. 그리고 나의 등 뒤를 향하여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
이 바보 녀석아!"

"
! 너 배냇병신이지?"

그만도 좋으련만,

"
! 너 느 아버지가 고자라지?"

"
뭐 울아버지가 그래 고자야?"

할 양으로 열벙거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리어 바라봤더니 그때까지 울타리 위로 나와 있어야 할 점순이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다 돌아서서 오자면 아까에 한 욕을 울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거리 한 마디 못하는 걸 생각하니 돌부리에 채이어 발톱 밑이 터지는 것도 모를 만큼 분하고 급기야는 두 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점순이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수탉과 쌈을 붙여 놓는다. 제 집 수탉은 썩 험상궂게 생기고 쌈이라면 홰를 치는 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수탉이 면두며 눈깔이 피로 흐드르하게 되도록 해 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수탉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모이를 쥐고 와서 꾀어내다가 쌈을 붙인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배차를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넌지시 장독께로 갔다. 쌈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 한다. 장독에서 고추장 한 접시를 떠서 닭 주둥아리께로 들여 밀고 먹여 보았다. 닭도 고추장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진 반 접시 턱이나 곧잘 먹는다. 그리고 먹고 금시는 용을 못쓸 터이므로 얼마쯤 기운이 돌도록 횃속에다 가두어 두었다.

밭에 두엄을 두어 짐 져내고 나서 쉴 참에 그 닭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는 아무도 없고 점순이만 저희 울안에서 헌옷을 뜯는지 혹은 솜을 터는지 웅크리고 앉아서 일을 할 뿐이다.

나는 점순네 수탉이 노는 밭으로 가서 닭을 내려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두 닭은 여전히 얼리어 쌈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었다. 멋지게 쪼는 바람에 우리 닭은 또 피를 흘리고 그러면서도 날갯죽지만 푸드득푸드득하고 올라 뛰고 뛰고 할뿐으로 제법 한번 쪼아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번엔 어쩐 일인지 용을 쓰고 펄쩍 뛰더니 발톱으로 눈을 하비고 내려오며 면두를 쪼았다. 큰 닭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멈씰하며 물러난다. 이 기회를 타서 작은 우리 수탉이 또 날쌔게 덤벼들어 다시 면두를 쪼니 그제서는 감때사나운 그 대강이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을 수 없다.

옳다 알았다, 고추장만 먹이며는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겠다. 그때에는 뜻밖에 내가 닭쌈을 붙여 놓는 데 놀라서 울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점순이도 입맛이 쓴지 눈쌀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한다! 잘한다!"하고, 신이 머리끝까지 뻐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큰 닭이 한번 쪼인 앙갚음으로 호들갑스레 연거푸 쪼는 서슬에 우리 수탉은 찔끔 못하고 막 곯는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점순이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 못하여 덤벼들어서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고추장을 좀더 먹였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장독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밑에 고추장을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당최 먹질 않는다.

나는 하릴없이 닭을 반듯이 눕히고 그 입에다 궐련 물부리를 물리었다. 그리고 고추장물을 타서 그 구멍으로 조금씩 들여 부었다. 닭은 좀 괴로운지 킥킥하고 재채기를 하는 모양이나 그러나 당장의 괴로움은 매일 같이 피를 흘리는 데 댈 게 아니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 두어 종지 가량 고추장물 먹이고 나서는 나는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닭이 왜 그런지 고개를 살며시 뒤틀고는 손아귀에서 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볼까 봐서 얼른 홰에다 감추어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 모양 같다.

그랬던 걸 이렇게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으니 이 망한 계집애가 필연 우리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제가 들어와 홰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닭을 잡아다 가두고 염려는 스러우나 그렇다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소나무 삭정이를 따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해도 고년의 목쟁이를 돌려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년 등줄기를 한번 되게 후려치겠다 하고 싱둥겅둥 나무를 지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지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어 앉아서 점순이가 청승맞게시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고 앞에서 또 푸드득, 푸드득, 하고 들리는 닭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닭을 집어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서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나뭇지게도 벗어 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 막대기를 뻗치고 허둥허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지경에 이르렀다. 닭도 닭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수탉을 단매로 때려 엎었다. 닭은 푹 엎어진 채 다리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니?"

"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
뭐 이 자식아! 누 집 닭인데?"

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해야 될는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나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
그럼 너 이담부텀 안 그럴 테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 테야!"

"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
너 말 마라!"

"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알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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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및 감상]

줄거리

‘나’는 점순네 소작인의 아들인데, 닭싸움으로 늘 속이 상했다. 얼마 전에 점순이가 준 감자를 받아 먹지 않은 뒤부터는 더욱 나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인 점순이는, 힘센 자기네 수탉과 우리 닭을 싸우게 해서 조그마한 우리 수탉을 괴롭히는가 하면, 우리 씨암탉을 잡아 마구 두들겨 주기도 했다. 화가 난 ‘나’는 우리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여 싸우게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늘도 산에서 나무를 지고 내려오다가 보니, 산 기슭에서 점순이가 또 닭싸움을 시키고 있는데, 우리 닭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러 있다. 홧김에 점순네 수탉을 때려 죽인 ‘나’는,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점순이는 용서해 주겠다고 하며, ‘나’를 잡고 동백꽃 속에 넘어져 버린다.

 

핵심 정리

갈래 : 단편 소설

배경 : 시간(1930년대). 공간(인심이 순하고 소박한 산골 마을)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제재 : 동백꽃 핀 봄날 산골 마을의 젊은 남녀

주제 : 산골 마을 젊은 남녀의 순박한 사랑

문체 : 이 작품에는 토속어와 개인어가 풍부하게 구사된다. 이것이 그의 소설에 활력을 주고 산문성을 확보하게 한다. 지문이나 대사에 구어가 지배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김유정의 소설에는 토속어, 방언, 개인어가 많이 쓰인다(의성어, 의태어에 유의)

표현 : 표현의 아이러니-점순이의 말투. ‘나’를 좋아하면서도 오히려 짓궂은 행동으로 괴롭힌다. 점순이는 성()을 알지만 ‘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황의 아이러니-주인공 ‘나’의 우직한 행동은 가난(소작인)과 어리석음 때문에 빚어진다.

구성 :

    발단 - 닭싸움으로 나의 기를 자꾸 올리는 점순

    전개 - 나흘 전, 감자를 준 호의를 거절당한 점순. 우리 닭을 더욱 학대함

    위기 - 닭에게 고추장을 먹여 싸우게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음

    절정 - 빈사 지경의 우리 닭을 보고 화가 나서 점순네 닭을 때려 죽임

    결말 - 점순이가 닭 사건을 봐 주기로 함. 함께 동백꽃 속에 파묻힘

제재 : 동백꽃

주제 : 산골 젊은 남녀의 순박한 사랑.

출전 : <조광(朝光)>(1936)

 

등장 인물

: 소작인의 아들. 순박하고 천진하며 감수성이 둔한 편이나, 저 나름의 눈치는 없지 않다. 우직한 인물의 전형.

점순이 : 마름집 딸. 깜찍스럽고 조숙하여 ‘나’의 무딘 감수성을 자극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도발한다. 개성적 인물.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36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김유정 소설의 예술성을 대표한다. 토속적인 배경을 통하여 일제 강점기 우리 고향의 또 다른 한 모습과 인간의 강박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단편소설이다. 소작인과 마름이라는 신분 관계에 약간의 갈등은 내포되어 있으나, 그것은 부차적이고 강조점은 향토성과 토속적 미학에 있다.

 

‘동백꽃’은, 인생의 봄을 맞아서 이성에 눈떠 가는 사춘기 남녀의 애정이 풍속도로 보는 관점과, 사회 계층간의 관계에 강조점을 두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작품 전체의 줄거리로 볼 때, 계층 문제보다는 순박한 시골 청소년의 사랑이 주제로 다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유정 소설 일반이 그렇듯이, 이 작품에서도 현실에 대한 대결 정신보다는 익살스럽고 유쾌한 현실 파악 태도를 엿볼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웃음을 머금을 수 있다. , 토속적 어휘의 숨김 없는 구사로 나타나는 인물의 희화(戱畵)에 의해, 우직하면서도 애련(愛憐)을 지닌 인물을 제시하고 있다.

농촌만이 가지는 독특한 풍속이나 풍물, 방언 또는 속어의 구사, 향토적 배경 등은 앞서 든 해학적 어조와 더불어 이 작품의 토속성을 한층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김유정의 작품 세계는 향토성, 해학성, 풍자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하의 농촌의 궁핍성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는 순수한 토속적 농촌 사회를 서정적으로 표현하였다. 나와 점순이는 소작농의 아들과 마름의 딸이라는 관계에 있지만, 이들 사이의 계층적 갈등보다는 사춘기 남녀의 순박하면서 미묘한 사랑의 감정과 심리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에서 ‘나’는 순박하고 천진하면서도 우직한 데 비해 점순이는 활달하고 앙큼하면서 도전적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성격적 차이에서 오는 사춘기 남녀의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산골의 동백꽃을 배경으로 구수한 토착어를 사용함으로써 흙 냄새 물씬 풍기는 향토적 서정성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구성은, 시간적인 계기성을 엄격히 지키기보다는, 현재와 과거가 인과적인 결속을 위해서 역전 교체되는 구성을 특징을 보인다. 작품의 시간적 구조는 현재, 과거, 현재의 순으로 구성되는데 이것은 닭의 싸움을 매개로 한 갈등 구조를 중심으로 연결된 것이며, 인물 행위의 동기를 해명하는 유기적 구성이다. 시간적인 관계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갈등과 분규에 해당하고 시간적인 현재가 갈등의 정점을 이루었다가 다시 화해의 대단원으로서 종결되어 있는데, 시간적인 현재, 즉 갈등의 심화를 먼저 제시하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그 갈등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서 절반 가량을 과거를 서술하고 있다. 또 여기서 닭싸움은 ‘나’와 점순의 심리를 매개하는 구성적 장치이며, 동백꽃에 쓰러져 뒹구는 결말은 일종의 경악법으로 마무리하는 구성상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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